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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일당 10실버.

       

       실로 수상쩍은 말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그 말을 꺼낸 것이 그로테스크한 그림자 괴물을 다루는 마법사고, 업무 내용조차 불명확하다면 더더욱 그러하겠지.

       

       하지만 고액 알바 사기가 왜 존재하는지 아는가?

       

       답은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뭐부터 하면 될까요?”

       

       자본주의의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하자, 베니가 깬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걸음 물러섰다.

       

       “갑자기 뭐야 그 이상한 미소는.”

       

       “아뇨. 그냥 물어본 거잖아요. 제가 베니에게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지를요.”

       

       “어떻게 해줬으면…?!”

       

       무언가 상상하는 듯, 베니의 눈이 잠시 몽롱하게 풀어진다.

       

       그리고는 슬쩍 고개를 돌린 채, 이쪽을 힐끗거리는 베니.

       

       “저, 정말 뭐든 해주는 거야?”

       

       “세상에. 베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건가요? 저는 그냥 일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으응? ……어?! 아, 아니거든! 아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이 음란 핑크야!”

       

       얼굴을 붉히며 빼액 소리치는 베니. 그녀의 눈동자에 몽글몽글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 베니 울어요?”

       

       “아, 안 우는데?!”

       

       처음에 나를 방울뱀으로 오해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눈물이 좀 많은 편인가 보다.

       

       다만 남녀역전 세계 출신인 베니에게는 꽤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나보다.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재차 벅벅 닦고는 또박또박 말을 잇는 베니.

       

       “안 울었다고.”

       

       “울었다고 뭐라고 한 적도 없는걸요.”

       

       그 마음은 이해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거겠지.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보일 수 없다에 가까우려나.

       

       이 세계에서 여자는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를 보호하는 주체니까. 눈물을 드러내는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반대로 지구의 기억이 있는 내게는 울고 있는 여자. 심지어 어린아이 같은 외형을 한 베니는 죄책감을 마구 불러일으키지만 말이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베니의 눈가에 가져다 댔다.

       

       “잠시만요. 가만히 있어보세요 베니.”

       

       “읏!”

       

       내 손가락이 닿자 멈칫하는 베니. 하지만 말은 잘 듣는지 가만히 있는 그녀에게 방긋 웃어주고는 잠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권능은 그 자체로 완성된 힘이다. 정신력만 충분하다면 얼마든 사용할 수 있을 정도.

       

       모험가들이 권능에 환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적은 힘으로 기적을 부릴 수 있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권능이란 신의 기적. 이미 죽은 신이건, 아직 살아있는 사랑의 여신이건 어쨌든 신력을 자원으로 삼는 이들 아닌가.

       

       당연히 권능 또한 신성력을 소모하면 더 강력하고 다채롭게 사용할 수 있다.

       

       바실리우스의 본래 힘은 내 성장을 가속시키는 것인데, 여기에 신성력을 투자해 식물을 급속 생장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얻은 권능. 촉촉한 피부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

       

       언제 어느 때나 촉촉한 피부를 유지해 주는 미용 권능. 얼핏 보면 진짜 별거 아닌 힘 같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원리 자체는 상당히 고등하다.

       

       언제 어느 때나 가장 이상적인 피부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힘이니까.

       

       향기로운 체취가 몸을 숨겨야 할 때는 냄새가 사라지는 것 또한 같은 이유다. 엄밀히 말하자면 상황에 맞는 이상적인 체향을 유지하는 권능이기 때문.

       

       아직 시험해 보지는 않았으나, 피부에 난 상처에 한해 회복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을 것이다.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가 이상적인 피부니까.

       

       괜히 신의 권능인 게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 촉촉한 피부에 신성력을 쏟아부어 효과를 잠깐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 한다.

       

       우웅-

       

       체내 깊숙한 곳에서 내 의지와 공명하는 온기. 이를 그대로 잡아끌어 손가락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눈을 떴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손가락. 부어오른 피부가 이에 접촉한 곳부터 가라앉기 시작한다.

       

       “치, 유? 엘리 언니 말이 진짜였구나.”

       

       “신성술은 또 언제 배운 거야….”

       

       당황한 목소리로 자신의 눈두덩이를 매만지는 베니와, 셰이커를 흔들다 말고 어이없어하는 엘리.

       

       둘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치유 신성술이 아니라 권능의 응용이에요. 피부에 난 상처만 치료할 수 있으니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기껏해야 최하급 포션의 대용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이는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켰을 때의 효율이 기준이다.

       

       효과 범위를 나 자신으로 한정시키면 하급 포션 정도는 될 거다.

       

       …어느 쪽이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네.

       

       처음 시도해 본 일이라 그런지 집중력이 떨어져 조금 지쳤다. 카운터에 고개를 묻으며 머리만 살짝 꺾어 베니 쪽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저랑 하겠다는 일이 뭔가요?”

       

       “어? 으응. 그, 방금 네가 내 그림자를 만졌을 때 말야. 공격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했잖아?”

