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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황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애착 인간들의 발걸음도 닿지 않는 정원에서 가장 은밀하고 어두운 곳.

    그곳에서 황금 사신들 간의 비밀스러운 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닌자 푸딩을 대상으로 한 회의였다.

    보기 드물게 진지한 얼굴을 한 황금 사신들.

    뚜방뚜방.

    폴짝폴짝! 

    도리도리.

    황금 사신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각자의 의견을 어필하고 조율했다.

    자신에게 얼마나 푸딩이 필요한지 감정을 담아서 서로에게 부딪쳤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귀여운 손짓, 발짓들.

    하지만 황금 사신에게는 더없이 진지한 회의였다.

    그리고 결국 결과가 나왔다. 

    푸딩의 사용을 허가받은 황금 사신은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가장 푸딩이 필요한 것으로 인정된 황금 사신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푸딩을 가지고 떠났다.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푸딩을 짊어지고 가는 곳은 세희 연구소의 뒤뜰. 

    그곳에는 회색 사신이 정원과 연결해 둔 통로가 있었다. 

    커다란 푸딩을 나르는 황금 사신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

    “흠, 흐흠.”

    나지막한 소리로 콧노래를 부르며 공장 제어실 입구를 제임스가 조작하고 있었다.

    “제임스 씨, 좀 조용히 해주세요.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 뒤로 불안한 표정의 통역사가 제임스를 쿡쿡 찌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임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소리를 좀 낸다고 들킬 리가 없지. 너무 과한 걱정이야.”

    제임스의 말처럼 이 주변은 계속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더해서 비상사태에 울리는 기분 나쁜 경고음이 가득했다.

    그래도 통역사는 흉흉한 분위기가 흐르는 공장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했다.

    당장 탈출해도 모자란데, 더욱 공장 깊숙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다니.

    마치 악어 입 속에 머리를 넣는 묘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불안한 표정의 통역사는 뭔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제임스의 등을 찌르면서 말했다.

    “제임스 씨. 그런데 공장 밖으로 탈출하지 않고 이런 깊숙한 곳까지 굳이 들어올 이유가 없지 않나요? 여기 오지 않고 탈출했으면 이미 밖에 있을 시간이라고요!”

    “여기까지 온 이유? 당연히 있지. 우선은 이대로 나가면 귀여운 곰돌이에게 무조건 잡힐 거야. 우리는 곰돌이보다 훨씬 느리니까. 곰돌이도 우리가 탈출할 것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중일 테고.”

    제임스는 제어실 입구에 붙어 있던 패널을 통째로 뜯어내며 말을 이어갔다.

    “거기다가 이건 평범한 오브젝트 사고가 아니니까. 정신 차리고 영리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죽을 거야.”

    “네? 지금 상황이 사고가 아니라고요?” 

    “나도 처음에는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제임스는 자기 손목에 채워진 스마트 워치를 툭툭 두들기면서 말했다.

    “통신 재밍을 거는 오브젝트가 어디 있나? 그것도 우리가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외진 곳에 있는 공장이라서 신호가 안 닿는 거 아니었나요?”

    “그러면 처음 오브젝트로 점거됐을 때 연락을 이렇게 빨리 받지 못했겠지.”

    사고가 아니라 테러.

    그것도 살인을 목적으로 한 테러라는 이야기에 통역사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누가 이런 짓을? 그것도 우리나라 같은 오브젝트 청정국에서…. 오브젝트를 이용한 테러라니.”

    “애국심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하나 정정해 둬야 할 필요가 있네.”

    제임스는 진지한 얼굴로 통역사를 돌아봤다.

    “내가 판단할 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야.”

    “네? 그게 무슨? 중국은 하늘을 나는 거대 해파리, 미국에는 불 뿜는 거대 멧돼지가 도시 하나를 괴멸시켰다고 들었는데. 적어도 한국에는 그런 오브젝트도 없고 안전하지 않나요?”

    “그게 한국의 신기한 점이지. 도봉구의 얼음 왕좌, 테마파크, 그리고 이번에 나타난 사막. 내버려 두면 엄청난 파괴를 일으킬 오브젝트들이 나타나도 저절로 억제되거나 사라져 버리거든.”

    전자식 도어에서 경쾌한 기계음이 울리더니, 공장 제어실의 입구가 열렸다. 

    “아, 드디어 열렸군. 뭐,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국가인지는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하지. 우선은 이 현장을 분석해 봐야겠어.”

    문이 열리자 드러난 참상은 끔찍했다.

    관리실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죽어 있었다.

    통역사는 그 광경에서 눈을 돌리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흠, 여기로 와서 좀 보게.”

    “절대로 싫어요. 안 그래도 오늘 강철 곰돌이가 사람을 짓이기는 꼴을 봐서 기절했었는데, 또 보라고요?”

    “보는 편이 좋을 텐데, 보기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

    제임스의 말에 통역사는 눈을 조그맣게 뜨고 시체들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으으.”

    피투성이가 된 채, 머리가 터져나간 시체들.

    “도대체 이런걸 왜 보라는 거예요?”

