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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제가 보여드린 유서는…….”

        

       분명히, 아가씨의 것이 맞습니다.

        

       양혜인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도 그 말을 제대로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양혜인은 사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보필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사라가 자학하고 있다는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녀가 그런 유서를 쓰고 있다는 것도, 자신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수면제를 구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걸로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것도. 병원에 직접 따라간 주제에,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아동 학대로 신고한 의사와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을 압박하여 쫓아낸 것도 자신이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거액의 연봉을 받고 일하는 메이드였으니까.

        

       …….

        

       정말로 그럴까?

        

       정말로 그저 돈을 받기 때문에 그에 협력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단순히 돈을 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아동 학대’의 가해자 중 한 명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받았으니까, 그만큼의 일을 해야 하니까…… 그런 것은 전부 핑계에 불과했다. 만약 사라의 아동 학대에 가담한 범인들을 잡기 시작하면, 자신도 거기에 딸려 들어갈 것이 뻔했으니까, 움직인 것이다.

        

       사라의 태도가 바뀌기 전까지, 양혜인은 사라를 위해서 뭔가 해준 적이 없었다. 그저 돈을 받고 정해진 일을 매일같이 반복하며 살았을 뿐.

        

       ……사라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무슨 취미를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막상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양혜인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몰랐으니까.

        

       3년씩이나 그 곁에 있었는데도.

        

       심장이 죄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사라가 쓴 것이 맞나요?”

        

       “…….”

        

       양혜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맞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 유서를 찾은 것은 사라의 방이었으니까. 그 방에 들어갈 권한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양혜인을 포함해서 얼마 되지 않는다. 아니, 따지자면 양혜인과 사라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장에게 권한이 있긴 했지만, 회장이 그 방에 들어갔던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양혜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유하늘은, 숨을 살짝 고르고는 물었다.

        

       “혹시 이 유서는…… 양혜인 씨가 쓴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적어도 그 질문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지난 3년간의 죄에 대해서 양혜인이 진심으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 반성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양혜인 본인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사라가 굳이 자신을 탓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는 점에 기대고 있었다.

        

       두려웠다.

        

       만약 사라가, 아가씨께서, 자신의 죄를 묻기 시작한다면, 그래서 법적인 처벌을 원한다면……

        

       자신은 그걸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게는 못 할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저, 비겁하게 그 어린아이의 용서를 바라며 숨죽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하고 있다’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면서.

        

       “…….”

        

       유하늘은 한동안 양혜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둘 다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잠시간의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가고, 유하늘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수는 없어요.”

        

       당연한 말이다. 양혜인과 그녀 사이에 그만한 신뢰가 쌓인 적이 없었으니까. 유하늘뿐만이 아니라, 사라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그랬다. 오히려 단순히 ‘믿어주지 않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 이상으로 의심할 이유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이야기는 들어드릴게요. 적어도 당신이 사라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은 없으니까.”

        

       상대에 따라서는 너무 무르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적어도 지금의 양혜인에게는 고마운 이야기였다.

        

       양혜인은 기억을 더듬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그 유서를 보고 사라가 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우선, 그 유서는 사라의 방에서 나왔다. 사라의 방에 일부러 들어가 유서를 놓고 올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회장, 그리고 사라 본인뿐이다.

        

       회장이 양혜인 외의 다른 인간의 지문을 몰래 등록했을까?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모르겠다.

        

       그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기계처럼, 회장이 시키는 일을 해왔을 뿐이었으니까.

        

       “아.”

        

       그래도,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사라의 책상 서랍에 있는 것은 유서와 수면제뿐만이 아니었다.

        

       사라가 쓴 것으로 보이는, 두꺼운 노트가 하나 있었다.

        

       “노트가 있었습니다. 아가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노트요?”

        

       유하늘의 물음에, 양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가씨의 방, 책상 서랍 제일 아래 칸에, 이 유서와 함께 있던 노트가 있습니다. 그 노트의 필체도 분명, 이 편지와 같았다고 확신합니다.”

        

       “…….”

        

       유하늘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말했다.

        

       “그 노트는 사라가 쓴 것이 확실한가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

        

       양혜인은, 그 노트가 사라가 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라의 필체를 알지 못하고, 그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 노트를 보고 사라가 쓴 것이라고 확신한 이유가 뭘까?

        

       이유라면 한가지 뿐이었다.

        

       “그 노트에 쓰인 글은, 목적이 없었으니까요.”

        

       “목적이요?”

