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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전화가 울린다.

    띠리리리릭.

    그 공허한 소리가 흘러퍼지는곳은 황량한 모래사막같은 실내다. 다만, 거기에 쓰레기를 곁들인.

    될대로 되라는듯이 아무렇게나 어지럽혀둔 공간의 소파에는 마치 시체같은 형상의 남자가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죽어 널부러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저, 삶에 의욕을 잃은 듯이 멍청하게 누워있을 뿐.

    남자가 현재 잠을 자는것은 아니었다. 

    이미 진작에 눈을 뜨기는 했지만, 그저 일어나지 않고 싶었다.

    현재 그를 짓누르는것은 압도적인 무력감.

    띠리리리릭.

    계속해서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리듯, 오늘도 마찬가지로 심장이 뛴다.

    그리고 꼬르륵 하는 뱃고동소리, 참 많은것이 울려대고 있었다.

    식사, 인간관계, 의욕, 그 어떤것도 그를 일으켜세우고싶어하지 않는 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이뤄야할 목적이 있으므로 몸을 일으켰다.

    삐걱-.

    마치 금방이라도 부서질듯한 소파가 비명을 지른다. 이미 이곳저곳 뜯어지고 낡아버려서 도저히 미적인 감각이전에 어떻게 아직 산산히 부서지지 않은것인지 의문점이 들 정도.

    휴대폰의 이름을 훑는다. 흠,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군. 남자는 전화를 받는다.

    “잘 잤나, 서드.”

    휴대전화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린 내용만큼이나 상냥한것이 아니라 어딘가 비꼬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게 마치 익숙한 것이라는 듯 대수롭지않게 넘긴다.

    “내가 의뢰한 정보는?”

    휴대전화로 서드라 불리운 남자는 그저 용건만 간단히하라는 듯 재촉했다.

    그 재촉에 휴대전화의 목소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흥-. 하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 연락처에 관한 내용을 뒤져봤는데 말이지. 하하. 이 아가씨는 대체 뭐지? 정보가 정말 ‘하나도’ 없어.”

    “그게 무슨 소리지?”

    서드는 표정을 구기며 설명을 요구했다. 

    전화기 너머로 표정이 전달될리는 없지만.

    “말 그대로야.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같은 신원이라고. 게다가, 그나마 있는 신원정보조차 ‘증인 보호 프로그램’탓에 대부분 거짓이고. 심지어, 이름이 ‘루크 이루시’라는걸?”

    “‘루크 이루시?'”

    루크 이루시라면, 마법사가 ‘가명’으로 쓰는 이름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이 아니던가.

    심지어 모든 신원정보도 연람할 수 없는데다, 과거조차 깔끔하다면…….

    “그런데말이지, ‘임시 보호자’로 지정된 사람이 하나 있어. 예르나 리스핀드……. 흠, 이 엘프. 얼핏 어디서 본것 같은데.”

    “예르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아. 이 여자도 ‘증인 보호 프로그램’의 수혜자로군. 뭐, 밝혀진 정보는 루크숲의 숲지기라는 정도가 가장 명확해. 내가 알아볼 수 있는건 여기까지.”

    “알겠다. 이만 끊지.”

    “아차차, 서드. 이번달 약품가가 조금 밀렸다는거, 기억하시나? 되도록 빨리 납부해달라고.”

    “알겠으니 끊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 소파 한켠으로 휙, 던진다.

    툭-.

    “숲지기라.”

    게다가 그 루크숲이라면, 숲지기중에서도 가장 괴물같은 녀석들만 선발된다는 그 숲이 아니던가.

    무력적으로는 특공대의 바로 밑이라는것이 루크숲의 숲지기.

    그런 숲지기에게 보호받는 암살자 꼬마라…….

    남자는 종이에 불로 쓴 글씨를 내려다보면서 증얼거렸다.

    “대체 이녀석은 뭐지.”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손가락 하나 깜짝이지 않았음에도 내 몸을 굳게만드는 수준의 위압감, 극도로 정순한 마력의 활용…….

    “‘시설’의 작품인가……?”

    남자는 이빨을 빠득, 하고 갈았다.

    만약 그런 주제에 자신에게 접촉했다면…….

    콰직-!

    그는 종이를 구기고는 번개로 튀겨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지.’

    ———–

    오늘의 날씨 맑음.

    일기예보는 정확했고.

