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0

       사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문을 닫고, 방구석으로 기어가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벌벌 떨면서 기도했다. 여신이시여, 들리시나이까.

       

       이곳에는 정의가 없습니다.

       

       이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곳에는 성스러움도, 자비도 없습니다.

       

       이곳에는 다만 미치광이가 있을 뿐입니다.

       

       여신이시여. 그러하다면 저는 무엇을 바라며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보십시오. 그녀가 오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내려주신 은총을 약탈하기 위해, 한때는 고결했던 사악한 자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정녕 만물을 굽어살피시고 사랑하신다면, 어둠 속에서 벌벌 떠는 제 모습을 굽어살피시고 가엽게 여겨 주십시오.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주십시오.

       

       제게 죄가 있다면 당신을 오래도록 섬긴 것뿐입⋯⋯⋯⋯.

       

       

       “아니.”

       

       쩌저적, 툭. 문은 가볍게 반으로 갈렸다.

       

       피에 젖은 성녀가 호화로운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 곳곳은 비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바닥에 흩어진 금화 쪼가리들이 그녀의 구두 굽에 밟혔으나, 그녀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돈을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니까.

       

       그녀는 해묵은 감정을 청산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앞에 ‘신을 위해서’라는 말을 붙이면, 죄는 사라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증오는 사라지지 않아. 이걸 잘 봐. 거기에 네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적혀 있으니.”

       

       툭. 성녀는 두루마리를 손에서 놓았다.

       

       피 묻은 죄의 증거가 펼쳐졌다. 둘둘 말린 두루마리가 굴러가며 민낯을 밝혔다. 헌금 착복. 신전 부속 고아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여사제 희롱. 흑마법사 은닉.

       

       목을 죄어오는 죄의 무게에, 두툼하게 살이 오른 사제는 헐떡이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손끝에서 성스러운 광채를 피워 올리며 돼지처럼 눌린 소리를 질렀다.

       

       “여신께서, 여신께서 용인하셨다⋯⋯!! 나는 아직 신성력을 잃지 않았어, 이건, 이건 뒷골목을 굴러다니던 내 비참한 어린 시절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내 정당함을, 여신께서 수호하고 계신다-!”

       

       “착각하고 있는 것 같네. 네가 죽는 이유는, 도덕적이지 못하다거나 흑마법사랑 붙어먹어서가 아니야. 그건 간접적인 이유지. 마지막 문장을 잘 읽어 봐.”

       

       눈동자가 돌아갔다. 무수한 죄가 적힌 두루마리 끝에는 피로 적힌 글씨가 있었다. ‘복수’. 단순하고 명료한 증오의 형태였다. 

       

       오래 묵은 증오의 시선이 사제에게 달라붙었다.

       

       “살려주려고도 했어. 네가 착한 일을 많이 했다면 말이야. 혹은⋯⋯ 약간의 부정부패가 있었더라도,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내 개인적인 증오는 눌러두었을 거야. 죽일 놈들은 너 말고도 많았는걸.”

       

       하지만 그렇지 않았지. 성녀는 마검을 뽑아 들었다. 

       

       “저울이 기울었어. 네 선량함은 내 증오를 막아내지 못했고, 네 사악함은 내 증오를 부추겼다. 너는⋯⋯ 우리 부모님을 살리지 못한 탓에 여기서 죽는 거야.”

       

       사제는 살기 위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은 재물로는 범람한 증오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금화, 이 빛나는 금화 대신에, 마법 스크롤이라도 사서 준비해 두었더라면.

       

       번쩍이는 보석 대신에, 용병이라도 고용해서 호위로 두었더라면!

       

       “『여신을 지키는 번견』⋯⋯!”

       

       사제는 신성력을 끌어냈다. 그가 온갖 죄악을 저질러도 여신께서는 힘을 거두어가지 않으셨다. 그러니 이번에도, 여신께서 자신을 굽어살피리라 믿었다. 자신은, 선택받은 존재인 것이다⋯⋯!

       

       번쩍이는 방패를 내려다보던 성녀는, 조용히 읊조렸다.

       

       “『회한만극(悔恨蔓棘)』, 빨아들여라.”

       

       으직, 으지직!

