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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모두가 미쳤던 세계 3차 대전.

         

       어찌어찌 국가의 틀은 유지되고 무역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안쪽을 살펴보면 막장이 아닌 곳이 없었다.

       어지간한 악행으로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고, 살인은 일상화되었다. 3차 대전이 터지기 전 막장 치안 소리를 들었던 나라도 세계 3차 대전 이후의 평범한 국가에 비해서는 천국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세계 전체가 광기에 잠식당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인으로.

       단체로.

       국가로.

         

       광기는 제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나 세상을 망가뜨렸다.

         

       그 광기는 러시아와 동유럽에도 공평하게 찾아왔다.

         

       동유럽 국가 연합, ‘붉은 국가 연합’이 러시아를 도발했고, 러시아는 이를 기회로 삼아 동유럽을 먹어치우려 했다. 그리고 그 싸움의 결과는….

         

       ‘악령, 악귀가 가득한 죽음의 공간.’

         

       방사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싸긴 하지만 확실한 효과를 보이는 방사능 제염기술이 개발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량 학살 때문에 대악령 둘, 대악귀 하나가 만들어진 것이 문제였다.

       대악귀는 귀신을 끌고 다니며 군세를 이루는 백귀야행 현상을 일으키며 주변 국가의 골칫거리가 되었고, 대악령들은 유럽을 돌아다니는 재앙이 되었다.

         

       그리고 미래에 그 재앙을 만드는데 일조할 능력자가 저 숲에서 네이팜을 구멍에 쏟아붓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다며 숲을 태우고 있다.

         

       ‘마치 미래에 그러할 것처럼.’

         

       진성은 저 멀리 폭염을 뿜어내는 숲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등을 돌려서 걸어갔다.

       그의 등 뒤에는 시체 가방(body bag) 두 개가 허공에 둥둥 떠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 * *

         

         

         

       진성이 이동한 곳은 엘라가 러시아에 유학을 와서 머물렀던 저택이 아닌, 이아린과 이세린이 있는 호텔이었다.

         

       그는 이아린과 이세린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막아주었던 은색 불꽃을 사그라뜨리곤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

       “오라비!”

         

       진성이 들어오자 힘없이 벽에 기대고 있던 이아린이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달려왔고, 구석에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이세린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와 고양이 같아서 진성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닐 재질의 시체 가방을 침대에 놓았고, 가장 먼저 커다란 시체 가방의 지퍼부터 열었다.

         

       찌이익.

         

       지퍼가 열리면서 평온한 얼굴로 잠든 엘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라는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자 무의식중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토끼야!”

         

       그 모습을 보고 이아린은 울먹이다가 엘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얼굴만 드러내고 있는 엘라를 시체 가방 그대로 껴안고 엉엉 울었고, 엘라가 숨이 막힌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꼭 껴안은 채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말만을 계속 반복했다.

       그러다가 엘라가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 지퍼를 다 열고 알몸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심장이 잘 뛰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보기도 하고, 숨소리가 고른지 확인하기 위해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대는 등의 행동을 반복하고 나서야 안심하였는지 호들갑을 멈췄다.

       하지만 호들갑만 멈췄을 뿐, 껴안은 손은 풀지 않고 있었다.

         

       이세린은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다른 시체 가방을 쳐다보았다.

         

       엘라의 절반 정도 크기가 되어 보이는 시체 가방.

         

       이세린은 이것을 열어봐도 되냐는 듯 진성을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진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찌이이익.

         

       진성의 승낙에 이세린은 시체 가방에 다가가 지퍼를 열었고….

         

       “어? 어? 어?!”

         

       경악했다.

         

       시체 가방에 엘라와 똑같은 얼굴을 한 여자아이가 있었으니까.

         

       심지어 시체도 아니었고, 엘라와 똑같이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잠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세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두 시체 가방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리면 엘라가 있었고.

       고개를 또 돌리면 엘라 닮은꼴이 있다.

         

       ‘엘, 엘라가. 외동이라고 하지 않았나?’

         

       외동이 아닌데 똑 닮은 사람이 있다?

         

       외동이 아닌데 닮은 사람.

       닮았는데 형제도, 자매도 아닌 사람.

         

       그렇다면.

         

       “딸?!”

       

       마침내 이세린은 충격적인 결론을 내렸다.

         

       지금 그녀가 연 시체 가방에 있는 것은 엘라의 딸이고.

       진성이 엘라와 함께 구해온 것이라고!

         

       “응? 딸?”

         

       이세린의 경악 섞인 외침을 들었던 것일까.

       엘라를 껴안고 있던 이아린이 고개를 들고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이아린의 얼굴 역시 경악으로 물들었다.

         

       “딸?!”

         

       쌍둥이 자매 아니랄까 봐 똑같이 외치는 모습에 진성은 피식 웃었다.

         

       “아니다. 자매이니라.”

         

       짧디짧은 설명.

       하지만 이아린은 그 짤막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자매구나.”

       “뭐?!”

         

       이세린은 진성의 짧은 대답을 듣고 그대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청순하기 짝이 없는 이아린의 모습에 다시 한번 경악했다. 이세린은 사기꾼의 말 한마디에 재산을 탕진하는 호구를 보는 눈빛으로 이아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아린은 되려 바보냐며 이렇게 말했다.

         

       “출생의 비밀이 있을 수도 있잖아.”

       “추, 출생의 비밀은. 그, 건! 드라마…!”

         

       이세린은 되려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모습에 발끈하며 소리쳤으나, 그녀의 언니이자 원수 덩어리는 더 그녀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래비! 얘 엘라 동생이야?”

         

       엘라가 무사한 것을 확인해서일까.

