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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아멜리아, 여기야.”

       

       

       나를 찾는 목소리에 아멜리아를 부르자,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익숙한 사람이 골목길에서 튀어나왔다.

       

       

       “너, 날 버리고 대체 어디로 갔던 거야?!”

       

       “미, 미안. 뭔가 불안해서···.”

       

       “···아.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얼굴을 붉히던 아멜리아가 나를 보며 자애로워졌다.

       

       순간 왜 저러는 건가 싶었는데, 원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품에 안긴 아르테가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비, 비켜···. 비켜주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아. 미안.”

       

       

       아멜리아가 갑자기 내게 자비로워진 이유는 딱 하나겠지.

       

       내가 아르테를 껴안고 있었으니까, 그걸 보고 상상의 나래로 빠져든 것이 분명했다.

       

       그거야 항상 있었던 일이니 그렇다 쳐도, 아르테의 반응이 약간 어색했다.

       

       평소 같았다면 가볍게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비켜달라고 했을 텐데.

       

       

       “후, 후우···. 못 볼 꼴을 보여드렸네요.”

       

       “그, 그래···.”

       

       “저, 저는 이만, 먼저 가볼게요!”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나는 아르테의 모습에 평소의 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잔뜩 당황한 채로 얼굴을 붉힌 귀여운 여자아이만이 있었을 뿐.

       

       마치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시 봤어, 유시우. 꽤 하는구나?”

       

       “그런 거 아냐.”

       

       “에이, 아니긴. 사랑을 속삭이듯이 그렇게 찐하게 껴안고 있었는데.”

       

       “아니라니까.”

       

       “···무슨 일 있어?”

       

       

       평소 아멜리아의 행동거지로 보아 이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받아쳐 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더니, 아멜리아도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무언가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역시 눈치는 빠르다니까.

       

       

       “말했어.”

       

       “···응? 뭘?”

       

       “아르테가 아라크네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뭐?! 너, 너 미쳤어?!”

       

       

       거의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는 아멜리아의 목소리에 귀가 아파져 왔다.

       

       하긴, 저런 반응을 보일만도 하지.

       

       나도 충동적으로 이야기 한 거니까.

       

       아르테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모습에 화가 나서 무심코 저질러버렸다.

       

       

       “있지, 아멜리아. 나중에 다 설명해 줄 테니까 내 질문에만 대답해줘. 내 추측이 맞는지, 네 의견이 필요해.”

       

       “···끝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해야 할 거야.”

       

       “응.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나도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아멜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내 말을 따라주었다.

       

       평소에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도 이럴 때는 믿음직하다니까.

       

       

       “···있지, 아멜리아. 작가님 말이야.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정보원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잖아. 그게 왜?”

       

       “아르테에게 네 정체를 알고 있다고 밝혔더니, 갑자기 울면서 떨어댔어.”

       

       “뭐?”

       

       “그리고 말했지. 작가님, 잘못했어요. 더 잘할게요.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어째서.”

       

       “그건, 설마···.”

       

       

       아멜리아도 나와 같은 생각에 도달한 듯,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나와 아멜리아의 추측은 처음부터 빗나가있었다.

       

       아르테와 그 ‘작가님’을, 우리는 수평적인 관계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어. 수평적인 건 그저 표면적인 관계일 뿐.

       

       그 둘은 누구보다 수직적인 관계였다.

       

       

       “내 추측은 이래. ···전부, 그 작가님이 시킨 거야.”

       

       “···.”

       

       “아르테가 사람을 죽인 것도. 마수를 아카데미에 풀어둔 것도. 아카데미에 잠입한 것도 전부.”

       

       

       어느새 나는 추측이라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확신을 품게 되었다.

       

       추측이라기에는 너무 아귀가 잘 들어맞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르테의 그 모습들이 설명될 리가 없어.

       

       

       “아르테는 여태껏 사람을 죽이는 걸 합리화하고 있었어. 내가 죽인 건 사람이 아니다. 인형이다.”

       

       “뭐, 뭐? 그건 또 무슨···.”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아르테를 알게 된 지 반년이 넘었는데도, 우리는 그 ‘작가님’의 실마리조차 몰라. 애초에 연락은 어떻게 하지?”

       

       

       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아르테의 사물함에 숨어든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의 사물함 어디에서도 기계적인 무언가는 발견되지 않았어.

       

       

       “우리는 텔레파시 같은 모종의 능력으로 이야기한다고 추측했었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아?”

       

       

       텔레파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상해.

       

       이걸 왜 몰랐을까.

       

       조금만 더 생각해봤다면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작가님’이 별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사실을 놓쳐버렸다.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쳐. 그러면, 아르테의 목소리는 어떻게 전달해?”

       

       “···어?”

       

       “능력은 한 사람당 한 명.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잖아. 그리고 아르테의 능력은 실을 조종하는 거야.”

       

       

       그래.

       

       텔레파시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목소리뿐.

       

       아르테의 목소리를 들을 방법은 없었다.

       

       

       “아르테와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해. 하지만 그녀는 계속 중얼거렸지. 그 작가님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었어.”

       

       

       텔레파시로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아르테의 말은 어떻게 듣는 걸까.

       

       기계적인 무언가는 아니다.

       

       그건 내가 직접 확인했다.

       

       능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야.

       

       하지만 아르테와 작가님은 계속해서 모종의 방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그러면 도대체···.”

