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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긴장의 순간이다.

    루크는 자세를 낮추고, 살짝 무릎을 굽힌채, 얼마든지 달려나갈 준비를 취한다.

    집중한다.

    마법사에게 집중은 호흡과도 같은 것, 무슨 뜻이냐면, 숨을 쉬지 못하는 동물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고요하게 서클이 도는 감각만이 선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마법회’가 아닌 ‘운동회’다.

    마법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육체의 능력만으로 승리해야 하는 것, 현재까지는 모든 삶을 마법과 마나와 함께해왔기에, 순수한 육체의 달리기만으로 승리를 장담할수는 없었다.

    “미안해, 루크! 더 줄일수가 없었어!”

    “메리, 미안해 말거라. 최선을 다했잖느냐.”

    루크는 뒷쪽의 메리가 건네는 배턴이 꼬리에 닿는 느낌이 들자마자 그것을 휘감고는 호흡을 멈췄다.

    격차는 확실히 넓다. 초반부에 한 학생이 호되게 넘어지는 바람에 벌어진 격차를 미처 좁히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미 선두와의 격차는 반바퀴. 이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확실히 미안하다고 할 만도 하다. 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해주어야지.’

    —–

    신이 세계를 만들기 전에 먼저 생성했다는 빛의 원천이자 생명의 상징이 모두의 정수리 위에 위치할 시각, 그리 한가로운 분위기 속에서.

    앙-.

    입을 크게 벌렸다.

    답싹, 그 입의 주인은 제 얼굴만한 햄버거를 들고서는 그 끄트머리를 가능한만큼 깨물고있는 디아나였다.

    너무 크게 씹었는지, 입가에 온통 소스 투성이였다.

    루크는 그런 모습의 디아나를 향해 피식 웃으며 입가를 손으로 닦아주고는 말했다.

    “디아나, 천천히 먹거라.”

    “햄버거 너무 맛있다!”

    “하긴, 그렇긴 하지.”

    루크는 일전에 용으로 변했을 때, 다이튼이 만들어 자신에게 주었던 햄버거의 맛을 떠올렸다.

    그때의 기억은 벌써 대부분은 기억의 사토속에 묻혀 오래된 꿈의 내용처럼 희미한 상태였음에도, 떠올릴 정도로 환상적인 맛의 조화였으니 말이다.

    사실은, 그런 음식이 존재하긴 했냐는 느낌도 있었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음식이라는 사실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락이 햄버거라는 말에 루크는 내심크게 기대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결코 배신당하는 법이 없었다.

    “확실히, 정말로 맛있군.”

    루크가 행복한 미소를 짓고있는 모습을 본 파이는 이제는 체념했다는 듯 바닥에 착 달라붙어선 루크에게서 등을 돌렸다.

    루크는 그런 불쌍한 정령에게 해줄 수 있는게 쓰다듬어주는 것 뿐이라, 꼬리로 어루어만져주었다.

    그리하니 조금 마음이 풀리는지 기분좋은 소음을 내는 파이.

    예르나는 루크가 디아나를 챙겨주는 모습이 흐뭇해보여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그렇게 맛있니?”

    “정말일세, 아주 좋아. 그대는 어떤가?”

    예르나는 살짝 시선을 내리자 루크의 꼬리가 꼼질거리는 것을 보며, 루크는 기분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콧노래를 부르거나 귀를 쫑긋거리는걸로는 부족했던걸까.

    이제는 아예 꼬리까지 꾸물거린다니 말이다.

    ‘보통 꼬리가 나면 이제 귀여울 시기는 지났다고들 하던데 말이야…….’

    루크는 꼬리가 났다고해서 바로 사춘기가 오지는 않을 모양이다.

    예르나는 루크를 쓰다듬던 손을 거둬 튀긴 감자를 조금 집어먹으며 웃었다.

    “다이튼, 확실히 요리는 잘한단 말이지.”

    식물성기름으로 튀긴 엘프식 감자튀김과 거기에 잘게 뿌려둔 파슬리의 향기는 엘프가 먹기에도 부담없고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뭐, 그다지 어려운 요리는 아니지만서도, 정성과 배려가 듬뿍 담겨져 있다는 사실은 알겠다.

    “음, 맛있네.”

    그렇게 감자튀김을 하나씩 집어먹으며 중얼거린다.

    “결국, 초등부는 모두 청팀의 승리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군.”

    개인달리기, 장애물달리기, 줄넘기, 이어달리기 등등. 많은 종목이 있었으나 모두 루크의 승리였다.

    때문에 초등부의 점수는 거의 완벽하게 청팀의 우세였다.

