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0

       미궁의 악마.

        B동의 대학원생들은 그 존재를 그렇게 불렀다.

        마탑의 수로가 얽혀 탄생한 미궁에서 가장 깊은 곳.

        끝을 모르고 아래로 뻗어있는 무저갱의 밑바닥에는 그 어떤 마법사도 대적할 수 없는 악마가 살고 있다.

       

        심신이 쇠약해진 탓에 헛것을 본 것이라며 마탑 내에서도 도시전설 정도로 치부되었지만.

        한 번이라도 대학원에 수감되어본 이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이곳을 밥먹듯이 드나들던 이자젤 역시 악마의 존재를 확신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평소에도 미궁 중앙에 지하로 뚫려 있는 거대한 구멍 근처로 가지 않았다.

        괜히 발을 헛디뎌 그대로 추락사 한다거나 미궁의 악마에게 꾀여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으니까.

        이따금 중무장을 한 감독관들이 약간의 음식과 위치노트를 싣고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 적 있을 따름이었다.

       

        “많이 먹어라.”

        “꺄아아악! 클락 님! 거기에 접시들을 던지시면 안 돼요!!”

       

        그리고 오늘, 나흘만에 감방 밖으로 나온 클락에 의해 그녀는 거의 구멍에 떨어지기 직전까지 갔다.

        깨진 접시 조각과 남은 음식들을 난간 밖으로 털어넣은 그는 이어서 감방에 있던 매트리스 하나도 같이 집어던졌다.

        후련한 듯한 표정으로 손을 턴 클락은 아연실색한 이자젤에게 안심하라는 투로 말했다.

       

        “걱정 마, 다 계획이 있으니까.”

       

       

       

        *

       

        구속구로 인해 마력을 봉인당한 상태에서 내 기감은 어느때보다 날카로웠다.

        창을 들지 않아 기감을 덧씌워 적을 꿰뚫는 건 불가능하지만 상대를 파악하는 거라면 전보다 더욱 자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원한은 폭발의 임계점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그 여파는 대학원의 경비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기 충분한 수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저 밑바닥에 있는 존재의 화를 돋구면 그만인 일이었다.

        나는 B동에서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는 검은 구멍 아래로 여러 잡동사니들을 하나씩 넣어 보았다.

        옷가지나 쓰레기, 철문 등 손에 집히는 거라면 죄다 뜯어 녀석의 분노를 끌어올리기 위한 먹이로 주었다.

        허나 생각보다 참을성이 많은지 최초의 대학원생은 꿈틀거리기만 할 뿐 이전같은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이것도 던질까?’

       

        마법제 때 프리나에게 받았던 부두인형을 꺼내 보았다.

        불감과 광과민성, 그리고 내게는 알려주지 않았던 한 가지 저주를 덧씌워 어두운 곳에서 나름 도움이 되던 마도구였다.

        분명 여기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조금 전 이자젤과 붙었다 떨어진 이후 머리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망가진 것 같은데, 나름 추억이 깃든 물건이니 나중에 고쳐 보기로 하고 우선 녀석을 열받게 만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이자젤, 최초의 대학원생에 대해 더 아는 거 없어?”

        “네? 으음, 잘 모르겠어요. 미티어 학파였다면 그나마 정보가 있겠지만 신성학파 출신이거든요.”

       

        조금 전 소란을 듣고 감독관이 올까 전전긍긍하던 이자젤은 내가 구멍에서 멀어지자 반색하며 다시 감방 안으로 들어왔다.

        휑해진 방 안에는 던질 물건도 남아있지 않았다.

        괜찮겠지, 어차피 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이곳으로부터 대략 10층 정도 남은 분노 게이지를 마저 채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제가 듣기로는 굉장히 고매한 분이셨다고 해요. 과거 제국에서 성녀 후보로 추대될 정도로 명망높은 마법사였는데…….”

        “였는데?”

        “금술에 손을 대서 파문당했다고 하더라고요.”

       

        금술이란 마탑에서 공식적으로 금기시되는 신비의 편린이자 인과가 상동(相同)하지 않는 마법을 일컫는 말.

        대표적으로 마리엘이 사용하는 시간 역행이나 악마 소환의식 같은 흑마법의 일종이 있다.

        엄연히 따지자면 저주도 그 중 하나이지만 아녜스가 신비를 정제하여 ‘저주명’을 만들고 그에 반대되는 해주학을 창시함으로써 반쯤 예외를 인정받은 상태였다.

        금술에 손을 댄다는 것은 마법사로서의 인생을 끝장낼 정도로 위험한 행동이었다.

