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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칠성의 카아락을 연기하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모옥의 적대감을 더 키워주기 위함이다.

         

       이런 부분에서 로아크 남작을 이용하는 게 조금 그렇지만, 그는 그냥 범죄도 아니고 마약 밀수를 진행하고 있다.

         

       ‘벌은 받아야지.’

         

       마약이 어디로 유통되는지는 모른다. 이 거대한 대륙에서 제국이 차지하는 땅 크기가 말도 안 되게 크니까.

         

       다른 범죄 또한 마찬가지지만, 마약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괜히 국가에서 기를 쓰고 마약 단속을 하는 게 아니지.

         

       라데아가 물었다.

         

       “그런데 로아크 남작은 어떻게 데려올 생각이십니까? 경비가 삼엄한데요.”

         

       이 일이 끝나면 프란체를 따르겠다는 계약을 맺고, 라데아는 전부터 저런 딱딱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다. 조금 불편한데.

         

       “혹시 최근 제국에 모옥이라는 길드가 들어와 분위기가 뒤숭숭한 건 알고 있나?”

         

       라데아는 “국가가 뒤집힐 정도의 사건이니 알고 있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이용할 예정이야. 사실 내가 그 자리에 있던 당사자라 습격한 놈들의 이름을 알고 있거든.”

         

       칠성에서 유일하게 살아나간 카아락. 모옥에서 두 번째로 강하고 케일과 셀다스. 그리고 카자르까지 무력화시킨 괴물과도 같은 놈.

         

       녀석의 이름을 빌릴 거다.

         

       “…그러고 보니 데카르트 공녀님의 호위를 맡고 계신다고 하셨죠. 당연히 그 자리에 계셨겠네요.”

         

       나는 “맞아.”하고 대답한 뒤 말을 이었다.

         

       “거기서 유일하게 살아간 놈이 있는데, 그놈은 아직 제국에 남아있을 거야. 따로 나갔다는 정보가 없었으니.”

         

       데카르트 공작가를 건드린 것도 모자라 로아크 남작령까지 가서 사고를 쳤다는 소리가 들려오면 제국은 대외적인 체면을 위해서라도 카아락을 찾을 것이다.

         

       ‘지금도 혈안이 됐지만.’

         

       뭐, 아무튼.

         

       “라데아. 사소한 것도 좋으니 지금부터 로아크 남작에 대해서 아는 걸 빠짐없이 전부 말해라.”

         

       라데아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말해주었다.

         

       로아크 남작은 10년도 전부터 북부와 맞닿은 레야카라는 작은 국가와 거래를 해왔다고 한다.

         

       레야카는 거의 개판과도 같은 나라인지라 무법 지대에 가까운 나라라고.

         

       ‘그쪽에서 마약을 제조 중인 거군.’

         

       현재는 남작령 북쪽 끝자락에 있는 곳에서 밀수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도움이 됐을까요?”

       “남작저의 정보는 알고 있나?”

       “네. 경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어요.”

       “그것보다 거기 사람들이 어떤지나 알려줘라.”

         

       로아크 남작을 잡아 오는 건 확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이 다칠 수도 있잖나.

         

       남작과 똑같은 놈들이라면 그냥 죽이면 되고.

         

       “사용인들이나 경비로 들어간 사람들은 크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어차피 먹고 살려고 들어간 거니까요. 특히 사용인들은… 피해자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피해자? 뭔가 신경 쓰이는데.

         

       “피해자? 자세히 말해 봐.”

       “그, 사용인들이 대부분 여성인데…….”

         

       어우, 도입부부터 기분이 확 나빠진다. 나는 양손을 휘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악질이구나.”

         

       세이렐 백작과 같은 과였군. 어째 여기 귀족들은 레퍼토리가 똑같은 건가.

         

       “경비를 맡은 사람들은?”

         

       라데아는 잠들은 라이아에게 다 뜯어진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갈 곳 잃은 기사분들이 많으세요. 전직 용병이나 모험가셨던 분도 계시고요. 대부분 좋은 분들이세요.”

         

       영지의 주인인 남작과는 달리 제대로 된 사람들이 모여있군. 용케도 이런 땅에서 그런 성정을 가졌다.

         

       “그래, 대강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냥 정면으로 쳐들어가서 남작만 빼 온다.”

         

       라데아의 표정이 종이 구겨지듯이 일그러졌다.

         

       “…제정신이에요?”

       “지극히 제정신이다.”

       “아니, 아무리 공작가의 기사분이셔도…….”

         

       그러고 보니 얘는 내가 누군지 몰랐지? 나는 피식 웃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아나?”

       “…누구신데요?”

       “놀라지 마라.”

