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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 이 여캐 말예요, 너무 안쓰럽지 않아요?

         

       기획팀과 회의를 하던 중 어느 여성 기획자가 한 발언.

       허나 재미와 상업상만 있으면 그만인 그들에겐 공감능력이랄 게 그다지 없었고, 도리어 되묻는 이들이 많았다.

         

       – 뭐가 안쓰러운데?

       – 독보적으로 불쌍해서 오히려 잘 먹힐 것 같은데? 이런 게 유저들한테 먹히거든.

       – 인정, 요즘은 캐릭터에도 서사가 중요하지.

       – [원작자]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하여튼 잘 썼어.

         

       도리어 캐릭터의 서사가 있어 만족할 뿐인 개발자들이었고, 여성 기획자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공감을 원해서 되물었는데, 저런 대답이라니….

       ‘저러니 결혼을 못 하지’ 중얼거리며 남성 기획자들에게 원성을 산 것은 소소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여성 기획자의 의견에 동의한 것이 ‘그’였다.

         

       물론 그걸 겉으로 티를 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소극적이었고. 남들과 소통하는 게 어려웠으니까.

       대신 캐릭터 설정에 간결하게 적힌 어느 여성 캐릭터의 설정을 훑어볼 뿐이었다.

         

       ——–

       -레비 폴트.Part1-[절망의 시작]

         

       [19세 나이에 결혼. 팔려오다시피 한 상황이기에 후작가 시종들에게 무시와 경멸을 사고, 괴롭힘을 당한다.]

         

       [전속 시녀를 중심으로 괴롭힘을 시작. 추신으로 전속 시녀는 후작의 숨겨진 애인 중 한 명이다.]

         

       [괴롭고도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당장 이혼하고 싶었으나, 부친 레이놀 폴트가 연달아 사업 실패를 하며 후작가에 계속 돈을 빌리러 온다. #이로 인해 취급이 더 안 좋아지며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진다.]

         

       [후작은 결혼하고도 여성 편력을 고치지 않음. 후작가의 가신들 입장에선 돈만 날렸다고 생각 중이며, 괴롭힘을 묵인한다.]

         

       [결혼 2년 차. 후작의 가신들이 아이를 얼른 낳으라 간언하는 것으로 2년 만에 첫날밤을 보낼 예정이었음. 허나 후작의 애인이었던 시녀가 질투에 눈이 멀어 독이 든 차를 후작에게 건넨다. #아마 자기가 갖지 못할 거면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음. 허나 후작은 죽지 않고 사경만 헤매게 된다.]

         

       [같은 방에 있던 레비 폴트가 범인으로 지목.]

         

       [감옥으로 끌려가 심신 모두 상하는 고문을 받게 된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후작이 깨어나고 범인이 밝혀짐.#추정하길 투기법을 익혔기 때문에 죽지 않은 것으로 판단.]

         

       [시녀는 사형, 가담 의혹이 있는 이들도 모두 사형된다.]

         

       [다만 이미 레비 폴트는 이미 심신 모두 쇠약해졌으며, 후작가의 가신들은 생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그녀를 수도원으로 보내길 건의. 별다른 피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수도원으로 이송된다].

         

       [수도원에 도착하여 치료를 받길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가족들이 모두 사망. #레이놀 폴트가 주변에 원한을 너무 많이 산 나머지 불한당에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이다.]

       ·

       ·

       ·

       [천애고아가 된다.]

       ——–

         

       …파트1은 절망과 시련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영웅 캐릭터]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강렬한 ‘서사’가 아닐까 싶었다.

         

       ——–

       -레비.Part2-[영웅의 성장].

         

       [8년 후, 혁명전쟁 반발.]

         

       [병사들이 수도원에 불을 지름, 레비 폴트는 수녀들을 구하던 중 불길에 휩싸이며 혼수상태에 빠진다.]

         

       [온몸이 화상이 가득한 상태로 한 달을 버팀. 심장이 멈추며 사망 판정을 받는다.]

