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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비석의 주춧돌 중 도로시는 그들 사이에서 농담삼아 최약체라 불리곤 했다.

         

       마테우스는 애초에 조직폭력배의 두목, 압도적인 무력이 없고서는 결코 앉을 수 없는 자리를 거머쥔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연쇄살인마인 살귀 레고르도는 말할 것도 없다.

         

       그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밥을 지어먹는 일보다 간단할 테니까.

         

       그리고 의외로 살로카 역시 절대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뒷세계를 전전하며 정보를 입수하고 팔아먹는 것을 천직으로 삼은 이.

         

       그런 세계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힘은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도로시는 태생적으로 무력이 약한 ‘여성’이었고, 변변찮은 전투 기술도 없었으며, 애초에 싸움과는 거리가 먼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헤타이라 도로시는 그것을 수치라 여겼다.

         

       어린 나이에 창관에 팔려갔던 그녀다.

         

       그녀에게는 선택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도로시의 처녀는 고작 100마르크였다.

         

       아직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10살 적의 일이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배워나갔다.

         

       아양을 떠는 법과, 그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법.

         

       남자들을 홀리는 법과 몰래 마약을 슬쩍하여 되파는 법들을 말이다.

         

       물론 순탄치는 않았다.

         

       들키기도 많이 들켰다.

         

       그때마다 도로시는 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했다.

         

       자존심도, 긍지도, 인간성도 가차없이 내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도로시의 눈동자만큼은 그 빛을 잃지 않았으니.

         

       하나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기에 품을 수 있는 뒤틀린 마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 손에 거머쥐리라.

         

       헤타이라 도로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유독 자신을 잘 챙겨주던 같은 창관의 언니를 속여, 소문이 좋지 않던 옛 귀족에게 팔리도록 만들었다.

         

       실장을 속여 마약 공급 총책이 그를 추적하여 죽이도록 만들었고, 그 사이 그녀는 총책의 인망을 받아 그의 충실한 애인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총책의 곁에서 모든 것들을 배운 뒤.

         

       도로시는 자신의 애인을 독살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은 고스란히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헤타이라라는 별명에는 힘이 서리게 되었다.

         

       창관의 모든 이들이 그녀를 두려워했다.

         

       고작 10살의 나이에 무기력하게 처녀를 잃어야만 했던 소녀는, 고작 20살의 나이에 뒷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물이 되었다.

         

       8년.

       도로시가 자신의 꿈을 이뤄내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허나 그녀가 쥐고 있던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박살나버렸으니.

         

       첫 번째가 수도 호엔바렌에게서 온갖 더러운 것을 정화하겠다고 나선 미하일 총통이었고.

         

       두 번째가 도망치듯 흘러들어간 북쪽의 소도시에서 마주한 루터스 에단이었다.

         

       -죽여… 그냥 죽이라고 씹새끼들아…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데…? 도대체 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오오ㅡ!!

         

       아끼던 부하들이 한 사람에 의해 모조리 도륙나버렸다.

         

       업장은 난장판이 되어 수습조차 할 수 없었고, 도로시 본인도 푸른 안광을 번뜩이는 사신 앞에서 제 감정을 토해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숭상하던 모든 가치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헤타이라 도로시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니.

         

       -내 이름은 루터스 에단이다. 그레이브야드 요새 사령관이지.

         

       -요, 요새 사령관? 제국군 장성이 여기는 도대체 왜…. 그, 그때 말한대로 수도에서 얌전히 꺼져줬잖아! 이제와서 또 말을 바꾸는ㅡ.

         

       -미안하지만 나는 너를 죽이러 온게 아니다. 오히려 부탁하러 온 거지. 너에게 맡길 일이 있다. 앞으로 우리 모두와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

         

       궤변이었다.

         

       아득바득 긁어모아온 것들조차 처참하게 부숴놓고서는 고작 하는 말이 ‘미래’를 운운하다니.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이 이제껏 쫓았던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나름 뒷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을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 있는 천하의 실력자.

         

       전쟁 따위에는 관심도 없던 도로시조차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던, 제국 최전방 요새 그레이브야드의 사령관이자.

         

       어두운 곳에서도, 밝은 곳에서도, 언제나 불가능한 목표를 필사적으로 쫓아가며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남자.

         

       준장 루터스 에단.

         

       루터스 에단이야말로 이 세상에 얽힌 운명을 뒤집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으니.

         

       저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순간, 어린 시절 자신이 꿈꿔왔던 목표를 이룰 수 있으리라.

         

       도로시의 생각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레이브야드 요새 사령관은 티탄의 압도적인 공세를 모조리 분쇄하고, 역공세를 가해 무기력하게 빼앗겼던 옛 인류의 영토를 되찾았다.

         

       불가능하리라 판단되었던 작전들을 모조리 성공시키는가 하면, 그것을 위해 물불도 가리지 않았다.

         

       같은 군인들은 치를 떨며 싫어하는 범죄자들의 도움을 빌려가면서까지, 사람들을 구해내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루터스 에단을 창끝으로 삼은 제국군의 공세가 티탄의 마지막 영토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승전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도로시는 어떤 누구보다도 더 강렬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틀리지 않았다.

       바로 저 남자다.

