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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 ***

         

       일주일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때마다 떡밥과 내단을 투여하고 흑묘의 지도 하에 무공을 익히거나…화리를 낚으며 기사천의 제어법을 익히거나 아니면 흑묘와 멱을 감거나.

         

       흑묘가 경계심이 없어져서 훌렁훌렁 벗고 다닐 때 곤란했던 것만 빼면 훌륭한 여름피서 그 자체였다.

         

       이제 화리의 배를 갈라야 할 시간이었다.

         

       지난 일주일간 일정 주기로 투입된 떡밥 때문에 화리의 경계심은 0에 가까워졌다. 나는 기사천과 연결된 떡밥을 던져넣었다.

         

       피잉!

         

       “와!”

         

       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무게. 상당히 커졌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순식간에 딸려 들어갈 뻔 했다. 나는 디딤발을 조정하고 체중의 중심을 아래로 낮추며 기사천을 조작했다. 단순하게 힘만으로 끌어 올리기에는 어려운 상대.

         

       “합! 찻! 햡!”

         

       일주일간 갈고 닦은 기사천 제어 기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화리가 거세게 당길 때 줄을 살짝 풀어 그 기세를 교란한 뒤 순간적으로 당긴다. 그렇게 능숙하게 힘을 빼고 있자니 점차 당기는 힘이 약해진다.

         

       지금 이 순간. 단번에 당기면 한번에 낚아 올릴 수 있다. 일주일간 여러 화리를 낚으며 축적된 경험이 나에게 속삭였다.

         

       기사천에 내공을 넣으며 단번에 끌어 올렸다.

         

       촤아아아!!

         

       7척은 되어보이는 거대한 화리가 뭍으로 끌려 나왔다. 펄떡이는 힘도 수준이 달랐다. 지느러미 힘이 어찌나 강한지 한번 펄떡일 때마다 사람 키 정도는 뛰어오르는 화리.

         

       다른 웅덩이로 들어갈 기세로 날뛰는 화리를 흑묘의 낚시대가 제압했다.

         

       “세상에 일주일만에 이렇게 커지다니…놀랍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고작 일주일 사이에 두배로 커지다니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눈으로 보니 놀랍기 그지 없군. 이게 영물인가.

         

       나는 약간 서두르며 화리의 배를 갈랐다. 오늘 마지막으로 수중동굴을 탐험해보니 거의 물이 가득 차올랐다. 안전하게 빠져나가려면 좀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오…”

         

       내단은 확연히 커졌다. 기껏해야 새끼손톱만한 내단 스무 개를 합친 결과 탁구공 크기와 비슷한 내단이 형성되었으니까.

         

       이로써 수속성 영약은 확보했다. 화리라고는 하지만 그건 그냥 비늘색이 불꽃 비슷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고 물에서만 나고 자란 물고기니 당연히 수속성이지.

         

       “돌아가는 길은 꽤 빡빡할 테니 쓸모 없는 것들은 다 버리자.”

         

       “으음…그래도 이 철 낚시대는 기념으로 가져갈래요!”

         

       “그래.”

         

       수중동굴의 물은 꽤 위험한 수준까지 차올라 있었다. 대충 9할 7푼? 하루만 더 있었다면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푸하..!”

         

       강이라고 하기 민망했던 민장강의 수위 역시 크게 올라왔다. 우리 둘은 장강에 헤엄쳐 나온 뒤에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아~ 재밌었다. 날씨도 훨씬 살만해졌네요.”

         

       무더위 역시 한풀 꺾인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더운 여름날이긴 했지만 한 고비를 넘긴 느낌.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휴가였다. 흑묘는 오래간만에 사람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피서를 즐겼고 낚시와 물놀이도 실컷 했다.

         

       나 역시 뭐 눈요기도 실컷 하고 영약도 얻었고 혹서도 시원하게 넘겼으니 만족스러운 피서였다.

         

       그렇게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사천성에 귀환했더니.

         

       “…이거 왜 이래.”

         

       사천성이 죽어 있었다.

         

       *** ***

         

       사천성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시장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늘 미어 터지도록 상품이 높여 있던 가판대들은 텅텅 비었으며 사람들의 눈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냥 한눈에 봐도 큰일이 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모습.

         

       “선배. 저는 좀 다른 곳에 들려서 정보를 수집하고 객잔으로 향할게요.”

         

       “그래 알았다. 나는 우선 객잔으로 가 있을게.”

