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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유적은 하늘섬의 뱃살에 있어.”

         

       파스텔은 하늘섬 모양 장난감을 들고 아랫부분을 톡톡 쳤다.

         

       발견된 유적은 하늘섬 지하를 넘어 아예 밑바닥에 존재했다. 지상에서 파고 내려가는 게 아니라 비공정을 타고 하늘섬 아래로 비행해서 땅바닥의 입구를 찾은 다음 들어가야 한다.

         

       하늘섬 넓이가 장난 아니니 여태 발견되지 않은 게 이해되는 머리 아픈 위치였다.

         

       “말로만 듣던 가능성을 검증한 거죠.”

         

       필기 차석 멜리사가 미소 지었다.

         

       “하늘섬 밑면의 탐사는 비용에 비해 기대 성과가 너무 적어 여태 하지 않았던 일이에요. 전년도 신입생이 없었던 아카데미가 예산이 매우 많이 남게 된 바람에 드디어 탐사할 수 있었거든요. 정작 탐사 자체는 이번 연도에 했지만요.”

       “앗 멜리사!”

         

       파스텔은 반색했다.

         

       “혹시 이 유적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이 있어?”

         

       나 혹시 유적 탐색은 멜리사에게 맡겨놓고 룰루랄라 할 수 있는 건가?

         

       “네? 다소 그렇진 않아요. 입학시험 때 필기 수석이 되기 위해 공부한 영역이거든요. 하늘섬의 최신 근황이니 문제로 나올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었죠.”

         

       “아하! 열심히 노력했구나! 필기 수석은 나였지만!”

         

       에헴.

         

       멜리사가 멈칫하곤 멍하게 바라봤다.

         

       그리곤 살짝 침울해했다.

         

       “노력이 부족했어요…….”

         

       앨시어가 조타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식량 확인 끝났어. 이제 출발하면 돼?”

       “응! 다들 각자 자리로!”

       “자리요?”

         

       멜리사가 당황하다가 적당한 조수석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앨시어도 마찬가지였다.

         

       “그거야!”

         

       파스텔은 조타륜 앞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나무 조타륜을 붙잡고 한 팔을 번쩍 들었다.

         

       “선장 파스텔! 출항을 선언합니다!”

         

       조타륜을 힘껏 돌렸다.

         

       “출항! 출항! 출항!”

         

       조타륜이 팽글팽글 돌아갔다.

         

       “출항! 출항!”

         

       파스텔은 열심히 돌리다가 의문이 들었다.

         

       왜 비공정이 안 움직이지.

         

       혹시 이거 그런 건가?

         

       후후.

         

       자격 있는 자만이 나를 움직일 수 있다.

         

       네 녀석은 아직 선장이 아니다!

         

       허억, 그럴 수가.

         

       나 아직 선장이 아니었던 거야?!

         

       파스텔은 충격에 입이 벌어졌다.

         

       『……조타륜은 비상용이다. 평소엔 장식이지. 그 앞에 있는 작동기기를 조작해야 해야 움직인다.』

         

       허억, 맞아.

         

       그랬징.

         

       소녀 둘의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헤헤.”

         

       파스텔은 몸을 꼬며 부끄러워했다. 괜히 조타륜을 한 번 더 돌리곤 작동기기로 걸어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일단 오른편의 레버를 당겨라.』

         

       네에.

         

       파스텔은 당기려다가 멈칫했다. 조타륜을 돌아보곤 톱니바퀴와 마법진으로 구성된 최신식 작동기기를 살펴봤다.

         

       으잉.

         

       뭔가 너무 신식인 듯.

         

       내가 바라던 슈퍼 짱짱 항행 기분이 아니야.

         

       고민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멜리사! 아니지! 이건 얌전한 멜리사와 안 어울리는구나!”

       “네?”

         

       고개를 돌렸다.

         

       “앨시어! 조타륜 앞으로 가봐! 매우 중요한 일이야! 매우 매우 중요한 일!”

         

       빨리빨리!

         

       손을 흔들며 재촉하자 금세 자리가 바뀌었다. 앨시어가 조타륜 앞에서 의아하게 바라봤다.

         

       “무슨 일이길래?”

         

       파스텔은 조타륜을 척 가리켰다.

         

       “돌려줘.”

         

       응응.

         

       앨시어는 조타륜을 보다가 한차례 회전시켰다. 나무 조타륜이 빙글 돌더니 멈췄다.

         

       “계속! 계속!”