       

       가시덩굴이 부패한 사제의 방패를 부수고 뚱뚱한 몸을 휘감았다.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살찌운 피부에 뾰족한 가시가 파고들었다. 그리고, 신성력이 깎여나갔다.

       

       아니, 빨려 나가고 있었다. 성녀는 여신께서 부여한 신성력을 강탈해 가고 있었다! 사제는 몸을 뒤틀면서 비명을 질렀다. 

       

       “안돼, 안돼──!!”

       

       “자, 네 악행을 정당화하던 신성력은 이제 없어. 다시 한번 지껄여보지 그래? 여신께서 용인하셨다, 고.”

       

       “여신님, 자비로우신 여신님! 부디, 부디 제게 신성력으으으을⋯⋯!!”

       

       “이번에도 늦을걸⋯⋯?”

       

       성녀는 조소했다.

       

       잠시 후. 성녀 타라는 마검을 갈무리하고 현장에서 빠져나갔다. 생명도, 신성력도, 모조리 빨려 나간 자리에는 빼빼 말라버린 시체 한 구만이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여신상만이 심판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

       

       쪼오옥.

       

       타라는 빨대로 레모네이드를 쭉 빨아들이면서 말했다.

       

       “라는 일이 있었어.”

       

       [그거 가볍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다 죽여버렸는데 뭘. 중요한 건, 내가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거지! 빼앗아 온 거니까 당연히 회복은 안 되지만⋯⋯.”

       

       타라의 우화에 붙은 특성, 흡수. 

       

       그녀는 여신에게 빌어 신성력을 내려받는 대신, 부패한 사제로부터 신성력을 뽑아내 저장했다. 성녀 행세를 지속해 나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타라는 손을 뻗어 베네트의 얼굴에 신성력을 뿜어냈다. 지이이잉. 신성 마법을 구축하지 않고 에너지 자체를 뿜어내는 것이었으므로, 아주 약간의 치유 효과와 눈뽕만이 있었다.

       

       베네트는 눈이 부셔서 눈살을 찌푸렸다.

       

       “신성력 낭비하지 마라.”

       

       “왜에. 떨어지면 또 부패한 사제 잡아먹으면 되는데.”

       

       [그건 조금 표현이 야할지도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니오레! 이녀석-!”

       

       타라가 호랑이처럼 니오레를 덮쳐 볼따구를 죽죽 늘리고 있을 때, 베네트는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며 생각했다. 여신과 신성력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준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공급을 끊을지언정, 적어도 ‘거두어가는 기능’이 없음은 확실했다. 혹은 그럴 생각이 없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부패한 사제를 습격해서 신성력을 빨아가는 타라가 멀쩡히 서 있는 것도. 온갖 죄를 저지른 부패 사제가 태연하게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비밀이 있는 건가. 여신교에도.”

       

       “뭐, 그런 건 신경 안 써.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런 거 몰라도 여신교를 이용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없으니까.”

       

       [볼 놔주세요.]

       

       “그래서, 정말로 2황자 쪽이⋯⋯ 우리랑 손을 잡기로 했다는 거지? 베네트.”

       

       베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마법사와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은 일행들에게 전부 공유가 끝난 상태였다. 여담이지만, 베네트의 예상대로 타라는 울었다. 당시, 울먹이는 타락 성녀의 땡깡에 의해 아브라함의 목걸이는 타라가 갖게 되었다.

       

       타라는 잠깐 생각하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손 패로 작전을 척척 짜 올렸다.

       

       “여신교 내부에도 부패를 경계하는 멀쩡한 사제들이 있더라. 타락 사제를⋯⋯ ‘파문’ 시키면서 사람을 모으고 있었고, 슬슬 판을 한 번 깔아봐도 괜찮을 것 같아.”

       

       “2황자의 정치적 입지를 등에 업고, 여신교의 새로운 파벌을 만들려는 건가?”

       

       [볼 놔주세요.]

       

       “응. 이름은 적당히⋯⋯ 『개혁파』정도로.”

       

       준비는 놀라울 정도로 척척 갖춰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고여버린 여신교 고위층과도 어찌저찌 맞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성력을 빨아들이는 것으로, ‘이자는 여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낙인을 찍어버릴 수 있는 우화의 힘.

