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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91 – 너무 잘한 죄>

     

    교수의 수작은 치밀했다.

    소리로 야바위 동전을 찾아내자 소리를 빼앗고, 무늬로 야바위 동전을 찾아내자 시야를 빼앗았다.

    심지어 그 모든 과정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속’으로 일순간에 처리하기까지!

    세계제일의 의적다운 무시무시한 솜씨.

    솔직히 벽을 느꼈다.

     

    “참고로 말하자면, 정답을 맞추지 못해도 기술은 전수해줄 생각이란다.”

    “정말요?”

    “오크노디 신입생이 보여준 기술은 여러모로 재미가 있었으니까.”

    “동전은요?”

    “맞추지 못한다면 당연히 줄 이유가 없겠지.”

    “힝.”

    “불쌍한 척해도 소용없단다. 나는 3살짜리 어린아이의 장난감도 빼앗은 적이 있으니까.”

     

    의적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위험하신데요, 교수님.

    누가 누굴 걱정할 상황이겠냐만은.

     

    ‘얄밉게도 무늬까지 똑같네.’

     

    컵을 덮은 더 큰 컵들은 기존의 컵과 같은 무늬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의심이 들었다.

    이거, 실은 더 큰 컵을 덮어씌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컵을 <변형>시킨 거 아니야?

    두 눈에 컬러렌즈처럼 마나의 막을 덧씌우자 세상만물을 구성하는 마나가 속속들이 눈에 보였다.

     

    “서치아이도 펼칠 줄 아느냐?”

    “기본이죠.”

     

    서치아이Search Eye.

    견문안見聞眼.

    시각에 마나를 덧씌워 마나를 감지하는 기술이다.

     

    “오래 쓰면 눈이 나빠지는 운용법이구나.”

     

    교수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 기술은 페널티가 있는 기술.

    숙련도가 부족해서 일어난 결과다.

    고인물이 모르는 기술은 없지만 자주 사용하는 기술과 그렇지 않은 기술의 편차는 존재한다.

    견문안은 그렇지 않은 기술에 해당했다.

    마나트랩?

    마나생물체?

    230cm의 근육거한이 내지르는 ‘진심펀치’ 앞에서는 전부 부서지는데 알 게 뭔가.

    그런 컨셉플레이를 해왔으니 졸렬하게 눈깔사기나 치는 게임플레이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근육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감지하여 상대의 다음 한 수를 한 발 먼저 예지하는 프로그노시스 아이Prognosis Eye, 예지안銳智眼은 가끔 썼지만.

    예지안의 숙련치를 100으로 치자면 견문안의 숙련치는 10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이론상 아는 지식이 대부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세 개의 컵은 모두 ‘변형’된 것이 맞았다.

    역시 <안목키우기>를 가르치는 교수.

    안목을 시험하는 함정을 팠다.

    지난 강의의 연장선상이라는 걸까.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진짜 컵을 찾을 수 없었다.

     

    ‘변형만 걸린 게 아니야.’

     

    교묘한 마나차폐막이 펼쳐져있다.

    코팅이라도 된 것처럼 얇게 한 겹씩 컵의 표면을 둘러친 마나차폐막.

    컵의 내부문양을 읽어낼 수가 없다.

    즉, 지금 컵의 표면에 보이는 문양은 기존 컵의 문양이 아닌 마법으로 위장한 가짜문양이라는 뜻.

    1번 컵의 문양이 1번의 위치에 그대로 있으니 2번과 3번 컵을 섞은 것이고, 동전은 섞지 않은 1번 컵에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것이 함정임이 드러났다.

    이쪽이 외웠던 문양의 패턴마저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 네 머리꼭대기 위에 올라섰다고 조롱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으읏. 지고 싶지 않아.’

     

    지고 싶지는 않지만.

    정보가 늘어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머리가 과부하 되어요오옷.

     

    “응?”

     

    그때, 시야 한 구석에서 위화감을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3초 경과.

    견문안의 발동을 즉시 해제하였다.

