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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이렇게 된 이상 살리에르 영지를 약탈합시다.”

         

        이게 뭔 소리야.

         

        복잡한 사고를 할 틈도 없었다. 내가 내 귀를 의심하며 머뭇거리고 있던 사이 두 요호가 한 차례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인간이 사는 곳을 털어버리겠다고? 너 미쳤어?”

        “어쩔 수 없잖아요. 식량이 부족한걸요.”

         

        요호가 약탈을 할 줄 아는 종족이라는 건 옛날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비단 요호족뿐만이 아니었다. 유목 생활을 하는 수인족에게 약탈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척박한 땅에서 식량을 확보하려면 사냥이나 채집, 혹은 낙농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만으로는 수많은 부족원을 다 먹여 살리기 어려웠다.

         

        따라서 옛 시대의 수인들은 제국 서부에서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해가며 인간을 상대로 먹을 것들을 뜯어냈다. 인간이 수인을 야만족이라고 부르며 아니꼽게 보게 된 계기에는 그런 뒷배경이 존재했다.

         

        어쨌건 흐름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

         

        내가 내뱉을 단어를 생각하며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잖아요.”

        “프레이?”

         

        분명 어머니 곁에서 잠을 자고 있어야 할 프레이가 막사 천막을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새빨갛던 볼도 어느덧 원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 요호와 인간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가장 좋은 시기예요. 하구에서 교역을 할 정도로 서로에게 신뢰가 생긴 상태에서 뒤통수를 치는 건 현대 외교에서 쉽게 해선 안 되는 일이겠죠.”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정론을 펼치는 프레이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려고 하지 못했다. 논리가 깔끔한 건 그렇다 쳐도, 이 꼬맹이가 이렇게 차분하게 말을 할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레이의 태도 변화에 얼일 빠져 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 요호가 입을 떨며 물었다.

         

        “이, 이 꼬맹이가 왜 이래? 갑자기 나타나서는….”

        “내가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랬지이이!!”

         

        아, 발작버튼 나왔다.

         

        생각해 보니 여긴 프레이 입장에서 어르신들도 많이 있구나. 애가 술을 잘못 마셔서 이상해진 게 아니라, 그냥 예의범절을 지켜서 화법을 달리하고 있는 거였다.

         

        큼큼, 하는 소리를 내며 목을 가다듬은 프레이가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말을 이었다.

         

        “더구나 살리에르 변경백은 인품이 좋은 사람이에요. 약탈이라는 전근대적인 방법을 쓰느니 제대로 부탁해서 식량을 꾸어오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맺음일 겁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나로서는 내가 해야 할 이야기를 프레이가 전부 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려고 밖에 있다가 들어온 거니?”

        “우연히 들어왔을 뿐이에요.”

        “어쨌건 살리에르 백작에게 빚을 지겠다는 소리구나.”

         

        그 방법밖에 없기는 하다.

         

        사냥을 하려고 해도 물난리로 동물이 모두 떠내려갔다. 열매를 채집하려고 해도 나무가 뿌리째로 뽑혀 날아갔다.

         

        그나마 기르던 가축들도 도축할 시간 없이 전부 버리고 이곳으로 피난 온 신세인 마당인데, 다른 뾰족한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인간의 손을 빌려야 이번 태풍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멍청하긴.”

         

        그러나 몇몇 요호들은 그런 도움을 바라지 않는 모양새였다.

         

        “살리에르가 여태껏 우리에게 잘해줬다고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법이 있어?”

        “이번에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어요.”

        “프레이, 장차 이 파스트렌드를 짊어질지도 모르는 네가 그런 소리를 하니까 부족의 앞날이 어둡구나. 선조께서 남기신 말씀을 그새 까먹었느냐?”

         

        아카데미 입시를 준비하면서 대륙사를 공부했다. 그때 봤던 교재에선 수인과 인간은 서로 사이가 더럽게 안 좋았다고 나와있었다.

         

        오죽하면 수인족 사이에선 이런 격언이 나돌 정도로.

         

        “인간은 반드시 배신하니까 절대로 믿지 말라고요?”

        “그래!”

        “지금 배신하려는 건 우리들이잖아요.”

         

        프레이의 말에 논리적인 결함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논리가 참인 것과, 그 논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는 명백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약탈과 겁간, 노예화와 제노사이드.

         

        인간과 수인 사이에서 생긴 감정의 골은 깊고 어둡다. 하지만 프레이처럼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책에나 쓰여 있는 옛날이야기일 뿐이었다.

         

        반대로 그런 비극을 직접 겪어왔던 윗세대 요호들의 머릿속에는 참혹한 악몽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아무튼 숙이고 들어가는 건 안 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거나, 아예 빼앗아야 해!”

        “이분 말씀이 맞다, 프레이. 예전에 인간에게 작은 빚을 졌다가 단체로 노예가 된 산양족을 생각해보렴.”

         

        얼핏 듣기만 해도 예민한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본래의 나였다면 이런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시기다. 로테의 영지가 공격받으면 나도, 프레이도 난감해진다.

         

        “크흠, 흠.”

         

        나는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의제를 놓고 한창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던 막사가 기적처럼 조용해졌다.

         

        이윽고 스무 쌍에 달하는 형형색색의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했다. 

         

        “여러분, 살리에르 백작의 차녀가 프레이의 친구라는 걸 알고 계신가요?”

         

        내 발언에 요호들이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게는 처음 듣는 소리겠지. 이쪽에서 알려준 적도 없었고, 그동안에는 알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그, 그랬나요?”

        “네. 그녀와 프레이, 그리고 저 셋이서 같은 반 친구입니다.”

         

        방금 발언으로 요호들은 한 가지 연결고리를 알게 됐다.

         

        바로 나라는 연결고리를.

