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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 * *

       

       

       

       

       그날, 차리나가 마련해준 모스크바의 숙소에서 밤을 보내던 로스차일드 남작은 고민에 휩싸였다.

       

       

       “중국 땅에 이스라엘이라.”

       

       

       이미 벨푸어 선언으로 사실상 팔레스타인 쪽에 유대인들을 이주시켜 이스라엘을 세우는 건 결정된 일이긴 하지만.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차리나가 말을 기묘하게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 러시아를 둘러보니 유대인을 박해하지 않는 현재 유일한 유럽 국가였다.

       

       여기에 동쪽으로 유대인이 이주한다는 것도 사실이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분쟁의 여지를 남기는 것과 저 아시아에 이스라엘을 세우는 것.

       

       이쪽도 중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겠지만, 지금 분열된 상태로 쭉 유지만 된다면, 그래서 유대인들이 파고들 틈이 있다면?

       

       일본이 중국을 생각보다 빨리 무너트린다고 해도, 만일 러시아가 일본에 러일전쟁의 복수를 하고자 일본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치면?

       

       중국은 인구가 많고 땅덩어리도 크지만, 근대화가 되지 못해 열강들이 케이크처럼 나눠 먹던 국가다.

       

       심지어 지금은 군벌들로 나뉘어 있으니, 그들이 일본과 싸우면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중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중국을 돕는 조건으로 영토를 받아낸다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고대부터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패권국이었다.

       

       오랫동안 강대국으로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렸다고 하지.

       

       그 풍요로운 땅과 많은 인구가 중국이 오랫동안 패권국이 될 수 있던 이유다.

       

       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된다?

       

       

       ‘의외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유럽에서 유대인의 위치가 지금 미묘하게 되었다.

       

       공산 국가만이 유대인을 좋게 취급하면서 다른 유럽국가에서 유대인은 명예 공산주의자. 공산당의 첩자. 적백내전 볼셰비키의 배후 등등 온갖 말이 나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아니고, 저 동아시아는 유대인에 대해 제대로 모르며, 애초에 공산주의의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 한 곳.

       

       그곳에서 친유대국가인 러시아가 이웃해 있고 이스라엘이 중국 땅에 버젓이 세워진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러시아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군.”

       

       

       다만 차리나가 내민 조건들은 숨겨진 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수르구트의 브라노벨의 우위권 인정, 바쿠 유전과 수르구트를 건들지 않는 것. 대신에 북만주 개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면, 스탠다드 오일과도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탠다드 오일과 함께 브라노벨을 내보내려 했던 처지에서 볼 때 이건 신뢰도의 문제가 있는데.

       

       심지어 아무리 자신이 로스차일드 남작이라고 해도, 회사의 방침을 멋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약간 좀 불편해질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차리나의 제안은 그냥 무시해도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찝찝할 뿐이지.

       

       그럼 이렇게 되면 다시 브라노벨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인가.

       

       브라노벨이 일을 잘하기는 했었다.

       

       더군다나 지금 차리나가 직접 보호하고 있는 것이라면. 로마노프 석유회사와 합작하겠다는 의미기도 하겠지. 그렇다는 말은 황실이 직접 관여했다는 뜻이다.

       

       브라노벨의 뒤를 봐준다는 것은 즉, 로마노프의 뒤를 봐준다는 것.

       

       안 그래도 독일과 이탈리아 지부는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로스차일드 지부는 끝장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오스트리아 쪽도 오스트리아가 반공국가인 탓에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고.

       

       영국에서 반유대 정서가 강해진다면, 한번 러시아 쪽에 정말 진지하게 지부를 만드는 것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

       

       

       * * *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은 아나스타샤와 로스차일드 남작이 은밀한 밀담을 할 무렵, 따로 브라노벨을 경영 중인, 에마뉘엘 루트비고비치 노벨을 만났다.

       

       석유일은 급하게 마무리 지을 일이었으니까.

       

       차리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 이쪽도 빨리 일을 진행해야만 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 하셨습니까? 송유관 설치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따로 저희 차르의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에마뉘엘 루트비고비치 노벨의 물음에 유수포프 공작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차르의 말? 아나스타샤 차리나라는 말인가.

       

       무슨 일로 그러는 것일까.

       

       빌어먹을 로열 더치 쉘과 관련된 것만 아니면 참 좋을 거 같기는 한데.

       

       애초에 혁명에서 적백내전이 진행되는 도중, 볼셰비키는 석유 국유화를 해버려서 브라노벨과 경쟁하는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내전이 끝나 바쿠유전의 지분은 되찾기는 했지만, 국유화 문제로 한번 타격을 받은 탓에 로열 더치 쉘과 스탠다드 오일에는 한참 밀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차리나께서 황실과 브라노벨이 합작해서 새로운 석유회사를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합작 석유회사.

