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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별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코끼리를 보고 만들어낸 기복 주술인 성광은상제는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졌던 코끼리의 주술적 상징 덕분에 건강과 회복과 관련된 효능을 지닌 주술 의식이었다. 거기에 기복신앙이 더해져 약간의 행운을 주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는 법.

       이 주술 의식의 효과는 ‘코끼리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와 닮게 만들어 상징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였기에 대가로서 주술사를 코끼리와 닮게 했기 때문이다.

         

       코끼리에겐 상아가 있다.

       코끼리에겐 거칠고 딱딱한 피부가 있다.

       코끼리는 채식 동물이다.

         

       사람에겐 상아가 없다.

       사람에겐 부드러운 피부가 있다.

       사람은 잡식 동물이다.

         

       코끼리와 사람은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

       하지만 주술의 원리 중 하나는 바로 유사성.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고,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부른다는 것.

         

       이를 동종 주술(homoeopathic magic)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원리에 따라 사람은 코끼리를 닮게 된다.

         

       사람에겐 상아가 없지만, 치아가 있으니, 상아와 흡사하게 치아가 자라난다.

       사람에겐 부드러운 피부가 있지만, 코끼리와 비슷하게 거칠고 딱딱해진다.

       사람은 채식할 수 있으니 오직 채식만 할 수 있게 변한다.

       

       성광은상제는 세 가지의 혜택을 주는 대신 세 가지의 대가를 가져가는, 너무나도 정직한 주술.

       

       닮는다.

         

       없던 치아를 두 개 자라게 하고, 피부를 거칠고 딱딱하게 만들며, 한동안 채식으로만 영양을 섭취하게 만든다.

         

       하지만 피부를 거칠고 딱딱하게 만드는 것은 관리를 좀 하면 되는 문제고, 채식만 먹는 것도 채식용 식단이 넘쳐나기에 문제가 없었다. 적은 양의 식량으로도 엄청난 활동을 해야 하는 용병 생활에도 지장이 가지 않도록 베지테리언용 전투식량이 잘 개발되어 있기에 현대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대가이기도 했다.

       다만 없던 치아가 생겨나는 것은 참으로 악질이었는데, 이 없던 치아라는 것이 바로 ‘사랑니’였기 때문이다.

         

       진성은 운이 없었는지 사랑도 하지 않았음에도 중학교 시절 사랑니를 무려 3개나 뺐고, 거기에 의식 때문에 사랑니를 추가로 빼야만 했다.

         

       그렇기에 성광은상제의 대가를 알았을 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사랑니를 자라게 하다니 참으로 끔찍하도다. 이로써 나는 사랑니를 다섯 번이나 뺀 사람이 되었구나. 』

         

       하지만 주술 의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대가로 지불할지 모르는 것.

       진성은 그저 자신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치과에 가서 사랑니를 뽑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의식을 거행했을 때, 그는 애써 자기 합리화를 했다.

         

       『 또 사랑니가 자라났구나. 다만 운이 없으면 눈 밑에도 자랄 수 있는 것이 사랑니인바, 평범한 위치에 자라난 것에 감사해야 하느니. 』

         

       뽑은 사랑니만 7개.

         

       사랑니 역시 주술 재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취가 덜 된 상태로 사랑니를 뽑혔던 기억이 있던 진성으로서는 그다지 달가운 대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 역시 같은 대가에 두 번이나 당첨이 된 것에 대해서 자신의 불운을 탓할 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세 번째 의식 때에도 똑같은 대가가 돌아오자 이상함을 느꼈다.

         

       『 대가가 완전히 똑같지 않은가? 』

         

       두 개의 사랑니.

       거칠어지는 피부.

       채식 강제.

         

       세 번 모두 같았다.

         

       그런데 더 기이한 것은, 이 대가가 발현되는 위치도 같았다는 것이다.

         

       사랑니는 양쪽 윗부분에.

       거칠어지는 피부는 손과 발에 집중적으로.

         

       『 세 번의 의식. 세 번의 동일한 대가. 이걸 우연이라 말할 수 있는가. 』

         

       진성은 그 즉시 실험을 시작했다.

         

       네 번째 성광은상제를 사용했다.

         

       같은 위치에 사랑니가 나고, 손과 발의 피부가 거칠어졌다.

         

       다섯 번째 성광은상제를 사용했다.

         

       같은 위치에 사랑니가 나고, 손과 발의 피부가 거칠어졌다.

         

       이 우연의 일치라 볼 수 없는 대가의 반복은 무려 열 번째 시도까지도 동일하게 이루어졌고, 그제야 진성은 이 성광은상제가 같은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자신이 이렇게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어째서 다른 주술사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인가?

       이게 나에게만, 혹은 이 주술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현상이 아닐까?

         

       진성은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다른 주술사에게 이 주술 의식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 주술사는 효과는 적지만 대가도 그렇게 크지 않은 이 주술 의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진성과는 다른 대가를 지불했다.

         

       주술사는 사랑니가 자라지도 않았고, 채식이 강제되지도 않았다.

       다만 손발의 피부만 거칠어졌을 뿐이었다.