       “빨리 말씀이나 하세요.”

         

       거, 반응 차갑네.

         

       “진 바렌베르크다.”

       “…!”

         

       라데아의 눈이 토끼 눈처럼 변했다. 입은 슬쩍 벌려지고 목이 뒤로 빠졌다.

         

       “그, 그 진 바렌베르크요?”

       “그래.”

       “진짜요? 믿기지가 않네…….”

         

       그래, 이 반응이지. 깡촌과도 같은 이 북부 남작령에서도 나는 유명한 듯하다.

         

       “이제 문제없다는 거 알겠지?”

       “그렇네요. 사실이라면 문제없겠죠.”

         

       여전히 딱딱한 말투다. 케일이나 카자르처럼 좀 친근하게 가고 싶은데. 앞으로 같이 일해야 하는 사이니까.

         

       “그래, 그럼 여기서 기다려라.”

       “저는 같이 가지 않는 건가요?”

       “네가 가면 계획이 무너져서 안 돼.”

         

       카아락이 피부가 새하얀 제국민을 데리고 다니는 게 이상하잖나. 나는 바렌베르크 태생인지라 피부가 비슷해서 상관없고.

         

       “아무튼, 모든 일이 끝나면 여기로 알려주러 오지.”

         

       라데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여기로 데려오면 안 되는 건가요?”

       “라이아가 있잖아.”

       “아…….”

         

       언니라는 사람이 이렇게 배려심이 없어서야.

         

       “알겠어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아, 로브 같은 거 있나?”

       “제가 쓰던 로브는 있어요. 크기가 작을 거 같은데…….”

       “상관없으니 그거라도 줘. 제복만 가리면 되니까.”

         

       라데아는 구석에 박혀있던 허름한 갈색 로브를 넘겨줬다. 마수의 피가 묻어서 그런지 쿰쿰한 냄새가 나는데.

         

       “…….”

         

       어쩔 수 없지. 따로 선택지가 없으니까. 나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문밖을 나섰다.

         

       ‘작전 시작이다.’

         

         

       * * *

         

         

       프란체는 카자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흐음…….”

         

       진은 말했다. 좀 더 남들을 믿는 게 어떠냐고. 하지만 프란체는 그걸 완고하게 거부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 못했으니까.

         

       하지만 카자르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프란체를 감싸다가 그 붉은 선풍을 직격으로 맞아버렸다.

         

       뿌득. 프란체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하아…….”

         

       몰려오는 자괴감. 죄책감. 프란체는 카자르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정말 친구, 제자라고 생각해 감싸줬는데 막상 프란체는 신뢰하지 않았고 그냥 고용된 입장이라고만 생각했다.

         

       프란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을 감고 관자를 짓누르고 있던 그때.

         

       덜컥.

         

       문이 열리며 헬레나가 들어왔다.

         

       프란체가 좋아하는 홍차와 다기들. 그리고 여러 서신까지 가지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니?”

       “아, 엘반 자작님께서 서신을 보내셨어요.”

         

       그러고 보니 최근 며칠간 사업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안 그래도 다른 영지에 매장을 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리 주렴.”

         

       프란체는 헬레나에게서 서신을 받아 들었다. 헬레나는 옆에서 홍차를 따라주었다.

         

       “흠…….”

         

       다행히도 엘반 자작이 일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라 마음에 들었는데, 일까지 완벽하게 하니 비서로서 최고다.

         

       마석 채굴과 탑 건설 사업 또한 엘반 자작이 대신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프란체가 칠성에게 암살 시도를 받은 걸 배려해 배정받지 않은 일까지 해준 모양.

         

       ‘이 사람도 웃긴 사람이네.’

         

       최근 들어 이질감이 드는 사람투성이다.

         

       자신을 감싸느라 모든 피해를 받은 카자르. 혼자 도망칠 수 있는 데 피까지 토해가며 구해준 케일. 자신을 배려해 보수도 없이 일하는 엘반 자작. 진짜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찾아온 엑시드의 마스터.

       

       프란체는 서신을 매만지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진이 말하는 건 하나도 틀리지 않는구나.’

         

       다 읽은 서신을 적당히 테이블에 올려두고, 헬레나가 건네준 홍차를 들었다. 심란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향을 음미하고 있자니 침대에서 뒤척임이 느껴졌다.

         

       “카자르?”

       “으음…….”

         

       프란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카자르의 상태를 살폈다.

         

       “카자르!”

       “아…….”

         

       초췌한 얼굴로 살며시 눈을 뜨는 카자르. 궁정 마법사를 불러 치유 마법을 사용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는데 다행이었다.

         

       “어때, 몸은 괜찮니?”

