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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루시드 드림(자각몽).

     인간이 꿈을 꾸는 와중에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여 초인지 상태에 들어가, 꿈속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행위.

     루시드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하겠다’라고 해서 발현되는 게 아니며, 고도의 훈련과 정신 집중이 요구된다.

     그러나 ‘백은’을 이용하면 아주 쉽게 꿈속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이 꿈속 세상을 창조해낼 수도 있고, 꿈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수도 있다.

     가령.

     꿈속에서 자신이 이기고자 하는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내, 그 존재를 상대로 직접 싸운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부ㅡㅡ웅!

     검이 얼굴을 스친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검날에 흩날리고, 나는 즉시 뒤로 발을 빼며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른다.

     카ㅡ앙!

     크게 휘두른 장봉이 바로 남자의 주먹에 막힌다.

     어느새 남자는 검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장봉을 억누르며, 상체와 함께 검을 붙이기 시작한다.

     

     스르륵.

     장봉을 따라 올라오는 검날.

     순간적으로 보인 검신에 내 모습이 비치고, 그대로 검날이 장봉을 힘으로 짓누르며 내 목을 향해 날아온다.

     서걱.

     목이 잘린다.

     허상이지만, 목을 스치는 서늘한 감각은 분명 몸이 잘리는 느낌이 분명했다.

     잘린 부위는 목.

     하지만 비슷한 고통을 느낀 적이 있다면, 검에 옆구리가 크게 베였을 때의 통증.

     “…큭.”

     초인지를 통한 자각몽과 달리, 루시퍼 드림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럽게 아프네.”

     환상통.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기에, 꿈속에서 느끼는 감각은 모두 망각 속에 묻혀있던 기억이 발현되어 자각하게 된다.

     화상을 입어본 적이 없는 자는 불에 닿게 된다면, 끓는 물에 몸을 담근 것과 같은 감각을 느끼겠지.

     지금처럼 목이 베인 적은 회귀 전이나 회귀 후나 느껴본 적은 없지만, 목 대신 다른 건 여러 번 베여봤기에 그 고통이 목에서 느껴진다.

     “어떻게 안 되려나.”

     “당연히 안 되죠.”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나를 조롱한다.

     “육체가 다르고, 마나가 다른데. 회귀했다고 해서 신체 기술을 그대로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말이 심하십니다, 공주님?”

     “하지만 현실인걸요. 그리고 잊으셨으려나?”

     공주는 뒷짐을 진 채, 내 옆으로 느긋하게 걸었다.

     “저는 당신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는 걸. 지금의 당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진 망상이라는 걸.”

     “망상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빚어진 당신이라면, 제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나는 내 목을 베어버린 남자를 향해 다시 봉을 들었다.

     “별다른 수고도 들이지 않았던 남자가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그런 남자가 과거로 돌아와, 10살 때부터 전력을 다해 수련해왔습니다.”

     “…….”

     “기술은 어느정도 갖춰진 만큼, 남은 건 이 육신에 기억 속에 있는 기술들을 담는 것.”

     매국노 그레이는 지브롤터 변경백이었다.

     지브롤터 변경백은 오로지 마스터만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다.

     즉.

     “한번 해 본 마스터, 다시 못할 리가 없죠.”

     나는 이전에, 마스터였다.

     “하지만 그걸로 쉽게 되겠어요?”

     공주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신이 무엇으로 마스터가 되었는지 잊었나요?”

     “아니요. 잘 알고 있습니다.”

     눈앞의 남자, 매국노 그레이는 나를 향해 정면으로 자신이 든 무기를 겨눴다.

     모든 게 귀찮고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는 폐인과도 같은 눈이지만, 매국노의 ‘칼’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다.

     “소드 마스터를 배출해낸 검술 명가가 왕국이 멸망한 뒤, 제국에 붙은 초대 지브롤터 변경백은 소드 마스터가 아닌….”

     “블레이드 마스터.”

     공주가 매국노 그레이에게 다가가 칼을 빼앗는다.

     “당신이 항상 하던 말이 있었죠. 아카데미 시절, 검이 아니라 칼을 잡았다면.”

     사아아아.

     “고작 상급 기사 정도냐고 학생들이 무시하지 못했을 텐데.”

     “왕국의 학생들을 생각하면 지브롤터의 후계자가 검이 아닌 칼을 들었다고 욕을 할 것 같긴 합니다만.”

     “에이. 애초에 그 인간들은 다 그런 소리 지껄이는 쓰레기들이잖아요?”

     매국노 그레이가 자연스레 안개처럼 바스러지며 사라지고, 공주가 나를 향해 반듯한 자세로 칼을 잡으며 겨눈다.

     “중요한 건?”