         

       『 겨우 이 정도 대가에 내상을 치료할 수 있다니, 아주 좋구먼. 내 동료 주술사에게도 알려주겠네. 』

         

       가볍다 못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대가로 내상을 치유할 수 있었던 주술사는 진성에게 크게 감사를 표하며 다른 주술사에게도 이 의식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다른 주술사들은 가성비가 좋다는 이 주술을 애용하기 시작했고, 제각기 다른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다.

         

       어떤 주술사는 네 개의 사랑니가 자라났다.

       어떤 주술사는 샐러드가 더 맛있게 느껴지게 되었다.

       어떤 주술사는 위장이 하나 늘어나고 장의 길이가 늘어났다.

       어떤 주술사는 발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많은 주술사에게 퍼져나갈수록 의식의 대가는 강해졌고, 종국에는 도저히 가성비로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많은 주술사는 ‘옛날 주술이 다 그렇지 뭐’, ‘역시 가성비가 안 좋아.’, ‘효과는 별로인데 대가가 너무 심해’ 등의 말과 함께 이 주술 의식을 버렸다.

         

       그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진성은 어째서 주술의 대가에 대해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것인지 이해했다.

         

       ‘주술 의식은 대가를 기묘하게 요구한다.’

         

       일반적인 주술 의식의 효과를 100, 대가 역시 100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주술 의식을 사용하면 100의 효과를 보는 대신 대가 역시 100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 정직한 등가교환은 주술사에겐 ‘매우 훌륭한 것’이다.

         

       할인은 고사하고 주위에 바가지를 씌우려 하는 놈들 천지인 마당에 정가로 물건을 구매해서 쓸 수 있다? 당연히 쌍수 들고 환영할 수밖에 없다.

         

       ‘소환술, 계약, 마법, 무공…. 이 모든 것은 인간에게 불공평하다.’

         

       마법은 100%의 효율을 낼 수 없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에너지의 손실이 일어난다.

       소환술은 다른 존재가 힘을 빌려주는 대신 대가를 요구한다.

       계약은 초월종이 힘을 빌려주는 대신 계약자를 자신의 취향으로 바꾸려 한다. 힘을 빌려주는 대가로 인생, 운명이 변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무공 역시 축적 과정에서 반드시 손실이 일어나고, 때에 따라서는 육체에 무리가 가기도 한다.

       주술 역시 효과에 비해 대가가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당장 주술 의식만 하더라도 혼돈의 선택 소리를 들으며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100의 효과를 보는 대신 100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당연히 선녀같이 보일 수밖에.

         

       그럼 뒤에 이어지는 순서는 어떨까?

         

       이 꿀 같은 정보를 자기만 알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 인간은 이 좋은 정보를 주변 사람들과 누리기를 원하리라. 이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능이기도 하고, 좀 더 우러름을 받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결정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주술사는 이 꿀 같은 정보를 친한 사람에게 알려준다.

         

       동료에게, 친구에게, 애인에게, 가족에게.

         

       하지만 두 사람 이상이 알고 있으면 비밀이 아니란 말이 있다.

       정보를 얻은 사람은 다시 ‘자신이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놀라운 정보를 퍼뜨리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퍼뜨린다.

         

       그렇게 꿀 같은 주술 의식은 점차 퍼져나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처음 들었던 정보와는 다르게 대가가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지는 것이다!

         

       혜택은 같다.

       똑같이 100의 혜택을 준다.

       그런데 대가가 누구는 1을 받고, 누구는 199를 받는다.

         

       ‘혜택은 동일하게. 대가는 무작위로.’

         

       두 명이 주술 의식을 치른다.

       그러면 둘 다 총합 200의 혜택을 동일하게 나눠 갖는다.

       하지만 총합 200의 대가는 동일하게 나눠 갖지 않는다.

       치러야 하는 대가의 총량이 같으나, 그 분배는 무작위로 이뤄지는 것이다.

         

       단수였을 때에는 공평했던 의식이, 복수에는 불공평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점점 끔찍하게 변한다.

         

       스무 명이 의식을 치른다.

       혜택의 총합은 2,000. 스무 명은 똑같이 100씩 나눠 갖는다.

       하지만…대가는?

         

       누구는 운이 좋아 1을, 10을 대가로 치르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운이 나쁜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한때는 좋은 평가를 받았던 주술 의식은 ‘매우 나쁜 것’으로 변한다.

         

       효율이 쓰레기라는 평가와 함께 의식은 점차 잊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두 가지 결말을 맞게 된다.

         

       하나는 이 의식을 처음 사용했던 주술사가 다시 이 주술을 사용했을 경우.

         

       ‘그 주술사는 다시 정직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주술 의식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그 주술사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결론을 내게 되리라.

         

       이 주술 의식을 단 한 사람만이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일인전승(一人傳承).

         

       ‘그리고 또 하나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대로 잊히는 것.

       처음 이 주술 의식을 사용한 주술사가 죽거나, 갑자기 변해버린 대가에 학을 떼며 다시 사용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이 경우 주술 의식은 그대로 잊히거나 어디 문헌에서나 볼 수 있는 미래를 맞이한다.

         

       ‘그 본질은 변하지 않으나 사람의 평가에 따라서 흥망성쇠가 찾아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그렇게 의식의 대가에 대한 진실은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모르는 이는 모른다.

       알았던 이는 입을 열지 않는다.

       알리려고 하는 이는 증명을 할 수 없다.

         

       아는 이는 모두가 모르길 바란다.

         

       ‘바로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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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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