         

       슬쩍 고개를 돌려 프란체를 바라보는 카자르.

         

       “…조금 머리가 아프네요.”

         

       조금씩 허리를 일으키더니 침대에 앉아 이마를 짓눌렀다.

         

       “홍차라도 마실래?”

       “아, 네. 갈증이 좀 심했거든요.”

         

       헬레나는 눈치 빠르게 이미 홍차를 준비한 상태였다. 카자르는 “아, 고마워요.”하고 받아들더니 그대로 쭈욱 들이켰다.

         

       “후우…….”

         

       여전히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프란체는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그녀의 상태를 봤을 때,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여긴 데카르트 공작저인가요?”

       “맞아. 손님방으로 남겨둔 빈방이란다.”

         

       카자르는 찻잔을 헬레나에게 넘기고 무거운 몸을 움직여 침대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신었다.

         

       “일단 괜찮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마차를 준비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헬레나? 마차를 준비해줘. 너랑 나도 같이 갈 거야.”

       “네, 알겠습니다!”

         

       재빠르게 방을 나가는 헬레나. 프란체가 말했다.

         

       “금방 마차가 준비될 거야. 일어날 수 있겠니?”

       “네. 조금 뻐근하지만 괜찮은 거 같아요. 제가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났나요?”

       “일주일. 치유사를 불러서 신성 마법을 사용해보고, 마력 회복도 해봤지만 다 통하지 않았어.”

         

       카자르는 “그런가요…….”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주술은 마력의 흐름을 차단하는 주술이었어요. 제 몸에 돌던 마력이 멈추니 저도 상태가 안 좋았던 거죠.”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카자르. 붉은 선풍의 주술. 나무도 관통한 걸 보면 외부와 내부를 골라서 공격할 수 있는 듯했다.

         

       “사하라에서는 그런 주술들을 허용해준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이는 프란체도 동의했다.

         

       “그러게 말이야. 주술은 다 금지됐다고 배웠는데…….”

         

       주술은 워낙 불길한 힘이라 각 나라에서 자료를 불태우거나 금기시켜 원천 차단해왔다. 그런데 사하라에서는 그걸 대놓고 쓰고 있다니.

         

       “아무튼, 이제 집으로 가야겠어요. 마음이 편한 곳에 눕고 싶네요.”

         

       프란체는 “그래, 그러자.”하고 카자르를 부축해 이동했다. 그렇게 헬레나가 준비한 마차에 탑승하고, 카자르의 집으로 이동했다.

         

       거동이 불편한 카자르를 대신해 흑마법을 사용하여 문을 열고, 2층에 있는 침대까지 옮겨주었다.

         

       “헬레나, 방 청소를 부탁해.”

       “네.”

         

       헬레나에게 세세한 청소를 맡기고, 프란체는 어질러진 짐들을 처리했다. 카자르를 위한 조금의 반성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돼지우리 같던 카자르의 집 청소가 끝나고, 프란체는 잠시 테이블에 앉아 숨을 돌렸다.

         

       “오늘은 여기에 있는 게 좋겠네. 카자르를 혼자 내버려둘 순 없으니.”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정면을 응시하는 프란체. 그러던 도중 유독 혼자 톡 튀어나와 있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

         

       겉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마법서. 프란체는 자신도 모르게 그림자를 이용해 책을 뽑아 들었다.

         

       ‘룬어로 된 마법서잖아?’

         

       프란체는 최근에 룬어를 배웠다. 어차피 카자르를 돌볼 겸 시간도 남은 상황이었는데 잘 됐다.

         

       “헬레나. 차를 준비해주렴.”

       “네. 홍차가 없는데 벌꿀차로 준비할까요?”

       “그래.”

         

       헬레나가 다기를 준비하러 가고, 프란체는 마법서를 펼쳤다.

         

       마법서에 적힌 룬어들은 프란체가 배웠던 룬어와는 차원이 달랐다. 글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럼증이 느껴졌고, 마력이 휘몰아쳐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이건 함부로 못 읽겠네.’

         

       고개를 휘저으며 마법서를 다시 넣으려던 순간. 바로 옆에서 특이한 안경을 발견했다.

         

       “…음?”

         

       마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안경이다. 마법이 걸려있는 듯했다.

         

       ‘마법이 걸린 안경?’

         

       혹시 몰라 안경을 가져와 쓰고, 다시 마법서를 바라봤다.

         

       아까와는 달리 글자에서 어지럼증이 느껴지지 않았고, 룬어에서 마구잡이로 휘몰아치던 마력도 안정됐다.

         

       ‘이거라면 해독할 수 있겠네.’

         

       프란체는 마법서의 첫 페이지 해독에 들어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헉!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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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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