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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좋아.

        

       눈 마주치지 말자.

        

       나는 최대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노력했다.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고개를 돌리는데, 내가 한 박자 늦었는지, 아니면 앨리스와 눈이 마주친 건지, 내 시야 한구석에 살짝 보이던 벨라가 이쪽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지, 따지고 보면 우리와 눈이 마주치건 마주치지 않건 우리한테 장난을 걸 성격이긴 했다. 본편에서 보았던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지난 세월 동안 만나온 기간이 있으니까. 벨라가 얼마나 장난스러운 성격인지, 그리고 자기가 입고 있는 옷에 얼마나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어머, 거기 오빠들!”

        

       하지만 귀족과 대화하던 것조차 끊어버리고 벨라는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같이 대화하고 있던 중년의 귀족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벨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

        

       ‘오빠’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나이 차이가 좀 너무 많이 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내가 벨라라는 사람을 알고 있기에 드는 생각이겠지. 이런 곳에서는 호객행위에 저런 단어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

        

       “네? 저, 저요?”

        

       레오가 화들짝 놀랐다.

        

       벨라와 우리가 있는 곳의 거리는 꽤 되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내 뒤에 있는 사람한테 손 흔드는 것을 보고 나에게 손 흔드는 것인가 착각할 수도 있을 법한 거리.

        

       외치면 소리가 들리는 거리이기도 했고.

        

       실제로 벨라의 목소리는 꽤 컸다. 여기까지 들리라는 듯이.

        

       벨라의 부름에 화들짝 놀란 레오를 클레어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질투, 라기보다는 ‘널 부르는 것일 리가 없잖아’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지금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벨라가 황녀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평민 출신이라고 가정한다면 주변을 돌아다니는 많은 귀족 아저씨들을 두고 굳이 우리를 부를 이유가 없었다. 교복이 아니라 다른 복장이라고 착각한다고 하더라도 군복이고.

        

       학생이건 군인이건 부티 나는 귀족들보다는 가진 돈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 거기 잘생긴 오빠.”

        

       하지만 벨라는 레오에게 똑바로 다가오며 계속 말했다. 이번에는 레오뿐만이 아니라 클레어도 당황했다.

        

       “…….”

        

       당연히 나와 앨리스는 그냥 어이가 없었고.

        

       아니, 잠입이라면서?

        

       잠입 중이라고 해도 이렇게 나올 거라는 생각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벨라가 신분을 숨기고 움직인다고 자기 성격을 딱히 숨길 것 같지는 않으니까.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벨라의 눈에는 무도회 가면…… 아니지, 그보다는 여자친구가 밤의 잠자리에서 남자친구에게 서비스로 바니걸 복장을 할 때 쓸 것 같은 눈 주위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대놓고 싸구려 재질에, 하얀 솜털 같은 것으로 치장해두어서 절대로 귀족들이 무도회에서 쓸 것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

        

       굳은 표정인 건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아까 이 근처에 도착한 이후부터 쭉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사실상 군인이 통치 중인 자치국과 아주 다른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흐흥.”

        

       바로 근처까지 온 벨라는 허리를 살짝 숙여 레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남자와 비교했을 때도 그리 키가 작지 않은 벨라가 못해도 10센티미터는 넘어 보이는 하이힐을 신고 있으니 눈높이가 레오보다 높았던 탓이다. 다리가 시원하게 쭉 뻗어있었고, 허리는 얇았지만, 가슴은 시원하게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 사람이 허리를 숙이니 특정 부위가 아주 심하게 강조되어 보일 수밖에.

        

       “여긴 무슨 일로 왔어? 혹시 카지노에 관심 있어?”

        

       “네? 아, 저, 그.”

        

       상대가 말을 걸어오자 레오는 똑바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레오를 보는 벨라는 옆에 서 있는 나나 앨리스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레오의 손을 잡아 올렸다.

        

       “복장을 보니 어딘가의 귀족 도련님이지? 나랑 같이 놀지 않을래? 내가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줄 수 있는데. 저기 카지노도 잘 알고 있고, 이 주변 지리도 잘 알거든. 아니면, 호텔이라던가?”

        

       “…….”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른 상태였다면 저런 벨라한테서 뭔가 느꼈을지도 모른다. 성적인 매력이라던가.

        

       하지만…… 그런 이야기 있지 않은가. 아무리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도 너무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게 되어서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는 이야기.

        

       지금 내가 그랬다.

        

       벨라가 딱히 그런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뭐랄까, 말리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잠—”

        

       하지만 클레어는 달랐던 모양이다. 레오를 남자라고 보고 있고 아니고 이전에, 클레어는 레오와 서로 누가 동생이니 아니니 하면서 싸우던 관계.

        

       하긴, 나라도 내 여동생이 길가의 호스트한테 홀리기 직전이라면 나서서 쫓아내려고 했을 거다.

        

       하지만, 그런 클레어가 나서기도 전에, 한 남자가 소리쳤다.

        

       “어이!”

