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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EP.91

     

   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화로운 나날.

   나는 내가 겪었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편의점에 온 빌런들 중 나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초장부터 반말을 찍찍하는 사람이나 계산도 안 하고 음식부터 먹는 사람,

   그것 외에도 다양한 진상들이 편의점에는 항상 존재해왔으니, 당연히 그중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좀 쉽게 가나 했는데……’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저지른 행동들은 트라우마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야, 거기 그거 줘.」

   「담배? 이거?」

   「어어, 그거.」

   「자, 여기.」

   「……근데 너, 나이도 어린놈이 왜 어른한테 반말이냐?」

   「반말하길래 친군 줄 알았지.」

   「이 새끼가?」

     

   나는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다 저질렀다.

   짜증 날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끝장을 봤고 진상이 나타나면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더 굉장한 진상이 되는 걸로 놈들을 제압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어언 일주일.

   나는 여전히 편의점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삑.

   삑.

     

   “다 해서 4000원입니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 네.”

   “봉투 값 50원입니다. 카드는 이쪽에 꽂아주세요.”

     

   멍한 표정의 손님이 물건을 대충 봉투에 담아 문밖으로 사라진다.

   마지막 손님의 계산을 끝마친 나는 곧이어 들어온 알바에게 간단히 인수인계를 했고, 편의점 유니폼을 벗어 자연스럽게 그에게 넘겼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넵, 수고하세요.”

     

   가볍게 목례를 하며 카운터로 들어가는 다른 알바생.

   나는 그의 인사를 받은 뒤,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후우……”

     

   심호흡하자, 밤이 되며 서늘해진 공기가 가볍게 폐부를 적셨다.

     

   “……근데 일이 생각보다 쉽네.”

     

   묘한 기분. 과거에는 그렇게 빠듯하게 느껴지던 시간이 여유로웠고 진상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던 스트레스에 비하면 너무나 평화로웠다.

     

   괴물이 없는 곳.

   마법 같은 공격 수단은 당연히 없으며, 진검은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허가가 필요한 곳.

   이곳이 탑의 4층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다 꿈이 아니었을까 착각을 할 것만 같다.

     

   고개를 드니 멀지 않은 곳에 이제는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고층 건물이 선사하는 야경, 멀쩡한 도로와 그 위를 걷는 사람들까지… 하지만 평화로운 배경과는 달리 일을 끝마친 나의 발걸음은 오히려 무거워진 상태였다.

     

   “도대체 뭘까.”

     

   탑은 플레이어들에게 트라우마를 극복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허나 가장 큰 문제는 나의 머릿속에 그 트라우마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

     

   편의점에서 일을 하며 만난 모든 진상들을 내 기분 내키는 대로 처리했지만 시스템은 그런 나의 행보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이랑 상관이 없었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 5층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지나간 시간은 일주일. 앞으로 2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그 시간 내에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나의 목숨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근데.”

     

   그 와중, 나의 마음 한 편에 싹트고 있는 생각 하나.

     

   “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고생들이 모두 환상이라는 생각이 드니, 임무를 완료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크게 후회가 남을 것 같지가 않았다.

     

   또다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에 내몰리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새로운 경쟁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등에 짊어진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이상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든.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끝이다.

   삶의 마지막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평범하게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그냥저냥 살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

     

   “……”

     

   그 순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삐용- 삐용-

     

   점멸등을 빛내는 경찰차 한 대가 나의 바로 옆을 지나갔다.

   머릿속을 스쳐 가는 잡다한 생각들. 그리고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경찰차를 멍하니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이런 미친.’

     

   언제부터였을까.

     

   이곳에서는 스킬이 발동 되지 않았다.

   당연히 각성을 하며 가지게 되었던 능력치나 아이템도 사용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그저 ‘과거의 나’로서 트라우마를 이겨 내는 것이 5층의 임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동화되고 있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장소에 녹아들고 있었다.

   ‘트라우마의 극복’이라는 임무 때문에 과거의 트라우마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과거의 행위들을 반복했던 것이 그 원흉.

     

   ‘과거의 나’는 내가 맞았다. 하지만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다르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

   ……

   설명 : 잊고 살았던 지나간 시간. 누군가가 탑에 당신의 과거를 재현해냈습니다. 기억 속 저편에 잔류한 당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십시오. 당신의 미래가 역변하게 될 그 순간, 5층으로 가는 문이 열릴 것입니다.

   ……

   —

     

   탑은 미래의 역변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버려야 했고 현재의 나로 과거의 나를 덮어씌워야 했다.

     

   “쓰으읍!”

     

   나는 편의점에서 나왔을 때처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볍게 숨을 내뱉는 것이 아닌, 하늘을 향해 시원한 고함을 내질렀다.

     

   “흐아아아악!!!”

     

   옛날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나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 이 세상은 ‘과거의 나’를 불러오도록 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집중된 시선을 금방 흩트려 버렸다.

     

   ‘트라우마.’

     

   나에게 가장 괴로웠던 순간이 무엇인가.

