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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왜?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벨라가 돌아간 후, 내 표정을 본 앨리스가 그렇게 물었다.

        

       당연히 걱정이야 많지.

        

       성당 기사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는다. 여신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게임을 하는 팬들 사이에서 여러모로 의견이 갈렸지만, 여신이 실제로 있다고 하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용인된다는 점에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 편을 들었으면 들겠지. 안 그랬으면 나라는 존재를 10년 전부터 이렇게 내버려 뒀을 리도 없고.

        

       만약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모르거나 나를 막을 능력이 없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이렇게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걸로 문제없다. 알고 있다면 알고서도 그냥 두고 있으니 그것대로 문제없다. 애초에 법국이라는 놈들도 여신이라는 이름을 앞세워서 권력을 쟁취하고 싶은 놈들일 뿐이라, 만약 법국 쪽을 편애한다면 나는 여신을 여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거기 있을 적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거기서 입게 될 옷이었다.

        

       “……황녀님.”

        

       “……앨리스라고 부르라니까…….”

        

       하지만 나의 태도가 진지한 것을 보고 앨리스는 그 말을 그렇게 강하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앨리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도박판입니다. 그곳에 드나드는 인간도, 그곳을 운영하는 주체도 결코 정의로운 인간은 되지 못합니다.”

        

       “그런 건 알고 있어.”

        

       내가 꺼내는 말을 듣고 앨리스는 ‘뭐야, 그런 말이었어?’ 하듯 마음이 조금 놓인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앨리스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황녀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추잡한 곳일지 모릅니다.”

        

       그곳에 있는 바니걸은 당연히 ‘귀족 출신’은 없다. 어쩌면 몰락한 귀족의 딸 정도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존재는 평민과 비교해도 별로 더 나을 것이 없는 상황일 거다.

        

       하지만 카지노를 당당하게 드나들 수 있는 존재들은 대부분 돈이 많은 자들이다. 그리고 돈이 많은 자 중 절대다수가 귀족이거나, 아니면 귀족들과 연관되어있는 자들이다.

        

       자본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더라도, 이 세계는 아직 신분제가 분명하게 남아있는 세계.

        

       카지노에 눈요깃거리로 넣어둔 예쁘장한 바니걸에게 손대는 귀족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대놓고 가슴의 절반 정도, 혹은 그 이상, 그리고 등을 거의 다 드러내고 있는 미녀들을 보고 반응하지 않을 남자는 별로 없으니까.

        

       제국의 지역 대부분에서는 창관은 불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유연애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카지노에 방문한 귀족과 급사로 있던 여성이 눈이 맞아 ‘짧은 연애’를 했을 뿐이라고 한다면, 제국에서도 굳이 죄를 따지지는 않는다.

        

       팁이야 뭐 급사로서 받은 거라고 하면 되는 거고.

        

       엄밀하게 따진다면 불법은 불법이다. 그냥 알면서도 서로 좋게 좋게 넘어갈 뿐이지.

        

       “…….”

        

       앨리스가 그 자세한 이야기까지 다 알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앨리스니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더욱 너 혼자 보낼 수는 없어.”

        

       “…….”

        

       아니, 뭐, 그 생각이야 갸륵하다만. 확실히 앨리스가 있으면 도움은 될 거다. 사실 나야 시간을 돌려서 상황을 죄다 파악하고 선제공격을 할 수 있으니 잘 싸우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백병전을 벌인다면 앨리스 쪽이 훨씬 더 강할 거다.

        

       “만약 제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번엔 이렇게 물었다.

        

       “제가 폐하의 명을 거역하고 가지 않는다면?”

        

       “그건 너의 의지야?”

        

       그야 당연히 나의 의지다.

        

       바니걸 복장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나의 의지.

        

       “내가 가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

        

       나의 의지가 맞긴 하지?

        

       바니걸 복장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

        

       “……네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곳을 그냥 둘 수는 없어. 아버지가 직접 너에게 임무를 내린 거고, 심지어 벨라가 직접 와서 정보를 주고 갔으니까.”

        

       아니, 뭐, 제국 기준으로는 그렇기는 하다만.

        

       “차기 황제가 될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

        

       “……당연히 황녀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제국의 차기 황제로서 그 이면에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서 최대한 많이 알고 있을 의무가 있어. 그리고,”

        

       앨리스는 눈에서 불꽃이라도 튈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황제가 된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을지 몰라. 제국은 넓고 황제가 할 일은 많으니 당연히 직접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아직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나이기에 그런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거잖아?”

        

       “황녀님은 차기 황제가 될 몸이시니—”

        

       “뭘 이제 와서.”

        

       앨리스가 당당하게 말했다.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평민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대화하고, 훈련도 같이 받고, 실습도 같이 하잖아. 짐승 사냥할 때도 똑같이 목숨을 걸고. 당연히.”

        

       앨리스는 나에게 손가락을 향했다.

        

       “너랑,”

        

       그리고 그 손가락을 자기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나도, 여기서는 동등해. 같은 학생으로서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적어도 이렇게 같은 교복을 입고 있을 때는 나를 황녀님이라고 부르는 건 관둬. 아직 황태녀도 아닌데 차기 황제니 뭐니 하는 말을 할 필요도 없고.”

