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Home EP.91 EP.91

EP.91

       베니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옷 좀 벗어줄래?”

       

       “?”

       

       야한 일 안 시킨다며.

       

       설마 베니에게 알몸 정도는 야한 일의 축에 들지도 않는 건가.

       

       이 정도면 역전 세계건 아니건 그냥 정조 관념이 박살 난 사람이 아닐까?

       

       그런데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하다. 알몸으로도 부족하다면 어느 정도 되어야 베니가 야하다고 느끼는 걸까.

       

       “알몸 도게자…?”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한마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이쪽의 대화를 염탐하던 엘리가 즉시 카운터를 박차고 나왔다.

       

       “베니. 이리로.”

       

       “자, 잠깐! 방금 건 오해가 있어 엘리 언니! 애초에 내가 한 말도 아니잖아!”

       

       “됐으니까 진실의 방으로.”

       

       “끼야아아악!”

       

       엘리에게 귀를 붙잡혀 창고로 끌려가는 베니. 도움을 요청하듯, 이쪽을 향해 팔을 휘적이길래 나도 마주 흔들어 주었다.

       

       “바이바이….”

       

       “도와달라고 이 나쁜 놈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굳게 닫힌 창고의 문. 엘리 대신 카운터를 봐주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너덜너덜해진 베니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나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하트 문양이 그려진 보라색 눈동자가 격정적으로 일렁였다.

       

       “야!”

       

       물론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는 엘리의 모습에 다시 쭈글쭈글해졌지만.

       

       “알몸이 되라는 게 아니라 평소 몸에 걸치고 다니는 물건을 하나 달라는 거였어….”

       

       “그럼 처음부터 그리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저도 엘리도 괜히 오해해 버렸잖아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대로 양말을 벗어 던져주었다. 

       

       “이거면 충분한가요?”

       

       “응.”

       

       검지와 엄지로 조심스레 내 양말을 집어 든 베니가 그대로 뒤를 돌아 자신의 그림자에 떨궜다.

       

       신기하게도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늪에 빠져들듯 느릿하게 그림자 안쪽으로 떨어지는 양말.

       

       아마 그 그림자 괴물이 있는 곳으로 향한 거겠지.

       

       잠시 자신의 그림자를 노려보던 베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 정도면 한동안은 괜찮겠네.”

       

       “뭘 하신 건가요?”

       

       “너를 마음에 들어 한 것 같으니까 중간에 나와서 방해하지 말라고 장난감을 던져준 거지. 이런 거라도 없으면 진짜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올 테니까.”

       

       “…그 정도인가요?”

       

       “다른 좋은 이명을 다 제쳐두고 나한테 크리피 위치라는 이명이 붙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지.”

       

       담담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베니의 표정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자, 그럼 이제 내 공방으로 가자. 거기서 네가 해야 할 일을 간단히 알려줄게. 덤으로 마법도 좀 봐주고.”

       

       “지금요? 완전 밤인데….”

       

       “…앗.”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베니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입술 사이로 반짝이는 뾰족 이빨이 참 인상적이다.

       

       한참을 우물쭈물대던 베니가 한쪽 발로 바닥을 파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혹시 조금만 더 벗어줄 수 있어?”

       

       “양말 말이죠? 잠시만요.”

       

       반대쪽 양말까지 벗어주자, 그대로 받아들어 작은 상자 안에 집어넣는다.

       

       “흠흠. 요즘 리디아랑 같이 미궁에 들어간다고 했지? 나도 따라가서 구경 좀 할게. 겸사겸사 어떤 식으로 마법을 쓰는지도 봐보고 말이야.”

       

       “부산물 정산이 끝난 다음에 공방에 들르면 되겠네요.”

       

       “응. 바로 그거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베니가 몇 대 얻어맞은 탓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그리고는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내일 리디아랑 같이 올게. 일당도 내일부터.”

       

       “좋아요. 그럼 양말값만 주고 가세요.”

       

       “???”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가 공짜로 드린 줄 아세요? 다 베니의 실험에 필요하다니까 드린 거죠.”

       

       “…알았어. 양말값이면 10쿠퍼면 충분하겠지?”

       

       “흐응. 제 체취가 묻었으니 1실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뭐, 좋아요. 이번에는 10쿠퍼로 봐 드리죠!”

       

       “…….”

       

       어이없어하는 기색으로 10쿠퍼를 꺼내 건네는 베니. 그런 그녀를 배웅해 주고는 쪼르르 카운터로 달려가 동전을 내밀었다.