       

       내부의 선량한 사제들을 끌어모아 임시로나마 구축한 세력.

       

       2황자가 제공하는 정치적 뒷배.

       

       “⋯⋯그리고, 『개혁파』의 발족을 알리면서 네 이름을 팔 생각이야. 베네트. 우리한테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공적이 부족하거든.”

       

       “어떤 식으로 말이지?”

       

       [볼.]

       

       “그 교수가 말했다는 것처럼 말야. 성녀로부터 비밀리에 파견된 이중 스파이라고. 그러니까 네가 얻어낸 공적은⋯⋯ 다 내 공적이 되는 거지!”

       

       “정보 몇 개 물어온 걸로는 부족하지 않나 싶은데.”

       

       “아카데미를 노리는 사악한 계획을 막아낸 거면, 충분한 공적 아니⋯⋯ 꺗?!”

       

       베네트의 단련된 동체시력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볼따구가 잡힌 채로 희롱당하던 니오레는 필살의 카운터를 날렸다. 타라의 성녀복 옆구리에 난 구멍 사이로 두 손을 샥 넣어버린 것이다. 

       

       그 시점에서 베네트는 눈꺼풀을 얌전히 닫았다. 시각적 정보 폭탄이 터지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 어어어어딜 주무르는 건데 너⋯⋯?!!”

       

       [베네트에 홀려서 제 말을 듣지 않으셨잖아요.]

       

       “나도, 뭐 손이 없는 줄 알아?!”

       

       [⋯⋯⋯⋯!!]

       

       베네트는 잠깐 고민하다가, 마력을 조작해서 귀에 얇은 막을 쳤다. 청력도 포기했다. 그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잠깐의 티타임을 즐겼다.

       

       그리고 생각했다.

       

       미친 마법사의 경우에는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것 같았다. 다른 세상을 구해낸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컸던 것일까. 하지만 2황자는 다르다.

       

       2황자 이리드, 그는 세간의 평가가 반반으로 갈리고 있었다. 의심이 많고 교활하다는 평가가 반, 백성들을 아끼고 유능하다는 평가가 반. 후자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일부러 2황자 측에서 흘린 프로파간다일 가능성이 높으니⋯⋯.

       

       의심 많은 황족과 협력관계를 맺었다면, 이쪽도 가능한 한 성의를 보이는 편이 일이 매끄럽게 굴러갈 터.

       

       꾹. 누군가가 베네트의 볼을 찔렀다. 베네트는 마력 귀마개도 해제하고 눈꺼풀도 열었다. 그리고 볼을 찌르고 도망간 범인을 찾기 위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였고, 상의가 잔뜩 주름이 잡히고 흐트러져 있었다. 니오레는 화이트보드를 품 안에 안고 가슴께를 가린 상태였으며, 타라는 열심히 손으로 부채질 중이었다.

       

       베네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깨라도 두드리지 그랬나.”

       

       “누가 그랬게? 못 맞추면 벌칙이야, 베네트.”

       

       “너겠지.”

       

       [틀렸어요, 베네트. 제가 그랬거든요. 그럼 벌칙을 받아 가도⋯⋯.]

       

       “논의를, 마무리하도록, 하지.”

       

       탕탕탕. 베네트는 테이블을 두들겼다. 틈을 내보이면 다시 공격이 날아올 것이었다. 몰아쳐야 한다. 그는 빠르게 안건을 내뱉었다.

       

       “미친 마법사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2황자 파벌에게 간접적으로 선물을 주는 건 어떨까 싶군.”

       

       “힘을 실어 줘?”

       

       “그의 강의를 듣고 우리가 우화를 개화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자는 거다. 교수로써의 평가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힘도 실리겠지.”

       

       [그건, 타라의 세력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이미 우화급 전력이 두 명이나 있다는 홍보가 되니까⋯⋯.]

       

       세력 하나를 만들어 공개하려는 타이밍. 지금은 발톱을 숨기기보다는 드러내야 할 때였다. 세 사람은 논의를 마쳤고, 베네트는 양각이 잡히기 전에 도망갔다. 

       

       이후.

