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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무슨 문제요?”

       

       내 물음에 용병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대답했다. 

       

       “그게….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좀 그래서….”

       “좋아요. 그럼 가죠.”

       

       표정을 보아하니 가벼운 문제는 아닌 듯 보였기에,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쀼우.”

       “아르야, 공놀이는 이따가 갔다 와서 더 하자.”

       “쀼.”

       

       한창 신나던 중인 아르의 시무룩한 표정에, 나는 쪼그려 앉아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필살기를 사용했다.

       

       “대신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 줄게.”

       “쀼우웃!”

       

       ***

       

       핥짝. 

       

       아르는 내 어깨 위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맛있어?”

       “쀼웃!”

       

       바삭한 과자 콘 위에 올려진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 위에 올려진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핥은 아르는 황홀한 단맛에 꼬리를 쭈욱 폈다. 

       

       아르는 아이스크림을 소중히 핥아 먹기도 하고, 그러다가 감질맛이 나는지 한 입 크게 베어 물기도 했다. 

       

       “쀼, 쀽…!”

       “어이구, 괜찮아? 머리가 띵한가 보구나.”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많이 베어 문 아르가 꼬리를 바르르 떨자, 나는 아르가 어깨 위에서 떨어지지 않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르를 잡아 주었다. 

       

       그 와중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아이스크림 콘을 잡고 눈을 꼬옥 감은 아르 대신, 나는 아르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주었다. 

       

       “쀼우….”

       

       잠시 후 이제 좀 괜찮아졌는지, 아르는 다시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베어 물었다. 

       

       챱, 챱.

       

       ‘한 번 당하고도 열심히 먹는 걸 보니 진짜 맛있나 보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아까 하나 살 걸 그랬나. 

       

       용병이 말했던 심문 중 문제가 생겼다는 게 대체 뭘까 생각해 보느라 간식 생각이 딱히 나지 않아 그냥 아르 먹을 것만 사 줬었는데….

       

       저렇게 맛있게 먹는 걸 보니까 또 먹고 싶어지네.

       

       모르긴 몰라도 아르가 먹방을 하면 조회수 장난 아니게 나올 거다.

       

       “레온 씨도 드실래요?”

       “…실비아 씨는 또 언제 사셨어요?”

       “아르가 맛있게 먹길래 갑자기 땡겨서 사 왔죠. 헤헤.”

       

       가만 보면 실비아 씨도 단 거 엄청 좋아한다니까. 

       

       물론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자요. 아~ 해 보세요.”

       

       실비아는 자신이 먹던 아이스크림을 내 입 앞에 내밀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이미 아이스크림은 실비아가 야무지게 베어 문 뒤여서, 아무리 봐도 내가 새로 입을 댈 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한 입 크게 드셔도 돼요.”

       “…아뇨. 그냥 안 먹을게요.”

       “어허, 그렇게 먹고 싶다는 눈빛을 해 놓고서 갑자기 안 드시겠다뇨?”

       “갑자기 안 먹고 싶어졌어요.”

       “흐음.”

       

       실비아는 샐쭉한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아, 설마 제가 입 댄 곳이라 안 먹는다는 ‘어린아이’ 같은 이유는 아니겠죠?”

       “…어린아이라뇨.”

       

       이래 봬도 해츨링 육성 경력이 있는 어엿한 성인인데….

       

       “어린아이죠. 어른이 이런 거 신경 쓰면서 먹는 거 봤어요?”

       

       내가 도발에 넘어가자 실비아는 이때다 싶었는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먹죠.”

       

       여기서 물러나면 용병 길드에 도착할 때까지 뭔가 진 기분으로 가야 할 거다. 

       

       그럴 수는 없지. 

       

       ‘그래, 뭐 이깟 게 대수라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은 거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실비아가 내민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

       

       “…?”

       

       그런데 너무 크게 베어 문 탓일까. 

       

       남은 아이스크림을 전부 입에 넣어 버린 건 물론이고 과자 부분까지 침범해 버렸다. 