    “그럼 이제부터, 티그 아카데미 운동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마침내 드워프교장, 젠페이의 연설도 끝이 났다.

    아이들은 드디어 쓸데없이 운동장에 서서 발끝으로 흙을 파면서 시간을 때우지 않아도 됨에 감사하며 환호한다.

    “다들 참 즐거워보이는구나.”

    -…….

    파이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어의 덕분에 말에 담긴 감정을 파악하는것에 능숙한 루크와 파이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들떠있는 상태라는 것에 미소지었다.

    ‘꽤 즐겁군. 마치 도시의 축제같아.’

    실로 그랬다. 오늘은 외부인에게도 어느정도 아카데미가 공개되는 날, 그렇기 때문일까?

    떠들썩한 분위기는 더욱 고양되었다.

    그렇게 연설이후 잠시 주어진 쉬는시간, 곧 모두들 각자 가족이 있는 방향으로 뿔뿔히 흩어진다.

    예르나가 나무그늘 아래서 루크에게 손짓했다.

    “루, 여기야. 여기!”

    “루크 언니! 여기야!”

    루크는 예르나와 디아나의 외침을 듣고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예르나, 벌써 좋은 자리를 잡았군. 그런데, 다이튼은 어디에?”

    “걔는 오늘 당직이라 못왔어. 대신, 도시락을 싸줬지.”

    “저런, 다음에 도시락 정말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샌드위치 말고도, 햄버거도 있다!”

    “그렇느냐? 그건 또 굉장히 기대가 되는구나.”

    그러다가 문득, 예르나가 들고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턱을 쓸었다.

    “헌데, 그건 대체 뭐지? 지팡이에 구름을 씌운 마법인겐가?”

    게다가 이미 한개는 디아나에게 쥐어져있다.

    마력시를 운용해보지만, 전혀 마법적 흔적이나 마력으로 이뤄진 부분따위는 없었다. 구름도 아니고, 그저 막대기에 솜이었다.

    그리 그것의 정체를 살피다가 디아나에게 시선이 닿자, 디아나는 배시시 웃어버린다.

    “솜사탕이야. 문앞에서 팔길래 사왔어.”

    얼결에 넘겨받은 루크는 그 폭신해보이는 형상의 그것을 콕 콕 찔러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솜사탕……? 이건 도대체 무슨 장난감인가?”

    그러고 있으니, 디아나가 푸핫, 하고 웃어버리면서 말했다.

    “언니, 이거 먹는거야!”

    디아나가 마치 시범을 보여주겠다는 듯 입을 솜사탕에 푹, 꽂아버리고 음믐믐- 하는 괴상한 소음을 내었다.

    정말로 기뻐보이는 음성…….

    ‘먹다니……? 아무리봐도 음식으로 보이진 않잖은가?’

    허허, 참. 이 시대는 별게 다 있군, 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한번 절레절레한 루크가 솜사탕을 소심하게 입에 물었다.

    그러자 솜사탕은 루크의 입 안에서 마치 눈이 녹듯이 사르르 사라지며 은은한 단맛을 남긴다.

    “음?”

    그저 단맛일 뿐인지만, 정말 신기한 식감이었다.

    아주아주 오래전, 자신이 무려 심장에 서클을 새기기도 전 무렵에 상상하던 구름의 맛과 비슷하다.

    물론 이제는 구름이 그저 하늘 위의 안개나 다름 없다는 사실이야 잘 안다만, 어릴때는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는 말이다.

    루크가 서클을 새기고 가장 바랬던것이 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저 하늘속 구름에 닿는것이 목표였을 지경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았지. 적어도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야 말았을때엔, 구름이 그저 조금 입자가 커진 안개나, 하늘의 유일한 장애물이나 엄폐물 정도로밖에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솜사탕의 맛과 감촉은, 루크를 동심과 순수가 가득했던 그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어주는 듯 한 기분이 들게했다.

    복잡한 감정이 루크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친다.

    어쩌다 이리도 세계에 물들어버렸는지. 지식이 쌓여가면 갈수록, 어린아이의 동심과도 작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릴적엔 참으로 엉뚱하고 우스운 소년이었지, 나는.’

    구름이 단맛이 날거라니,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한 상상을 했을까?

    “맛있어……. 정말로.”

    “맛있다니 다행이네. 후훗, 루는 단걸 좋아하니까 생각이 났어.”

    “그렇군.”

    “아, 맞다, 루. 운동회 시작하기 전에 머리좀 묶자. 뿔마개도 잊지말고.”

