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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모두 입을 다물고 조용해진 가운데, 핸드폰 벨 소리만 요란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어… 어떡하죠?”

    “받아야지. 그렇다고 안 받을 수는 없잖아?”

    꿀꺽.

    침을 삼키며 벌벌 떨고 있는 공장 직원.

    겨우 전화인데, 이렇게까지 무서워해야 하나?

    공장 직원은 눈을 질끈 감고 통화 받으려고 했지만, 손이 덜덜 떨리고 눈도 감고 있어서 뜻대로 되질 않고 있었다.

    눈을 감은 직원의 그림자에 숨어서 유령화를 풀고 직원의 손가락을 꾹 눌러서, 슬라이드.

    “으아악!”

    공장 직원은 화들짝 놀라서 핸드폰을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직원은 겁에 잔뜩 질린 채 자기 손가락을 문지르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히히, 그렇게 두리번거려도 이미 유령화해서 안 보인다고! 

    [큰소리가 났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에서 울리는 목소리. 

    겁에 질린 직원을 내버려 둔 채, 다른 공장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아닙니다. 사장님.”

    [그래? 지금 탈출하는 중인데, 대략 하루 정도면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아… 그러면 공장에 있는 오브젝트는 해결이 안 된 겁니까?”

    [그래, 재격리에는 실패했어. 다행히 그 곰돌이는 덩치가 커서 좁은 공간으로는 못 들어오니까, 지금 천장을 기어서 이동 중이야. 하루 정도면 밖으로 나올 수 있을 테니 그때 가서 보자고.]

    “그럼, 지금 당장 구조가 필요한 건 아니시군요?”

    [오히려 들어와서 난리를 피우지 않는 편이 좋아. 다음 재격리 일정은 내가 돌아온 뒤 이야기해 보지.]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통화가 끝나자, 조용했던 분위기가 확 풀어졌다.

    “이번에는 사장님이 맞는 것 같지?”

    “사장님 전화번호, 사장님 목소리였으니 맞겠지.”

    “아니, 전에 걸려 온 전화도 그랬잖아. B블록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렇지.”

    “그런데, 천장에 공간이 있던가?”

    “모르지, 누가 그런 곳까지 올라가서 확인해 보겠어.”

    하지만 직원들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사장이 살아 있었다고 순수하게 기뻐하기에는 전에 걸려 온 전화가 이상했으니까.

    사장의 목소리와 전화번호로 걸려 온 이상한 전화.

    푸딩을 쟁취하러 왔더니, 갑자기 추리극이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

    세희 연구소 뒤뜰을 차지한 황금 사신 정원에서 황금 사신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등 뒤에 푸딩을 짊어진 황금 사신이었다.

    이미 창조주가 이 근처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을 확인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만약 들키면 마지막 남은 푸딩을 빼앗겨 버리니까 조심해야 해!

    창조주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위치를 속일 수가 있으니까 방심할 수 없었다.

    방심한 동료들? 

    그들은 모두 푸딩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리고 슬퍼해 봐야 푸딩은 돌아오지 않아.

    정말 정말 맛있는 푸딩을 하나도 먹지 못한 불쌍한 애착 인간을 위해서 빼앗길 수는 없었다.

    눈앞을 커다란 문이 가로막았다.

    뒤뜰과 연구소 내부를 가르는 커다란 문.

    평소라면 유령화로 순식간에 뛰어넘어 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푸딩을 옮겨야 하니까.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황금 사신은 황급히 몸을 숨겼다.

    인간에게도 들켜선 안 돼.

    인간에게 푸딩을 안 주면 인간이 슬퍼하니까.

    인간이 슬프면, 마음이 아파.

    근처 그림자에 숨어있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을 노려서 몰래 문을 지나쳤다.

    이제 인간이 가득한 건물 안에서 들키지 않고 애착 인간에게 도달해야만 해!

    황금 사신은 결연한 표정으로 의지를 다잡았다.

    ***

    푸딩 공장의 사건은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아 어지러워.