       

       “그랬죠. 은근 귀여운 구석도 있더라구요. …그나저나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베니가 직접 조종하는 건 아닌가 보네요.”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그저 부탁할 뿐이야. 내 말을 들어달라고.”

       

       “착한 애네요.”

       

       생긴 건 끔찍한데 성격은 순한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앞다퉈 몰려드는 온갖 부속물들. 눈알을 쓰다듬고, 뿔을 콕콕 찌르며, 촉수를 긁어주자 기분 좋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떤다.

       

       그 모습을 보던 베니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착하기는. 얼마나 성질 더러운 녀석인데. 다른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한쪽 팔이 날아갔을걸?”

       

       “오. 엘리랑 세트네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런 말 하는 게 정말 미안하긴 한데, 혹시 미친놈이니?”

       

       “베니도 제정신은 아니니 쌤쌤 아닐까요?”

       

       “난 제정신이야! …아직은.”

       

       한차례 울컥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는 베니.

       

       그녀가 입을 크게 벌려 뾰족뾰족한 상어 이빨을 보여주고는 말을 이었다.

       

       “보이지? 이거. 그림자에 이식된 이후로 천천히 내 몸을 잠식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나도 완전히 괴물로 변해서 이 녀석의 일부가 되어버릴 거야.”

       

       “…혹시 이 흔적들 하나하나가 원래는 사람이었던 건가요?”

       

       “응. 이 뿔은 마렉, 이빨은 멜로니아, 갑각은 프레이, 눈은 자밋이었어. 그 외에는 나랑 안 친해서 이름까지는 기억 못 하는데 전부 사람이었겠지. 아마 내가 동화되면 눈이 하나 더 생기는 게 아닐까? 하트 달린 녀석으로 말이야.”

       

       그리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는 베니. 농담인가 싶어 슬쩍 엘리를 돌아보자, 그녀 또한 안쓰러운 눈빛으로 베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진짜였단 말이야?

       

       다소 숙연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베니가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해 왔다.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시선. 다만, 그 의지의 이름은 분명 절박함이리라.

       

       “나는 지금 이 녀석과 나를 떨어뜨릴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 그게 불가능하다면 침식 속도라도 늦출 생각이고.”

       

       “아하? 그 실험을 제가 도와줬으면 한다는 거죠?”

       

       “맞아. 아까도 말했듯이 이 녀석은 내 명령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는 것에 가까워. 그렇다 보니 말을 안 듣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 탓에 실험이 제한적인가 보네요.”

       

       “응. 본격적으로 뭘 확인해 보려고 하면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리거나, 나를 물어버리려고 들더라. 세게 물지는 않지만.”

       

       “좋아요. 이유는 알겠고, 저한테 뭘 원하시는 건지도 알겠어요. 잘 구슬려서 실험에 참가하게 하면 되는 거죠?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붙여도 괜찮을까요?”

       

       “뭔데? 가격이 부족해? 애초에 대단한 일을 시키려는 건 아니라서 지금보다 더 쳐주는 건 좀 과한데.”

       

       “아뇨. 보수에는 만족하고 있어요. 다만, 그동안 제가 들일 시간이 문제인 거죠.”

       

       “응?”

       

       하트 모양이 그려진 보랏빛 눈을 끔뻑이는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제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3층까지는 가야 하거든요. 거기서 찾는 것도 있고요. 뭐어.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네. 내 실험에 어울려 주느라 시간을 너무 잡아먹어 성장이 느려지면 곤란하다는 거지? 10실버로도 어떻게 안 되는 거야?”

       

       “네. 물론 보수를 지금의 3배로 높여주신다면 그때는 하루 종일이라도 어울려 드릴게요.”

       

       아무리 그래도 30실버는 좀 심했던 걸까. 베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다. 미궁에서 강해지는 걸 가챠로 대신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챙겨야 하니까.

       

       잘 자다가 꼬리를 밟힌 오리너구리처럼 낑낑거리던 베니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보수는 더 줄 수 없어. 실험에 쓸 돈은 있어야 할 것 아냐. 대신 목적이 강해지는 거라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요?”

       

       “우선 미궁에 같이 들어가서 여러모로 봐줄게.”

       

       “이미 리디아 님이 해주고 계시는 건데 말이죠….”

       

       “글쎄. 다를걸?”

       

       아쉽다는 듯이 툴툴대자, 베니의 짐짓 거만한 태도로 납작평평흔들리지않는편안한가슴을 내밀었다.

       

       “듣자하니 간단하게나마 마법을 쓸 줄 안다며? 마법의 기초를 알려줄게. 미궁에서 실제로 써보기도 하면 금방 늘 거야.”

       

       “…마음에 드는 조건이네요. 그럼 이제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죠. 제가 뭐부터 하면 될까요?”

       

       “그러네….”

       

       고개를 끄덕인 베니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옷 좀 벗어줄래?”

       

       “?”

       

       야한 일 안 시킨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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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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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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