    시력을 온존할 수 있는 한계유지시간 3초.

    한계에 딱 걸쳐서 운용을 중지했다.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뭔가를 찾았구나.”

    “찾긴 찾았죠. ‘세 번의 도전’을 알리는 표식의 위치가 반대쪽에 생긴걸요.”

     

    이 인간, 그 많은 공정을 일순간에 저질러놓은 것도 모자라서 심지어 책상을 180도 돌렸다.

    얼마나 여유가 넘치는 거냐고!

    분하지만 브론즈 교수는 강하다.

    빠르기의 끝을 감안할 수 없을 정도로 나와는 신속행동의 급이 다르다.

     

    “그걸로 동전을 숨긴 컵을 찾아낼 수 있겠느냐?”

    “전혀요.”

    “이런. ‘패턴’을 간파하지 못했느냐?”

     

    놀리는 건지, 힌트를 주는 건지.

    도통 짐작할 수 없는 한 마디.

    생각해봐야 머리만 심란해지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내었다.

    확신할 수 없는 정보를 판단소재로 삼아선 안 된다.

    판단은 자신이 직접 수집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타인의 기록, 그럴싸한 말을 소재로 삼지 않는다.

    올곧게 자신의 힘만으로 관철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진실이다.

     

    ‘생각해보자.’

     

    컵의 위장된 무늬가 실제 무늬와 같을 경우에 동전은 1번 컵에 들어있다.

    단, 마나차폐막에 의해 ‘불확실성’이 생겼다.

    변형된 컵의 무늬가 ‘신속’에 의해 순식간에 만들어진 차폐막 위의 가짜무늬일 가능성이.

    이 경우, 무늬를 기준으로 하는 판단은 전부 거짓이자 속임수가 된다.

    즉, 1번 컵은 정답에서 가장 멀어진다.

     

    ‘진짜는 2번과 3번 중에 하나. 심리적으로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세 번의 도전을 알리는 표식이 반대편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것은 ‘마나차폐막’으로 위조된 표식이 아니다.

    무음.

    신속.

    변형.

    차폐.

    네 개의 동작에 테이블의 ‘전환’이라는 또 하나의 공정이 추가되었음을 나타내는 ‘물증’.

    믿을 수 있는 판단소재다.

    테이블은 180도 뒤집혔다.

    당연히 컵의 위치도 한 차례 180도 뒤집혔다.

    1번 컵이 제자리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3번의 위치로 옮겨졌다가 180도 전환으로 다시 1번의 위치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컵을 먼저 섞었든.

    테이블을 먼저 돌렸든.

    1번과 3번이 서로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즉, 2번 컵이 정답에서 가장 가까워진다.

     

    ‘마나차폐막의 존재가 이 모든 가정을 그저 가능성에 그치게 만들고 있어.’

     

    가장 까다로운 난제다.

    한 겹의 차폐막.

    손톱보다 얇은 막에 모든 컵의 정보와 진실이 미궁에 빠졌다.

     

    “힌트 삼아서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하거라.”

    “마나차폐막, 벗겨주시면 안 돼요?”

     

    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님?”

    “왜 그러냐?”

    “질문했잖아요.”

    “그래서 들어줬잖니.”

    “…….”

     

    고민 상담이라도 하는 줄 아냐고.

    답을 돌려줘야 될 거 아니야.

     

    ‘어라? 가만.’

     

    이거, 어쩌면 힌트가 없는 것도 의외로 힌트가 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본 사실로만 따지자면 브론즈 교수는 굉장히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다.

    내가 사용한 기술은 바로 다음 차례에서 막아버리며, 마지막에는 내 기술을 역이용해서 야바위를 야바위로 막는다, 라는 심리적인 카운터까지 쳤다.

     

    당한대로 갚는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의 원칙lex talionis을 기본으로 삼는 <함무라비 법전>같은 성격!

     

    “정답은 1번 컵이에요.”

     

    컵을 뒤집자 역시나 안에는 동전이 들어있었다.

    정답과 가장 거리가 먼 컵에 동전이 있다.