       

       성녀 타라는 지금까지의 무기력한 태도가 위장이었음을 밝히며, 자신이 흑마법사들의 아카데미 침공 계획을 방어해 냈음을 공표했다. 동시에 여신교의 변혁을 촉구하는 『개혁파』를 새로이 만들어,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나아가겠음을 선언했다.

       

       같은 시기, 이게 환상 마법인지 던전 구현화인지 모를 수업으로 유명한 미친 마법사의 교양 강의가, 벌써 우화를 각성한 학생을 두 명이나 만들어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타라는 적극적으로 그 사실을 말하고 다녔지만, 섣부르게 믿기 힘든 이야기라서 소문으로 그쳤다. 하지만 분명히, 여론은 움직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는 의미로.

       

       베네트는 흑마법사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배신자는 죽여버리겠다는 메시지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

       

       ‘이미 미친 마법사에 의해 흑마법사들이 대거 잡혀간 상태였고, 계획의 핵심 축은 무너진 상태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잡혀가느니 전향한 척 파고드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 흑마법사의 편이다. 여동생에게 해를 가하지 말아달라.’

       

       이후, 흑마법사 측은 베네트를 강하게 압박했다. 어느 날에는 잘린 손가락이 든 상자가 베네트에게 배송되었다. 

       

       “⋯⋯⋯⋯.”

       

       어쩌면, 여동생의 손가락이었다.

       

       각오한 바였다. 흑마법사들의 빈틈을 만들기 위해서는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여동생의 육체가 『공포 먹는 시체꽃』의 육신인 이상, 그녀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은 생각보다도 이 상황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그러나, 괜찮다. 괜찮았다. 여동생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손가락은 나중에라도 붙일 수 있었다. 

       

       베네트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손가락을 깨끗한 천으로 감싸, 소중히 보관했다.

       

       베네트는 때를 기다렸다. 계속해서 속여넘기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 침공 계획이 날아간 지금, 흑마법사들은 분명 다른 행동을 취해 올 것이고⋯⋯ 그때. 티켓을 사용할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었다.

       

       기회는 생각보다도 가까이 있을 것이었다.

       

       이제, 곧.

       

       ===============================================================

       

       이러한 대격변에 가장 큰 혼란이 일어난 곳은, 당연하겠지만 여신교 교단이었다. 고결하고 격 높은 사제들이 자신의 금반지를 뽐내던 신성한 회의장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소란스러워졌다.

       

       목에 핏대가 선 사제들 사이로 고성이 오갔다.

       

       “성녀를 관리하던 것들은 뭘 하는 거야!”

       

       “분명, 애새끼 같은 반항만 하고 있다고 했잖나. 암중에서 이런 계획을 꾸미고 있던걸, 정녕 한 명도 눈치를 못 챘다는 말이냐?!”

       

       “당장, 당장 파문시키시오! 여태까지의 품행을 빌미로 잡으면 간단하잖소!”

       

       그 혼란의 사이에서, 권력의 중추에 있는 늙은 추기경들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저들이 교양 없이 꽥꽥대어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은 추기경들의 밀담에 의해 여신교의 모든 일이 굴러가는 것이다.

       

       “타라, 그 아이가 아카데미의 수업을 듣고 우화를 했다라. 그것도 2주만에⋯⋯ 믿기시오?”

       

       “그⋯⋯ 환상 마법사는 2황자 파벌이라고 알고 있지요. 아마, 2황자 쪽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정치공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화는 그렇게 툭 하고 해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 깜찍한 녀석이, 암중으로 칼을 갈고 있던 모양이구려.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옷을 잘라 입으며 병신인 것처럼 굴고⋯⋯ 자신이 우화를 각성한 사실을 숨기고. 그렇게 말이오.”

       

       “분명, 2황자는 얼뜨기로 알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뒤에서 성녀와 붙어먹었는지 모르겠네요. 정황상, 주동자는 타라가 아니라 2황자인 것 같지요⋯⋯?”

       

       “2황자⋯⋯ 젊은 놈이 무서운 심계를 가지고 있구려.”

       

       소근소근.

       

       추기경들은 결론을 내렸다. 현재 나날이 세가 강해지고 있는 2황자 파벌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이상, 성녀 타라를 축출해 내려면 교묘한 준비가 필요했다. 일단은 용인해 둬야 한다.

