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90

       오늘의 알람은, 귀를 찌르는 듯한 매미소리.

        

       포근한 잠결에서 현실로 끄집어내지는 감각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볼륨의 우렁찬 매미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우며 나를 맞이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이 정도 크기면……창문에 붙었나 본데.

        

       대자연의 알람은 종료버튼도, 종료시간도 없다. 직접 꺼야겠지. 잘 움직이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매미소리를 처음으로 ‘맴맴’이라고 표기한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몰라도……그런 약해 보이는 의성어로 묘사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닌데.

        

       비척거리며 창문으로 다가가 암막 커튼을 열어 젖히자, 체감상 30% 정도 큰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커튼에 차음효과까지 있다고 홍보하더니……진짜 도움은 됐었나 보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그 힘을 잃었을 뿐인 모양이다.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손으로 두들겼다. 그 정도로 포기할 성 싶느냐고 외치기라도 하는 듯이 더욱 목청을 높이던 세 마리의 매미는, 다섯 번째로 방충망을 가격하였을 때야 비로소 떠나갔다.

        

       잘 가. 내일 또 오지 말고.

        

       억지로 일어난 탓일까. 몸에 쌓인 피로가 두터웠다. 다시 침대까지 가기에도 무거운 몸을 애써 움직여,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온 몸을 파묻듯 기댔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열기가 퍽 뜨겁게 느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는 이제 들을 만하지만.

        

       그러고 보면 저거, 번역하면 섹스하고 싶다 아닌가. 남의 방 창문에 붙어서 섹스하고 싶다고 소리치며 잠을 깨우는 생물이라니.

        

       ……재밌긴 하겠네. 매미들이 하는 이유가 있긴 있겠어.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어서 참아야 하는 일이지만, 매미로 태어난다면 해도 되는 것 아닐까.

        

       다음 생……있을 지도 모르잖아.

        

       꺼진 모니터에 비치는 내 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다 일어나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감싼, 피로한 표정에서조차 묘한 퇴폐미가 느껴지는 얼굴.

        

       다음 생…….

        

       손으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자.

        

       차가운- 아주 차가운 물로 샤워하고 싶어졌다.

        

       .

       .

       .

        

       열기와 매미가 점령한 도시는 이방인이 살아가기엔 아주 가혹한 환경이다.

        

       3평짜리 요새의 안온한 보호에서 벗어난지 약 30초. 불과 세 발자국 만에 땀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직 그늘에서조차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이 강렬했지만, 오늘만큼은 안 된다. 쌀 한 톨 안 남았어. 칼로리가 있는 거라곤 알코올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장을 봐야 한다. 하다못해 밥과 계란, 간장과 케첩 정도는 사야 해. 겸사겸사, 알코올도 조금 추가해야 하고.

        

       그래도 조금은 미룰까. 오후 1시는 너무……너무 더운데. 정신 나갈 것 같아 진짜로. 나 죽어…….

        

       열기로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듯한 아스팔트를 잠시 바라보다가, 마음을 다잡고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옮겨 나갔다.

        

       방 안에 틀어박혀 만사를 다 배달로 해결하는 생활의 여파는 몇 달 전에 이미 뼈저리게 느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을 그렇게 많이 확보해선 안 된다.

        

       차라리……움직여야지.

        

       ……죽겠네, 진짜.

        

        

       .

       .

       .

        

       “57,000원이요. 카드 거기 앞쪽에 꽂아요.”

        

       “네.”

        

       “계산됐어요.”

        

       “네, 감사합니다.”

        

       이 주만의 첫 대면 대화를 ‘네’와 ‘감사합니다’만으로 마무리한 후, 나는 일용할 양식과 행복의 물약을 손에 얻을 수 있었다.

        

       계산대 뒤에 서있던 아저씨에게 허리를 꾸벅 숙여보이고, 다른 말이 이어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계산을 하는 내내 얼굴과 가슴께를 핥듯이 살피던 아저씨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던 탓이다.

