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익 –
은밀한 손짓이 오고 갔다.
어둠에 몸을 숨긴 다섯의 인원들.
눈을 빼고는 온통 시커먼 복색의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과연 정보대로군.’
최근 들어 이곳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갑자기 출현한 정체불명의 영웅.
눈으로 영혼을 보며, 대단한 인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사람.
이곳으로 정보원을 파견한 제국의 수도에서 조차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슷 –
길을 따라 이동하던 정보원들의 조장이 몸을 멈춰 세웠다.
‘무언가 이상하다.’
아무런 경비원도, 이곳을 지키기 위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의 인물을 이렇게나 무방비하게 방치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심해 볼 수가 있었다.
‘방비가 필요 없을 만큼의 강자.’
혹은 그의 실력으로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은밀한 방어.
조사해온 정보대로라면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가 이끌고 온 조원들 역시 각각의 장소에서 전진 중이리라.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니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이곳이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스윽 –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던 그의 몸이 일순간에 뻣뻣하게 굳어졌다.
툭 –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허업…!”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단검을 뽑아 들었지만, 그의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강자다! 이렇게 가까이에 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정보원들은 사람의 기척에 특히나 민감하다.
본인들부터가 기척을 숨기는 훈련을 받아왔으니, 전문적인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
어깨를 칠 때까지 눈치를 채지 못한다는 것은 경지의 차이가 아득하다는 것이다.
스윽 –
반대편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툭 –
그의 사각을 뚫고 또 한 번 어깨가 만져졌다.
“….!”
멈춰지는 몸과 호흡.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맞춰 기척을 숨기고 뒤를 차지했다는 뜻.
‘움직이면 죽는다…!’
이 정도의 강자가 자신을 죽이는 것은 눈감기보다 쉬운 일일 것이다.
툭 –
이번엔 반대편 어깨에 느낌이 왔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오싹함.
살기와 마주했을 때보다 더 공포스러운 감각이었다.
“….”
피부를 타고 흐르는 소름 속에서 그의 몸이 굳었다.
‘…이대로 조원들을 모두 잃을 수는 없다.’
떨리는 단검을 바닥을 향해 내리며 그가 입을 열었다.
“황실소속 정보원입니다. 귀하를 해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것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뜻일까.
망설이던 정보원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대로 되돌아 갈 테니, 무의미한 희생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시나 조용한 산속.
굳어 있는 정보원이 눈알만을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그때.
휘익 –
희끄무레한 형체가 바로 옆을 지나갔다.
‘우…움직이고 있는데도 기척이 전혀 없다!’
동시에 반대편에서도 무언가가 지나갔다.
‘하, 한 명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정보원의 목으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꿀꺽 –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만큼의 강자들.
조원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할 차례였다.
“동료들을 모아 떠날 테니, 자비를 부탁드립니다.”
본래, 정체가 발각되는 즉시 자결해야 하는 것이 원칙.
하지만 적진도 아닌 이곳에서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조원들의 목숨이 너무나 아까웠다.
애초에 나쁜 의도로 파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로 정보수집만을 위한 임무.
“지금부터 천천히 뒷걸음질 치겠습니다.”
스윽 –
움직이는 발.
스윽 –
두 걸음째 움직였음에도 위협적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방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는 것.
사실을 확인한 그가 몸을 돌려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휘이익 –
눈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와 땅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곁눈질로 보이는 양쪽에 무언가가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휘익 –
‘이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데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주륵 –
양 볼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기척은커녕 작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
그 형태마저 희미했으니 압박감이 엄청났다.
‘빨리 조원들과 합류해야 한다…!’
속도를 높이려는 찰나.
툭 –
“허업….!”
또다시 누군가가 어깨를 건드렸다.
역시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렸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툭 –
“….!”
툭 –
양쪽 어깨를 건드리는 느낌이 번갈아 가면서 느껴졌다.
달리는 와중에도 완벽한 은신술.
완전히 농락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움찔.
속도를 올리던 그가 몸을 멈춰 세웠다.
“이곳은…!”
분명히 일직선으로 달렸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이 나온다는 말인가?
그가 도착한 곳은 강자를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던 곳이었다.
“이,이게…!”
휘익 –
다시금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하는 정보원.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역시나 똑같은 곳이었다.
