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아침 드세요.”
“꺄우!”
“루나도 이빨이 나고 있으니까, 채소부터 먹어보자.”
“까!”
세레나의 음식은 훌륭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침이 있는 삶.
아주 평화로웠다.
“제…제 것도 있습니까?”
퀭한 얼굴의 알루어드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와서 먹어.”
“조!”
“루나님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꺄륵.”
루나를 풀어 무릎 위에 앉혔다.
채소조각 하나를 입에 가져갔지만 꾹 다물려 있는 입.
까까를 원한다는 몸짓이 분명했다.
“밥 먹고 줄게.”
“아우으…!”
아침부터 까까를 줄 수는 없는 법.
어깨를 돌려보니 몸이 가뿐한것이 느껴졌다.
“조금은 사라진 건가?”
요 몇일 음기 때문인지 자꾸 어깨가 아팠었다.
어젯밤에 간단하게 푸닥거리를 좀 했더니 풀어진 어깨.
아직 신당 주위가 음산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게 다 잡귀들 때문이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쫓아냈더니 죽은 사람들이 시장통 마냥 모여 들었다.
장승때문에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주위에 빙 둘러져 있었지만 말이다.
장승들도 쫓아낼 생각은 없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간만에 휴가네.”
“크리스는 조금 쉬어야 해요.”
“쉴때가 되기는 했지.”
그때, 대가리가 테이블 앞으로 스으윽 미끄러져왔다.
– …..
“손님?”
끄덕.
“어젯밤에?”
끄덕.
“지금 또 온다고?”
대가리의 손짓에 따라 고개를 돌리니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 영감님들과 드워프 한 명.
친구라더니 셋이 같이 온 모양이다.
“하부!”
“세레나, 혹시 음식 더 있어?”
“더 만들어올게요.”
이윽고, 영감님들이 인사를 해왔다.
“우리 왔다네!”
“자네가 부탁했던 것도 알아 왔네.”
파라몬 영감님이 안 보이더니, 그것을 알아보러 다녀온 것 같았다.
일전에 오크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으니.
아주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는 영감님들과 드워프.
이름이 드잔트라고 했던가?
어쨌든 드잔트의 눈이 세레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하이엘프로군.”
“맞아요.”
나를 향하는 알 수 없는 눈빛.
나보고 뭐 하는 놈이냐고 물었을 때와 비슷했다.
“부탁했던 식기들을 가져 왔다.”
퉁명스럽게 드잔트가 내민 주머니를 받아 들고는 곧장 손을 집어넣었다.
“클로셀 네놈의 말대로군.”
“말했지 않은가.”
“도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것이지?”
저렇게 물어도 딱히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짐작 가는 것이 있지만 설명하기가 굉장히 애매했기 때문이다.
손끝에 느껴지는 그릇들을 잡아 꺼낸 나는 감탄을 하고 말았다.
휘어진 곡선.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
거기에다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일치하는 모양들.
“굉장하네요…”
“드워프의 물건은 항상 최고의 예술성을 가진다.”
이 정도면 상을 차리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 과할 정도의 물건이랄까.
“약속대로 방울을 보고 싶군.”
“그럼요.”
방울을 잡아서 건네주려는 나를 빤히 바라보는 드잔트.
그의 얼굴에는 ‘지금 뭐 하는 짓이냐?’라는 감정이 그대로 쓰여 있었다.
“테이블에 내려놓아라.”
“….?”
“남에게 귀중한 물건은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이 예의다.”
역시나 대장장이 답게 물건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다.
장인의 배려심마저 느껴지는 모습.
테이블에 방울을 내려놓자 드잔트가 머리를 바짝 붙이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호오…”
“이보게 드잔트, 혼자만 감탄하지 말고 설명을 좀 해 보게나.”
클로셀 영감의 재촉에 드잔트가 귀찮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굉장히 단단하다. 파라몬 네놈이 쓰던 검보다 더 단단하겠군.”
“그 정도란 말인가? 또 없는가?”
“미스릴보다 가벼워 보이는군. 이게 무슨 금속인지 조차 모르겠다.”
드워프도 모르는 금속이라니.
솔직히 나도 갑자기 손에 잡히게 된 물건이라 방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무구라는 것 밖에는.
“금속이면서 금속이 아니다.”
“…그럼?”
“벤시나 스펙터가 때려지지는 않느냐?”
그것들은 물론, 돌아다니는 영혼까지 때려지는 물건이었다.
“전에 말했던 대로 원래부터 이렇게 생겼던 물건이다. 나무가 나무 모양으로 자라는 것처럼.”
“호오…”
클로셀 영감이 흥미로운 듯 눈을 번뜩였다.
나 역시도.
드잔트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은 어디서 난 것이지?”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되었다. 곤란하면 말할 필요 없다.”
정말 물건과 그 주인에 대한 예의가 확고한 종족이었다.
단지 물건에 대해서만 궁금해하고 그 이상으로는 파고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드잔트가 방울을 살피고 있을 때, 파라몬 영감이 입을 열었다.
“일 전에 말했던 오크 말일세.”
“네.”
“제국 내의 오크들이 모두 사라졌더군. 정확히는 사라지고 있는 중일세.”
“사라지고 있다고요?”
생각해 보면 비슷한 공수가 내려오기는 했다.
길을 잃은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느낌이었다.
“일제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네. 그들이 가는 곳을 추적중이지.”
“흐음…”
“자네가 말했던 굴락이라는 오크를 특정하는 것은 실패했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했다.
인간들이 오크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추적을 하겠는가.