        

       잔뜩 화가 난 채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 양반은 조금 전 벨라와 대화를 나누던 그 아저씨였다.

        

       보통 이런 곳에서 방탕하게 노는 귀족의 스테레오 타입은 아니었다. 몸을 확실하게 관리하는지 이런저런 장식이 잔뜩 달린 옷 너머로도 잘 단련된 신체가 보였고, 얼굴도…… 주인공 일행의 남주인공들처럼 대놓고 미소년은 아니었지만, 꽤 반반했다.

        

       물론 그런 것을 다 따지더라도 어딘가의 이름 없는 벼락부자라는 인상은 들었다.

        

       ……아니지, 정말로 ‘귀족’이라는 나의 평가는 잘못된 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진짜 귀족이라면 우리가 입은 교복을 보고 무서워서 근처에도 오지 않거나, 아니면 적어도 앨리스의 얼굴 정도는 알아봤을 테니까.

        

       게다가 한 발자국 떨어져 이 상황을 흥미롭게 보고 있던 제이크도 있었고. 무려 황녀와 공작이 있는데 그 얼굴을 정확하게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계에서 먼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이야기가 잘 풀리고 있었잖아.”

        

       ……아무래도 벨라의 사탕발림 소리에 막 넘어가던 참이었던 모양이다.

        

       “어머. 하지만 나는 이쪽에 더 마음이 쏠렸는걸. 봐,”

        

       벨라가 레오의 양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은 채 옆으로 끌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 얼굴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둔 뒤, 벨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역시 이쪽이 훨씬 예쁘게 생겼네.”

        

       미성년자더러 무슨 소리야?

        

       ……하긴, 이런 게임에서 십 대 중반 정도는 사실상 준 성인으로 취급되고는 하지만.

        

       “…….”

        

       이쪽을 보는 귀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저렇게 붉어지고 나니까 아까 그 얼굴을 보고 느꼈던 반반함이 싹 날아가 버렸다.

        

       “아, 잠깐!”

        

       아까 벨라와 레오 사이로 들어오려던 클레어가 이번에도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레오 때문에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얏!”

        

       벨라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귀족이 성큼성큼 다가와 벨라의 팔을 잡았기 때문이다.

        

       “…….”

        

       음…….

        

       지금 상황을 보고 나서 확신이 들었다.

        

       벨라는 분명 우리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기 위해서 저 남자와 대화하는 도중에 말을 끊고 이쪽으로 온 것이다. 앨리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굉장히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

        

       내 옆에 서서 상황을 보고 있던 레나가 그렇게 물어왔다.

        

       으음…….

        

       여기서 그냥 보고만 있으면 이미지가 별로 좋지 못하게 박히려나.

        

       내가 말없이 앞으로 나가자, 앨리스가 작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하지만 나를 포함한 여성진이 모두 나설 필요는 없었다.

        

       벨라의 팔을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을, 역시 다른 남자가 잡고 있었으니까.

        

       제이크였다.

        

       “숙녀의 팔을 이런 식으로 우악스럽게 잡으면 곤란하지.”

        

       제이크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숙녀는 무슨—”

        

       남자는 제이크의 말을 무시하고 팔을 움직이려다가,

        

       “어?”

        

       순간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팔이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다. 세게 뒤로 잡아당겨도, 비틀어도, 남자의 팔을 잡은 제이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 아악……!”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곧 그 팔을 꽉 잡고 있기도 하다는 뜻이다. 제이크가 손에 점점 더 힘을 주자, 남자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손, 손……!”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비틀다가 결국 벨라의 팔을 놓았다. 벨라는 얼른 거기서 팔을 빼고 반대쪽 손으로 감싸 쥐었다. 조금 전의 기 세 보이던 표정은 어디로 가고, 무슨 애절해 보이는 여인의 표정이 되어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제이크는 남자가 손을 놓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기 손도 놓았다. 끙끙대며 뒤로 빠지려던 남자는 자기를 당기는 힘이 사라지자 꼴사납게 뒤로 벌렁 넘어져 버렸다.

        

       “네놈, 내가 누구인지 알고!”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냐?”

        

       남자의 외침에 제이크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하자, 남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제야 이곳이 어떤 곳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돈 많은 이의 위에는 더 돈 많은 이가 있고, 신분 위에는 또 다른 신분이 있는 법이니까.

        

       각자 자기 신분을 대놓고 말하지 않고 다녀서 그렇지, 여기에는 고위 귀족도, 갑부들도 넘쳐난다.

        

       “…….”

        

       결국, 남자는 얼른 일어나 옷도 다 털지 못하고 도망가는 쪽을 택했다.

        

       “괜찮으신가요?”

        

       조금 전에는 이곳이 천박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상황을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뀐 것인지 샤를로트가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아, 네, 네……. 괜찮아요.”

        

       기가 막히네, 진짜.

        

       조금 전의 태도를 완전히 치워버리고 가련하게 말하는 벨라를 보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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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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