       

        “흠, 금술도 종류가 많은데 어떤 금술?”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치료에 관련된 지식이 아니었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신성학파 입장에서도 완전히 이단으로 규정짓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건 어째서?”

        “당장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금술에 손 댄 마법사를 미궁에 가둬놓는 것만으로 끝났으니까요.”

       

        이따금 감독관을 통해 식량이나 생필품들을 전해주며 목숨을 연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것도 백년은 넘은 일이니 어지간한 고위 마법사, 혹은 메릴린처럼 현자에 가까운 경지겠지.

        물론 최초의 대학원생이 대단한 마법사라는 것이 내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녀석을 열받게 만들 수 있는가.

        나는 지금껏 비명이 들려왔던 상황에 주목했다.

        한 번은 갤러리가 문을 닫았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내가 글을 썼을 때.

        그것도 다른 유저들의 격렬한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로 고까운 내용이었다.

       

        두 가지 사실로 말미암아 최초의 대학원생은 갤러리, 그중에서도 특히 대학원생 게시판에 상주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빅데이터로 취합한 결과를 통해 도출해낸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위치노트를 열고 갤러리에 글을 하나 작성했다.

       

        ====

        불다람다람쥐람쥐

        [본인쟝 대학원 입소 4틀 차인데 벌써 적응함 ㅋㅋ]

       

        백 년도 있으라면 있을 듯?

       

        — 뭣

        — 4틀 ㅅㅂ ㅋㅋㅋㅋㅋㅋ

        — 야 이 새끼야 4틀? 사흘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4틀?

        — 너한텐 일주일이 7틀이냐? ㅋㅋㅋㅋ

        — 단어선정 죽이고 싶다

        — 4틀은 진짜 돌아버리겠네

        — 이게 요즘 수습생들인가? ㅋㅋㅋㅋㅋㅋ

        ====

       

        — 끼애에에에엑!!!!

       

        “오”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반응.

        분탕질은 백년 묵은 악마를 지상으로 올라오게 하는데 최고로 직빵이었다.

       

       

       

        *

       

        같은 시각.

        1층의 상업지구에서 경매에 참여하기 위한 절차가 한창이었다.

        기간이 사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입장권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마침 악명높은 노예상 하나가 검거당해 한 좌석이 매물로 나왔다.

        그 좌석에 앉을 티켓을 구하러 온 시엔에게 릴리벨은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다.

       

        “정말로 몸에 이상은 없으신 검까?”

        “그렇다니까. 오히려 이전보다 컨디션은 더 좋아졌으니 걱정 안 해도 돼..”

       

        30층의 시련이 붕괴되며 생긴 여파는 고행의 층을 통과하는 마법사들의 수준을 측정하기 어려워지는 것 외에도 몇몇 이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마법의 위계와 마나의 순도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세계선이 분리되었다 합쳐짐에 따라 기존에도 나타난 현상이었으나 지금까지는 변동폭이 극히 미미했다.

        허나 클락이 사라졌을 때의 여파가 너무나 컸던 탓에 그 오차를 완전히 바로잡지 못한 것이었다.

       

        “신비를 다루는 요령도, 마법의 정확도도 올라갔어. 그나마 신경 쓰이는 거라면 복사뼈가 계속 간지러운 정도?”

        “그러심까?”

        “응, 아마 지금 걔가 더 힘들 거야. 하필 재수없이 거기에 같이 들어갔던 탓에 오해를 받다니, 내가 반드시 구해줘야 해.”

        “흐음…….”

       

        릴리벨은 믿지 않았다.

        하필이면 클락이 들어갔던 시련이 ‘재수없이’ 붕괴하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시엔의 마력이 강해진다라.

        두 사건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거라 확언할 수 있었다.

        증거는 없지만, 클락의 행동거지를 지켜본 사람들은 99% 심증만으로 그를 범인으로 인정할 만큼 강한 연결고리.

       

        허나 안타깝게도 시엔은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1%였다.

        평소 냉철하던 정보부의 에이스는 불편한 자세로 발목을 문지르면서도 자신의 친구를 의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뭐, 나중에라도 이 시기에 비슷하게 강해진 케이스를 찾아 보겠슴다.”

        “알겠어. 신경 쓰인다면 정식으로 조사해 봐.”

        “그보다 선배.”

        “응?”

        “클락 님을 낙찰받으시면 그거 쓰실 검까?”

       

        릴리벨이 가리킨 것은 시엔의 손에 들린 마도구였다.

        대학원생들이 착용하는 엘리시아의 침묵과 똑같이 생긴 묵빛의 족쇄는 가죽 재질이었으며 손목이 아닌 목에 들어가는 사이즈였다.

        ‘엘리시아의 복종’.