     

   일을 하면서 괜히 욕을 먹었을 때? 아니면 길을 가던 중 자해공갈을 하는 사기꾼에게 걸려서 돈을 왕창 뜯겼을 때?

   그것도 아니면 그 이후로 식료품을 살 돈이 없어 며칠을 쫄쫄 굶었을 때?

     

   아니,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떠올릴 필요가 없는 거였어.”

     

   떠올려야 한다면 트라우마가 아니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일상에도 지장이 갈 정도가 되어야 진짜 트라우마. 평소에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기억일 뿐이지 극복해야 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나의 삶에 지장이 갈 정도의 트라우마라면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

     

   “기분 나쁜 것들.”

     

   나는 사람들의 기억을 끄집어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성좌들을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 봤다.

   과거의 내가 일궈놓은 모든 노력을 처참히 짓밟은 존재들. 그리고 그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플레이어들.

     

   내가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는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는 이계의 성좌들이었다.

     

   ***

     

   서세영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스무 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단 한순간도 마음껏 웃어 보지 못한 삶.

   사무적인 웃음과 만들어진 가짜 감정을 휘두르며 그저 그렇게 살아왔을 뿐,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웃음을 지어 보인 것은 거의 8년 만이었다.

     

   ‘지금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녀 또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다.

   특히 그토록 그리워했던 부모님과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었으니 그 생각은 점점 더 증폭되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이 지날수록 서세영은 서서히 웃음을 잃어갔다.

     

   “우리 딸 무슨 걱정 있어?”

   “요즘 따라 표정이 안 좋네… 아빠는 괜찮다니까. 의사 선생님 말로는 한 2주 후에는 퇴원해도 될 거라고 하던데 그때 같이 바람이라도 쐬러 갈까?”

     

   그들의 반응에 서세영은 더 이상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 참, 지난번에 그 편의점 알바생 이야기했었지? 그 친구 한 번 보고 인사하고 싶은데.”

     

   이것은 서세영의 기억.

   하지만 그녀가 당시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상상만 하고 나누지 못했던 기억들까지 두 부모님은 모두 알고 있었다.

     

   “어머 어머! 대학교에 붙었다고? 생활은 좀 어떠니? 공부는 할 만해?”

     

   사고 이후의 일.

     

   “아르바이트는 힘들지 않니? 서빙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도 학비도 벌고 하는 거 보니 우리 딸 참 장하네.”

     

   “졸업 축하한단다. 벌써 우리 딸이 그런 나이가……”

     

   상상만 했던 대화들… 꿈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이 낯선 병원에서 낯선 얼굴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 그들을 보고 느꼈던 반가움과 기쁨이 두려움으로 변한지 오래였다.

   이것은 그녀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상. 그녀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장면임과 동시에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기억이 동시에 재생되고 있었다.

     

   “그…그만…”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쌌다.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걱정 어린 말을 던지는 두 부모님.

   하지만 서세영의 반응이 어떻든 두 사람은 그저 기계적으로 그녀가 과거에 들었던 말을 던질 뿐이었다.

     

   “세영아, 어디 아프니?”

   “아이구, 우리 딸 아파서 어쩌나. 아빠가 의사 선생님 불러줘야겠네.”

   “어머, 주사 맞아야겠다. 우리 세영이.”

     

   어린 시절, 그녀가 유치원에 가기 싫어 꾀병을 부릴 때 들었던 농담.

     

   “머리 아프면 좀 쉬었다가 하렴.”“그래, 성적이 행복순은 아니거든.”

     

   중학생 시절, 성적이 안 나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던 서세영에게 부모님이 했던 조언.

   상황에 맞지도 않는 말들이 서세영의 귓가를 간지럽혔고 그런 말을 들을수록 서세영의 정신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가짜.

   조작된 세계.

     

   그녀는 그녀의 눈앞에서 따스한 말을 건네는 이 두 존재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다시는 두 분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해요……”

     

   서세영이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린다.

   누구에게 사과를 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쿵…

   쿵…

     

   어디선가 들려온 낯선 소리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글쎄… 여보, 가서 한 번 확인해 봐요.”

     

   창밖에서 들린 소음에 병원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

   그녀가 과거에 병원에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이런 기억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이벤트의 발생은 그녀가 정신을 차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녀는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가 소음이 발생하고 있는 근원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두웠다.

   허나 하늘에는 달과 별이 떠 있고 그 아래로는 여러 채의 고층 빌딩과 가로수들이 찬란한 야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

     

   하지만 병원의 주차장은 평소에 그녀가 보던 풍경과 사뭇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불, 소방차, 구경꾼들…

   그리고 다시 일어난 폭발.

     

   콰아앙-!

     

   갑작스러운 난리에 병원이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녀의 눈에 또렷하게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시인 씨?”

     

   익숙한 흰색 의복에 칠흑의 검을 들고 있는 남자.

     

   – 세영 씨 듣고 있어요!?!

     

   그가 그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목을 놓아 소리치고 있었다.

     

   – 데리러 왔습니다!!!

     

   기적.

   그것은 그녀에게 두 번째로 찾아온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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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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