         

       흑묘는 우선 월복당과 접촉해 정보를 얻을 생각인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 역시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천성에 이런 이벤트가 있었던가?

         

       낭인객잔에 도착한 나는 지금의 사천성 분위기가 왜 이렇게 엉망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산적?”

         

       “거 어디 절에 일주일 동안 박혀 있다 왔나? 녹림칠십이채 중 4개 채가 연합해 남경대로의 정남산을 점령하고는 닥치는 대로 재물을 빼앗고 있는 상황일세.”

         

       유사연은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정삼에게 현 사천성 사정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귀를 의심할 소식이었다. 남경대로의 정남산이라면 이 사천성에서 도보로는 3일 거리. 일반인의 걸음으로나 3일 거리지 말이나 경공을 사용할 줄 아는 고수가 달리면 끽해야 성에서 하루인 거리다.

         

       “초절정 고수 4인에, 산적치고는 고수를 차출한 병력이 무려 오백일세. 사천성 문파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인원이지.”

         

       “허허.”

         

       나는 절로 헛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사천성에 많은 문파들이 자리하고는 있었지만 초절정 고수는 세 명뿐이었다. 사천성을 탈탈 털어도 고수의 숫자에서 밀린다.

         

       피서를 다녀온 사이에 사천성에 이런 난리가 벌어졌다니.

         

       일단은 정삼의 입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파악했다. 우선 사천성의 문파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힘을 모아보려고 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잘 풀리지는 않는 모양. 사실 사천성의 문파들만으로 산적들을 쫒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사천의 거대방파들에 대한 소식은?”

         

       “뭐 시일이 지나면 나서기야 하겠지만…지금 당장은 아니겠지.”

         

       그렇긴 하지. 산적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면 사천성에서 빠르게 소식이 전파되었다고 치더라도 황보세가와 점창, 아미, 청성, 종남파에 소식이 닿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일단은 제자들을 내려보내서 진상을 파악한 뒤에 움직이겠지.

         

       거기에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쯤 되는 거대방파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합당한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에 얽매이는 것은 정파의 단점이자 장점이니까.

         

       합당한 명분이 없으면 정파는 검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정파는 믿고 따르고 사파는 멀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사파는 제 이득에 따라 멋대로 힘을 사용하며 사람을 해치지만 정파는 명분을 따지며 합당한 명분이 없을 시 그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대세가나 구파일방은 그런 정파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다른 정파보다도 더 명분을 따진다.

         

       어디까지나 사천성은 사천성 문파들의 영역이다. 아무리 산적들이 나타났다고는 하나 나타나자마자 전격적으로 사천성으로 진격해 토벌하는 것는 일종의 월권 행위였다.

         

       최소한도로 잡아도 거대방파들이 나서기 위해서는 일주일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저런 피해 내용을 정삼에게 전해 듣고 있자니 흑묘가 나타났다.

         

       “음…선배. 문제가 좀 생겼어요.”

         

       “무슨 문제?”

         

       “영약 말이에요. 목속성 영약을 판매하기로 한 천유상단이라는 곳이 있었는데….아무래도 산적에게 털린 모양이에요.”

         

       “허허…”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죽립을 쓰고 몸을 일으켰다. 내 영약에 대한 사정도 알아볼 겸, 정삼에게 간접적으로 정보를 얻느니 직접 산적을 마주 본 피해자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 ***

         

       “짐을 모두 빼앗겼다는 소리로군요?”

         

       “그렇소…휴우..협객분들이 나서 산적을 토벌해 주실 때까지는 거래가 어렵겠구려.”

         

       유찬의 안색은 당장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파리했다. 산적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고 모든 짐을 다 빼앗겼으니 이해가 되는 모습.

         

       “그런데…산적들이 영약인 것을 알면 섭취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천하에 도사린 위험이 얼마나 많은데 영약을 영약처럼 들고 다닐 수 있겠소. 화장품 상자에 이중 구조로 보관해 두었으니 물건이 무사할 가능성은 충분하지. 물론…들켰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산적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유찬은 더 이상 대화할 기력 자체가 없는 듯 했다. 산적에게 큰 재산을 빼앗긴 사람을 붙잡고 괴롭힐 수는 없었기에 나와 흑묘는 결국 입맛을 다시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 됐구만.”

         

       “그러게요.”