        경매 참여자들이 좌석의 티켓을 구매할 때 같이 수령받는 물건으로 대학원생의 정신을 해당 학파에 예속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정보부의 운용자금까지 털어 입찰할 생각인 만큼 릴리벨은 차라리 시엔이 클락에게 엘리시아의 복종을 사용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해주학파 출신인 그를 그대로 풀어줘 버리면 또 어디서 사고를 치고 다닐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번 기회에 목줄을 채워 정보부 소속으로 활약하게 하면 전력에도 큰 보탬이 될 게 분명했다.

       

        “릴리벨, 너 지금 나랑 장난해!? 클락을 구하는 건 치안부의 졸속 행정에 반대하기 때문이야. 걔를 정보부에 편입시키려는 게 아니라 아무리 해주술사라고 해도 함부로 구속시켜서는 안된다는 걸 행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라고!”

        “죄, 죄송함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녀는 시엔에게 불호령을 맞아야만 했다.

       

        “게다가 우리는 개인적으로 걔한테 빚이 있어. 나 뿐만 아니라 릴리벨 너도 말야. 악의의 층에서 클락이 없었으면 날 구하러 올 수 있었겠어!? 넌 모르겠지만 급행을 다시 출발시킨 것도 검은별의 뒷배가 연금학파라는 걸 알아내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던 것도 결국 전부 클락 덕이었단 말이야. 이미 정보부에게 몇 차례나 도움을 준 조력자를 내팽개친다는 인상을 주면 다른 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

        “마, 맞슴다 죄송함다.”

       

        차마 마주치기 어려운 곧은 눈매에 고개가 절로 아래로 내려갔다.

        검과 함께 뻗은 늘씬한 다리 아래로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발목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용자금을 내가 멋대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야! 이미 베르농 부장님께서 공역에서 클락에게 테러리스트들을 잡은 포상금을 주기로 했었고 거기에 내 사재를 조금 얹는 것 뿐이지. 그러니까 내가 치졸하게 잠깐 눈높이가 달라진 걸로 걔를 옭아맬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란 말야!”

        “예, 예! 이해했슴다! 확실히 알겠슴다!!”

       

        릴리벨은 자신이 얼마나 시엔을 타락한 눈으로 보았는지 깨달았다.

        정보부의 에이스는 순수하게 자신의 친우가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고개를 털어낸 그녀는 엘리시아의 복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슴다. 한때 귀족들이 그걸 써서 대학원생들을 자신의 애첩으로 부렸던 사건을 조사한 적 있던 터라…….”

        “그런 일이 있었어?”

        “본래 대학원생들이 새로운 학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존 학파에 대한 애정을 옮기는 용도로 썼던 물건인데…… 이게 악용의 소지가 좀 있었슴다.”

       

        학파 간의 기호가 아닌 사람이나 물건의 기호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만큼 본인이 크게 애정을 갖는 쪽이어야 하겠지만 클락의 경우에는 그게 너무 뚜렷했다.

       

        “아시다시피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은 그 노트를 보고 계시지 않슴까? 그 애착의 대상을 바꿔 버리면 하루종일 선배만 바라볼지도 모르는 검다.”

        “그, 그렇구나……?”

        “예, 특히 클락님은 아예 손에서 떼어놓질 않았으니…… 어휴, 됐슴다. 제 불손한 상상이었던 걸로 하겠슴다.”

        “…….”

       

        릴리벨이 허겁지겁 떠난 후, 시엔은 한동안 가게를 나서지 않고 있었다.

        까슬까슬한 헝겊 안쪽을 매만지자 그것이 클락에게 채워졌을 때의 미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이걸 쓴다면…….’

       

        이것만 있다면 수 차례 이름을 불러야 잠깐 돌아봐주는 그와 항상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노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자신에게로 돌려놓으면 더한 것도 가능했다.

        그는 노트에서 손을 떼지 않는 것도 모자라 껴안거나 품에 넣고 잘 때도 같이 자곤 했으니까.

       

        ‘아냐, 그래도 이런 방식으론…….’

       

        밥먹는 시간도, 공부하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거기에 씻는 시간마저도…….

       

        ‘누, 눈 딱 감고 써볼까? 일분, 아니 한시간만…….’

       

        무엇보다 저 종이 쪼가리를 보며 웃는 모습은 가끔 보면 노트랑 연애하는건가 싶을 정도였기에 시엔의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과거 클락의 관심을 노트에게서 돌려놓으려다 결투를 신청하고 한 대 얻어맞기까지 했던 그녀였기에.

       

        ‘그냥 쓰자.’

       

        사고의 흐름이 끊어진 순간 목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