이들에게는 몬스터일 뿐인데.
이번에는 클로셀 영감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저번에 네크로맨서의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주었지 않은가?”
“그랬죠.”
“그곳에서 많은 단서들을 확보했다네. 암호를 해독중이지.”
제법 많은 양의 주머니를 털었다.
죽은 네크로맨서의 주머니들을 모두 수거했으니, 그중에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단서들이 일제히 같은 양상을 띄더군. 출처 또한 유추가 가능했네.”
“어디인가요?”
“하르프 왕국일세.”
대륙의 한쪽 끝에 있는 나라다.
바다와 붙어 있는 곳.
해상무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왕국이었다.
“그곳에서 제작된 물건들이 많았네.”
“흐음….바다라…바다…”
무언가 익숙한 기분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느낌.
“맞네, 물이 있구나?”
“아는 것이 있는가?”
“지난번에 베르테라는 놈을 잡을 때, 물 비린내가 확 났었거든요?”
“호오…자네가 그렇다고 하니 관련이 있는가 보군. 그들이 잡아갔다던 그 자인가?”
영감들이 흥미로운 듯 귀를 기울였다.
“지난번에 구했던 한스아저씨의 영혼도 그렇고, 세계수때도 그렇고,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예요.”
“계속 말해 보시게.”
“마법이라기보다는 영혼과 관련된 일이 많았어요.”
“네크로맨서들이 원래 그런 걸 하는 족속들이니…”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영혼을 타락시켜 레이스로 만들고, 세계수에 허주를 씌웠다.
이번 역시 푸른색의 불을 이용해 주변의 영혼들을 홀렸고 말이다.
마법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주술적인 방법이었다.
이런 생각을 말하니 영감들이 신중한 얼굴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
“….그렇군.”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영감님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어진 사람들 답게 무언가를 유추해 낸듯 싶었다.
“자네가 말했던 그 주술이라는 것 말일세. 그게 오크의 것이라 추정하지 않았는가?”
“맞아요.”
“그것을 읽을 오크 또한 만났다고 했고 말이네.”
“자네가 나에게 부탁한 그 오크로군.”
굴락이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샤먼의 후예라 했으니 연관이 깊었다.
“네크로맨서들이 그런 오크를 잡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군.”
네크로맨서들을 피해 오크들이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있다?
신빙성이 있는 말이지만 느낌이 오질 않았다.
무언가 딱 맞는 촉이 없다는 소리다.
“베르테가 물에서 뭔가를 한 것이 주술이라고 가정하면 그들이 잡아간 것도 말이 되지.”
“하르프 왕국과 연관된 단서가 많이 나온 것도 설명이 되는군.”
“흐음…”
다시 생각에 빠지려던 그때, 클로셀 영감이 입을 열었다.
“자네, 좀 도와줄 수 있겠는가?”
“그럼요.”
당연한 소리다.
영혼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놈들인데, 이걸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는 짓을 보면 괘씸 그 자체인 족속들이다.
망자의 혼을 더럽히고 육신을 욕보인다.
심지어 마족과 같은 악귀를 섬기는 집단.
“곧, 하르프왕국으로 사신들이 파견될 예정이네.”
“거기에 같이 가면 되나요?”
“우리와 따로 움직이지. 공식적으로 가게 되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 말일세.”
어째 휴가가 오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이번것도 제법 힘들어 보이지 않는가?
“아직 출발은 못해요.”
“할 일이 있는가?”
“신당 주위가 너무 음산해져서요.”
묘지의 근처인데다가 잡귀들까지 많이 모여 들었다.
신당과 장승이 막아주기야 할 테지만 이대로 두어서 좋을 것도 없었다.
집 주위가 통째로 도깨비터 마냥 변해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니.
“며칠 동안 음기들을 풀어야 할 것 같아요. 어제도 한번 하기는 했는데…”
“당장 출발할 것은 아니니, 걱정 마시게나.”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알루어드가 헛기침을 했다.
“말씀나누시던 중이어서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이미 교단에서 그곳으로 사람을 파견했습니다.”
“호오…그러고 보니 자네도 한가락 하는 인물이었지.”
클로셀 영감님의 말에 알루어드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클라인님의 제자인 한스씨와 성기사들이 그곳으로 출발했습니다.”
“교단에서도 같은 목적으로 가는 것인가?”
“배신자들을 심문하던 중에 하르프 왕국이 언급되었다고 하더군요.”
역시나 내가 맡았던 냄새의 출처가 그곳이 맞는듯했다.
그때, 파라몬 영감이 품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 아버님, 보고드립니다..
들려오는 아버님이라는 호칭.
영감님의 아들인가 하고 쳐다 보니, 대답하는 영감님의 얼굴이 딱딱했다.
목소리 역시도.
“말해 보거라.”
– 오크들이 제국의 국경을 넘어 이동 중입니다. 한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목적지는?”
– 아직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조사하도록.”
수정구에서 사라지는 불빛.
원래 부자간의 대화가 저렇게 딱딱한 것일까?
그건 그렇고 오크들이 향하는 방향이 혹시….
굴락을 만났던 절벽의 위치를 가늠해 본 나는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영감님들, 저기로 가면 뭐가 나오나요?”
“바다가 나오네.”
“하르프 왕국과 맞닿아 있는 곳이지.”
이놈의 무당팔자 어디까지 꼬여 있는 건지 이제는 알 수도 없다.
“지랄났네 진짜.”
생각해보니 오늘 00시면 이렇게 올려야 맞더라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