       

       “엘리! 우유 한잔 시원하게 부탁드려요!”

       

       “저번에 말했던 것 같은데…나름 고급 우유라 10쿠퍼로는 택도 없어.”

       

       “그럼 10쿠퍼에 더불어 제 맨발을 핥을 기회를 드릴게요.”

       

       “아니, 그게 무슨 이득이…이득이…….”

       

       헛웃음을 지으려다 말고 멈칫한 엘리. 고장난 축음기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우유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도 괜찮은 거지?”

       

       “아예 증서를 만들어 드릴 테니 기다려 보세요.”

       

       저번에 글 쓰려고 샀던 종이 뭉치 중 한 장을 부욱 뜯어, 그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적었다.

       

       -10분간 발 할짝할짝 1회권

       

       만들고 보니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아기자기한 그림도 몇 개 그려뒀다.

       

       “여기요!”

       

       잠시 복잡한 표정이 된 엘리였으나, 손은 누가 볼새라 잽싸게 쿠폰을 낚아채 품에 넣고 있었다.

       

       하여간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란 말이지.

       

       ***

       

       다음 날 아침. 베니는 말했던 대로 리디아와 함께 요정과 은화를 찾아왔다.

       

       풀 세팅을 마친 내 모습을 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근처 의자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좋아 좋아. 기본은 되어있는 것 같네. 리디아가 가르쳤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혹시나 해서 묻는데, 인사할 때 어디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자꾸 어딜 올라가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그리 묻자, 베니가 아닌 리디아가 내 의문에 답해주었다.

       

       “베니는 키가 작잖아. 그래서 기선제압이랍시고 처음 인사할 때는 높은 곳에 올라가.”

       

       “리디아?! 그건 말하지 말랬잖아!”

       

       “말 안 했어도 하루 이틀이면 다 알게 될 텐데.”

       

       “그래도오!”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쓰는 베니. 그런 그녀의 모습에 키득이며 말을 이었다.

       

       “전 베니 키가 작아서 좋은데요? 다른 사람들처럼 올려다볼 필요가 없잖아요.”

       

       “난 그게 싫다니까?!”

       

       “누가 뭐래요? 그냥 제가 좋다는 거지. 아무튼 이제 슬슬 출발하죠. 저 솔직히 새로 얻은 것들 시험해 볼 생각에 좀 기대된단 말이에요.”

       

       “응. 이번에도 1층? 아니면….”

       

       “그냥 바로 2층 가죠. 이제 1층에서 건질 거라고는 자이언트 멘티스와 전투뿐인데…그건 2층의 스파이더 퀸으로 대신할 수 있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 좋아. 그럼 들어가기 전에 길드의 보급품 상점에 잠시 들러야겠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랜턴은 사둔 게 없으니.”

       

       “난 있어. 마탑의 올해 신작. 마정석 충전식이지만 마력 직접 충전도 가능. 10단계의 출력 설정. 시야 왜곡을 이용한 은신 간파 기능 탑재. 디자인은 공방 연합이 맡음.”

       

       “…얼마짜리죠?”

       

       “단돈 5골드. 원래는 6골드랬는데 VIP 할인 받았어. 엣헴 엣헴.”

       

       허리에 손을 얹고 잘난체하는 리디아. 어서 빨리 이 대단한 업적을 칭찬해달라며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포즈였지만….

       

       “장비충.”

       

       “……!”

       

       “애초에 마법사인 베니랑 파티면서 그렇게 비싼 랜턴이 필요해요?”

       

       “베, 베니랑 떨어질 수도 있잖아.”

       

       “그렇다 해도 이 정도일 필요는 없죠. 차라리 랜턴을 적당한 걸로 사고 남는 돈으로 비상식량이나, 생존 키트를 준비해 두는 게 이득 아닌가요?”

       

       “그건 이미 다 샀어.”

       

       “?”

       

       “흐흫. 최고급으로 전부 다 사고 남은 돈으로 좋은 랜턴 산 거야.”

       

       “…….”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을 잃을 차례였다.

       

       둘 다 자잘한 소모품이지만, 그래도 급이 올라갈수록 비싸지는 것들의 대명사잖아.

       

       한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른 빵이라거나, 간이 안전지대 설치, 장거리 통신용 마도구, 포션 등등.

       

       한두 푼이 아니었을 텐데, 그걸 전부 최고급으로 맞췄다고? 그러고도 돈이 남아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랜턴까지 비싼 걸로 샀고?