     “나를 알아주는 이, 내가 지켜야 할 이가 나의 진짜 힘을 보고 믿는 것.”

     장봉을 버린다.

     손끝에 마나를 집중하여, 마나를 실체화하며 움켜쥔다.

     “어머. 그건 사기 아녜요? 현실에서는 오러는 커녕 상급도 안 되면서!”

     “꿈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인지하는 한계까지는.”

     손잡이를 향해 검지와 중지를 뻗는다.

     “마스터 급의 기술을 기억 속에 가지고 있는데, 마스터 급의 마나를 떠올리지 못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죠?”

     “물론.”

     공주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서로의 손가락 끝에 맺힌 마나가 칼날처럼 굳어진다.

     “그러면-”

     “세 번 찌르기.”

     공주가 검을 한 손으로 움켜쥐며 앞으로 뛴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속도로 찔러오는 칼.

     순서의 차이는 있지만, 찰나의 순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공격은 1초만 지나도 급소 세 군데에서 동시에 피 분수가 쏟아지겠지.

     “머리.”

     정수리를 노린 오러를 빗겨 친다.

     칼을 찌르면서 오러를 탄환처럼 쏜 참격이기에, 튕겨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배.”

     검을 비스듬히 흘려 복부 정중앙을 노리고 찔러오는 오러를 튕겨낸다.

     오러와 오러가 맞닿으며 순간적인 마나 충돌이 일어나 전신이 흔들렸으나, 공주의 오러는 내 옆구리를 스치듯 튕겨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아니.”

     막기 전에, 나는 검을 아래로 크게 휘둘렀다.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약점 공격?”

     “약점은 맞기는 하지만, 꿈속에서의 대련인데 이렇게까지.”

     수직으로 아래를 향해 뻗은 검 끝이 정확히 내 허벅지 사이에 멈췄다.

     공주가 뻗은 칼의 끝자락 또한 내 허벅지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백작님도 이렇게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자신이 이렇게 당할 수 있다는 건, 상대를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공주가 칼을 회수하며 손을 휘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를 노려서 황제를 죽일 수 있다면 벨 거예요?”

     “채썰고 다지고, 자르고 토막을 내버리고 말 겁니다.”

     “푸훗.”

     공주가 옅게 웃으며 오러로 빚어낸 블레이드를 소멸시킨다.

     “저는 결국에는 당신의 자아가 만든 허상이라, 이렇게 기억 속에 있는 기술을 복기하는 것 말고는 도와줄 수가 없어요.”

     온통 회색으로 물들어 있던 세상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결국 저도 당신도 그에게는 닿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회귀 전의 기술은 참고만 하되, 새롭게 갈고 닦는 편이 좋을 거예요.”

     “…….”

     “이것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매국노 그레이의 검은 지금의 당신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요.”

     “어째서입니까?”

     “그야.”

     공주가 키득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와 까치발을 들었다.

     “벌써 그보다, 키가 더 커버렸으니까.”

     “그래서 싫으십니까?”

     “싫을 리가 있겠어요? 오히려 좋기도 하고….”

     히죽.

     “원래도 제법 크긴 컸지만, 여기에서 더 커지면 제가 감당이 안 될 수도 있겠는데요?”

     “무슨 위험한 말을.”

     “일단.”

     공주가 나를 향해 두 손을 뻗으며 웃었다.

     “매국노 그레이를 넘어서는 게 하나 생겨서 다행이네요.”

     * * *

     “…….”

     백은을 통한 꿈에서 깨어나는 건 언제나 아쉽다.

     

     꿈속에서의 경험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즐거워,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으니까.

     하지만 깨어나야 한다.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만 망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면, 결국 현실에서 다가오는 위협에 꿈조차 꾸지 못하고 죽어버릴 테니까.

     스륵.

     침대에서 일어난다.

     방에는 오직 나 한 명뿐이고, 그 누구 한 명 이 방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요한 새벽.

     시간은 대략 6시가 되기 전 즈음.

     나는 일어나자마자 침대 옆 협탁에 놓여있는 램프를 살폈다.

     “다 썼네.”

     어젯밤에는 제법 많은 양을 담아뒀는데, 램프의 안에 있는 그릇에는 하얗게 굳은 밀랍과 타들어 간 심지의 재만 남아있었다.

     심지에 감싸놓았던 것은 흔적도 없었다.

     다 타들어 가면서 내가 자는 사이에 전부 내 폐에 스며들었으니까.

     딸칵.

     서랍을 연다.

     오직 나와 아버지만 아는 번호로 된 자물쇠를 열자, 안에는 제법 짧은 양초가 나를 반겼다.

     “하….”

     가운데 심지는 일반적인 실이 아닌, 제국산 종이를 최대한 얇게 돌돌 말아놓은 종이 심지.

