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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사신의 손길.

       

       

       헬은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수 있다. 그건 오딘이 그녀를 집행자로 삼으면서 내려준 권능. 그리고 헬은 지금까지 그 권능으로 이곳에 떨어진 사람들을 소멸시켰다.

       

       

       소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걸까. 망령이 되어서 이곳을 떠돌고 있으니까. 오딘은 그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이곳에 떨어지는 자들은 모두 다 죄를 지은 죄인들이라고.

       

       

       만약 이곳에서 일을 잘 해주면 머지 않아 가족들과 만나게 해주겠다고. 헬은 지금까지 오직 오딘의 말만을 믿고 수많은 피를 묻혔다. 빌어먹을 오딘, 빌어먹을 주신.

       

       

       “진정해라, 헬. 나는 너를 구하려고 왔다.”

       

       

       “악당 따위에게 구원받을 생각은 없어!”

       

       

       “젠장.”

       

       

       헬은 아이작의 호소를 가볍게 무시하며 계속 손을 휘둘렀다. 딱히 전투에 대해서 배운 것도 없었던 헬이지만. 단순히 스펙만으로도 어지간한 영웅들을 압도하고 있다.

       

       

       아이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헬은 어떻게 보면 오딘에게 농락을 당한 피해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유폐되었으며, 오딘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던 그녀이기에.

       

       

       원작에서는 헬의 상황을 또 다른 지옥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말았다. 지금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 가족이었다.

       

       

       가족을 보고 싶어서.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래서 눈과 귀를 닫았다.

       

       

       그런 불쌍한 아이를, 어찌 때릴 수 있겠는가. 고민 끝에 아이작은 피하는 것을 멈춰섰다. 그 틈을 놓칠 헬이 아니었다. 헬은 순식간에 귀신처럼 아이작에게 달려들었다.

       

       

       콰악!!

       

       

       헬의 날카로운 손톱이 아이작의 살갗을 파고 들었다. 순식간에 아이작의 근육과 힘줄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피부 안쪽이 얼어붙는 감각은 생각 이상으로 끔찍하였다.

       

       

       “끝났어. 외부가 아니라 내부까지 통째로 얼어버렸으니까.”

       

       

       “…….”

       

       

       “움직이기 힘들지? 아마 움직일 수 없을 거야.”

       

       

       “이 세상에 절대란 없다.”

       

       

       쩌적.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헬이 내부까지 전부 얼려버린 아이작의 몸에서 얼음이 산산이 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헬은 경악하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내부까지 얼리면 움직일 수 없을 텐데?!”

       

       

       물론 어지간하면 단순히 얼어붙은 것만으로도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간혹가다 내부에서 불꽃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얼음을 극복하는 자들 또한 있었다.

       

       

       그래서 헬은 아예 대응조차 하지 못하도록 내부까지 얼려버리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내부의 얼음마저 극복한 자가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덕분에 헬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그녀에게 오딘은 절대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딘에게 받은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와 만나버렸다?

       

       

       “대체, 어떻게 해야……?”

       

       

       “어쩌긴 뭘 어째! 어떻게든 죽어야지!”

       

       

       “하지만 안 통하잖아!”

       

       

       “…….”

       

       

       이제는 아예 나눠진 두 개의 자아가 서로를 향해서 싸우고 있었다. 아이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중인격, 그건 아마 그녀의 방어기재였겠지.

       

       

       처음부터 살인에 익숙한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헬은 악신보다는 선신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너무 유약해서 장녀인 펜리르가 특히 걱정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녀가 혼자서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땅에 유폐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보고 싶으면 오딘이 니플헤임으로 추방한 죄인을 죽이라고 했다.

       

       

       하기 싫었겠지.

       

       

       고통스러워 미칠 지경이었겠지.

       

       

       그러나 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는 것을 택했다. 하나는 그나마 원본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남아있는 헬,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살인을 즐기는 니플헤임의 악신.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의 상황을 살피고, 그녀에게 다른 선택권이 있었나라고 한다면. 그게 없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아직 늦지 않았다. 헬렌.”

       

       

       “어떻게 내 이름을……?”

       

       

       “너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에게서 들었다.”

       

       

       사실 거짓말이다. 이미 원작을 몇 번이나 독파한 아이작이 헬의 본명 헬렌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지어내서 대답하였다.