         

        “여러분이 살리에르 백작에게서 식량을 꾸어 오는 것에 제가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고 하면 괜찮을까요?”

         

        몇몇 젊은 요호가 자그마한 탄성을 흘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프레이에게 면박을 줬던 어르신들도 곧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표정이 누그러졌다.

         

        “제가 대신 움직이면 요호족 여러분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

        “금안족이 조율해 준다면야…. 그래도 정말 괜찮겠나?”

        “신령님께서 부탁하신 일입니다. 제가 도와 드려야죠.”

         

        고농축 우라늄을 받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려면 자네가 먼저 제국으로 들어가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바람이 약해지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가 변고를 당하지 않으시도록 토벽을 쌓았고, 친구 영지가 약탈당하려는 위험도 제거했다. 이로써 프레이가 피폐해질 만한 변수는 대부분 제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은 건 로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일뿐이겠지.

         

        가서 별일 없으면 좋겠는데.

         

         

        **

         

         

        태풍의 영향은 살리에르 영지에까지 미쳤다.

         

        재난 방지용 스크롤을 떡칠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아가는 기물들이 있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었다.

         

        “하아.”

         

        로테는 오라버니가 타 준 캐모마일 티를 마시며 창가를 바라보았다. 상큼하고 맑은 향기에 노곤했던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태풍이 안 끝나네.”

         

        가끔가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유리창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풍랑 방지 마법을 걸어놓아서 웬만한 바람에는 부서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앗.”

         

        창가 너머를 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멍을 때려버리고 말았다. 

         

        뜬금없이 수인족 영토로 건너간 에테르가 걱정됐다.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헤어지기 직전 느꼈던 그 분위기는 대체 뭘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로테에게 중요한 건 철저한 예습과 복습, 그리고 아버지께서 부탁하신 새 마법의 연구뿐이었다.

         

        그래도 창가 자리가 계속 신경 쓰인다. 로테는 몇 번이고 창문 하나를 바라보다가 얼마 후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녀가 시선을 거두기 무섭게 창문 밖으로는 한 쌍의 금색 눈동자가.

         

        “감 하나는 더럽게 좋네….”

         

        백발의 소녀는 창틀에 매달린 상태로 로테가 있는 서재 내부를 꼼꼼하게 훑었다.

         

        체형도, 목소리도, 말하는 방식이나 얼굴까지.

         

        머리카락이 정확히 반대의 색인 걸 제외하면 에테르와 똑같이 생긴 소녀였다.

         

        칼바람이 수시로 불어와 근처 나뭇가지를 사정없이 후려쳤지만, 소녀가 입고 있는 로브는 조금씩만 펄럭거렸다. 풍랑 방지용 스크롤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덕분에 소녀는 가녀린 체구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로테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해가며 내부를 샅샅이 훑어보던 소녀는 작은 침음을 흘렸다.

         

        “흠, 언니가 안 보이네.”

         

        이상하다. 분명 저 빨강머리와 자주 붙어 다닌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로즈마리가 착각이라도 했나?”

         

        그럴 리는 없다. 싹바가지는 없어도 실력만큼은 확실한 애가 바로 로즈마리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소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창문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사각지대까지 구석구석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백발 소녀에게는 로즈마리처럼 넓은 범위를 탐색할 수 있는 스코프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이처럼 육안으로 보고 확인해야만 한다.

         

        그때였다.

         

        -후우우욱!

         

        어디선가 뽑힌 나무 하나가 소녀의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로테의 눈동자에 신경을 쏟고 있었던 소녀가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빠악! 가녀린 소녀의 뒤통수에 나무가 정면충돌한다.

         

        뒤통수에 위치한 후두엽은 시각을 담당한다. 눈이 멀쩡하더라도 뒷머리를 다치면 실명할 수 있었다.

         

        물론 소녀는 그럴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각을 관장하는 기간이 뒤통수에 있던 건 인간과 마찬가지였다.

         

        아주 잠깐, 소녀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야가 암전된 상태로 몇 번이고 구르길 반복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먹먹해진 양쪽 귀 사이에서는 이런 소리도 울렸다.

         

        -와장창!

         

        창가에 그대로 머리를 들이박은 모양이었다.

         

        “아으.”

         

        자신답지 않은 신음을 토해내며 목덜미를 붙잡았다.

         

        구천지대계 2석이 고작 통나무 하나 못 피해서 이런 꼴이라니. 아랫것들이 보면 폭소하겠지.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너, 너, 넌….”

         

        겁에 질린 듯한 또 다른 소녀의 목소리.

         

        창가에서 불어오는 비바람에 붉은 단발이 휘날렸다. 로테는 당황한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로테! 무슨 일이냐!”

         

        창문 깨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때마침 아버지와 오빠도 서재로 달려왔다. 그 덕에 볼품없는 꼴이 연출되고 말았다.

         

        깨진 창문 앞에서 반쯤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백발의 에테르.

         

        그걸 보고 파들파들 떨고 있는 로테 살리에르까지.

         

        살리에르 백작과 로르웰은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느꼈다. 낭패를 본 건 백발 소녀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살리에르 부자로서는 눈앞의 소녀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여러 개였다. 너무 개수가 많아서 뭐부터 질문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그랬기 때문일까? 맨 처음으로 로르웰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다소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에, 에테르? 너 머리색이 왜 그래…?”

         

        그래, 웃자.

         

        이럴 땐 일단 실실 쪼개는 게 상책이다.

         

        소녀는 몸에 묻은 유리 파편을 툭툭 털어내며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얼떨결에.

         

        정말로 얼떨결에, 절멸급 최초로 체통 박살난 발언을 내뱉고야 말았다.

       

        “염색… 하고 왔어요.”

        

        시발.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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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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