     안에서 수상한 하얀 가루가 흘러나왔으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그저 솜누스 꽃잎을 말리고 빻은 가루와 어떤 한 연금술 재료를 섞어 다시 갈아 만든 가루일 뿐이니까.

     “또 잡으러 가야겠어.”

     나는 서랍을 닫은 다음, 백은을 피운 향초 옆에 놓여있는 붉은 마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석이 아래로 내려간다.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아니, 버튼 그 자체다.

     왕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제국산 물건으로, 그저 단순히 마석을 누르면 연동되어 있던 장치 하나가 개방되는 물건.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한 번 기지개를 켠 뒤, 옷장 옆에 놓인 전신거울을 훑었다.

     “음….”

     확실히.

     ‘일단 키는 확실히 손톱만큼이라도 더 크긴 크네.’

     10살 때부터 몸을 키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덕분에, 이미 회귀 전 키보다 약 1cm 정도 더 크다.

     ‘이 나이대에 이 키를 가진 사람이 1만 명 중의 1명 정도는 될까.’

     수상할 정도로 발육이 빠른 이들이 간혹 있기는 한데, 그게 지금의 내가 될 줄은 몰랐다.

     ‘걔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란 거지.’

     나야 10살 때부터 몸을 키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니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기는 하지만, 아카데미 1학년(17세)에 이미 180을 넘어섰다느니 하는 기사들은 어떻게 그 키로 성장했던 걸까.

     ‘지금보다 더 크면 싫어하려나.’

     키는 더 크면 좋고, 이제는 이 몸에서 점차 근육을 붙여나갈 차례.

     ‘카를로스 경처럼 우락부락한 정도가 아니라면 나쁘지는 않겠지.’

     지금까지는 뼈의 성장을 위해 최대한 근육단련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슬슬 체력 단련에 근육단련을 본격적으로 넣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울린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방문이 열리며, 메이드복을 입은 백발의 소녀가 잘 개어진 옷을 들고 들어왔다.

     “…….”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무슨 일이지. 45.”

     “아, 그게, 그….”

     “…음.”

     화이트 45번의 눈이 어디를 향하나 싶었더니,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내 몸을 보고 눈동자가 흔들렸던 것 같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죄송할 필요가 없고 실례라고 할 것도 없지. 이게 뭐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 그게….”

     “후계자의 건강함을 살피고 보고하는 것도 메이드의 일 중 하나다. 자책할 필요는 없다.”

     딱히,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다.

     육체미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니까.

     “오히려 잘 됐군. 나중에 협곡에 있는 ‘아이페리아 아웃렛’에 물건 사러 가면 몰래 소문을 퍼뜨려도 좋다.”

     “그, 그래도 되나요…?”

     “그래. 너도 제국에 보고해야 실적이 쌓일 거 아냐.”

     “아, 아무리 그래도 도련님의 근육…흠흠, 건강 상태를 팔아서 제 실적을 쌓는 건….”

     “괜찮다.”

     부끄러운 걸 파는 것도 아니고, 실제 사진을 파는 것도 아니니까.

     “지브롤터의 후계자가 건강하게 자라고, 심지어 그 장래가 기대된다는 정보면 제국 황태자도 크게 기뻐할 거다.”

     “황태자만 기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어허.”

     나는 45번으로부터 옷을 받아, 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알면 얌전히 지시에 따르도록. 내 그림자로서.”

     “예, 그레이 도련님. 아. 원격 잠금 해제 장치랑 호출벨은 어떻게, 마음에 드셨나요?”

     “제국의 마도공학도 결국에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네?”

     “편의성을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그 편의가 하인을 부르는 데 쓰기 좋은 물건이라니.”

     이런 걸 보면 제국이나 왕국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국 문물 들여와서 좋기는 하지?”

     “…….”

     아주 사소한 곳에서부터 왕국과 제국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너희,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따뜻한 물 쓰려면 끓인 물을 사용해야 했잖아.”

     “그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됐어.”

     그레이, 15세.

     세이레네 항구 개방으로부터 약 2년-

     “샤워 끝나는 대로 백작성에 갈 거니까, 준비해 둬.”

     “리모델링 중인 백작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정정.

     “제국식으로 지어진 신축 백작 저택.”

     지브롤터 협곡 제 1관문 개문을 통한 제국과의 중개무역 시작으로부터 약 2년.

     “그 뭐지, 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마도공학기계.”

     “제국어로는 ‘마도 온수 보일러’입니다.”

     “그래. 보일러. 이제는 그거 없이는 살지도 못하겠다니까.”

     지브롤터 변경백 주도하에, 지브롤터는 백작 저택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어 나가고 있다.

     “이제야 좀, 사람답게 사는 느낌이 들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레이,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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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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