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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언제를 말씀하시는 거죠?”

       “아라 씨가 냥냥님을 울렸을 때요.”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기에 잊었으리라 생각했거늘. 기억에서 지운 게 아니라 단순히 기회를 엿보고 있던 것 뿐이었나.

       

       “설마 잊어버렸다고 하시는 거 아니죠?”

       

       엔리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눈은 조금도 웃지 않은 채였다.

       

       여기서 내가 고개를 젓는다면 좋지 않은 말이 나오겠구나.

       

       애초에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약속은 약속이었으니 말이다.

       

       옷 갈아입히기 인형이 된다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 정도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언제로 할 건가요?”

       “이번 주 목요일이 제 휴방날인데 그 때 괜찮으세요?”

       “그럼 그 때로 하죠.”

       

       허어. 이번에는 또 몇 시간이나 옷을 바꿔입어가며 서 있어야 할는지.

       

       “그럼 약속은 잡은 걸로 하고. 하나 더.”

       “또 뭔가요.”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아라 씨. 저 도와주셨을 때 제 긴장 풀어주시려고 개싸움을 만드신 거였나요?”

       

       눈치가 빠르구나.

       

       내 일부러 눈치를 못 채게 만들려고 꽤 열을 받게 만들었다마는.

       

       그 때 엔리는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만나 진데다 자신의 실수로 한 번의 패배를 더하는 바람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지.

       

       그대로 갔다면 자신을 믿지 못하고 무력하게 버티다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다소 과격한 수단을 썼지. 이전의 실수를 완벽히 잊을 수 있도록.

       

       내가 웃어 보이자 엔리가 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내 의도를 파악했으니 한 번쯤 나를 봐주면 안 되느냐?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줄 수 있지 않으냐.

       

       안타깝게도 엔리는 말을 바꿀 생각이 없어보였다.

       

       *

       

       엔리는 최근 아라가 걱정스러웠다.

       

       아라가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엔리도 알았다.

       

       별 다른 표정변화 없이 항상 무덤덤한 그녀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어떤 비난을 들어도 꿈쩍 않던 아라가 약할 리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날.

       

       신앙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을 던지던 아라는 분명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었다. 힘듬을 숨기고 있었다.

       

       만일 아라가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엔리는 아라의 질문이 방황의 도중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라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신앙에 자그마한 관심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신앙을 없앨 방법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는 건 타인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엔리의 추측은 이러했다.

       

       가족이나 친지가 사이비에 연류 되었고 그 사람을 구할 방법을 고민하다 엔리에게 그런 말을 꺼냈다는 것.

       

       처음엔 단순한 추측이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럴 듯 했다.

       

       고민이 시작되고 하루가 지났을 무렵 엔리의 머릿속에서 아라는 사이비 종교에 고통 받는 소녀가 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떤 식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던 엔리지만 아라가 직접 말을 꺼내지 않았기에 사안에 대해 파고들진 않았다.

       

       대신 아라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바로 달려가 그녀를 도왔다.

       

       아라의 근심을 하나라도 덜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했다.

       

       이번에 아라에게 놀러가자 이야기를 한 것도 근심을 덜어주기 위한 일이었다.

       

       자신이 받은 굴욕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화가 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그 짜증은 다이아를 승급하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까.

       

       아라 씨는 분명 자기가 인형 취급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실은 자기가 좋아하는 곳만 골라놨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의 계단을 오른 엔리는 저 멀리에 아라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여느 때처럼 후줄근한 차림을 한 그녀의 모습에 엔리는 작게 투덜거렸다.

       

       학교 다닐 때에 추리닝에 후드를 입고 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놀러갈 때도 저런 옷을 입고 나올 줄이야.

       

       지난번에 사 줬던 옷은 대체 어디에 모셔두신 거지? 그러고 보면 그 날 이후로 그 옷을 입은 걸 한 번도 못 봤던 거 같은데.