       

       

       하지만 아이작의 그 한 마디는 헬렌에게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지금까지? 처음에는 분명히 가족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대한 벽을 앞에 두고 서서히 무너지는 것은 인간이나 신이나 똑같다. 강렬하게 타올랐던 불꽃이 차가운 잿더미가 되었다.

       

       

       은연 중에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재회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겠지.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가족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감격을 과연 누가 감히 예상할 수 있을까. 헬렌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뭐, 뭐야. 울어?’

       

       

       정작 그 계기를 가져다준 아이작은 갑자기 헬렌이 눈물을 흘리자 당황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당황한 아이작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던 바로 그때였다.

       

       

       “죄, 죄송해요. 너무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바람에 그만.”

       

       

       “괜찮다. 가족들의 소식을 들었으니, 그러는 것도 이해는 한다.”

       

       

       “감사합니다. 혹시 괜찮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헬의 간절한 부탁을 아이작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간략하게 펜리르와 요르문간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이 어디에 있었고,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또 어떻게 해방되었는지를.

       

       

       전부 다 알려주었다. 모든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던 헬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그들이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동시에 떠오르는 의문.

       

       

       “그런데 아이작님은 어째서 이곳에 오신 건가요?”

       

       

       당연한 의문이었다. 어째서 아이작은 이런 곳까지 찾아온 것일까.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부러 니플헤임을 찾아왔다는 건데. 그 의문에 아이작은 곧바로 대답했다.

       

       

       “처음부터 말했잖나. 너를 구하기 위해서 왔다고.”

       

       

       “저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그래. 운이 좋게도, 내게는 믿음직한 가족들이 있으니까.”

       

       

       아이작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나 하나가 없어도 충분히 앞으로 미래를 잘 해쳐나갈 수 있는 가족들이다. 그 녀석들을 믿기에, 니플헤임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들은 뭐하고 있을까?

       

       

       * * *

       

       

       아무리 기드온 최강의 길드라고 해도. 전쟁을 쉽게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상대가 법국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법국의 선전으로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정말 법국의 선전대로 아이작 실버테르가 사망한 걸까? 여기서 답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만약 전쟁을 걸지 않는다면, 마스터의 명성이 계속 모욕을 당할 것이며.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키자니, 지레 찔려서 전쟁까지 일으키는 모양세가 되어버리니까. 오딘의 설계란 그런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전부 이득으로 돌아온다.

       

       

       “게다가 기드온은 법국이 아니지.”

       

       

       법국은 철저한 통제를 통해서 국가를 신들의 손과 발처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즉,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바로 전쟁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는 오딘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다. 오딘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많은 영웅들을 수집하여 장차 미래에 다가올 거대한 재앙에게 맞서 싸우는 것.

       

       

       그리고 지금.

       

       

       오딘은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을 꺼낼 준비가 되어있다. 지금 펜리르를 구속하는 글레이프니르와 바닷속의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가 기나긴 봉인에서 깨어났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바로 종말이 코앞까지 찾아왔다는 뜻.

       

       

       무슨 일이 있어도 글레이프니르는 종말의 예언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딘은 펜리르가 풀려난 것을 종말의 전조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 다음에는 요르문간드가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물론 백기사 서열 3위 티르는 아이작이 완력으로 글레이프니르를 끊었다고 보고서를 올렸지만.

       

       

       그걸 그대로 믿을 오딘이 아니었다. 애초에 아무리 권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한낱 인간의 힘으로 끊을 수 있을 정도로 나약한 글레이프니르가 아니었으니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군.’

       

       

       아이작을 니플헤임으로 추방시킴으로서 군세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또 이 선전을 이용해서 기드온과 알력 다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과연.

       

       

       주신이라고 하기에 걸맞은 완벽한 계획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변수를 만들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처럼.

       

       

       오딘이 머물고 있는 방안에서 수정구가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는 법국을 공격하는 침략자가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오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감히 법국을 공격할 세력은 없을 텐데.”

       

       

       그 어떤 왕국도 감히 법국의 세력에는 비할 바가 안 된다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나마 고르자면 기드온 정도인데. 기드온도 감히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 터.

       

       

       그렇게 생각했었다.

       

       

       수정구를 통해서 휘날리고 있는 철의 방패 길드의 깃발을 보기 전까지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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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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