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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보, 보라…야…”

         

       나는 어눌한 말투로 다가오는 마하나(슬라임)을 바라보았다.

         

       어기적어기적 오던 녀석이 잠시 멈추어 선다.

         

       지그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더욱 환한 미소를 짓는다.

         

       아주 약간 보이는 송곳니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웃음.

         

       여기에 진짜 아는 것처럼 양팔을 벌린다.

         

       “므, 므…아…아…세, 세하야…”

       “……”

         

       <기숙사 테러> 사건의 주무대.

       <끈적이는 하수구> 던전.

         

       예전에 ‘고스라’ 커뮤니티에서 지도관들을 상대로 한번 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던전이 가장 좆같은지.

         

       여러 가지 후보가 나왔고 치열하였기에, 뭐가 더 우위에 있냐는 끝내 정하지 못했다.

         

       다만 모두 하나같이 이곳 <끈적이는 하수구>를 5등 안에 뽑았다.

         

       이는 꽤 의외였다.

       <끈적이는 하수구>는 난이도 측면에서 그리 어렵지 않은 장소다.

       마땅한 함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오는 괴수도 공략법만 숙지하면 쉽게 깰 수 있었다.

       하지만 다들 ‘좆같음’ 하나만 보면 이곳을 넘버원으로 취급하였다.

         

       그 이유가 바로 눈앞의 존재 때문이다.

         

       “므, 므아…아…세…하야.”

       “……씨발.”

         

       내가 이 히든 피스를 알고, 직접 할 기회가 왔음에도 하지 않은 이유.

       방송에서 ‘아 못하겠습니다.’ 하고 GG 쳤던 이유.

       시청자들도 ‘이건 좀…’하면서 넘어가 줬던 이유.

         

       지금 눈앞에 다가오는 <카모플라쥬 슬라임>의 때문이었다.

         

       녀석은 지도관이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캐릭터의 모습을 흉내 내서 다가오는 특징이 있었다.

         

       그냥 흉내 내는 것도 아니다.

         

       ‘기억.’

         

       입장한 대상의 기억을 읽어, 그 추억과 감정까지 거의 고대로 재현한다.

         

       물론, 기억을 읽는 게 저 녀석의 고유능력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지금 눈앞의 저것은 내가 므냥이에게 느끼는 추억을 거의 복사한 개체라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인가.’

         

       듣기로 500시간 이상 플레이한 캐릭터가 여러 명 있으면, 그것까지 모두 합쳐져서 나온다고 한다.

         

       그때는 말 그대로 머리 여러 개 달린 키메라 같은 느낌이라, 커뮤니티에 짤을 올리면 무조건 정지를 먹었다.

         

       그래, 뭐 안다.

       그래봤자 어설프다는 건.

         

       비슷한 건 어디까지나 상체.

         

       하체는 슬라임 특유의 녹아내린 액체가 꿀렁이니까.

         

       듣자 하니 좀 더 고렙의 <카모플라쥬 슬라임>은 하체는 물론이고, 대화도 보통 사람처럼 유창하게 가능해서 [도플갱어]랑 다른 바가 없다고 한다.

         

       확실한 건 눈앞의 저것은 므냥이가 아니다.

         

       나도 안다.

         

       잘 안다.

         

       “세, 세하…야…쓰, 쓰다듬어…줘.”

         

       절로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이, 이 개같…

       아, 차마 므냥이 얼굴 보고 욕은 못 하겠다.

       여튼 진짜 악질이다.

         

       ‘감히 최애캐와의 추억을 더럽히다니…!’

         

       “세하 씨. 당연하지만 저거 가짜죠?”

       “응, <카모플라쥬 슬라임>이라고 모습을 흉내 내는 개체야.”

       “…정신계 능력이 있나요? 대체 하나씨의 모습은 어떻게 알아서…”

       “그 부분은 던전의 기믹이야.”

       “…기믹요?”

         

       [기믹].

       일종의 장치나 속임수 역할을 상징하는 말.

         

       ‘고스라’에서는 보통 ‘던전’, ‘괴수’등이 가진 특수한 법칙을 칭했다.

         

       이는 스킬과는 연관성이 없는 능력이다.

         

       말 그대로 지역, 환경 등의 공간적 영향으로 얻게 되는 힘이니까.