       

       따지기 위해 아라에게 다가가던 엔리는 이윽고 그녀의 앞에 남성 하나가 서 있단 걸 깨달았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둘의 표정만 보아도 대략적인 내용을 추측할 수 있었다.

       

       남자는 어떻게든 아라에게 호감을 얻으려 애를 쓰는 중이었고, 아라는 자기를 귀찮게 하는 남자의 모습에 슬슬 짜증이 나려 하고 있었다.

       

       엔리는 다급히 달려가서는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엔리의 모습에도 남자의 미소는 흐려지지 않았다.

       

       “Who are you?”

       

       하지만 엔리가 영국 원어민 발음으로 영어를 사용하자 그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진 한국인아. 어디 한 번 영국 본토의 발음을 느껴 보거라!

       

       “어. 그러니까.”

       “If I have nothing to say to my friend, would you please disappear?”

       

       조금의 배려도 없는 언어의 폭격에 점차 남자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캔유 스핔 코리안?”

       “what?”

       “저기 이 분 말 해석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라에게 도움을 청한 그였지만 아라가 입을 다물자 결국에 포기를 한 듯 뒤로 물러서 버렸다.

       

       남자가 저만치 떨어진 후에 엔리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저 사람이 영어를 못해서.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았는데요.”

       “아라 씨. 저 사람 때릴 생각이었잖아요.”

       “때리다뇨. 제가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으로 보이세요? 잠만 재워줄 생각이었어요.”

       “그거나 그거나!”

       

       엔리가 이토록 필사적이었던 이유는 아라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피스에서건 현실에서건 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

       

       저런 남자 몇 명이 덤벼든다 한들 별 어려움 없이 제압을 하리라.

       

       엔리가 걱정을 한 쪽은 오히려 반대, 아라에게 말을 걸었다는 죄로 이 사람 많은 번화가의 길바닥을 굴러다니게 될 남자 쪽이었다.

       

       상대가 싫어하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어떻게든 헌팅을 하려 드는 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생에 남을 굴욕을 안을 일도 아니었다.

       

       아라 씨가 예쁜 게 사실이기도 하고.

       

       펑퍼짐한 후드 티에 살과 옷 사이에 다리 하나가 더 들어갈 듯 통이 큰 트레이닝 복을 입었음에도 아라는 아름다웠다.

       

       얼굴이 깡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예전에 괴짜같은 머리를 했을 때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사던 그녀인데 최근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다니면서 더 아름다워졌다.

       

       한 남자를 쫓아낸 지금도 이 곳을 힐끗힐끗 보는 시선이 느껴질 지경이었으니.

       

       어쩌면 이런 옷차림으로 오셔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네. 한껏 차려입은 아라씨는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니까.

       

       엔리는 최근 방송에서 보이는 아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돈된 무복에 기다란 머리를 비녀로 정돈한 그녀는 옛날 홍콩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순간 아라가 하늘에서 비단 옷을 입고 내려와도 한치 의심을 하지 않을 정도로.

       

       “엔리? 왜 가만 보고만 있어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

       

       헛기침을 함으로써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날려버린 엔리는 커다란 목소리로 화제를 바꿨다.

       

       “그보다 아라 씨! 제가 사 준 옷은 어디에 놔두고 또 후드에요?!”

       “그건… 너무 귀한 물건이라 집에 놔뒀습니다.”

       

       입기가 아까워 집에 놔두었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실상을 모를 엔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입기 싫어요?”

       “좀. 너무 달라붙잖아요. 옷이 그게 뭡니까.”

       “지금이 19세기도 아니고 그 정도 가지고 그러시면 곤란해요.”

       

       평소에는 한없이 대범한 아라지만 가끔 이런 옛날 사고방식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이런 때의 아라는 고집도 강해서, 엔리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 아라를 설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호의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아라의 습성을 이용해 밀어붙인 적은 있어도.

       

       “그래도 불편한 걸요.”

       “알겠어요. 그럼 이번에 입을 옷은 그런 것도 신경을 써 볼게요.”

       “네? 정말 옷 가게에 갈 거에요?”