       

       그 돈이면 가챠가 몇 번이야…….

       

       “핫!”

       

       족히 수십, 어쩌면 수백 골드에 달하는 금액으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가챠인 시점에서 나도 리디아와 크게 다를 건 없나.

       

       한결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리디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비상식량 쪽은 나중에 먹을 일 생기면 조금만 잘라주세요.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하거든요.”

       

       “그때 요나가 옆에 있다면 말이지.”

       

       훈훈한 분위기로 소소한 약속을 나누는 나와 리디아. 그런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것은 이번에도 베니였다.

       

       “자, 잠시만 기다려 봐! 분명 한 달 전부터 엘리 언니의 의뢰를 받아 가르치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쉬는 기간에는 짐꾼으로 데리고 다닐 예정이고 말이야.”

       

       “응. 맞는데?”

       

       “그런데 2층이라고? 저 나이인데? 모험가 경력 겨우 한달인데?”

       

       “사실이야.”

       

       짧게 대답하고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엘리. 분위기를 보아하니, 베니에게 자세한 사정을 밝히진 않았나 보다.

       

       내게 선택권을 넘겨준 리디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까딱여 주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잡았거든요.”

       

       “이잉?”

       

       “이거 비밀이에요?”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그리 말하자 베니의 표정이 와락 찌푸려졌다.

       

       “거짓말하지 마! 1층에 계층 수호자가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든데, 그걸 쓰러뜨리기까지 했다고?!”

       

       “그럼 저희 내기 하나 할까요? 진 사람이 오늘 하루 짐꾼 역할 하는 걸루.”

       

       참고로 난 이기는 내기만 한다.

       

       ***

       

       비석을 통해 2층에 도착한 순간. 베니가 바닥에 철푸덕 무너져 내렸다.

       

       “…솔직히 말해. 너도 사실 나처럼 생긴 것만 어리고 실제 나이는 많은 거 아냐?”

       

       “응애. 나, 아기 요나. 고아라 실제 나이 몰라요.”

       

       “…….”

       

       베니가 말없이 내가 메고 있는 가방을 대신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후우…니케 지금껏 조금씩 모아둔 재화 전부 써서 크라운 뽑았네용.

    현질은 없었지만, 마음이 공허하다…

    다음화 보기


           


EP.91

EP.91





       베니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옷 좀 벗어줄래?”


       


       “?”


       


       야한 일 안 시킨다며.


       


       설마 베니에게 알몸 정도는 야한 일의 축에 들지도 않는 건가.


       


       이 정도면 역전 세계건 아니건 그냥 정조 관념이 박살 난 사람이 아닐까?


       


       그런데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하다. 알몸으로도 부족하다면 어느 정도 되어야 베니가 야하다고 느끼는 걸까.


       


       “알몸 도게자…?”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한마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이쪽의 대화를 염탐하던 엘리가 즉시 카운터를 박차고 나왔다.


       


       “베니. 이리로.”


       


       “자, 잠깐! 방금 건 오해가 있어 엘리 언니! 애초에 내가 한 말도 아니잖아!”


       


       “됐으니까 진실의 방으로.”


       


       “끼야아아악!”


       


       엘리에게 귀를 붙잡혀 창고로 끌려가는 베니. 도움을 요청하듯, 이쪽을 향해 팔을 휘적이길래 나도 마주 흔들어 주었다.


       


       “바이바이….”


       


       “도와달라고 이 나쁜 놈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굳게 닫힌 창고의 문. 엘리 대신 카운터를 봐주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너덜너덜해진 베니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나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하트 문양이 그려진 보라색 눈동자가 격정적으로 일렁였다.


       


       “야!”


       


       물론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는 엘리의 모습에 다시 쭈글쭈글해졌지만.


       


       “알몸이 되라는 게 아니라 평소 몸에 걸치고 다니는 물건을 하나 달라는 거였어….”


       


       “그럼 처음부터 그리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저도 엘리도 괜히 오해해 버렸잖아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대로 양말을 벗어 던져주었다. 


       


       “이거면 충분한가요?”


       


       “응.”


       


       검지와 엄지로 조심스레 내 양말을 집어 든 베니가 그대로 뒤를 돌아 자신의 그림자에 떨궜다.


       


       신기하게도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늪에 빠져들듯 느릿하게 그림자 안쪽으로 떨어지는 양말.


       


       아마 그 그림자 괴물이 있는 곳으로 향한 거겠지.


       


       잠시 자신의 그림자를 노려보던 베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 정도면 한동안은 괜찮겠네.”