     

    “어떻게 거기에 동전이 있다고 생각했지?”

    “세 번의 도전을 알리는 표식이 반대쪽에 떠올랐을 때, 글씨의 위치는 뒤집혔지만 글씨의 순서는 뒤집히지 않았거든요.”

     

    요컨대 123의 순으로 글씨가 적혀있을 경우, 테이블이 180도 돌아갔다면 321의 순으로 글씨의 순서가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테이블에 떠오른 숫자는 같은 123의 순서 그대로였다.

     

    “마나차폐막이 쳐진 흔적은 없었죠. 헛것을 보거나 착각한 것이 아니라는 뜻… 테이블이 180도 뒤집혔다는 생각은 ‘의도된 착각’임을 알 수 있어요.”

    “사용한 기술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의도가 교란에 있다면 그 반대대로 따르면 되는 법.”

    “이것으로 2번은 정답에서 가장 가까운 컵으로 보이고 싶다, 라는 속셈을 간파할 수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2번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었죠.”

     

    교수가 반박했다.

     

    “자네는 차폐막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네. 추론을 뒷받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어.”

    “하지만 경향성은 알 수 있죠.”

    “경향성?”

    “찌르기에 자신이 있는 검사는 높은 빈도로 찌르기를 구사하고,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정부인사는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 쳐줄 사람을 주로 상대하죠.”

     

    그것은 브론즈 교수에게도 해당된다.

     

    “교수님은 이번 내기에서 매번 동해보복의 원칙을 보여주셨어요. 세 번째 응수에도 제 수법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고 확신할 수 있죠.”

    “학회에서는 그것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르네. 원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취하고 원치 않는 것은 외면하는 기질이지. 오크노디 신입생은 내게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지 않은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통했잖아요?”

     

    성공했으면 장땡이지!

    당한 입장에선 할 말이 없는 무적의 가불기에 교수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1번과 3번에서 1번을 추려낸 이유는?”

    “‘마나차폐막’의 존재로 1번을 고르는 것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니까. 가장 불리하게 보이는 1번에 가능성이 있다고 봤어요.”

    “기이하구나. 몸은 이토록 어릴진대 구사하는 지혜는 백전노장의 장군이나 전사나 지닐법한 일각침봉一角沈峰의 깨달음이라니.”

    “??”

    “모난 귀퉁이 하나가 산봉우리를 무너뜨린다. 네가 일컬은 경향성의 약점을 일컫는 것이다.”

     

    상대의 장점과 특기, 자주 사용하는 습관과 사고방식을 역이용해서 수를 읽는다.

    수많은 회차를 경험한 고인물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공략기술이다.

    저런 번듯한 이름이 달린 기술로도 불릴 수 있을 줄은 몰랐지만!

     

    “약속은 약속. 그 기념주화는 이제 네 것이란다.”

     

    얏호, 내기에서 이겼다!

    그런데 왜지?

    먼가 큰 실수를 한 이 기분은.

     

    [야바위를 이용해 동전을 찾는 재주에 ‘경향성의 공략’이라는 특출한 기질을 선보여 브론즈 교수를 요 근래 1년간 가장 즐겁게 했습니다.]

    [심리예측 경험치+15]

    [행동예측 경험치+15]

    [찾기 경험치+10]

    [사고력 경험치+10]

    [마법감지 경험치+10]

    [대담함 경험치+5]

    [사회생활 경험치+5]

    [재롱부리기 경험치+5]

     

    “???”

     

    모지, 이 엄청난 경험치의 향연은?

    점점 커져가는 불안감.

    우호적으로 변하는 교수의 눈빛.

    이에 결정타를 날리듯이 교수가 말했다.

     

    “오크노디 신입생. 내 밑에서 따로 교육을 받아볼 생각 없는가? 정규강의 외에 개인적으로 자네를 더 가르치고 싶어졌다네.”

     

    이제 알겠다.

    이 불안함이 무엇에 기인했는지.

    교수님이 대학원생이 되라고 할 것 같아서 그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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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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