         

       이렇게 손쉽게 영약을 구할 수 있는 기회는 무척 드문 편인데…꽤나 아쉽게 되었다. 갑자기 산적이 나타났다라.

         

       사실 떠오르는 원인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일예.

         

       “이거 막여부가 잡힌 탓이려나?”

         

       “가능성은 있죠. 아무튼 사천에 산적들이 나타난 것은 칠십이채에 속한 산채의 두령을 베었기 때문일 것이고.”

         

       왜 여일예가 막여부를 잡았는데 엄한 사천성에 와서 난리를 피우는가 싶겠지만 그러니까 산적이다.

         

       점창파와 전면전을 벌일 힘이나 용기는 없으면서 보복은 해야겠으니 고른 수단이라는 것이 엄한 사람들을 약탈하는 것. 그야말로 경악할 인성의 소유자들이지.

         

       산채를 건드린 여일예나 점창은 어떻게 하지 못하면서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는 셈이랄까.

         

       너희들이 우릴 건드리면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니 그만두라는 협박인 셈이다.

         

       너무 멀리서 행패를 부리면 의미 전달이 되질 않고 그렇다고 점창 앞에서 이런 짓을 벌였다가는 순식간에 쓸려 나갈 수 있으니 만만한 사천성 앞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고.

         

       녹림칠십이채의 채주라고 해 봐야 끽해야 초절정 수준. 이런 산적 연맹 따위가 아직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라면 이들을 함부로 건드렸을 때 이런 식으로 보복조치가 취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전격적으로 나설 줄은 몰랐는데.”

         

       산채 하나를 몰살시킨 것도 아니다. 부채주는 부상을 입었다지만 산적들은 다 멀쩡했고 산채도 그대로 온존시켰다.

         

       ‘개왕채’가 아니라 ‘막여부’에게 볼일이 있음을 확실하게 한 행동. 개인의 은원에는 아무리 막 나가는 녹림칠십이채라도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다. ‘산적’이라는 놈들은 그야말로 은원 덩어리들이나 마찬가지인 녀석들이니까.

         

       여일예가 점창파 제자이고 이 정도로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채들이 나섰다는 것도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네 곳이나 연합해서 사천성의 길목을 틀어막았다.

         

       산적들이 비정상적인 분노를 느껴 뭉쳤다기보다는 누군지 모를 배후가 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겠지.

         

       “뭐, 산적들도 사천성이 탐이 나긴 했을 테니까요. 언젠간 벌어질 일이었을 테고.”

         

       흑묘의 이야기에도 일리는 있었다.

       

       산적들은 영역 이동이 잦은 편이다. 행인들도 산적이 자리잡았다는 소문을 들리는 곳을 일부러 지나가려고 하지는 않으니까. 정말 좋은 위치에 둥지를 튼 것이 아니라면 같은 자리에서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수익이 줄어드는 셈이다.

       

       근본이 산적 놈들이니까 그냥 적당한 명분을 등에 업고 금싸라기 땅인 사천성에 자리를 잡고 싶었던 것일까.

         

       새 둥지로 사천성 인근을 선택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사천성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도시였으니 군침이 흐를 법도 하지.

         

       그렇긴 한데…

         

       “뭔가 부족한데.”

         

       여일예가 막여부를 건드렸기에 산적들이 날뛴다. 딱히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였다. 사천성에 이런 이벤트가 펼쳐지게 된 것도 이해는 간다. 결국 흑묘가 여일예를 정남산으로 인도해주지 않았다면?

         

       여일예는 막여부가 칠보옥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접할 수 없었을 테고 복수의 단초를 잡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말은 된다. 말은 되긴 하는데…이게 뭐라고 해야 할까. 중요한 것들이 빠진 느낌이었다.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단서가 부족했다.

       

       “후우…”

         

       나는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번 피로를 자각하자 급속도로 무거워지는 몸.

         

       우선 동굴을 탈출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수영을 했고 그 상태로 오래간만에 무더위를 맛보며 사천성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귀환하자마자 몸의 피로를 풀 시간도 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상인을 만나고.

         

       지친 몸으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것일까.

         

       “일단은…객잔에 돌아가서 뭐라도 먹고 유사연이랑 이야기를 해보자.”

         

       “알았어요.”

         

       객잔에 돌아와 간만에 제대로 된 요리와 뜨끈한 차를 한잔 마시고 나니 조금씩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거…꽤나 위기 상황이군.”