       


       “뭘 하신 건가요?”


       


       “너를 마음에 들어 한 것 같으니까 중간에 나와서 방해하지 말라고 장난감을 던져준 거지. 이런 거라도 없으면 진짜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올 테니까.”


       


       “…그 정도인가요?”


       


       “다른 좋은 이명을 다 제쳐두고 나한테 크리피 위치라는 이명이 붙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지.”


       


       담담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베니의 표정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자, 그럼 이제 내 공방으로 가자. 거기서 네가 해야 할 일을 간단히 알려줄게. 덤으로 마법도 좀 봐주고.”


       


       “지금요? 완전 밤인데….”


       


       “…앗.”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베니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입술 사이로 반짝이는 뾰족 이빨이 참 인상적이다.


       


       한참을 우물쭈물대던 베니가 한쪽 발로 바닥을 파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혹시 조금만 더 벗어줄 수 있어?”


       


       “양말 말이죠? 잠시만요.”


       


       반대쪽 양말까지 벗어주자, 그대로 받아들어 작은 상자 안에 집어넣는다.


       


       “흠흠. 요즘 리디아랑 같이 미궁에 들어간다고 했지? 나도 따라가서 구경 좀 할게. 겸사겸사 어떤 식으로 마법을 쓰는지도 봐보고 말이야.”


       


       “부산물 정산이 끝난 다음에 공방에 들르면 되겠네요.”


       


       “응. 바로 그거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베니가 몇 대 얻어맞은 탓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그리고는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내일 리디아랑 같이 올게. 일당도 내일부터.”


       


       “좋아요. 그럼 양말값만 주고 가세요.”


       


       “???”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가 공짜로 드린 줄 아세요? 다 베니의 실험에 필요하다니까 드린 거죠.”


       


       “…알았어. 양말값이면 10쿠퍼면 충분하겠지?”


       


       “흐응. 제 체취가 묻었으니 1실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뭐, 좋아요. 이번에는 10쿠퍼로 봐 드리죠!”


       


       “…….”


       


       어이없어하는 기색으로 10쿠퍼를 꺼내 건네는 베니. 그런 그녀를 배웅해 주고는 쪼르르 카운터로 달려가 동전을 내밀었다.


       


       “엘리! 우유 한잔 시원하게 부탁드려요!”


       


       “저번에 말했던 것 같은데…나름 고급 우유라 10쿠퍼로는 택도 없어.”


       


       “그럼 10쿠퍼에 더불어 제 맨발을 핥을 기회를 드릴게요.”


       


       “아니, 그게 무슨 이득이…이득이…….”


       


       헛웃음을 지으려다 말고 멈칫한 엘리. 고장난 축음기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우유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도 괜찮은 거지?”


       


       “아예 증서를 만들어 드릴 테니 기다려 보세요.”


       


       저번에 글 쓰려고 샀던 종이 뭉치 중 한 장을 부욱 뜯어, 그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적었다.


       


       -10분간 발 할짝할짝 1회권


       


       만들고 보니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아기자기한 그림도 몇 개 그려뒀다.


       


       “여기요!”


       


       잠시 복잡한 표정이 된 엘리였으나, 손은 누가 볼새라 잽싸게 쿠폰을 낚아채 품에 넣고 있었다.


       


       하여간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란 말이지.


       


       ***


       


       다음 날 아침. 베니는 말했던 대로 리디아와 함께 요정과 은화를 찾아왔다.


       


       풀 세팅을 마친 내 모습을 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근처 의자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좋아 좋아. 기본은 되어있는 것 같네. 리디아가 가르쳤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혹시나 해서 묻는데, 인사할 때 어디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자꾸 어딜 올라가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그리 묻자, 베니가 아닌 리디아가 내 의문에 답해주었다.


       


       “베니는 키가 작잖아. 그래서 기선제압이랍시고 처음 인사할 때는 높은 곳에 올라가.”


       


       “리디아?! 그건 말하지 말랬잖아!”


       


       “말 안 했어도 하루 이틀이면 다 알게 될 텐데.”


       


       “그래도오!”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쓰는 베니. 그런 그녀의 모습에 키득이며 말을 이었다.


       


       “전 베니 키가 작아서 좋은데요? 다른 사람들처럼 올려다볼 필요가 없잖아요.”


       


       “난 그게 싫다니까?!”