         

       자신이 끝끝내 정복해야할 것은 시덥잖은 수도의 돼지들도, 뒷세계의 쥐들도, 돈도, 명예도, 지위도 아니었다.

         

       바로 루터스 에단.

       전설적인 전쟁영웅이야말로 그녀가 거머줘야할 최종 목표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도로시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전투 기술을 보완할 방법을 찾았다.

         

       언제나 그러했듯, 자신을 얕보는 이들을 처참하게 짓밟고 올라가기 위해.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를 노리는, 비열한 암컷들의 목을 부러트려버리기 위해서.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이 좆같은 암캐년이!!”

         

       어느새 품 속에서 튀어나온 단검이 샬롯의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사락, 금발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나가며 바닥으로 흩어진다.

         

       그저 스치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잘릴 정도로 예리한 검이었다.

         

       하지만 샬롯 역시 결코 무르지 않다.

         

       그레이브야드의 승리 공식에는 언제나 샬롯 에버그린도 함께 존재했다.

         

       압도적인 전력차를 뒤집는데에 필요한 것은 거대한 대전략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소부대들의 전술연계 뿐만이 아니다.

         

       보급 그리고 군수.

         

       샬롯 에버그린은 요새의 군수과장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게다가 지금의 샬롯은 모든 기억을 되찾은 상태.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죽음과 경험을 딛고 다시금 일어선 역전의 용사였다.

         

       제아무리 뒷세계의 인물들에게서 살인 기술을 연마한 도로시라한들, 샬롯에게 있어선 그저 의미없이 단검을 휘적거리는 동작이엇다.

         

       “이… 씨발!! 씨바아알!!”

         

       “워, 내가 저런 느낌이었구나. 입에 걸레를 물었다는 표현이 딱 정확하네. 이렇게 천박할 수가.”

         

       샬롯이 여유롭게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압도적인 격차.

         

       회귀자와의 동행을 통해 그 모든 과거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 정도의 힘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제껏 루터스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루터스를 보좌하는 이들 역시 몇 번의 회귀를 거듭하며 많은 부분이 변화했으니.

         

       그 모든 것이 변수로서 작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만일 루터스가 기억을 복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보다 일찍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샬롯 에버그린은 살벌한 단검을 능숙하게 피하면서 생각했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좆같을 뿐이었다.

         

       도저히 혼자만의 힘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한 도로시가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용 주사기를 제 허벅지에 박아넣었다.

         

       “끄, 끄으으…!! 아아아악!!”

         

       울룩불룩.

       혈관이 확장되며 피부결을 따라 선명하게 솟아오른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는가하면, 숨결도 이전보다 훨씬 거칠어졌다.

       

       “아….”

         

       샬롯 에버그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 약물, 기억한다.

         

       스물 세 번째 회차에서 완전히 고립당한 루터스 에단이 잔존 병력들에게 배포했던 출처불명의 전투자극제.

         

       죽더라도 끝까지 맞서다 한날한시에 죽음을 맞이하자 했었지.

         

       군수참모인 자신조차도 출저를 알 수 없던 약물이었으나, 그게 이 마약쟁이에게서 나왔던 물건이었나.

         

       “루터스… 정말이지.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구나.”

         

       샬롯이 씁쓸하게 읊조렸다.

         

       그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오라클을 탑승해서 직접 보았던 무수한 갈래의 미래 속에서도, 이번 회차의 루터스는 어김없이 결사항전을 택했다.

         

       결국 끝까지 국장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안전국의 부하들에게 등을 찔릴지라도.

         

       팔다리가 모두 잘려, 총통에 의도에 철저하게 놀아날지라도.

         

       루터스 에단은 결코 포기하지않고, 피눈물을 흘리며 수도 호엔바렌의 총통관저를 향해 돌진하곤 했다.

         

       “개년아!! 그 이름을 함부로 담지 마아아아아!! 그 사람은, 내꺼야. 내꺼라고!!!”

         

       샬롯 에버그린은 처참한 몰골로 최후의 발악을 하는 도로시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녀가 사랑하는 약혼자, 루터스 에단을 닮은 푸른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난다.

         

       “아니, 그 사람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어.”

         

       “꺄아아아악!! 개새끼야아아아아!!”

         

       “너도, 그리고 나 역시도 말이야.”

         

       휘리릭.

       그녀의 팔에서 날아간 와이어가 크게 회전하며 도로시의 목덜미를 휘감으며 벽면에 박혔다.

         

       “켁, 케엑!!”

         

       순식간에 움직임을 봉쇄당한 도로시가 그륵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와이어를 끊어버리려던 그때.

         

       “다음 회차에서는 절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도로시.”

         

       “씨바아아악!!”

         

       반댓손에 달려있던 또 하나의 와이어가 그녀의 얼굴을 그대로 꿰뚫고 들어갔다.

         

       한때는 제국의 수많은 남자들을 홀리고 다녔을 헤타이라의 얼굴은, 더 이상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약은 요긴하게 사용할게. 네가 그리 집착하던 남자를 도우려 하는 거니까 너무 원망하지는 마.”

         

       샬롯은 도로시를 향해 잠시 묵념을 올리고는, 묵묵히 그녀의 처소로 나아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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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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