         

       <끈적이는 하수구>는 내부에 서식하는 괴수에게 보유한 능력을 보정해주는 기믹이 있었다.

         

       “그렇군요. 던전에 함정이 없던 게 이런 이유 때문이군요.”

       “……”

       “여튼, 세하 씨. 이러다 코앞까지 오겠습니다. 어서 처리하지요.”

       “……”

       “…? 세하 씨?”

       “모, 못해…”

       “……네?”

         

       문보라는 부들부들 몸을 떠는 유세하를 보며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시선을 돌리자, 그가 눈을 꾹-! 감은 채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거의 처음 보는 약한 면모에, 문보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안, 문보라. 나 대신 저 녀석 좀 없애줘.”

       “무슨?”

       “아무리 가짜여도…므냥이의 얼굴을 내가 때려서 패라고?”

         

       못한다. 못해.

       차라리 죽고 말지.

       절대 못 한다.

         

       “…주의 사항은 있나요?”

       “변신 능력 말고는…<블루 슬라임>이랑 차이 없어. 아니 더 약해. 그러니 그냥 마법 날리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유세하를 대신하여 앞으로 걸어 나가는 문보라.

         

       양팔을 벌리고 ‘안아줘요~’하는 슬라임을 향해 조준한다.

         

       “보, 보라…야…나, 나 열심히…하, 할게…”

         

       으득.

         

       마지막 말에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다무는 문보라.

         

       별 대수롭지 않던 감정에, 돌을 던진 것 같은 파문이 일렁거린다.

         

       “…의미는 없겠지만, 한마디 해두겠습니다.”

         

       마하나씨는.

       우리 소중한 탱커님은.

         

       “당신 같은 어쭙잖은 가짜보다, 훨씬 더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아이시클]이 작렬하며 녀석의 몸체가 산산이 부서진다.

         

         

       * * *

         

         

       삐이익-!

       삐익-!

       삐비비익-!

         

       계속해서 다가오는 슬라임 무리들.

         

       서로 호흡을 맞추며 능숙해진 두 사람은 별다른 위기 없이 척척 쓰러트렸다.

         

       “문보라 옆!”

       “[아이시클]!”

         

       문보라의 얼음 공격을 마지막으로 <비스트 슬라임> 무리가 사라진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아가는 유세하.

       돌연, 돌처럼 굳어진다.

         

       “…세하 씨?”

         

       의아하게 여기던 문보라는, 또다시 들려오는 발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므, 므아아…”

         

       <카모플라쥬 슬라임>.

       30분 정도 안 보이던 녀석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번에도 반 정도 녹아내린 마하나의 모습으로.

         

       “…으윽, 젠장.”

       “세하 씨는 여기 있으세요. 제가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미안.”

         

       유세하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무기력함에 울상을 짓는 모습.

       문보라는 다시 봐도 색다르다고 느꼈다.

         

       “…아닙니다. 잠시 뒤를 돌아봐 주세요. 가짜여도 부서지는 모습. 보고 싶지 않잖아요.”

       “…응.”

         

       언제나 까불거리며 놀려대는 그가,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따른다.

         

       문보라는 그 사실이 묘하게 통쾌하면서도.

       기분 좋으면서도, 안쓰러웠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세하씨가 이리 기가 죽다니.’

         

       조금은…

       음, 그래 조금이다.

       오해하지 마라.

         

       ‘귀여울지도요.’

         

       큼큼하고 목을 가다듬는 문보라.

         

       천천히 걸어나가, 망설임 없이 [아이시클]을 시전하였다.

         

       어쭙잖게 마하나를 흉내 낸 <카모플라쥬 슬라임>이 박살 나 사라진다.

         

       뒤돌아 유세하를 부르려던 찰나.

         

       저벅.

         

       ‘…이런.’

         

       문보라는 추가로 들려오는 발소리에 혀를 찼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인 모양이다.

         

       단숨에 처리하기 위해 손에 마력을 모으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

         

       얼음처럼 굳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와 눈을 마주친다.

       호흡이 조금씩 가파라진다..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질퍽거리며 다가오는 슬라임.

         

       틀림없이 <카모플라쥬 슬라임>이지만, ‘마하나’의 모습은 아니었다.