         

       [‘신성력을 각성’하며 ‘부활.’ 신의 선택을 받았음을 증명하며 수도원 사제들의 희망이 된다.#화상은 치유되지 않았으며, 성대는 반쯤 녹고, 머리칼은 백발이 된 상태.]

         

       [늙은 몽크를 스승으로 삼아 훈련을 받음.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단심문관들이 습격. 새로운 성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스승과 수녀들의 희생으로 기적적인 탈주.]

         

       [복수를 결심하며, 용병대로 들어가 두각을 드러낸다.]

         

       [5년 후, 용병 총합의 총수가 된다.]

       ——–

         

       파트2는 시련을 이겨낸 영웅에게 더욱 큰 고난과 시련을 보내며, 영웅으로 완성시킬 마스터 피스를 채우는 것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유저들이 몰입하며,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질 테니까.

         

       ——–

       -레비 잔 다르크.Part3-[성녀의 탄생].

         

       [귀족들을 비롯한 부패한 신전을 처단.]

         

       [가장 큰 혁명 세력인 북부군과 합류. 북부대공과 연합.]

         

       [7년 동안 이어진 전투로 어느 정도 승기를 잡기 시작한다.]

       ·

       ·

       ·

       ·

       [백성들이 레비 폴트를 배신. 신전의 선동에 넘어감. 그 과정 중 가장 믿고 있던 동료들과 친구들을 잃는다.]

         

       [슬픔에 의한 신성력 발현. 그녀가 성녀의 재목이었음이 밝혀진다.]

       ·

       ·

       ·

       [마녀 재판 시작.]

       ·

       ·

       ·

       [마지막까지 어린 아이를 구하고 사망. 이후 ‘위인’으로 추대된다.]

       ——–

         

       ……파트3는 영웅보단, 위인의 탄생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영웅 캐릭터의 완성이었고, 또한 이러한 캐릭터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한 유저들의 눈물 겨운 노력이 필요할 터이고, 이스터 에그를 찾기 위해 아마 수십 시간은 투자해야 하리라.

         

       아마 ‘레비 잔 다르크’란 캐릭터는 많은 유저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을 것이다.

         

       개복치 같은 캐릭터이며, 답답하지만 그야말로 살릴 수만 있다면 유저들 입장에선 ‘업적’일 테니 말이다.

       하여 이 영웅 캐릭터는 정말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맞았다.

       어느 게임 방송인이 맛깔나게 게임을 플레이(광고)하여, 알고리즘만 잘 타면 그야말로 초대박이 날 캐릭터.

       회사 입장에선 이토록 좋은 캐릭터가 없다.

         

       ……분명 그랬으나.

         

       – …안쓰럽고, 불쌍하네.

         

       살아선 박복하고도 시련 가득한 삶만 살며, 죽은 이후에야 인정 받는다.

       이것이 무어랄까, 현대 역사를 뒤져봐도 비슷한 경우가 많으니 공감이 가고, 마음이 쓰인다.

       하여 그는 한숨을 내쉬었고,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튼 게임 회사란 건.

         

       – 돈 벌 방법은 기막히게 찾아요.

         

       그러니 자기도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거겠지.

         

       혼잣말과 함께 쓴웃음을 짓는 그였다.

         

         

         

         

       “-제,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집니다. 뭔가, 세부적인 내용이 더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전 그렇게까지 깊게 파고들지 않아서….”

       “…….”

       “후우, 죄송해요. 정작 해결법은 아무것도 모르네요.”

         

       데릭은 많은 걸 얘기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결방안을 제시할 만한 아이디어는 없었다.

       도리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과 한숨이 나올 만한 것들만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 더 자세히 알아둘걸.’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후회막심하다.

       기획 단계에만 참여하고, 나머지 설정이나 이스터 에그는 그가 관여하지 않아 소녀를 구원할 힌트나 더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니 말이다.

       데릭으로선 이런 자신이 답답했다.

         

       중요한 상황마다 정작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말이다.

         

       그렇게 사과를 건네고 있으려니.

         

       “아니, 그거면 충분하다.”

         

       돌연 그가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네에…?”

       “고맙다. 덕분에 한결 결정하기 편해진 것 같다.”