        

       “네, 목적. 누군가에게 뭔가 전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필요해서 써 내려갔다거나, 그런 목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노트에 적힌 것은 그저 이야기였으니까요.”

        

       사라가 직접 지어낸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

        

       전부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생각보다 긴 이야기였고, 특히 노트의 앞부분에선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엑스 표를 치고, 지우고 해가며 끊임없이 고친 흔적이 있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양혜인은 생각했다.

        

       그저 자신이 쓰고 싶기에, 어쩌면 그저 바라기에 써 내려간 이야기.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정성 들여서 만들어간 이야기였다.

        

       양혜인은 그게 누군가가 일부러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

        

       유하늘은 다시 한번, 양혜인의 말에 담긴 진정성을 짐작해보려는 듯 그녀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렇다면 여전히 의문이 남아요.”

        

       그리고, 다시 빌려온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끝이 뾰족한 글씨가 마구 흩날리고 있었다. 정제된듯한, 그러면서도 끝이 둥근 필체로 쓰인 유서와는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사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라잖아요.”

        

       “…….”

        

       “그런데, 이렇게까지 글씨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이 두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 필체 감정 같은 것은 할 줄 모른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이 두 필체는 절대로 같은 사람이 쓴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건…….”

        

       양혜인은 말끝을 흐렸다.

        

       “지난번에, 사라가 그 약을 먹었다고 확신한다고 했었죠.”

        

       유하늘은 시선을 들어 양혜인을 강하게 바라보았다.

        

       양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가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던 날. 병원에 실려 가서 아동 학대를 의심받은 그 날. 굳이 그날이 아니더라도, 그날을 기점으로 얼마 전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약을 먹고 그런 일이 일어났거나, 아니면 약을 먹고도 죽는 것에 실패해서 그랬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어쩌면, 그 약이 몸에 어느 정도 피해를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예를 든다면, 뇌라던지.

        

       유하늘이 그 말을 직접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질문의 의도가 훤히 보였기에 양혜인은 오히려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의사는 몸의 상처 외에는 정상이라고 했었다. 만약 약이 검출되었다면, 혹은 뇌의 이상을 감지했다면, 사라를 병원에 잡아둘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도 의사는 압박에 이기지 못해서 사라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혹시, 정말로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문제가 있었는데, 검사를 하기도 전에 자신의 조치 때문에 사라가 집으로 돌아오게 된 거라면?

        

       그래서, 혹시라도, 사라의 머리에 큰 문제가 생겼던 거라면—

        

       자신이 지금까지 ‘바뀌었다’고 생각한 사라는, 정말로 그저 ‘바뀌기만’한 것일까?

        

       …….

        

       “지금의 사라가, 양혜인 씨가 알고 있던, 그 사라가 맞나요?”

        

       유하늘의 질문에, 양혜인은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내가 알던 사라는, 사실 진짜 사라가 아닐지도 모른다.

        

       양혜인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중에도, 그런 생각이 유하늘의 가슴을 짓눌렀다.

        

       학교에서 고립되어 있던 자신을 유일하게 무시하지 않고, 그저 친구로 대해주던 사라가.

        

       날카로워 보이지만 어딘가 허당같고, 생각이 깊지만 뜬금없는 부분에서 애 같고, 돈이 많으면서도 거기 구애받지 않던 그 ‘사라’가,

        

       원래의 ‘사라’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지금의 사라는 원래의 사라를 알고 있을까? 의식하고 있을까?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을까?

        

       만약 지금의 사라가,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 원래의 사라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

        

       물론 도와주어야겠지. 그게 ‘사라’가 원하는 거라면.

        

       하지만, 만약 사라가 정말로 원래의 기억을 되찾고, 유하늘이 기억하던 사라와는 달라져 버린다면.

        

       그러면, 자신은 지금까지처럼 계속 사라를 좋아할 수 있을까?

        

       자박자박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크게 숨을 들이쉰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밤공기가 폐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서, 정신이 조금 들었다.

        

       양손으로 뺨을 찰싹 두드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흘끔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스타일과는 너무 다르다.

        

       “그래, 뭘 고민하고 있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해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걸로 된 거 아닌가.

        

       그래, 빙빙 돌릴 것도 없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저, 사라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하자.

        

       일단은, 사라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우선이겠지.

        

       유하늘은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내쉬었다.

        

       마음이 정리되었다.

        

       달려 나갈 방향도 정해졌으니,

        

       이제는, 계속 뛰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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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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