       

       의외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냥 브라노벨의 생존만을 생각하면서 다른 분야에 투자해볼 생각이었는데, 차리나가 브라노벨에 관심이 있다는 말인가.

       

       

       “즉, 차리나께서 로마노프와 합작회사로 만들자고 하셨다는 말입니까?”

       “예. 하여 로스차일드와 협상도 하여 브라노벨의 뒤를 봐주기로 하셨습니다.”

       

       

       로스차일드와 협상까지?

       

       로스차일드라면 로열 더치 쉘의 뒤에 있는 유대인 가문이 아닌가.

       

       

       “으음.”

       

       

       이건 꽤 의외다.

       

       설마하니 차리나가 노벨 가문의 석유회사에 관심을 둘 줄이야.

       

       안 그래도 로스차일드가 뒤를 봐주고 있는 로열 더치 쉘 때문에 죽을 맛이었는데.

       

       

       “어차피 한번 혁명으로 인해 무너질 뻔한 회사 아닙니까? 이참에 로마노프 황실과 함께 하시죠.”

       “후우. 그러면 황실이 직접 저희 가문의 뒤를 봐주시는 겁니까?”

       

       

       최대한 볼셰비키에게 어떻게 대응할까 뇌를 굴릴 때와는 달리 정말 간단하게 정리가 되었다.

       

       로마노프 황실이 직접 노벨가문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증거니까.

       

       로마노프와 합작회사라는 건 결국 다른 의미로는 이 기업은 러시아 황실이 직접 운영하는 거라고 하면서 회사는 이전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러시아의 이익에 해만 되지 않는다면, 폐하께서는 노벨 가문의 뒤를 봐주실 겁니다. 우리 폐하께서는 브라노벨에 깊은 호감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차리나께서는 대공황을 대비해 러시아가 가진 역량은 최대한 끌어내고자 하셨다.

       

       그러자면 자원 역시 가능한 한 뽑아낼 줄 알아야 한다고.

       

       다른 나라가 말아먹을 때, 이곳은 최소한 현상유지. 나아가 조금이라도 발전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차리나는 석유에도 관심을 두셨다.

       

       그냥 로마노프 석유도 어떻게 되겠지만, 그래도 브라노벨의 힘이 있다면 더 괜찮으리라.

       

       

       “하지만 로열 더치 쉘과 스탠다드 오일은 괜찮겠습니까? 로스차일드가 과연 봐줄지 모르겠군요.”

       

       

       이제 더 신나게 날뛸 것이 뻔할 텐데.

       

       러시아를 기반으로 두고 있던 노벨 가문 입장에서는 이번 내전으로 인해 타격이 크니, 누군가 뒤를 봐준다면 좋을 것이다.

       

       

       “폐하를 믿어보십시오. 이미 로스차일드 남작과 이야기하고 있다면 해결 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 뭐. 애초에 러시아에 한정이라면, 로열 더치 쉘도 더 건드리지 못할 거다.

       

       애초에 그랬으니, 볼셰비키를 후원한 것이니까.

       

       그래. 한번 시도해보자.

       

       

       “으음, 일단 그건 가문에서도 해볼 논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얼마 후, 로마노프-브라노벨 합작 석유회사가 설립되었다.

       

       

       * * *

       

       

       아무래도 우리의 월터 로스차일드 남작은 동물이 아닌 나를 연구하러 온 것 같다.

       

       그때 밀담을 하고 나서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찾아오는 것일까. 내가 동물이냐.

       

       그래서 무슨 소리나 하는지 한번 들어보려고 하는데.

       

       

       “폐하. 이스라엘 건국 말입니다.”

       

       

       동방의 이스라엘 건국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벨푸어 선언이 아니라 한번 정말 중국을 노려보려고?

       

       아세톤 제조법을 알아낸 화학자로 러시아 제국 출신인 유대인 하임 바이츠만은 팔레스타인만이 유대인의 터전이 된다고 벨푸어에게 주장한 걸로 아는데.

       

       이렇게 로스차일드 남작이 관심을 보일지 몰랐다.

       

       이거 이스라엘 건을 잘만 써먹으면, 로스차일드가 러시아에 더 투자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그럼, 최대한 웃는 얼굴로 입발린 말을 해줘볼까.

       

       

       “예. 말씀하세요.”

       “벨푸어 선언이 이미 있습니다만, 폐하께서는 따로 진행하겠다는 생각이십니까?”