        

       핑계려나. 어쩌면, 모두 내 오해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냥……그냥, 가벼운 스몰토크가 하고 싶었던 착한 아저씨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바로 그 스몰토크가 가장 무섭다.

        

       ‘처자가 인사성이 참 좋네!’로 시작되는 대화를 하기엔……너무 더웠고, 너무 시끄러웠으니까.

        

       돌이켜보면, 내가 이예나로서 감당할 수 있던 인간관계는 언제나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서로에 대해서 무엇도 묻지 않고, 사회인으로서 재화와 금전을 교환할 뿐인 관계.

        

       편해서……기도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21살 여자인 내가 하는 언행이 어떻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너무나 알기 어려워서.

        

       엉덩이를 대고 쪼그려 앉은 조그마한 동그라미 밖은 모두 지뢰밭으로 가득한 느낌에, 이리 웅크리게 되는 것이다.

        

       알고는 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순 없겠지.

        

       그래도-

        

       -우우웅

        

       상념을 깨는 진동소리.

        

       아크다.

        

       [예나님!]

       [우리 오늘 합방 6시 30분부터 괜찮으실까요?]

       [7시에 바로 팀 정한다고 하니까, 조금 일찍 시작해서 가볍게 토크하며 예열하다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김진희’라고 적힌 대화방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실명을 그대로 톡 대화명으로 해둔 것이 어쩐지 아크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어색했다. 슬슬 아크라고 저장해둘까.

        

       이렇게 개인톡을 꾸준히 주고받는 사이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이예나로서 처음으로 만든 인간관계다. 친구, 라고 하기엔 멀고. 지인, 이라고 하기에도……먼가?

        

       동종업계 종사자나 직장 동료는, 너무 차가운 느낌이고.

        

       팬……이라고 하기엔, 조금 가까운 듯도 싶은데.

        

       그래도, 팬 정도가 좋겠다. 내 팬을 자청하는 이들을 보면, 팬이란 제법 광범위한 욕망을 던지는 무리를 포괄하는 단어인 듯하니까.

        

       팬이에요.

        

       소통해요.

        

       * * * *  

        

       《안녕하세요 아크님.》

        

       “네, 안녕하세요 예나님! 무슨 일이세요?”

        

       《오늘 합방이요…….》

        

       “네!”

        

       아크가 활기차게 대답한 배경에는, 이제 이예나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만의 자신감이 있었다.

        

       ‘큐 돌리면서 방송을 보자거나, 도적 해달라거나, 레반님도 초대하자거나…….’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적절히 거절하며 설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행동패턴을 충분히 학습한 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급작스럽게 걸려온 전화를 확인한 직후,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도 없이 받았던 이유가 있다.

        

       어느덧, 아크는 이예나 전문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기사 자격증은 무리더라도, 기능사 자격증은 충분히 발급받을 수 있는 경험과 경력이 쌓였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온라인인가요, 오프라인인가요?》

        

       “네……?”

        

       그럼에도, 상상도 못한 질문이었다.

        

       《지난 번엔 디스코스로 진행하자고 말씀 주셨는데……이번엔 말씀 없으셔서요.》

        

       은은한 매미 소리를 배경으로, 이예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말인 즉슨 맞는 말이었다. 급하게 던진 합방 제의에는 디테일이 모조리 생략되어 있었으니.

        

       하지만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스트리머가, 오프라인 합방도 선택지에 포함시키고 있을 거라고 어떻게 예상한단 말인가. 

        

       “아……온, 온라인이죠! 예나님 얼공도 안 하셨는데.”

        

       《음……. 네. 그러면 6시 30분 좋아요.》

        

       묘하게 실망한 듯한 목소리.

        

       “그, 혹시요.”

        

       《네.》

        

       “오프라인 합방도 생각 있으셨어요?”

        

       조금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공개하는 순간은 스트리머에게 치트키와도 같다. 얼굴을 숨긴 채 대형 스트리머가 되었다면, 소위 ‘얼공’ 방송에 수 만명이 몰리는 일도 드물지 않으니.