       

       엔리의 말에 아라가 질색을 했다. 몸이 슬쩍 뒤로 물러난 것이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돌아가고 싶은 것 같았다.

       

       “흐핳하. 농담이에요. 이렇게 좋아하시니 옷가게는 다음에 가는 걸로 하죠.”

       “…다음은 없을 거에요.”

       “있을 걸요?”

       

       아라가 엔리가 가까워 진 지 어언 한 달이 지나가는 중이다.

       

       아직 서로의 세밀한 부분까지 아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의 성향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엔리가 보기에 아라는 기브 앤 테이크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마음에 부채를 느끼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후일 엔리가 방송을 관련해서 여러 도움을 준 점을 들어 옷가게에 가자 그러면 아라는 결코 거절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라는 차마 엔리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녀 본인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는 걸 테지.

       

       “어쨌든 오늘은 옷가게 말고 다른 데에 갈 거에요. 기뻐하셔도 좋아요.”

       “어디인지 말씀해 주실 순 있나요?”

       “비밀이에요! 그치만 아라 씨가 좋아할 거라고 확신해요!”

       

       확신에 찬 엔리의 미소에도 아라는 떨떠름함을 지우지 못했다. 평소 장난기가 넘치는 그녀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엔리는 아라의 손목을 붙잡고 어디론가 척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몇 번 지나오기라도 한 듯 그녀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도착한 가게의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루시 애견 카페’

       

       “아라 씨. 동물 엄청 좋아하시잖아요! 그래서 카페에 있는 개들을 만지고, 먹이도 먹이고, 같이 놀기도 할 수 있는 곳으로 골랐어요!”

       

       엔리는 아라가 평소에 마이튜브로 동물 영상을 지겹도록 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꺼내들 때는 동물 영상을 볼 때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엔리는 아라를 이 곳으로 데려왔다.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라에게 직접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분명 기뻐할 것이라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린 엔리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곤란해 하고 있는 아라를 보고 당황했다.

       

       이상하다? 아라 씨가 웃음에 인색한 사람이 아닌데? 기쁜 일이 있으면 멋진 웃음을 짓는 사람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동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거나? 영상으로 보는 건 괜찮은데 동물을 직접 보면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는 건가?

       

       아니면 알레르기? 그럴 수도 있겠다. 저렇게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애완동물 하나를 기르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멍청이. 한 번은 슬쩍 물어 봤어야지. 왜 생각을 안 했어.

       

       생각을 하다 못해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한 엔리의 표정이 찡그려지자 아라가 다급히 말을 꺼냈다.

       

       “엔리 씨가 절 생각해 준 건 정말 기뻐요. 제가 동물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기도 하고요. 저도 마음 같아선 이 안에 들어가서 즐기고 싶어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저. 동물한테 미움을 사거든요.”

       “미움이요? 그건 걱정 할 필요 없을 걸요.”

       

       가끔 동물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카페에 있는 애견은 모두 다 일정한 훈련을 받은 아이들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을 해줄 텐데.

       

       “그런 가벼운 게 아니어서… 음. 보면 아실 거에요.”

       

       아라는 그리 말을 하고서 애견 카페의 문을 열었다.

       

       애견 카페 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누군가는 개 한 마리를 무릎에 앉혀 놓고 쓰다듬고 있었고, 어딘가에선 개와 개가 서로 장난감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또 어느 개는 사람 앞에 앉아서 눈으로 간식을 내놓으라 협박을 하는 중이었다.

       

       따뜻하고도 포근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그 때 아라가 애견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개들이 얼어붙었다.

       

       모든 개들의 시선이 입구로, 아라에게로 향했다.

       

       흔들리던 개들의 꼬리가 치켜 세워 지고 어느 한 마리가 짖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개들이 경계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얘들아! 왜 그래!”

       

       미친 듯이 짖어대는 개들의 모습에 아라가 다급히 문을 닫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물들은 본능이 날카로우니까요. 위험한 사람을 바로 알아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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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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