         

       뱃속에 뭘 집어넣고 영양분이 뇌로 공급되기 시작하자 머릿속에 쑤셔 박혀 있던 정보들이 하나 둘 소화되기 시작했다. 모인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녹아들면서 진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정보가 머릿속에서 소화되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결론이 있었다.

         

       사천낭인이라는 직종 자체가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

       

       일류는 물론이고 드래곤볼을 모아 절정의 경지를 돌파한 뒤에도 내 무공 경험치를 톡톡히 늘려 주면서 내 지갑도 채워 줘야 할 직업이 사라질 위기!

       

       문파들이 사천낭인을 고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청정지역 사천성에서는 도무지 무림문파의 사람들이 제대로 이름을 떨칠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소한 협명이나마 떨쳐보고자 사람들의 싫어하는 낭인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조금의 명성이나마 얻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이 사천성은 그만큼 청정지역이었고 동시에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그런데 사천성에 산적 연합이 등장했다. 사천성을 드나드는 상단을 약탈하며 엄청난 재산 피해를 야기시키고 있는 진짜 악적들.

         

       산적들의 행보는 이 사천성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밤이 담긴 바구니나 걷어차는 사천낭인들을 상대로 열을 올리던 사천성 사람들이다.

       

       목숨을 위협받고 재물을 탈취당하는 진짜 위협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연출된 것이 아닌 진짜 위기상황을 경험한 사천 사람들이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한 문파를 어떻게 대할까?

       

       절정의 인기를 달리던 영지문을 따위로 만들어버릴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현 사천성의 패자가 될 것이 뻔했다.

       

       그야말로 무적공공문의 탄생이다.

       

       사천성에 있는 중소문파들 따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산채 연합이니 뒤에 있는 거대문파들이 움직여야 해결될 일.

       

       거대문파들이 어떤 합의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어떤 문파가 전면에 나서 토벌을 진행할지, 그리고 토벌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는 문제였지만.

       

       거대 문파 다섯이 한꺼번에 나서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녹림칠십이채 전체와 붙는다고 해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입장에서는 고작해야 산적을 상대해야 한다며 안색을 찌푸릴 일. 그런데 끽해야 산채 4개 연합에 구파일방 넷과 오대세가 중 하나가 달려든다는 것은 체면이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마 한 개 문파가 대표로 나서지 않을까.

       

       뭐 거대문파들끼리 어떤 식으로 이권을 조절하는지는 내 알바 아니었다.

       

       내 알바는 무적공공문이 탄생하면 사천낭인인 나에게 엄청난 불황이 닥칠 것이라는 점이다!

       

       기껏해야 밤 바구니나 걷어차는 낭인들을 토벌해 봐야 진짜 사천을 위협하던 거악, 녹림칠십이채의 네 산채를 물리친 무적공공문의 질서 아래 개편된 신 사천성에서 얼마나 먹힐까.

       

       무적공공문의 신 질서 아래 경쟁력 없는 문파들은 모조리 무적공공문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현판을 내릴 것이며 버텨낸 문파들도 사천낭인을 고용해서 연출을 벌일 생각은 접고 산적 토벌의 여파가 사라질 때까지 웅크릴 것이다.

       

       사천낭인들은 무적공공문의 존재가 성립하는 순간 기약할 수 없는 살인적인 한파에 노출되는 셈이었다.

         

       “쓰읍…당장 돈에 여유부터가..”

         

       가끔 무협영화나 무협지에서 산골의 동굴에 처박혀서 야생동물을 잡아먹고 폭포수 마시며 수련만 하곤 하는데 이 무림천하에서 그런 식으로 수련을 했다가는 순식간에 수련효율이 바닥을 찍는다.

       

       일단 의식주를 본인이 다 해결하면서 수련을 한다는게 말이나 되냐.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이 얼만데. 전업주부라는 직업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사람이 먹고 자고 마시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과 시간은 절대 적은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무림천하에서 돈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수련만 하더라도 돈이 필요하다. 그래야 의식주를 돈으로 해결하고 수련에만 몰두할 수 있으니까.

       

       수련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영약, 경지에 걸맞는 무공 등을 갖추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지금 사천성 산적 사태가 해결되고 나면 목속성 영약을 구매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만약 목속성 영약을 구매한다면? 전재산이 탈탈 털리는 셈.

       

       “끄응.”