       “계속……?”

         

       앨시어가 조타륜을 계속 돌렸다.

         

       팽글팽글 팽글팽글.

         

       이거야!

         

       파스텔은 급격히 만족했다.

         

       “이거 왜 돌리는 거야?”

       “기분이 좋아져!”

         

       아싸아싸.

         

       앨시어가 계속 돌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별로 안 그래.”

         

       허억.

         

       그럴 수가.

         

       떨리는 시선으로 조타륜을 바라봤다.

         

       “조타륜 친구, 미안해애! 널 열심히 회전시켜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다니! 앨시어는 네가 쓸모없는 장식용에 예산 낭비인 데다가 나무에게 미안할 뿐이라는 의미로 한 얘기는 아닐 거야!”

       “그렇게까진 말 안 했어.”

         

       앨시어가 당혹스러워했다.

         

       “불쌍한 조타륜! 친구로서 어서 사과해!”

         

       사과해! 사과해!

         

       앨시어가 얼떨떨해했다.

         

       조타륜이 멈춰졌다.

         

       은발 소녀는 머뭇거리다가 조타륜 친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멜리사가 어이없어했다.

         

       “둘이 뭐하나요……?”

         

         

         

       #

         

         

         

       파스텔은 레버를 당겼다. 장치의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며 항행 준비를 시작했다.

         

       항행 장치의 소음과 뒤에서 계속 돌려지는 조타륜의 소리가 뒤섞였다.

         

       팽글팽글 팽글팽글.

         

       항행 분위기가 팍팍 났다.

         

       멜리사가 조수석 의자에서 스리슬쩍 일어나더니 다가왔다.

         

       “정말 비공정을 운용하실 줄 아시나요? 반자동 항행이라 보기엔 쉬워 보여도 사고가 없으려면 막대한 기반 지식이 필요하다 들었어요. 지금이라도 항해사를 섭외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선장만 믿어!”

         

       파스텔은 똑똑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 손으론 허리춤의 마검을 두들겼다.

         

       악마님! 악마님!

         

       『제대로 따라온다면 문제 없이 항행할 수 있을 거다. 먼저 전면의 마법진들을 살펴봐라.』

         

       후후.

         

       악마님 말만 잘 들으면 되는 것이다~.

         

       평소에도 말 잘 듣는 파스텔에겐 무엇보다 쉬운 일.

         

       『일자로 나열되지 않아서 보기 어려울 수는 있다만 좌측부터 1번 마법진이라 부르겠다. 이 비공정은 총 11번 마법진까지 있군.』

         

       오호오호

         

       마법진 11개쯤은 가뿐.

         

       양손을 동원하고 발가락 하나만 더 쓰면 돼!

         

       『좌측 레버를 한 칸 내려봐라. 잘했다. 마석 가루의 배치가 바뀌며 마법진 11개의 형태가 바뀌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마법진의 종류는 동일한데 위치만 바뀐 것이지.』

         

       네에.

         

       완전 쉬움.

         

       『이 배치의 전체 개수는 39,916,800개다. 네가 고려해야 할 연쇄 마법진의 개수기도 하지.』

         

       으엣.

         

       갑자기 너무 어려움.

         

       파스텔은 떨리는 눈으로 마법진 배치를 살폈다.

         

       마법진이 11개나 되다니!

         

       너희들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러다 옆을 힐끔 돌아봤다.

         

       이미 어렵다고 신신당부했던 차기 대마법사가 살짝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파스텔의 삐질삐질한 표정에 기대감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그 자리를 불안이 채웠다.

         

       “당신 설마 경험이 없나요?”

         

       파스텔은 다시 똑똑한 표정을 지었다.

         

       “선장만 믿어!”

         

       멜리사가 더 불안해했다.

         

       “해본 거 맞죠?”

       『비공정 기술은 다소 불안정해서 마법진 조작을 잘못하면 도중에 항행이 중단되기도 한다. 하늘 위에서.』

         

       파스텔은 두 배로 똑똑한 표정을 지었다.

         

       “선장만 믿어……!”

         

       멜리사가 입술을 떨었다.

         

       “이론만 공부하고 이러는 거 아니죠? 저도 이론 공부를 좋아하지만 지식만으로 실전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당신도 잘 알고 있겠죠……?”

       “당연하지!”

         

       가슴팍을 통통 두들겼다.

         

       “파스텔을 어떤 사람으로 보는 거야!”