    게다가 마지막의 그 이어달리기에서 보여준 대역전극은, 엄청난 환호를 받기까지 했다.

    “루, 달리기도 엄청 잘하네. 운동을 잘 하는건 알고 있었지만.”

    “달리기쯤이야. 달리기는 삶에서도 굉장히 유용하잖느냐.”

    “달리기가 유용하다고?”

    “뭐, 단순히 어딘가에서 도망치는데만 해도 충분히 유용하잖느냐?”

    루크는 사실 어릴적엔 그리 훌륭한 귀족은 아니었다.

    귀족으로서 지켜야할 수많은 예의범절과 덕목, 그런것들을 공부하고있자면 왜 그래야 하는가 매번 의문이었다.

    따라서 도망을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케일은 루크를 잡아오겠다며 같이 달리곤 했다.

    그리 도망을 치다보면 달리기시합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참 많았지.

    ‘케일, 그대같은 친우를 내가 다시 만들 수 있을까.’

    루크의 아련한 미소를 바라본 예르나는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

    실험실에 갇혀 인체실험을 받았을 루크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도망칠 일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달리기도 잘하게 되었던걸까?

    “루……. 달리기가 그렇게 좋아?”

    “뭐, 달리는건 원체 좋았다네.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드니까.”

    “그러니……?”

    “그래. 자유라네.”

    수많은 책임과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권력은 어차피 원치 않는 힘이었으니, 루크는 시골의 마을로 도망쳐 자유를 찾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자유로울수는 없었던가.

    ‘내가 어디있는지 참 잘만 찾아내더군. 레네.’

    루크가 옛날의 일을 생각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자, 벌써 또 안좋은 생각으로 꼬리를 물 수밖에 없는 예르나는 채 알지 못한채 루크는 태연하게 차를 들이켰다.

    후룩.

    그것은 피로 회복의 영약의 효과를 어린이의 육체에 맞춘 특제품이다.

    단 한잔만으로 피로감을 덜어내고 육체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키는 영약.

    그렇기에 루크는 수많은 종목에 참가하면서도 그다지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점수는 비슷하군.”

    그랬다. 루크가 아무리 전종목 출전을 이야기했다곤 해도, 고작 초등부의 작은 승리.

    고등부 학생경기엔 출범할 수 없었고, 따라서 전체적인 점수로 따지면 더욱 높은 점수가 걸린 고등부쪽의 점수가 더욱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 지고있다니.’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말이 딱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정도로 고등부가 손을 쓰지 못할줄이야.

    퍼뜩 정신을 차린듯한 예르나가 애써 웃음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생각보다 점수가 크게 밀리지 않네, 백팀도.”

    “흐음.”

    그래도 역시 경쟁심이라는게 존재하는 마법사로서, 승리하지 못하는건 성에 차지 않는다.

    “어쩔 수 없군.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

    “경기시간 종료!”

    루크는 날아오는 셔틀콕을 손으로 잡아채며 중얼거렸다.

    “끝이로군. 수고했네.”

    “헉, 헉. 수고했어…….”

    급격히 가빠진 숨을 몰아쉬는 상대편의 아이, 반면 루크는 조금의 흐트러짐조차 없었다.

    스코어는 1점차이로 루크의 승리.

    꽤 접전인 경기였다. 그것이 비록 루크의 연출로 이뤄진 상황일지라도 말이다.

    실력이 초등부 아이치고 좋은것은 그가 토너먼트로 올라온 상대라서일까.

    그동안 운동회의 준비는 이러한 토너먼트형 종목에서 운동회에서 펼쳐질 결승전인원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하루에도 수십번의 종목을 오가며 몸을 혹사시켜야 했었지만.

    “승자는 2학년 1반, 루크 이루시!”

    “와아아-!”

    그리고 루크의 승리가 선언되자마자 터져나오는 환호성.

    이어달리기의 역전극이 눈에 띈걸까, 루크의 경기를 응원하는 인파가 꽤 몰렸다.

    거의 모든 종목에 출전하는데다, 그 모든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연출하는 루크의 솜씨탓에 루크의 경기를 보지 않는게 손해라는 의견이 퍼졌기 때문이다.

    “초등부 경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어린데도 진짜 잘하네. 역시 티그 아카데미인가?”

    그런 목소리들을 뒤로하고, 루크는 다음 경기를 떠올려보았다.

    “으음, 2인3각이라.”

    두명이 발 한쪽을 서로 묶고 달리기를 한다는 발상의 협동종목이었다.

    그리고 루크의 상대는 시루드였다.

    키가 대충 비슷하기도 하고, 표면적으로 꽤 친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

    시루드는 살짝 곤란했다.