         

       매우 진한 자줏빛 단발을 가진 여성.

       묘하게 날카로운 눈매가 돋보이는 미인.

       동시에, 알게 모르게 문보라와 매우 흡사한 외견을 띄고 있었다.

         

       틀림없이 기억에 있는 존재였다.

         

       “…오랜만이네?”

         

       동생?

         

       “…[아이시클].”

         

       쾅-!!!

       아까랑 다르게 전력을 다한 [아이시클]이 슬라임에 작렬한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유세하가 문보라를 향해 달려온다.

         

       “뭐야?! 다른 적이라도 있었어?”

       “…아닙니다. 그냥…한 마리 더 있어서…같이 처리한 것뿐입니다.”

       “아, 그렇구나…응? 잠시만.”

         

       끄덕이던 유세하는 뒤늦게 문보라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

         

       땀이 비 오듯 흐르며, 안색이 창백하다.

       틀림없이 충격받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야, 너 괜찮아?”

       “…괜찮습니다. 조금 재수 없는 걸 봐서.”

       “아, 아무리 가짜여도…우리 므냥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되는데…”

       “…그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숨을 쉬며 어서 가자는 듯 전진하는 문보라.

         

       유세하는 그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억지로 바닥에 앉혔다.

         

       “…세하 씨?”

       “가만히 있어봐.”

         

       그리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고급스러운 손수건으로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무, 무슨?!”

       “어허, 움직이지 말고. 아무튼, 좀 쉬었다가 가자. 어차피 바로 다음에 [보스 룸]이야.”

       “……”

         

       원래라면 거절했을 거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워낙 충격이 컸던 걸까.

       문보라는 지금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쓱쓱.

         

       이마를, 콧등을, 이어서 볼을 꼼꼼히 닦아주는 손길.

         

       문보라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걱정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유세하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가족 중 유일하게 자신과 언니를 자식으로 봐주었던 분.

         

       그분의 눈빛이 느껴진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다.

       유세하의 양손을 붙잡고, 이마에 올렸다.

         

       “…문보라?”

       “세하 씨.”

         

       잠시만 이렇게 있어도 될까요?

         

       “어? 어어…”

       “…고마워요.”

         

       약 1분.

       짧은 시간이지만.

         

       덕분에 문보라는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

         

         

       잠시 뒤.

       마지막 남은 [보스 룸]을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

         

       문보라는 앞장서 걸어가는 유세하의 뒷모습을 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미쳤군요.’

         

       미쳤어, 미쳤다고 문보라!

         

       ‘아,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에 홀린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부끄러운 짓…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짓 따위.

       그의 앞에서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목덜미까지 붉어진 문보라는 몸에 얼음이라도 뿌릴까 하다 겨우 참았다.

         

       ‘…그래도.’

         

       그의 손길은…

       그의 눈빛은…

       참으로 따스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언니에 대한 기억을 떨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

         

       묘한 고마움을 가지는 문보라.

       곧, 손에 들린 물건을 눈치챈다.

         

       ‘…아.’

         

       이마를 닦아주었던 손수건.

       쓰고 돌려준다는 걸 까먹고 품에 넣은 모양이었다.

         

       ‘…주나용씨가…준 물건이라고 했죠?’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걸 들고 다닐 만큼 섬세한 남자라고는 느끼지 않으니까.

         

       듣자 하니 옷으로 피를 닦는 모습에 기겁한 주나용이 찾아와 건네준 거라고 하였다.

         

       ‘지금 돌려주면 되겠네요.’

         

       문보라는 앞서 걸어가는 유세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 멈춘다.

         

       왠지…

       왠지는 모르겠지만…

         

       문보라는 이것이 주나용의 물건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돌려주기 싫다는 생각을 하였다.

         

       ‘…세하씨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건네준 물건.

         

       그 사실 하나가 별거 아닌 손수건에 의미 부여를 하게 만든다.

         

       ‘…나, 나중에…’

         

       나중에 빨아서 돌려드리죠.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손수건을 주머니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 * *

         

         

       “세하 씨.”

       “어.”

         

       문보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전방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철제문이 보인다.

         

       틀림없었다.

         

       “도착했다.”

         

       <끈적이는 하수구>의 최종 보스가 기다리는 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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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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