         

       이론도 공부 안 했다구!

         

       속마음을 못 들은 멜리사가 안도했다.

         

       “하긴 그렇죠. 앞가림도 못할 분이 아니긴 해요. 이거 실례했네요.”

       “괜찮아! 괜찮아!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할게!”

         

       에헴.

         

       정적이 흘렀다.

         

       멜리사가 다시 기대하며 지켜봤다.

         

       파스텔은 삐질삐질해지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백 배로 똑똑한 표정을 지었다.

         

       무려 백 배.

         

       그리곤 서둘러 마검을 두들겼다.

         

       악마님! 악마님!

         

       우당탕탕 시간이 흘렀다.

         

       뿌루뿌 삥삥 뽕뽕~!

         

       비공정이 순조롭게 떠올랐다.

         

       멜리사가 감탄했다.

         

       “역시 당신이네요.”

         

       으쓱으쓱 뿜뿜.

         

       즐거운 분위기.

         

       은발 소녀가 멍하게 조타륜을 계속 돌렸다.

         

       두 배로 즐거운 분위기!

         

       팽글팽글 팽글팽글.

         

         

         

       #

         

         

         

       하늘섬 밑면에 당도했다. 비공정 갑판이 그림자로 뒤덮여 어둑해졌다.

         

       “우와아!”

         

       파스텔은 입이 헤 벌어졌다.

         

       하늘섬은 빙하처럼 밑면이 과하게 거대하진 않았다. 빙하를 붙잡고 가로로 넓게 당긴 모습이었다.

         

       다만 얼음 대신 흙더미나 바위 지면이 뒤섞여 위태롭게 모양을 잡았다. 일부 흙더미 사이로는 이름 모를 거대한 덩굴줄기들이 빠져나와 아래로 늘어섰다.

         

       “우와아!”

         

       거의 아카데미 앞마당인데 여태 못 봤어!

         

       멜리사가 하늘섬을 올려봤다.

         

       “저희가 갈 유적은 중심부로 더 항행해야겠지만 이 테두리 부분엔 기사단의 순찰이 많을 거예요. 이렇게 대놓고 진입해도 괜찮나요?”

         

       손가락이 밑면 바위를 깎아 만든 정박장을 가리켰다.

         

       “당장 저곳도 기사단 소유일 걸요. 아마 마계 정복 당시 군사용으로 만들었던 정박장 같네요.”

       “우리가 가는 경로에 기사단의 순찰은 없을 거야! 순찰 루틴을 다 알아보고 왔다는 말씀!”

         

       기사단이 적대심을 온전히 가지기 전에 찌른다는 말이 이런 의미다. 아카데미를 완전히 적대한 상태였으면 순찰 루틴도 안 보여줬겠지.

         

       “그걸로 되나요?”

         

       멜리사가 의문스러워했다.

         

       “순찰 내역을 숨겨야 하는 건 적대 세력이 약한 부분을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약한 고리의 인력을 암살하는 방식으로요. 설마 기사단 인원을 암살할 생각은 아니죠?”

         

       남부 군벌의 타당한 질문.

         

       파스텔은 의기양양해졌다.

         

       “그렇기에 기사단이 무능하고 수상한 거야! 순찰 루틴에 정교하게 빈틈이 존재하거든! 예산도 많이 가져가니 본래라면 있으면 안 되는 순찰 공백이 유적까지 이어져 있어!”

         

       이건 결정권을 쥔 스파이가 교단의 유적 침입을 용이하게 해주기 위한 빈틈일 게 분명하다.

         

       기사단 자체가 협력한다기 보다는 스파이가 뒷문만 열어놓고 무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상태.

         

       어쩌면 테러 때 내부 문제가 발생했다며 침묵한 건 기존 정상 계파와 스파이 쪽 계파 간의 분쟁이었을 수도 있다.

         

       아카데미가 정당하게 물어본다고 해서 정작 알려주긴 매우 곤란한 내부 문제기도 하지.

         

       응응.

         

       비공정은 정말 장애물 없이 항해했다. 유적에 마련된 임시 정박장에, 그것도 사람 하나 없는 정박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이제 앨시어에게 조타륜 그만 돌려도 된다고 말해야겠다!

         

       그만하라고 말 안 했더니 계속 돌리길래 언제까지 그러나 궁금해서 내버려 뒀는데 정말 계속 돌릴 줄은 몰랐어.

         

       설마 명령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응응!

         

       친구 사이에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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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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