       이아린은 담비에게 관심을 보였다.

         

       “엘라가 자기가 외동이라고 했는데, 출생의 비밀이나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거 맞지? 어디서 태어났어? 어디 출신이야? 어디서 자란 거야? 보육원? 입양? 그 점술사가 데리고 있던 거야?”

         

       쉴 새 없이 던져지는 질문.

         

       진성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흑요석 단검을 꺼냈다.

         

       메스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날.

       호텔 전등에 반사되며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검면.

         

       흑요석 단검은 주술에 문외한인 이아린이 보아도 예사로운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단검으로 방에 인테리어로 붙어있던 세계지도를 떼버리고, 그것을 들고 엘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엘라의 검지 끝을 흑요석 단검으로 슬쩍 그어서 피를 내고 그것을 지도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지도에 떨어진 한 방울의 피는 비닐로 코팅된 지도 위에서 슬라임처럼 슬금슬금 움직이며 어느 장소로 이동했다.

         

       이동한 장소는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오래비, 여기 탄…자니아? 탄자니아 맞지?”

       “그러하다.”

         

       진성은 제 고향을 알려주는 핏방울을 보며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 조이사이트.’

         

       엘라의 풀네임은 엘라 B 빈터(Ella B Winter).

       미들네임은 블루 조이사이트(blue zoisite).

         

       블루 조이사이트는 탄자나이트(Tanzanite)라고도 불린다.

         

       아프리카.

       그것도 탄자니아에서만 나오는 보석.

         

       “여기서 데려왔구나. 네 말대로 출생의 비밀이 있었도다.”

         

       진성은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엘라가 대마녀와 스승과 다른 미들네임을 가졌는지.

       회귀 전 담비가 어째서 눈알 하나와 손가락 세 개가 사라졌는지.

       어째서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당했는지.

         

       “쯧.”

         

       진성은 담비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새 생명을 얻었으면 그냥 살면 되지, 굳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냥을 당했구나.’

         

       어찌 보면 안타까운 비극이요.

       어찌 보면 자업자득에 가까운 것이었다.

         

       제 자매의 몸속에 갇혀 살다가 세상을 직접 몸으로 겪으니 모든 게 신기했겠지.

       하지만 그 신기함도 잠시.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며 제 호기심을 다 채우고 난 뒤에는 고향이 궁금했으리라.

       그래서 겁도 없이 고향으로 갔을 테고, 거기서 알비노를 노리는 주술사에 의해서 사냥을 당했으리라.

         

       ‘이번 생에도 분명히 그러하겠지.’

         

       그가 회귀 전 보았던 담비라면 말리든 말든 고향으로 갈 것이다.

       엘라가 그대로 살아있기에 조금 달라질 수는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고향으로 가리라.

         

       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잡혀서 가죽이 벗겨지는 담비처럼, 그녀 역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걸 인간이었으니까.

         

       진성은 옛 동료가 허무하게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직접 나서서 구해줬는데 허무하게 죽는다면….

         

       그의 노력이 허무해지지 않겠는가?

         

       ‘너는 부활을 위해 포기한 대가를 나에게 주어야만 하느니라.’

         

       목숨값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급되어야만 한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담비는 진성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그 빚을 갚아야만 한다.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서는 살아있어야만 하는바.

         

       진성은 담비가 함부로 허튼짓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품속에서 길쭉한 가시 두 개와 기다란 머리카락 몇 가닥을 꺼냈다.

         

       슬라임에서 뽑아온 신력이 담긴 가시와 리세에게 받은 머리카락이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이어서 길쭉한 실을 만들고 양 끝에 가시를 묶었다. 그리곤 가시 하나는 엘라의 콧잔등에, 남은 가시 하나는 담비의 콧잔등에 꽂았다. 그리고 품에서 리세의 꼬리털을 꺼내 태웠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탄 꼬리털은 약간의 재를 남겼다.

       그는 그 재를 손가락으로 찍어 엘라와 담비의 콧구멍 아래에 묻혔다.

         

       “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진성은 품 안에서 다시 꼬리털을 꺼내서 태워 재로 만든 후, 엘라와 담비의 아랫배에 문양을 그렸다. 그리고는 허공을 쥐어 둘을 허공에 띄우곤 둘의 몸을 겹쳤다.

         

       “어? 오, 오빠? 이건…?”

         

       이세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겹쳐진 둘의 모습이 마치 교미를 위해 엉겨 붙은 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래에 깔린 엘라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담비의 모습은 그녀에게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이는 이아린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당황한 듯 진성과 둘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진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방구석에 놓여있던 산양의 뿔을 자신의 앞으로 끌고 왔다. 그러고는 뿔을 흑요석 단검의 손잡이로 내려쳐서 부수곤, 작은 조각 하나를 골라서 담비의 머리카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것으로 준비가 끝났다.

         

       “수쿠부스, 수쿠부스(succubus)! 아래에 깔린 사악한 요정아!”

         

       그는 외쳤다.

         

       “인쿠부스, 인쿠부스(incubus)! 위로 깔린 타락한 요정아!”

         

       주언을 외친 진성은 둘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문양을 그렸고, 그러자 둘의 몸에서 묘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달콤한 과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향기 같기도 했고, 약간은 비릿한 것이 비늘 달린 것의 냄새 같기도 했다.

         

       위에 엎드려 있는 담비의 몸에서는 그 냄새와 함께 노린내가 풍겼고, 그 아래 깔린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엘라에선 피톤치드의 상쾌한 향기가 풍겼다.

         

       진성은 이제 되었다는 듯 둘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는 여동생들에게 물었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있느냐?”

         

         

         

        * * *

         

         

         

       엘라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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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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