       

       그들은 무릎걸음으로 어린 교황의 앞으로 기어가, 작은 목소리로 읍소했다.

       

       “교황 성하, 성녀 타라의 일은 우선 묻어두시지요. 여신님께서는 신중함을 미덕으로 삼으라 하셨나이다.”

       

       “교황 성하, 성녀 타라의 『개혁파』를 용인하되, 그들이 정말로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파견하시지요. 뜻은 깊으나, 그 뜻이 올바로 사용될지 염려되나이다.”

       

       “교황 성하⋯⋯.”

       

       그러자,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교황의 자리에 오른 성 베치오는. 늙은 추기경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었다.

       

       “『개혁파』를 용인하되, 그들이 정말로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한 사람을 파견하겠노라. 그리고⋯⋯.”

       

       중얼중얼. 그렇게 이루어졌더라.

       

       ===============================================================

       

       2황자 이리드는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 세 번째로 듣는 것이고, 앞선 내용을 잊어버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뭐라고?”

       

       “코드네임 미친 마법사가 흑마법사를 대거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를 노리는 네임드 흑마법사의 계획을 분쇄했습니다.”

       

       “그리고?”

       

       “학생 두 명을 우화 시켰습니다. 흑마법사 한 명을 전향시켰고, 정보를 얻어냈으며. 성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새로운 파벌 형성에 한 팔을 거들었습니다. 해당 파벌은 기존 여신교 세력과 사이가 나쁩니다.”

       

       “또?”

       

       “그래서 여신교 측이 저희에게 쪼인트를 날리고 있습니다. 저들은 2황자님이 흑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상입니다.”

       

       이리드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화병에 장식된 로즈마리에 코를 가져다 대고 숨을 깊게 빨아들였다. 내게 용기를 다오, 센트라.

       

       “그래, 부패한 성직자들은 안 그래도 쳐내고 싶었다. 내가 왕위에 오른 다음에 칼을 빼 들려고 했으나⋯⋯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하지 않겠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황자님.”

       

       “그리고⋯⋯.”

       

       이리드는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주물렀다. 미친 마법사 덕분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공적이 생겼고, 미친 마법사 때문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정적이 생겼다. 마음이 대단히 심란했다.

       

       오랜 시간 권력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 성직자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황제의 자리를 거머쥔 뒤에도 상당한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벌써 손속을 겨루게 될 줄이야.

       

       흑마법사들을 아카데미에서 싹 쓸어 내버린 건 분명히 큰일을 해낸 것이지만⋯⋯ 기특함보다는 빡침이 좀 더 컸다. 이리드는 분노를 담아서 내뱉었다.

       

       “미친 마법사⋯⋯한테, 언제 한번 얼굴 보자고 전해라.”

       

       “상을 주시려는 겁니까?”

       

       “아아. 그래야지. 금괴라도 준비해라. 크고 묵직한 걸로.”

       

       하지만 안면으로 받아내야 할 것이다, 미친 마법사.

       

       ===============================================================

       

       같은 시간, 미친 마법사의 연구실. 

       

       마법사는 한참이나 서성거리며 고민하다가 마탑주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양심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있잖아요, 생각해보니까⋯⋯ 제가 2황자한테 못 할 짓을 한 것 같아서요.”

       

       “⋯⋯응?”

       

       “아직 센트라를 잊지 못하고 계시다던데.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미소녀에게 사로잡혀서 평생 독신으로 산다거나 하면⋯⋯ 제가 멀쩡한 숫총각 하나 혼삿길을 막아버린 셈이 되니까.”

       

       “어, 으응. 응?”

       

       본래라면 참한 신붓감을 맞이해서 백년해로했을 이리드의 운명을 뒤틀어놓은 죄.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닐까. 병을 준 게 자신이니까 약을 줘야 하는 것도 자신이 아닌가.

       

       2황자 이리드에게는 치료가 필요하다. 미친 마법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현실의 여자를 좀 소개시켜 드릴까 싶네요. 새 사랑 찾을 수 있게.”

       

       “⋯⋯⋯⋯!!!”

       

       마탑주는 난데없는 이리드-센트라 순애 파괴 예고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막아야 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걸로 후일담은 종료가 됩니다. 그러면 다음 에피소드에서 뵙겠습니다. 내일 봐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