        

       “…….”

        

       “날 이름으로 부르는 게 싫으면, 언니라고 불러도 되는데.”

        

       “앨리스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언니라고 부르라고 명령한다고 해도 안 따를 생각이지?”

        

       “여기서는 동등한 지위에 있다고 하신 것은 앨리스입니다.”

        

       내가 딱 잘라서 말하자, 앨리스는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나름대로 희망을 걸어보기는 했다.

        

       그러니까, 이쪽 세상에서는 ‘게임적 허용’과 ‘현실’이 부딪히면 ‘현실’ 쪽이 더 무게감을 느끼지 않는가.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도 날아오는 총알을 검으로 베어낼 수는 없고, 짐승한테 물리면 다친다. 검으로 수십 번 베어내고 총으로 수십 발 쏘아야 하는 짐승이라도 검기가 실린 검으로 베어내면 피를 흘리고, 총에 맞으면 죽는다.

        

       스팀펑크에 판타지가 섞인 말도 안 되는 세상이지만, 나름대로 현실적인 부분이 있다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현실의 카지노에 진짜로 바니걸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쪽 세계에서도 그런 섹스어필용 복장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었었다.

        

       “…….”

        

       하지만, 막상 카지노 앞에서 이렇게 얼굴이 붉어진 레오를 보면 알 수 있듯, 내 헛된 희망은 너무나 손쉽게 박살 나고 말았다.

        

       “쓸데없이 화려하네.”

        

       앨리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앨리스의 말대로, 카지노 건물은 생각보다 굉장히 요란한 분위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알던 21세기의 요란함보다는 훨씬 예스럽긴 했지만.

        

       50년대, 60년대의 뉴욕이나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간판에 전구를 잔뜩 박아넣은 그때 기준으로 몹시 화려하고 밝은 건물들이 종종 나오는데, 여기가 꼭 그랬다.

        

       물론 이 세계에 전구는 없으니 대신 비슷한 색의 마력석을 활용한 조명이 잔뜩 박혀있는 정도였지만.

        

       제도의 건물들도 다른 지역에 비하자면 비교적 화려한 곳이기는 했지만, 이곳만큼 화려한 곳은 별로 없었다.

        

       “……왜 선생님이 여기 같이 오고 싶어 하지 않으셨는지 알 것 같아.”

        

       앨리스의 말에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만, 앨리스와는 다르게 클레어의 시선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앨리스가 건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있었다면, 클레어는 레오가 보는 곳과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건물의 입구.

        

       건물 입구에서는 예쁘고 몸매 좋은 여성들이 광고판을 들고 서 있었다. 대부분은 카지노 홍보용 광고가 그려진 것이었다. 어깨에 홍보 문구가 들어간 천을 두르고 있기도 했고, 카지노와 운영 주체가 같은 호텔을 홍보하고 있기도 했다.

        

       몇몇 귀족들, 그러니까 대개 나이가 많고 푸짐한 인상의 귀족들이 그런 여자들에게 찝쩍거리고 있었고, 일부는 이미 허리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어디로 향하고 있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 향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파라다이스라면, 여기는 숲속 깊은 곳에 숨겨진 향락의 별장 같은 곳이었다.

        

       착실하고 순진한 인상의 캐롤린과는 영 동떨어진 장소라서 처음 보고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이랑 완전히 똑같네.

        

       “……상스러워요.”

        

       샤를로트가 기겁해서 중얼거렸다.

        

       샤를로트의 시선은, 조금 어두운 피부에 커다란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낸 채 한 덩치 큰 귀족과 깔깔거리며 대화하고 있는 한 바니걸을 향해 있었다.

        

       참고로 그 바니걸의 머리카락은 은빛이었다. 솔직히, 저런 태도만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된 비운의 히로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신비로운 분위기이기도 했다.

        

       …….

        

       저거 즐기고 있는 거 맞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명분’

    =

    Ilham Senjaya님,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 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직업이라는 것을 몇 개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와 짧게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외에는 인생을 좀 대충 흘려보낸 것 같은 기분도 들 정도로요.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긴 했지만 지방의 어느 대학교를 겨우 들어갈 정도로 성적을 받았고, 거기서 겨우 면허를 따 작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 앉아 드문드문 들어오는 일거리를 처리하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잊고 있던 꿈이 떠오르고, 떠오른 김에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어서 쓰기 시작했던 것이 처음 노벨피아에 글을 올렸던 때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저의 글을 좋아해 주셔서 신이 나 쓰던 것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독자 여러분을 위해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tkebsi님, 후원 감사합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사실 대학교 졸업할때까지도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이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듭니다. 쓰는 입장에서 자기 글이 잘 썼는지 어떤지 판단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우니까요. 그러니 독자 여러분께서 이런 말을 해주실때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제가 글을 마냥 못 쓰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계속 쓰고 칭찬을 듣고 싶다는 향상심이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여 여러분께서 계속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칭찬해주실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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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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