       

       “우움.”

       

       과자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실비아의 얼굴을 보며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고 말하려던 순간.

       

       “우움…!”

       

       머리가 띵해진 나는 순간 휘청이고 말았다. 

       

       ***

       

       “휴우. 레온 씨, 괜찮아요?”

       “쀼우.”

       

       다행히 실비아가 휘청이는 나, 그리고 따라서 휘청여 떨어질 뻔한 아르를 동시에 잡아 주어 큰 문제는 없었다. 

       

       그새 아이스크림을 과자까지 챱챱 먹어치운 아르는 손에 묻은 부스러기를 핥아 깔끔히 먹고, 내가 아까 아르한테 해 줬던 것처럼 띵한 관자놀이를 젤리로 문질문질해 주었다. 

       

       “…미안해요. 그렇게 다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괜찮아요. 레온 씨 머리만 멀쩡하면 됐어요.”

       “실비아 씨….”

       

       실비아의 말에 내가 감동 받은 눈을 하자 실비아는 빙긋 웃었다. 

       

       “비록 전 남은 과자밖에 더 못 먹었지만…. 레온 씨만 괜찮으면 됐죠.”

       “이따가 올 때 제가 하나 사 드릴게요.”

       “딸기맛으로 부탁해요.”

       

       여튼, 우리는 곧 용병 길드에 도착했고. 

       

       “오셨군요, 형님! 누님! 귀여운 아르도 안녕…아니 이럴 때가 아니라.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길드원의 안내를 따라 포로들을 잡아 놓은 곳으로 들어간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뭐죠…?”

       

       현장은 끔찍했다. 

       포로로 잡은 시프 길드원들은 결박을 당한 채로 쓰러져 있었는데, 입에서 핏물을 쏟은 듯 땅바닥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몇몇은 숨이 붙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다.

       

       “설마 그새 고문까지 한 건….”

       “아,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가 죽을 때까지 고문을 하면서 심문하진 않습니다!”

       “하긴, 그렇겠죠.”

       

       물론 죽어도 싼 극악무도한 놈들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죽을 때까지 몰아붙이진 않았겠지. 

       

       “얻어낸 정보는 있습니까?”

       “그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목소리가 들린 건 뒤쪽이었다. 

       

       “길드장님?”

       “레온 님. 면목이 없습니다. 날이 밝았는데 오시지 않기에 피곤하셔서 주무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저희가 미리 어느 정도 심문을 진행하려 했습니다만….”

       

       길드장 반하임은 어두운 표정으로 쓰러진 시프들을 내려다 보았다.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인지 정보를 캐내려 하면 어느 순간 몸 안에서 마치 거부 반응을 일으키듯 피를 토하며 쓰러지더군요.”

       “거부 반응을요…?”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아무리 베일에 싸여 있는 어둠의 조직이라 한들, 근본은 결국 도둑놈들이다. 

       

       ‘중요 정보를 발설할 때 피를 토하고 심하면 죽을 정도의 암시를 걸어 놓는다고? 그것도 이런 작은 아지트에서 활동하는 놈들한테 일일이?’

       

       암시란 건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정도로 강한 암시라면 한 명한테만 건다고 해도 엄청난 힘이 필요할 터.

       

       ‘대체 시프 길드의 뒤에 뭐가 있길래?’

       

       만약 상부 아지트의 위치가 발각되는 걸 염려했다면, 이런 암시를 일일이 걸 게 아니라 애초에 이런 졸개들한테는 상부 아지트의 위치 자체를 안 알려 줬을 것이다. 

       

       중요한 정보일수록 알려주고 입을 막는 것보다 처음부터 안 알려 주는 게 여러 모로 편하고 안전할 테니까. 

       

       ‘그런데도 굳이 암시를 걸었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아주 그냥 힘이 넘쳐 나서 말단 졸개들한테 중요한 정보를 싹 다 알려 주고 암시를 걸어서 입을 틀어막았든지.