       

       

       벨푸어? 벨푸어 선언을 왜 우리가 눈치 봐야 하나?

       

       애초에 벨푸어 선언도 좀 미묘해지다가 유대인 홀로코스트 때문에 이스라엘 설립이 더 지지받는 것으로 아는데.

       

       아, 그거군.

       

       지금 저 팔레스타인과 중국 내 이스라엘에 대해 지금 각을 재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동방의 이스라엘 수립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로스차일드나 영국도 벨푸어 선언도 있으니 그걸 명분으로 중국에 세력을 더 뻗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럼 관심을 좀 더 가지도록 밀당 좀 해볼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만일이라고 말이죠. 아주 만에 하나라도. 저 동방에 어마어마한 수의 유대인이 이주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니 나라를 세워줘야겠죠. 안 그렇습니까?”

       “으으음.”

       

       

       진짜 나라를 세우는 것을 보고 싶으면 벨푸어 선언으로 이주할 유대인들을 몽땅 끌고 오든지 해라. 뭐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따지고 보면 혐성국 때문에 중동은 피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으니, 나쁘지 않을걸.

       

       물론 중국의 일부를 유대인이 차지하게 되면 중국인들은 그 튝유의 중화주의 때문에 중원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려 할 테고, 유대인들도 기껏 자리잡은 동방의 예루살렘을 잃지 않으려고 열심히 싸우겠지.

       

       여기에 독립한 친러 한국은 이스라엘의 중국 견제를 뒤에서 돕게 하는 그림도 좋고, 후일 미국의 태평양, 아시아 진출을 차단하기 위해 실제 역사와 달리 육군보다는 해군을 더 크게 키워도 좋고.

       나름 괜찮은 그림이긴 하다.

       

       이 눈앞의 남작이 도와만 준다면야, 영국에서 적당히 이 수작질을 돕는다면 말이지.

       

       

       “북만주에 석유는 확실히 있습니까?”

       

       

       처음에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쏘아붙인다.

       

       이건 정말 개인적인 사담이겠지.

       

       어쨌든 유전지대의 개발이 곧 동방의 이스라엘 건국으로 가까워지니.

       

       

       “좀 깊게 파야 하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탐사대를 보냈죠. 그러니까 굴착기술의 개발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폐하의 추측 뿐 아닙니까?”

       

       

       그래. 추측 뿐이다. 꼬우면 당신도 미래지식을 배우고 오시든지.

       

       대놓고 말하고 싶지만 참았다.

       

       이럴 때는 그냥 신비주의로 있는 것이 최고니까.

       

       당장 지금 동방의 이스라엘 프로젝트에 기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예. 단순한 추측입니다. 추측으로 수르구트를 찾아냈고, 이미 석유 탐사대에 의해 가능성은 보았습니다. 다만 굴착기술이 좋아야 하겠죠.”

       “으으음.”

       

       

       자아, 궁금하겠지.

       

       고민하고 싶겠지. 북만주 개발과 동방의 이스라엘.

       

       진짜 뭔가 이어질 것 같지도 않은 소재들을 차리나가 이어 붙이려고 하니까.

       

       은연중에 나는 이렇게 던진 거다.

       

       북만주에 투자를 확실히 한다면, 벨푸어 선언의 이스라엘이 망할 때, 동방에 이스라엘을 세워주겠다.

       

       결국 이런 거니까.

       

       

       “러시아는 자원이 많은 나라죠. 하여 굴착 기술을 더욱 개발할 생각입니다. 혹시 압니까? 우리를 돕는다면 로스차일드가 러시아에 발을 걸칠 수 있을지도.”

       

       

       적어도 유럽 어딜 가도 욕을 먹을 팔자가 될지도 모를 유대인들의 쉼터 역할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참으로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군요. 그런 폐하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 좋은 얼굴로 또 무엇이 궁금할까.

       

       

       “말씀해 보세요.”

       “제가 오늘 모스크바를 둘러보니 한 가지는 알겠더군요. 폐하께서는 성녀시고 폐하께서는 많은 걸 예지하고 계신다고.”

       

       

       그걸 왜 조사하고 다녀 이 망할 노인네야.

       

       그래. 진짜 동물이 아니라 아나스타샤 연구하는 아나스타샤 학자냐.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합중국 국민들이 저를 찬양하면서 이상한 게 붙었군요. 로스차일드 남작께 알려지다니, 부끄럽군요.”

       “일본의 재앙도 예지하셨다는 건 영국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영국에 온 일본인 몇 명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으니까요.”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무어냐.

       

       나 지금 굉장히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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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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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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