“분명히 직선을 달렸거늘…!”
주륵 –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어떻게 이런현상이 가능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마법을 탐지하는 아티팩트에도 반응이 없었으며, 감각 또한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길이 아닌 곳으로 땅을 박찼다.
나무와 풀만이 가득한 오르막길.
하지만 달릴수록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데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이상함에 몸을 멈춰 세운 그는 숨을 들이켰다.
“허업…!”
달리던 길이 정말로 평지였다.
그것도 방금 떠나온 곳이 앞으로 보이는.
자신은 또다시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
오싹 –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아났다.
이제는 공포심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툭 –
툭 –
툭 –
툭 –
온몸에서 느껴지는 감촉.
뻣뻣해진 목이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앞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순간, 무언가가 코 끝을 건드렸다.
“허어억…!”
분명히 앞을 보고 있거늘 어떻게 코를 건드린다는 말인가.
정보원이 몸을 떨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죄,죄송합니다…!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툭 –
“화,황실 소속 정보원입니다! 원하신다면 신분을 증명해 드리겠…!”
정보원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등골이 오싹해져 왔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지만 돋아나는 소름.
수년간 단련된 몸이 경고를 해 왔다.
등 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
뻣뻣한 목이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를 양손으로 들고 있는 희미한 형상이었다.
“허억…! 어, 언데드…!”
휘리릭 –
단검을 고쳐잡은 정보원.
하지만 어느새 그의 앞에 있던 것은 사라진 뒤였다.
그곳에서 그는 놀라운 것을 보고 말았다.
“….이럴 수가!”
한 걸음만 더 뒷걸음질을 쳤어도 낭떠러지였다.
훈련을 받아왔기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더라도, 큰 위험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두근 –
두근 –
심장이 격렬하게 뛰며 위험을 알려왔다.
‘도망가야 한다.’
한번 생겨난 공포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기가 어느길을 달리는지 조차 까먹을 정도로.
“으허억…!”
아무리 달려도 똑같은 곳.
다른 길을 가고 있나 싶다가도 여지없이 출발했던 그곳이 나왔다.
그쯤 되자 정보원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이 혼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도망을 치던 그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대앵 –
딸랑 –
“조,종소리…!”
정보원은 본능적으로 그 소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일어난 다른 현상.
이곳을 탈출할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휘이익 –
점점 멀리서 빛이 보였다.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드디어 그곳을 탈출한 것이다.
하지만.
그곳을 목격한 정보원은 또 다시 돋아나는 소름을 느껴야 했다.
“….!”
작게 지어진 집.
그 앞에 피어진 불.
그곳에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맨발로 검 끝 위에 올라선 채로.
오싹 –
딸랑 –
딸랑 –
– 하하하하, 좋구나! 좋아!
검 끝을 밟고 사뿐히 뛰어오르는 몸.
양발이 수없이 검 끝을 밟았음에도 동작에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립!”
“….!”
“보호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군. 슬립!”
순간, 그의 눈앞이 컴컴해지며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놈이 마지막인가? 음? 아는 얼굴이군.”
“나 또한 본듯하오.”
쓰러진 정보원의 주위로 로브를 걸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세계수의 가지가 있는 곳을 침범하다니, 정령사를 우습게 안 것이야.”
“듀폰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어허, 제압은 우리 마법사들이 하지 않았소?”
웅성거리던 그들이 곧 입을 다물었다.
“쉿! 더 멀리 쫓겨나기전에 조용히 해야 하오.”
“옳소.”
이미 한번 신당에서 쫓겨난 그들.
어떻게 기회라도 만들어 보려면 더 이상의 민폐를 끼쳐서는 곤란했다.
“헌데, 황실에서 파견한듯한데 이리 제압을 해도 되는 것이오?”
“험험…”
“우리는 잠을 재웠을 뿐, 제압은 이미 되어서 오지 않았던가?”
“그것참 맞는 말이오.”
수염을 매만지던 듀폰이 몸을 움찔거리며 손짓했다.
“하이 엘프께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한 듯 하오. 얼른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소.”
“이들을 데리고 가지.”
검은 옷을 입은 다섯 명이 바닥에 질질끌려가며 고요함이 찾아왔다.
딸랑 –
딸랑 –
내일 부터는 00시 근처에 연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