       

       아니면.

       

       ‘이쪽의 질문에 대한 답이, 생각보다 더 들켜서는 안 되는 위험한 것이든지.’

       

       그리고 아무래도 가능성은 후자가 높을 것이다. 

       

       “길드장님, 나머지는 제가 직접 심문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다행히 우두머리 놈은 숨이 붙어 있으니 자유롭게 심문하셔도 됩니다.”

       

       길드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한쪽에 따로 묶여 있는 우두머리에게 다가갔다. 

       

       “야, 일어나.”

       “…이번엔 또 누구지.”

       

       우두머리는 머리를 들더니 피식 웃었다. 

       

       “아하, 네놈이로군. 말도 안 되는 마법을 마구 써 대던…. 제기랄. 이런 놈이 하필이면 이때….”

       “그래. 말 한 번 잘 했네. 너네, 하필이면 이때 성유물 조각을 훔쳐 간 이유가 뭐냐?”

       

       내가 가장 궁금해하던 질문이자, 스토리에 대체 무슨 변수가 발생한 건지 알아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신기한 걸 묻는군. 성유물 조각이 있다는 정보를 알았으니 훔쳤지, 다른 이유가 있겠나?”

       “그 시기가 왜 하필 지금이냐는 얘기야. 어차피 네놈들은 게콘이라는 의심 안 받는 첩자도 성공적으로 심어 놨겠다, 성유물 조각을 훔치는 큰 사건을 굳이 지금 일으키지 않더라도 충분히 더 이용해 먹을 수 있었을 거 아니야.”

       

       실제로 원래 스토리에서는 지금 시점보다 훨씬 나중에 일어날 사건이었다. 

       

       지금 그들이 한 짓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거나 다름없는 짓.

       

       보통 이런 짓을 하는 건 거위가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게 되었거나, 아니면 당장 배를 갈라 알을 당겨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벌어졌거나 둘 중 하나의 상황에 처했다는 소리고, 놈들의 경우는 후자였을 거다. 

       

       나는 우두머리의 답변을 기다렸다. 

       

       “…돈이 필요했다.”

       “그렇겠지. 무엇에 쓸 돈이었는데?”

       “상부에서 명령이 있었다.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범위가 너무 넓어 돈이 많이 필요했어. 알다시피 정보는 곧 돈이니까.”

       “어떤 정보를 수집해야 했는데?”

       “…그건 알려줄 수 없다. 저놈들처럼 되긴 싫거든.”

       

       우두머리는 피를 토하고 쓰러진 시프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서 하나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하. 말하면 안 되는 게 그쪽이었구나. 상부 아지트의 위치 같은 게 아니라, 상부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급하게 내린 명령의 내용. 그쪽이었어.”

       “…그, 그건.”

       

       우두머리의 얼굴이 일순 하얗게 질렸다. 

       

       “그, 그래서 그걸 안다고 뭐가 달라지지? 어차피 그 내용은….”

       

       말을 더듬던 우두머리가 그대로 굳었다.

       그의 입술이 별안간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아닙니다. 절대 방금 말하려 했던 게….”

       “…응? 뭐라는 거야, 갑자기.”

       

       하지만 나는 곧 그 말이 나를 향해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컥, 커걱. 절대, 말 안…. 컥.”

       

       그의 눈의 초점은 이미 나에게 맞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티는 듯했으나, 곧 입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살, 살려…. 무…트, 님…. 커헉!”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피를 한 움큼 쏟으며 숨을 거두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길드장이 탄식을 뱉었다. 

       

       “이런…. 결국 이놈마저 정확한 이유는 내놓지 않고 죽어버렸군요. 그래도 놈들에게 내용을 발설하면 안 되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다는 걸 알아내신 게 대단…. 레온 님?”

       

       하지만 길드장의 말은 지금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에 놈이 했던 말만이 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무, 트, 님…. 

       

       ‘이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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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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