    “잘 부탁하네, 시루드. 협력해서, 반드시 이겨보지.”

    “으, 응.”

    옆에서 상큼한 미소를 건네며 어깨동무를 걸친 이 작은 여자애 때문이었다.

    출전 가능한 모든 종목에 참가신청을 한 것도 모자라서, 2인3각같은 협동종목에까지 이름을 올렸던것, 심지어 그것에 자신을 끌어들인 것이다.

    처음엔 꽤 당황스러웠다.

    따라와보래서 갔더니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까 자신의 발은 루크와 묶여있었으니까.

    일단 이유는 충분했다. 키도 비슷했고, 뿔도 없었으며, 적당히 신체접촉이 곤란하지 않을만큼 친하기도 했으니까.

    확실히, 이제와서 어깨동무 수준의 신체접촉은 곤란하지 않지.

    서로 가슴까지 만져본 사이 아니던가.

    이렇게 말하니 되게 이상한데, 그냥 서로 서로의 서클을 느꼈다는 말이었다.

    뭐, 그게 싫은건 아니었다.

    루크는 몸이 닿으면 엄청 부드러운데다, 왠지 좋은 향기도 났고…….

    ‘땀냄새가 왜 향긋한거지…….’ 

    여자애들은 다 그런가? 모르겠다. 여자애 땀냄새라봤자 루크의 것밖에 맡아보지 못했는걸.

    ‘잠깐, 이 생각 너무 변태같지않나.’

    아무튼, 이 냄새따위는 더이상 신경쓰지 말도록 하자.

    그러니 왠지 이번엔 새하얀 목덜미에 저 귀여운 고양이패턴의 노란색 반창고가 어쩐지 계속해서 시선을 빼앗는다.

    저 반창고에 대해 물어보면 루크는 그냥 두면 간지러워서 붙여둔 거라고 하던데…….

    마치 케이크 위에 장식된 딸기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게 힘들다.

    ‘볼때마다 신경쓰여.’

    시루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채 가만히 있자, 루크는 참 이상하다는 듯 시루드를 향해 물었다.

    “시루드? 뭘 그리 빤히 보느냐.”

    “응? 아, 아무것도!”

    시루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반창고를 붙여둔걸 만져보고싶다니. 별 이상한 생각이 다 있다.

    “제자리에!”

    심판의 외침에 시루드는 잡념을 떨쳐냈다.

    그래, 일단 달리는게 먼저다.

    그리 준비를 하고 있으니,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둘, 꽤 사이 좋아보이네~.”

    비슷한 생김새의 남자수인 아이들. 인상적인 동그란 반점의 무늬를 보면 아마도 치타일 것이다.

    치타 쌍둥이라, 강적이 되리라.

    “뭐, 그렇단다. 시루드와는 꽤 친하지.”

    “오~.”

    시루드를 향해 귓속말로 중얼거리는 그.

    “쟤, 네 여친이냐?”

    “그, 그럴리가!”

    시루드가 크게 당황하며 외치자 루크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쓸었다.

    ——

    피유웅- 펑!

    심판의 지팡이에서 터져나온 1클래스의 신호마법이 출발의 신호를 알렸다.

    타닥! 

    모두가 일제히 달려나갔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맞추며 달리는 아이들.

    하지만 시루드는 미처 달리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여친이냐니? 그런식으로 생각해본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뭐, 싫단건 아니지만…….’

    딱, 딱!

    루크는 멍한 표정의 시루드의 눈앞에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시루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게냐?”

    “아, 미안! 잠깐 딴 생각을 했어!”

    시루드와 루크의 속도는 준수한 편이었으나, 1등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허어, 저건 너무 빠르군.”

    “으, 응.”

    “……안되겠구나.”

    “응?”

    시루드는 무엇때문인지 모를 소름이 돋아났다.

    “시루드, 나는 이기고싶다. 그러니 협조해주겠느냐?”

    “뭐, 뭘?”

    왜 저 말이 이토록 불안할까.

    “한쪽 다리를 들거라. 몸에는 힘을 빼고.”

    그리 말하고나서 루크는 팔과 꼬리로 시루드의 허리를 감았다.

    그리고, 번쩍! 하고 들어올린다.

    시루드는 갑자기 들어올려진 몸에 당황하여 외쳤다.

    “뭐, 뭐얏?!”

    “발버둥치지 말고, 몸에 힘을 빼거라! 날 믿고!”

    “으아, 아! 너 왜이렇게 힘이 세!!”

    “입 닫거라, 혀를 씹을지도 모르니까!”

    이거 반칙이 아닌가? 2인3각에 이러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근데 진짜로 2인3각에 파트너를 들고 뛰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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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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