       

       절정까지 충분한 실전을 경험할 수 있는 사천낭인. 난 못해도 절정의 완숙에 오르기까지는 사천낭인 생활을 계속할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영약을 구매해 주머니가 텅 비더라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사천낭인의 수익은 그만큼 고수익이었으니까.

       

       “후훙~ 그러게 도박 좀 적당히 하시지.”

       

       흑묘가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놀렸다. 사천낭인들 중 유일하게 심각하지 않은 이가 있다면 바로 흑묘겠지. 사천낭인들 전체가 나처럼 미래를 예측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기감각이라는 것이 있다.

       

       산적 사태를 해결할 힘이 없는 중소방파들만 있는 사천성이다. 이런 시기에 눈치없이 사천낭인으로 연출을 벌였다가는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의뢰 역시 뚝 끊겼겠지.

       

       산적의 등장과 함께 달라진 공기를 감지하고 낭인들이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제 신세 지면서 무공 수련이나 하면 그만이니까~”

       

       흑묘에게 얹혀사는 기둥서방이라. 살아있는 장난감이 되겠군. 목속성 영약은 직접 구하러 가는 한이 있더라도 돈은 남겨놔야겠다.

       

       “한동안 의뢰도 없을 것 같고. 산적들 때문에 소란스러울 것 같은데 바깥으로 나갈 생각은 없나요?”

       

       흑묘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영약을 구하기 위해 투자할 시간보다 절정에 오를 수 있도록 일류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이 훨씬 길다. 그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일이 바로 사천낭인으로써의 활동을 이어가는 것.

       

       사천낭인 말고는 이토록 수련에 집중하고, 고 수익이며, 비무와 실전 경험치를 동시에 쌓을 수 있는 직업은 없다.

       

       이런 개꿀 직장 포기 못해!

       

       나 나름대로 수단을 강구해서 사천낭인이라는 직종이 별 타격을 받지 않고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수를 써봐야겠지.

       

       사천낭인이 몰락하면 곤란한 것은 나 혼자뿐만이 아니다.

       

       유사연도 낭인들도 중개인들도 모두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

       

       나름대로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수가 마련되지 않으려나.

       

       흑묘의 정보력에 유사연에 낭인들 그리고 중개인들의 영향력까지 다 발휘해서 어떻게든 해 봐야지.

       

       나는 유사연 전용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사연이 1층에 있을 때면 항상 앉은 유사연 전용 자리는 비어 있었다.

       

       지금 이 사태에 가장 위협을 느끼는 사람은 유사연일 테니 부지런이 움직일 수밖에.

       

       그래 이제야 상황파악을 끝마친 나보다는 지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유사연이 무언가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해결책을 들어본 뒤에 움직이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피로한 몸과 정신을 달래기 위해 차를 들이키고 있었을 때였다.

       

       끼익.

       

       낭인객잔의 문이 열렸다.

       

       “실례하오.”

       

       낭인객잔을 찾는 손님은 본래 없었지만 오늘 따라 어수선하게 착 가라앉은 분위기인 낭인객잔. 돈을 헤아리며 신나하는 중개인도 의뢰에서 좋은 실전경험을 했다고 흡족해 하는 낭인 한 명 없이 그저 산적 때문에 우거지상을 짓고 있는 이들만 한가득인 와중.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미성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익숙한 점창파 도복에 붉은 담비털.

       

       그리고 낭랑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곱고 흰 얼굴. 머리에는 백건을 단정히 눌러쓴 모습. 전형적인 귀공자상에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너무나 특정적인 모습.

       

       누가 봐도 점창파 제자요 누가 봐도 후예십시 중 일원이었고 누가 봐도 옥룡신협임을 짐작케 할 수 있는 외모였다.

       

       “이곳에 제 사저인 여일예의 은인이 있다 찾아왔습니다만.”

         

       내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낭인들은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혁기린은 긴 눈썹을 까닥이더니 낭인 객잔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하더니…

         

       내 앞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여일예에게 나와 흑묘의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나와 흑묘가 있는 쪽을 향해 빙그레 웃어보이는 혁기린.

         

       “하하, 마침 자리를 지키고 있으셨나 봅니다.”

         

       점창파 대사제. 후예십시의 필두.

         

       또한 남장여자이자 직계 황실 혈통의 공주.

         

       옥룡신협 혁기린이 나를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해당 회차는 22/8/11 일에 리메이크되었습니다.

    댓글과 본문의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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