    차량으로 돌아가 보니, 아무도 없는 뒷좌석에서 뿅 하고 회색 사신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아, 역시 유령화로 나를 따라다녔구나.

    나는 뒷좌석의 사신이를 들어 올려서 무릎 위에 올리고 끌어안았다.

    자주 안겨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몸을 맡겨오는 사신이.

    “사신아. 도대체 뭘까?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알 수가 없네.”

    혼란스러운 와중에 말랑하고 따뜻한 사신이를 껴안고 있으니,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백미러에 비친 회색 사신이의 표정은 무표정.

    곰 인형처럼 품 안에 안겨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했다.

    “사장의 전화가 두 번이 있었는데, 뭐가 진짜일까? 아니면 둘 다 가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뭔가 떠오를 때까지 사신이나 주물주물하면서 힐링해야겠다. 

    ***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예린의 기분이 느껴졌다.

    꽤 간단한 문제인데, 생각을 너무 복잡하게 하는 것 같네.

    내가 뒷좌석에 깔린 시트에 눕자, 예린이는 따라서 눕지 않고 내 발바닥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예린이는 내가 눕기만 하면 자주 그러던데, 마사지를 해주는 건가? 

    별로 소용이 없을 텐데.

    이번 사건에서 걸려 온 두 번의 전화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첫 번째 전화는 ‘최대한 사람을 모아서 구하러 와줘!’.

    두 번째 전화는 ‘내가 탈출할 때까지 기다려줘!’.

    첫 번째 전화가 가짜라면, 사람들이 잔뜩 들어오기를 원해서 저런 가짜 전화를 한 거겠지.

    인간을 유혹하는 오브젝트가 할 법한 전화다.

    두 번째 전화가 가짜라면,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기를 원해서 했을 터. 

    그러면 인간의 말을 하면서 인간을 꺼리는 오브젝트는 보기가 힘드니까, 인간이 할 법한 전화다.

    범인이 인간이냐, 혹은 오브젝트냐에 따라 믿어야 할 전화가 달라지는 사건인 셈이다.

    하암.

    폐도 없는데 왠지 하품이 났다.

    예전에는 이것도 인간 시절의 습관이 남아서 그런 거로 생각했는데.

    황금 사신이들도 가끔 하는 것을 보면, 인간과는 다른 이유로 하품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원래부터 인간을 모방하도록 만들어진 오브젝트일 수도 있고.

    급격하게 밀려오는 수면욕.

    파닥파닥.

    더 이상 마사지를 받으면 잠이 올 것 같아서, 다리를 흔들어서 예린이의 손을 떼어냈다.

    적어도 푸딩 사태는 해결하고 쉬어야지. 

    푸딩을 위해서!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통화가 되던 스마트 워치에서 노이즈만이 들려왔다.

    “아, 이런. 끊어졌군.”

    스마트 워치로 통화를 하던 제임스가 말했다.

    “왜? 왜 그런 식으로 전화를 한 거예요?”

    “음? 뭘 말하는 거지?”

    “통화 내용이요! 지금 당장 구조가 오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면서요!” 

    쾅쾅.

    관리실 밖에서 뭔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쇠가 찌그러지고 사정없이 부서지는 소리.

    “뭐… 뭐죠?”

    “관리실을 경유해서 통화를 성공한 걸 알아챘군. 곰돌이가 관리실을 박살 내고 있어. 지금 소리는 2번 건물 관리실인가?”

    잔뜩 겁먹은 통역사와 달리 태연한 목소리의 제임스였다.

    “이젠 확실하게, 구조가 오지 않으면 죽겠군. 언젠간 이 관리실에도 곰돌이가 찾아올 테니 말이야.”

    “이젠 끝이야.”

    통역사는 머리를 부여잡고 우울하게 말했다.

    강철 곰돌이는 관리실을 하나씩 파괴하고 있었다. 

    아직은 저 파괴음이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여기까지 도달하게 되겠지.