    “이걸 보고도 아무것도 안 느껴지나?”

    제임스 생각에 관리실의 시체들은 명백한 증거였다. 

    인간의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

    총상을 입고 죽은 3명의 관리실 직원. 

    지금 공장을 점거한 오브젝트들은 총을 쏘지 않는다.

    “이들은 총을 맞아 죽었어. 그리고 지금 공장을 점거 중인 오브젝트는 총을 쏘지 않지.”

    오브젝트에 사람들이 잔뜩 죽어 나가도 총기 규제를 풀지 않는 한국에서 총기를 이용한 테러.

    제임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

    예린이는 나보고 숨어 있으라면서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사신아, 가서 이야기 좀 들어볼 테니까. 제대로 숨어 있어야 해?”

    그리곤 혼자서 공장 관계자들이 모인 곳으로 돌입했다.

    물론 나도 유령화로 차량 밖으로 나와서 예린이의 활약을 구경했다.

    심각한 상황인 만큼 관계자들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예린이는 생각보다 능숙하게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

    세희 연구소에서 재격리를 돕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둥,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푸딩이 필요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는 둥. 

    진실과 거짓을 마구 섞어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보니 예린이 거짓말 잘하네.

    땡땡이치려고 연마한 건가?

    “와, 그러면 격리 실패가 겨우 한 달에 한 번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렇다니까요. 그걸로 우리 송도 연구소가 저번 연도 우수 연구소 표창까지 받았는데, 이번 연도에는 힘들겠죠.”

    현재 공장을 점거 중인 오브젝트를 관리하던 송도 연구소 소속 연구원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우울한 표정이었다.

    송도 연구소 연구원과 한참 대화를 나누던 예린은 헤어진 뒤, 공장 관계자들에게도 달라붙어서 대화를 시작했다.

    “정말요? 그러면 사설 오브젝트 회수 업체까지 불러서 공장 오너가 직접 들어갔어요? 위험할 텐데.”

    “아, 정말 아무리 말려도 외국인이라 그런지 막무가내야. 막무가내.”

    “그러면 그 오너라는 사람이랑 연락이 아직 안 되는 거예요?”

    “지금도 저기 구석에서 막내가 계속 전화를 걸고 있는데 받지를 않아. 아마도. 이거지, 이거.”

    공장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면서 오너가 죽었을 거라는 의견을 표출했다.

    “아,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오너 구하기는 틀린 것 같으니까. 그 뭐냐, 세희 연구소에서 격리팀을 보낼 거면 준비 단단히 하고 보내요!”

    공장 직원과 대화를 마무리한 예린은 수첩에 여러 가지를 적고 있었다.

    <현재 공장을 점거한 오브젝트는 곰돌이 형태의 로봇.>

    <한 달에 한 번 정도 격리 실패를 하고 탈출했었음.>

    <다만 워낙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오브젝트라서 금세 재격리를 해왔던 오브젝트.>

    <하지만 지금은 엄청 민첩하고 위협적으로 변했다.>

    <공장 오너가 현재 공장 안에 갇힘. 생사불명.>

    예린이 수첩에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공장 소속으로 보이는 직원이 핸드폰을 들어 올리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어? 어! 이거, 이거 사장님이에요!”

    “당장 안 받고 뭐 해!”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직원은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전화를 받았다.

    [아아, 들리나?]

    “아, 네. 들립니다. 사장님, 무사하셨군요.”

    [아아, 무사하지. 공장에 재머가 깔려서 연락하는데 오래 걸렸네. 현재 위치는 B블록, 밀링 머신 위쪽에 작게 지어진 사무실이야.]

    “네? B블록이요?”

    [여기 처리해야 할 오브젝트가 곰돌이 말고도 많으니까, 오브젝트 회수반이 엄청 많이 필요할 거야. 돈은 얼마나 들던지 다 내가 처리해 줄 테니까, 최대한 많이 불러.]

    퍼엉.

    계속 이어질 것 같은 통화는 부자연스러운 소리와 함께 끊기더니 노이즈 음만을 뱉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사장의 전화를 받은 공장 직원들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사장 아닌 거 아냐?”

    “사칭범? 누가 장난치는 건가.”

    “설마 유혹형 오브젝트?”

    예린은 어수선한 공장 직원에게 다가가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소식이 없던 사장님이 살아있고, 현재 위치도 알려주고, 해결 방법까지 제시했는데 다들 반응이 안 좋아 보이네요. 왜들 그러나요?”

    “음, 우리 공장에는 B블록이 없어요. 그리고 푸딩 공장이니까 밀링 머신도 없죠.”

    “아, 그러고 보니 밀링 머신은 쇠를 깎는 기계였죠? 그러니까 사칭범일 거라는 결론이 나온 거군요.”

    “아니면 오브젝트가 사람을 꾀고 있는 거겠죠.”

    공장 직원은 오브젝트가 유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조금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전화가 또 울리기 시작했다.

    “어? 또 사장님이에요.”

    어수선하게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조용해진 가운데서 핸드폰 소리만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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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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