       “……?”

         

       어딘지 후련한 표정을 짓는 그였고, 웃기까지 하였다.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이 말이다.

         

       ……대체 어디에서?

         

       데릭은 눈을 끔뻑거리며 그를 보았으나, 그는 데릭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대신.

         

       “슬슬 가볼까.”

       “…어디 가세요?”

       “응?”

         

       데릭은 상쾌한 얼굴로 몸을 푸는 그를 보며 묻고 말았다.

       왠지 지금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그는….

         

       “별건 아니고. ‘시비’ 좀 걸려고.”

       “예에?”

       “그렇게만 알아둬라. 그리고 미안한데, 나 대신 학장한테 사직서 좀 전해줘라. 아무래도 시비 걸 상대가 사직서로 안 끝나겠다.”

       “…아.”

         

       뒤늦게 그의 말이 뭘 뜻하는지 눈치챈 데릭은 눈인 휘둥그렇게 뜨였다.

         

       설마-.

         

       “교, 교관-, …님?”

         

       그렇게 데릭이 그를 불렀을 때.

         

       휘이잉.

         

       그는 이미 저 멀리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주저함이란 단어가 그의 뇌리에는 없다는 듯이 말이다.

         

       *

       *

       *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방향을 틀었다.

       목적지가 정해졌고. 망설임도 사라졌지 않은가, 집에 들를 시간도 아까웠다.

         

       그러나.

         

       멈칫.

         

       “…?”

       “아, 기사님…!”

         

       그가 가려는 길목 근처 나무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시녀가 해맑게 그를 반겼다.

         

       그가 여기 올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녀가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헤헤, 다행이다. 길이 엇갈리지 않아서.”

       “왜 여기 있습니까?”

       “레비 아가씨는 걱정 마세요. 자장가 불러주니까 곧장 잠들더라고요.”

       “그건 문제가…, 그보다 혹시 자장가가 박치기인 건 아니죠?”

       “네엥?”

       “……헛소리였습니다. 그보다 어떻게 여기-.”

       “-여기요!”

       “……?”

         

       자신이 이곳에 올 줄 알았나?

       그러한 물음을 던지려고 하자마자 레이라는 말을 자르며 그의 무구를 건네주었다.

         

       우웅.

         

       광택이 나는 것이, 방금 막 손질을 마친 것으로 보이는 갑옷과 칼, 그리고 한손 방패와 손도끼 등.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장비였다.

         

       이한은 레이라가 건넨 무구를 받을 생각조차 못 하며 잠시 있자니, 레이라는 누군가를 흉내 내듯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왕녀님이 그러셨어요! ‘내 의동생은 단순한 면이 있지. 아무리 복잡하게 꼬여 있고, 그 매듭 자체가 막대한 가치가 있는 보물일지언정, 풀어야 한다면 도끼로 끊어낼 놈이다’ -라고요.”

       “…….”

       “또 ‘여의 의동생이라면 사고를 치더라도 천것들을 좀 혼내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터, 칠 거면 나라가 뒤흔들릴 정도로 쳐야지,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여의 의동생이 아니다’ …라는 말도 전해주래요!”

       “……썩을, 스토커도 아니고, 뭔….”

         

       다 꿰뚫어 보고 있었나?

         

       오늘 막 사고를 쳤는데, 여기까지 내다보다니….

       하여튼, 그 누님은 한 번씩 오러 유저보다 더한 것 같다.

         

       ‘천기라도 읽나?’

         

       지가 무슨 판타지 천기자야 뭐야….

         

       진짜 천기자(예언자)가 있어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생각하며, 이한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다 들통 나니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어서.

       민망하기도 하고, 어딘지 허무한 기분도 든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시녀님. 잘 쓸게요.”

       “헤헤, 조심히 다녀오세요.”

       “…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든든한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하여 그는 약속했다.

         

       “오래는 안 걸릴 겁니다.”

         

       “네에!”

         

       그녀가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빠르게 돌아오겠다고.

         

       그리고 이한은 아직, 그녀와의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어길 생각이 없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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