    “음. 알겠다.”

    루크의 끄덕임에 뒤로 돌아온 예르나가 머리를 빗어모으고 고무줄로 고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느끼면서 냠냠, 솜사탕을 뜯어먹고있으니 파이가 이번에도 화난 것 같은 표정으로 항의한다.

    무언가 넘겨져오는 감정이 뒤죽박죽이라 자세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맛있는거 맨날 혼자 먹고, 치사해!’ 정도가 아닐까.

    루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파이에게 솜사탕이 어떤 맛이 나는지 들려주었다.

    조금이라도 이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 모습을 보는 예르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콧노래까지 부를 정도로 맛있나봐.’

    ——–

    예르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계속 프로이튼 가문을 캐봤지만……. 드래곤 하트의 행방은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말았어. 어째서일까.’

    분명 무언가 놓친게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말이지.

    ‘음……. 잠깐, 그때 그 인신매매범이, 프로이튼 가문과 연줄이 닿아있던가?’

    사망자의 뒤를 캐는건 개인적으로는 그리 탐탁치 않지만…….

    ‘이쪽으로 잠깐 방향을 돌려볼까. 사망자의 주변관계를 조사해보고, 프로이튼과의 연결점을 찾아봐야…….’

    그때였다.

    “자아, 선수들! 자리로!”

    운동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함으로, 루크가 자리를 비우고, 디아나가 열심히 루크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예르나 역시 루크를 응원했고.

    일단 첫 과목은 간단하게 줄 다리기였는데, 아무래도 루크가 있는 청팀보다는 백팀의 덩치가 더 커보였다.

    질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승패가 중요할까.

    -준비!

    아이들이 자세를 잡고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얼마든지 시작해도 좋다는 듯, 다들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심판은 고개를 만족스럽게 끄덕이고는 깃발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시작!

    “와아!”

    깃발이 내려지자마자 영차, 영차, 하는 소리를 내며 줄을 당겨대는 아이들, 그들을 응원하는 부모들이 뒤엉켜 열기로 가득찼다.

    하지만 그중에서 루크는 살짝 곤란했다.

    줄다리기는 너무 단순한 종목인지라, 다들 그다지 연습 하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으음, 대체 얼마나 힘을줘야할지…….”

    3서클을 새기며 드래곤하트를 각성시킨 용의 신체는, 루크에게 평범하지않은 신체능력역시 부여했다.

    그렇다, 루크가 전 종목 출전을 천명한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육체를 믿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빚어낸 최강의 키메라가 아닌가.

    하지만 언제, 어떻게 승부를 내야하는가는 여전히 고민거리였다.

    줄다리기에 전략이라고 할것은 딱히 없으니까.

    분명 패배역시 루크의 선택지에는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압도적인 승리를 하기는 곤란하다. 

    그런 짓을 했다간 아이들에게 허무감밖에 주지 않을 테니까.

    운동회란 협동심을 기르고, 노력에 대한 미덕을 가르치는 행사가 아닌가.

    하지만 단 한명의 초인이 모든것을 해결해버려서야, 아무런 교훈도 남아있지 않을테니.

    그리 고민을 하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 불만을 터트린다.

    “야, 너는 왜 힘 안줘!”

    루크가 주변을 둘러보자, 너무 힘을줘서 얼굴이 이리저리 귀엽게 망가지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자신은 너무도 편안한 표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힘을 주지 않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법 한 일이지 않겠는가.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꽈악, 그리고.

    “알겠네, 내 힘을 써보도록 하지.”

    루크는 흡, 하는 소릴 냈다.

    이정도면 완벽한 연기다. 무려 정령어를 사용해 말에 감정까지 실은데다, 고개를 숙여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거기에 그치지않고 계속해서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가 하면서 아슬아슬함을 연출한다.

    “워후! 청팀, 백팀! 이거 박빙인데요! 어느쪽이 이길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것은 사회자의 말대로, 정말 흥미진진해보였다.

    결국 끝에가서 승리를 쟁취한쪽은 뭐…….

    당연히 청팀이었다.

    예르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루는 목소리연기는 참 좋은데, 표정연기는 많이 어색하네.”

    힘들어 죽겠다는 목소리랑은 정 반대로, 하나도 안힘들어보이는 표정이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세계관속 ‘루크 이루시’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는 사실 ‘홍길동’이랑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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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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