    쿵쿵. 

    통역사 입장에서는 멀리서 울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는 영화에서 보던 포식자의 그것과 한없이 닮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제임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내 경로 예측에 따르면 저 귀여운 곰돌이가 이곳 관리실까지 도착하는데, 15시간 정도 걸릴 거야. 아직 시간은 넉넉하니까. 관리실에 마련된 침대에서 한숨 푹 잠이라도 자라고.”

    “그럼 15시간 이내에 구조가 오지 않으면 죽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왜 그런 식으로 전화를 한 거예요? B블록? 밀링 머신? 그게 뭔데요? 7번 건물, 2층 관리실이라고 하면 되는 걸…. 왜 그렇게….”

    바닥에 허물어져서 흐느끼는 듯하게 말하는 통역사.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 통역사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제임스.

    “자네는 머리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니었나 보군.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 사건은 인간의 손을 탔다고.”

    “?”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통역사를 향해 제임스는 추가 설명을 했다.

    “당연히 위치를 그대로 말하면 저 곰돌이가 사람들이 오기 전에 우리 머리를 쪼개러 올 게 뻔하지 않나?”

    “그러면 B블록, 밀링 머신. 이걸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공장 관계자는 확실히 찾아올 수 있으면서, 테러리스트는 모를만한 힌트를 남겨뒀지.”

    통역사는 왠지 희망이 돌아온 얼굴로 제임스를 돌아봤다.

    “테러리스트도 멍청이는 아니니까, 내가 아리송한 힌트를 내면 이 공장의 예전 도면쯤은 찾아보겠지.”

    “그렇겠죠?”

    “하지만 그 예전 공장 도면에는 B블록도 밀링 머신도 없단 말이야. 여기서 테러리스트들은 포기해 버릴 거야. 지금 곰돌이처럼 추리보다는 다른 수단을 선택하겠지.”

    “그래서요?”

    “여기서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거야. 이 공장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공장이 부산에도 있어. 그 쌍둥이 공장의 도면과 현재 우리 공장의 도면을 비교해 보면 순식간에 우리의 위치를 확정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걸 도대체 누가 알아채요!” 

    통역사는 살인 곰돌이 인형이 돌아다닌다는 사실도 잊은 채, 소리를 질렀다.

    희망에 가득 차오르던 통역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주저앉았다.

    “이젠 다 끝났어….”

    ***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첫 번째 통화랑 두 번째 통화 중 뭐가 진실인지 알 필요가 있을까?

    B블록과 밀링 머신도 뭔지 알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그걸 왜 내가 고민해야 하는 거지?

    우선 들어가서 그 강철 곰돌이 오브젝트의 머리를 뽑아버려야지.

    그 곰돌이는 푸딩 공장의 부속품이 아니잖아?

    내가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예린이가 반응을 해왔다.

    “공장으로 들어가려고?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예린이는 해맑게 웃으면서 나를 따라나섰다.

    예린이와 함께 살금살금, 공장 입구로 향해갔다.

    사장의 전화 덕분인지 경계를 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왠지 재미있네. 어렸을 때 숨바꼭질하는 것 같아.”

    예린이가 즐거워해서 그런지, 나도 조금 즐거워졌다.

    그림자에서 그림자를 넘나들면서 공장 입구로 들어섰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이리저리 금이 가고 부서진 주차장과 머리를 잃은 시체가 우리를 반겨줬다.

    “사신아 시체가 있어. 복장을 보면 아마 사장이 데리고 왔다는 오브젝트 회수하는 사람이려나?”

    쿵. 쿵. 쿵.

    예린이의 목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지길 무섭게,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예린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주차장 너머 건물, 커다랗게 열린 입구에서 붉은빛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야수의 눈동자처럼 붉게 빛나는 빛 두 점.

    쿵. 쿵.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 뒤섞인 오브젝트가 그 실루엣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철로 된 곰 인형 오브젝트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곰돌이는 천천히. 

    쿵. 쿵. 

    천천히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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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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