        

       그걸 합방에서 – 그것도, 본인 방송도 아니고 아크의 방송에서 – 할 생각이었단 걸까.

       

       ‘……설마,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건……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닐 거고.’

        

       《네. 아크님 보고 싶기도 했고요. 서울 사시지 않나요?》

        

       “네? 아, 서울, 사는 건 맞긴 한데…….”

        

       《서울 내에선 이동할 수 있어요. 아크님 생방을 모두 챙겨보던 트수라면 당연히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히키코모리일 거라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실망이에요.》

        

       여전히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문답이었다.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흐흫.

        

       《농담이에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농담이었다는 걸까. 오프라인 합방? 보고 싶다는 이야기? 실망이라는 말?

        

       고민을 길게 할 필요는 없었다.

        

       《아. 보고 싶다는 건 농담 아니에요. 팬……부터 시작하기로 했거든요. 일단은.》

        

       “……원래는 아니었다는 뜻이죠, 이거?”

        

       《그러면 6시 반에 뵐게요.》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인사를 남긴 이예나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떠나갔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난 행동패턴 그대로인 행태였으나-

        

       ‘보고 싶었다고? 진짜로 팬……아니, 악성 팬……아니……그런데 오프라인 합방하면, 대박 아니야?’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아크는 어째서인지 대회가 조금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잠시 후.

        

       《별포크님?》

        

       《녷? 네, 아따먹님!》

        

       《잠깐 정지해주세요. 혹시 방금 좌회전하신 이유가 뭔가요?》

        

       《아……해골 팩……사냥하려고…….》

        

       《아. 헷갈리셨구나. 디스코스 채팅창을 잠시 보시겠어요?》

        

       6명의 팀원이 모두 모인 채팅창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나오나의 중립 몹 중 하나, 스켈레톤 워리어가 확대된 그림이었다.

        

       《이게 해골이에요. 이 친구들이 5마리 있는 걸 해골팩이라고 부른답니다.》

        

       『마구마구 돌려버리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포크 불쌍해…….』

       『얜 좀 맞긴 해야됨』

       『팬이라고 난리친지 10분 만에 개같이 경멸당하는 중ㅋㅋㅋㅋㅋㅋ』

       『해골팩 그쪽 아니야 포크야……』

        

       《자, 그러면 이 친구들과 만나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어, 어, 그……2번 맵이니까, 뒤로 가서 좌회전일까요?》

        

       『브론즈의 매운 맛을 봐라』

       『포크야 나오나 시작한게 언젠데 아직도 맵 구분을 못하냐ㅠㅠㅠㅠ』

       『정보) 2번 맵도 아니고, 2번 맵이어도 그 쪽 아니다』

        『팬이라고 하지나 말지 그랬니 포크야ㅠㅠ』

        

       《음……. 2번……이요.》

        

       -치익.

        

       《우리, 우선 술이나 한 잔 하고 생각할까요?》

        

       《네? 술, 술이요?》

        

       《네. 약간의 알코올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상비하고 계신 술 없으신가요? 비상용 술 같은 거.》

       

       《이, 있어야 하나요?》

       

       《음……. 안전불감증이시네요.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건데.》

        

       팀이 결성된 후, 멘토-멘티를 짝지어 각자 기본기를 점검하기로 하고, 약 10분.

        

       “아, 아따먹님! 잠깐 멘토 회의 소집할게요! 레반님이랑 저랑 있는 디스코스 방으로 와주시겠어요?”

        

       아크가 다급하게 비상 소집을 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따뜻한 말씀을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식당 다시 정상 영업합니다!

    휴재는 모두 일주일 내로 만회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으나, 이번 휴재 분을 메울 때까진 시간이 제법 걸릴 예정입니다. 왜냐면…..지엄한 유교의 법도상, 이번엔 그래도 욕을 못하실 것 같으니까…..

    농담입니다. 최대한 빨리 벌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