       


       “누가 뭐래요? 그냥 제가 좋다는 거지. 아무튼 이제 슬슬 출발하죠. 저 솔직히 새로 얻은 것들 시험해 볼 생각에 좀 기대된단 말이에요.”


       


       “응. 이번에도 1층? 아니면….”


       


       “그냥 바로 2층 가죠. 이제 1층에서 건질 거라고는 자이언트 멘티스와 전투뿐인데…그건 2층의 스파이더 퀸으로 대신할 수 있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 좋아. 그럼 들어가기 전에 길드의 보급품 상점에 잠시 들러야겠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랜턴은 사둔 게 없으니.”


       


       “난 있어. 마탑의 올해 신작. 마정석 충전식이지만 마력 직접 충전도 가능. 10단계의 출력 설정. 시야 왜곡을 이용한 은신 간파 기능 탑재. 디자인은 공방 연합이 맡음.”


       


       “…얼마짜리죠?”


       


       “단돈 5골드. 원래는 6골드랬는데 VIP 할인 받았어. 엣헴 엣헴.”


       


       허리에 손을 얹고 잘난체하는 리디아. 어서 빨리 이 대단한 업적을 칭찬해달라며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포즈였지만….


       


       “장비충.”


       


       “……!”


       


       “애초에 마법사인 베니랑 파티면서 그렇게 비싼 랜턴이 필요해요?”


       


       “베, 베니랑 떨어질 수도 있잖아.”


       


       “그렇다 해도 이 정도일 필요는 없죠. 차라리 랜턴을 적당한 걸로 사고 남는 돈으로 비상식량이나, 생존 키트를 준비해 두는 게 이득 아닌가요?”


       


       “그건 이미 다 샀어.”


       


       “?”


       


       “흐흫. 최고급으로 전부 다 사고 남은 돈으로 좋은 랜턴 산 거야.”


       


       “…….”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을 잃을 차례였다.


       


       둘 다 자잘한 소모품이지만, 그래도 급이 올라갈수록 비싸지는 것들의 대명사잖아.


       


       한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른 빵이라거나, 간이 안전지대 설치, 장거리 통신용 마도구, 포션 등등.


       


       한두 푼이 아니었을 텐데, 그걸 전부 최고급으로 맞췄다고? 그러고도 돈이 남아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랜턴까지 비싼 걸로 샀고?


       


       그 돈이면 가챠가 몇 번이야…….


       


       “핫!”


       


       족히 수십, 어쩌면 수백 골드에 달하는 금액으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가챠인 시점에서 나도 리디아와 크게 다를 건 없나.


       


       한결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리디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비상식량 쪽은 나중에 먹을 일 생기면 조금만 잘라주세요.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하거든요.”


       


       “그때 요나가 옆에 있다면 말이지.”


       


       훈훈한 분위기로 소소한 약속을 나누는 나와 리디아. 그런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것은 이번에도 베니였다.


       


       “자, 잠시만 기다려 봐! 분명 한 달 전부터 엘리 언니의 의뢰를 받아 가르치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쉬는 기간에는 짐꾼으로 데리고 다닐 예정이고 말이야.”


       


       “응. 맞는데?”


       


       “그런데 2층이라고? 저 나이인데? 모험가 경력 겨우 한달인데?”


       


       “사실이야.”


       


       짧게 대답하고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엘리. 분위기를 보아하니, 베니에게 자세한 사정을 밝히진 않았나 보다.


       


       내게 선택권을 넘겨준 리디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까딱여 주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잡았거든요.”


       


       “이잉?”


       


       “이거 비밀이에요?”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그리 말하자 베니의 표정이 와락 찌푸려졌다.


       


       “거짓말하지 마! 1층에 계층 수호자가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든데, 그걸 쓰러뜨리기까지 했다고?!”


       


       “그럼 저희 내기 하나 할까요? 진 사람이 오늘 하루 짐꾼 역할 하는 걸루.”


       


       참고로 난 이기는 내기만 한다.


       


       ***


       


       비석을 통해 2층에 도착한 순간. 베니가 바닥에 철푸덕 무너져 내렸다.


       


       “…솔직히 말해. 너도 사실 나처럼 생긴 것만 어리고 실제 나이는 많은 거 아냐?”


       


       “응애. 나, 아기 요나. 고아라 실제 나이 몰라요.”


       


       “…….”


       


       베니가 말없이 내가 메고 있는 가방을 대신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후우...니케 지금껏 조금씩 모아둔 재화 전부 써서 크라운 뽑았네용.

    현질은 없었지만, 마음이 공허하다...
    다음화 보기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