       

       “나도 몰라. 모르지만, 텔레파시 같은 건 전혀 아닐 거야.”

       

       

       시우는 아르테가 도망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쪽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다.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곳으로 가면 된다고.

       

       

       “아르테의 목소리를 어딘가에서 들을 수 있고, 그녀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볼 수 있으며, 그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그 녀석이 아르테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시켰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처음부터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야 했는데.

       

       사람을 인형이라고 합리화할 정도로 정신이 불안정한 그녀가 어째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 걸까.

       

       그 원인을 나는 그 작가님이라 불리는 녀석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드디어.”

       

       

       아르테를 도와줄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직은 그저 윤곽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발걸음이라고 확신했다. 지금까지는 그 윤곽마저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기다려, 아르테. 내가 도와줄게.”

       

       

       아르테가 누군가의 명령으로 인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크나큰 성과였다.

       

       그녀가 저지른 모든 일들이 본의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아르테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으음, 이걸 어쩐담···.”

       

       

       독자님이 허겁지겁 골목길을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아까 하려던 것처럼 실을 사용해서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이동하면 될 텐데.

       

       패닉에 빠진 탓인지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로 열심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언제 눈치챘지? 입학식 무렵의 마수 사건을 알고 있었다니.”

       

       

       분명 의심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을 텐데.

       

       소녀는 크게 낙심했다.

       

       괜히 능력을 직감으로 줘서 쓸데없는 걸 눈치채버렸네.

       

       그냥 상태창이나 쥐여줄걸.

       

       어느샌가 내 능력도 통하지 않아서 주인공의 능력이 무슨 능력이 될지 짐작도 가지 않게 되어버렸잖아.

       

       덕분에 다른 녀석들도 나를 비웃고 있었다.

       

       

       [네가 그럴 줄 알았지, 멍청한 놈. 이것저것 막 저질러놓더니 대형 사고가 터졌구나.]

       

       “아아잇, 조용히 해! 실수할 수도 있지 뭐!”

       

       [···그것보다 나는 궁금한 게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응? 뭐가?”

       

       [네 그 장난감은 반쯤 정신이 나갔고, 주인공이라는 작자는 그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작가님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잖나.]

       

       “···아, 그거? 쉽지.”

       

       [쉽다고?]

       

       

       이 녀석들은 상상력이 부족한 게 단점이라니까.

       

       맨날 세계 멸망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만 즐기니까 저렇게 되는 거라고, 응?

       

       나처럼 가끔은 로맨틱한 이야기도 즐길 줄 알아야지.

       

       

       “노선을 좀 변경하면 그만이야. 애초에 바꾼 지도 한참 지났다고.”

       

       [···바뀌었다고? 언제?]

       

       “꽤 지났을걸? 언제부터였더라? 몰라. 관심 없어.”

       

       

       아니,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는 관심 없었다.

       

       지금은 우연히 만들어진 이야기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을 뿐.

       

       독자님은 주인공에게 자신이 사건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내가 독자님을 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유시우가 어떻게든 진정시켰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생각을 하게 되겠지.

       

       내가 그럴 생각이 없는데도.

       

       

       “있지, 있지. 독자님 귀엽지 않아? 죽일 생각도 없는데 애원하는 거 봐.”

       

       [···악취미로군.]

       

       [그러게. 네 그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너희들이 그렇게 말하기야?”

       

       

       세계 멸망 보고 폭죽 같다며 좋아하는 놈들이 뭐래.

       

       하여튼 예술을 모르는 것들이란.

       

       저렇게 귀여운데 말이야.

       

       

       “어떻게 저런 영혼을 가져왔지? 역시 나는 천재 아닐까?!”

       

       

       그저 관찰자 역할로 괜찮아 보인다 싶은 영혼을 가져왔을 뿐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독자님을 버리고 유시우를 제외한 주변 설정을 다시 짜면 이야기를 예상대로 전개할 수 있었지만···.

       

       그건 싫은걸. 독자님 못 잃어!

       

       

       “최종 보스 후보는 아라크네였지만···. 으음, 너무 식상할지도 모르겠네!”

       

       

       역시 가끔은 충격적인 최종 보스도 괜찮지 않을까?

       

       소녀는 방긋 웃어 보였다.

       

       

       “직접 참여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물론 진심으로 싸운다면 세상이 멸망할 테니 진심을 다하지는 못하겠지만.

       

       뭐, 주인공에게 적당히 져주면 괜찮은 연출이겠지!

       

       사랑을 위해서라면 나 정도의 벽은 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독자님의 몸은 내가 만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부모님이잖아?

       

       히, 사랑을 위해서라면 나를 납득시켜야 할 거다! 라는 엄청 강한 부모님이라니. 재밌겠다!

       

       소녀는 방긋 웃었다.

       

       

       [너무 자만하는 거 아냐? 주인공의 능력이 뭔지도 모르잖아.]

       

       [그래. 너의 능력도 통하지 않는 걸 보니 주의해야 할 능력일지도 모른다. 조심해야···.]

       

       “에에이, 괜찮아! 설마 내가 질까 봐?”

       

       

       주인공에게 진심으로 싸워서 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 강림하지도 못하는 게 아니라면, 그 압도적인 질량만으로도 주인공을 짓누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다른 놈들과는 달리 나는 쉽게 강림할 수 있다고.

       

       세상의 설정만 조금 개변하면 그만이니까.

       

       소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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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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