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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언제였더라.

         

       – 넌 그놈의 무협 안 질리냐?

         

       당직을 서던 중,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어느 상사가 묻더라.

       매일 당직을 서면서 무협지를 읽는 게 질리지도 않냐고.

         

       – 10년 가까이 읽으면 질릴 만도 하지 않나?

       – 질릴 때 있죠. 그래도 볼 때마다 새로운 게 있잖아요.

       – 거, 참. 넌 왜 그렇게 무협을 좋아하냐?

       – 음…. 낭만이 넘쳐서?

       – 낭만은 얼어 죽을.

       – 그런 형님도 10년 넘게 듀얼인지 뭔지 하시면서, 안 질립니까?

       – 마! 듀얼은 사나이의 심금을 울리는 근본이야, 근본!

       – 아, 예에….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나 상사나 서로 괴짜였던 것 같다.

         

       그래도 그는 저가 상사보다 낫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무협만이 아니라, 웹 만화건 연애물이건 뭐든 다양하게 즐기는 데 반해, 그 양반은 1세대 카드만 질리도록 파는 양반이었으니까.

       자기 말론 근본이랑 2세대까지만 인정한다나 뭐라나….

         

       어쨌든, 상사의 말대로 그는 유독 다른 장르보다 무협이란 장르를 선호하는 것이 맞았다.

       이유를 대자면.

         

       – 호쾌하니까.

         

       호쾌하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부러워한다고 했으며, 그는 이상하도록 호쾌한 협객이란 놈들이 좋았다.

         

       고민 따윈 없다. 그냥 직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내일을 걱정하기보다 현재를 살며, 죽음의 공포보다 하루를 대충 살까 전전긍긍하며 매분매초를 전력으로 살아간다.

       언제 삶이 끝날지언정 후회가 없도록.

         

       이 얼마나 호쾌하고 눈부시단 말인가.

         

       …난 그렇지 못했다.

         

       항상 주눅이 들었으며, 자신감이 부족했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뿐인 삶.

         

       이 얼마나 갈대 같은 삶이란 말인가.

         

       하여 그는 재벌이나 권력자보다 협(俠)을 위해 살아가는 무협지 속 협객의 삶이 부러웠다.

       그들의 삶에는 자잘한 변명이 없었으니까.

         

       – 그럼, 주인공이 좋다는 거냐?

       – 아니요, 그냥 무협지 속 협을 쫓는 이들이 다 부러운 거죠.

         

       그래, 그는 무협 속 주인공이 좋은 게 아니었다.

       협객의 삶을 동경했고, 마음 깊은 곳에 항상 그려왔던 이상성이 된 것 같다.

         

       하여 자주 중얼거렸다.

         

       –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그땐 비겁한 변명도 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살렵니다.

       – 지금이라도 해보든가?

       – 그럼, 대대장 정수리에 불 질러도 돼요?

       – …어어, 그 양반 이미 대머린데, 굳이?

       – 흐흐, 그것도 그러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지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이다.

         

       뭐.

         

       “으음, 상관 폭행이 호쾌한 건 아니려나?”

         

       생애 마지막 끝에는 나름 원하는 이상성을 이루었었지 않나 싶지만.

         

       그가, 아니 어느새 전생의 저와 동갑이 된 이한은 앞만을 보고 전진하며 생각했다.

         

       과연 그는 전생의 자신이 말한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알 바냐.”

         

       허나 이한은 곧 이 또한 쓸데없는 고민이라 일축했다.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협객스럽지 않다.

       그저 이거 하나만 기억해 두면 되는 거다.

         

       ‘난 내가 옳다는 것을 행할 것이며, 그 행동에 타인의 평가 따윈 필요 없다.’

         

       결국 정답은 없다.

         

       이 행위로 인하여 어떠한 파급이 벌어질지 신이 아닌 이상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일 행위이며.

         

       책임 또한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탁.

         

       이한은 드디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진을 멈출 마음으로 멈춘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의 앞을 가로 막는 성벽과도 같은 담벼락이 보였고, 정문에는 담벼락보다 튼튼해 보이는 철문이 있기에 어찌 할까 궁리했지.

         

       선택지는 두 개였다.

         

       담벼락을 넘거나, 그도 아니면 소리치거나.

       하지만 그 선택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귀족을 도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화끈하게 가야지 않겠는가.

         

       하여 그는.

         

       저벅저벅.

         

       “응?”

       “뭐야?”

       “그 자리에서 멈추시고 신원을 밝히십시오, 이곳은 트리스탄 가의 저택입니다.”

         

       철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날 선 기세를 내뿜으며 경고를 전했다.

       역시 명문가.

       병사조차 정예였고, 기세가 남달랐고, 언제라도 그를 공격할 의사가 전해졌다.

         

       한데도.

         

       “머, 멈추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한은 멈추지 않고 정면을 향해 직진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마냥 말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좀 더 걸음이 빨라졌고, 급기야 뛰기 시작했을 때는.

         

       “화, 활을 쏴라! 침입자다!!”

         

       댕댕!!

         

       야밤의 침입자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활을 겨누었다.

       망설임 없는 저격.

         

       훌륭했다.

       만약 제 밑에 있었다면 기꺼이 포상휴가도 주었을 터.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그가 줄 수 있는 건 없었고, 현재의 그는 단순히.

         

       타앙! 타아앙!

         

       “화, 활이!?”

       “뭐, 뭐야 저거!!”

         

       저들을 뚫어낼 습격자에 불과할 따름이었으니까.

         

       몸에 정확히 꽂혔을 활들이 모조리 다 튕겨진다.

       갑옷에 맞아 튕겨져 나간 것이 아니다.

         

       그가 전력으로 달리며 생기는 강렬한 압력에 의해 활이 튕겨져 나간 것이다.

         

       바람을 찢을 듯이 달리는 그였고, 그는 그렇게.

         

       후욱!!

         

         

       날아올랐다.

         

         

       “━!”

         

       높이뛰기 선수마냥 공중을 부양하는 그였고, 그는 5미터 거리를 단숨에 주파하며 제 앞을 가로막는 철문을 향해 주먹을 뻗는다.

         

       백보신권도 뭣도 아닌, 그저 온 힘을 담은 정권 지르기.

         

       그리고 그 주먹은.

         

       콰지지직!!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문을 날려버리는 위력을 발산했다.

         

       콰아아아앙!

         

       “…….”

       “…내, 내가 지금 꿈을 꾸나?”

         

       병사들은 공격하던 것도 멈추며 마냥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아니….

         

       저게 왜 주먹질로 부서진단 말인가?

         

       “…후우, 경첩이 좀 녹슬었나 보군, 평소에 관리 좀 잘해 둘 것이지.”

         

       “…….”

         

       “왜?”

         

       “허…….”

         

       뻔뻔스레 손목을 풀며 조언을 건네는 이한이었고, 병사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정면 돌파.

       이한이 선보인 세 번째 선택지는 여러모로 충격의 도가니를 선사하는 바였다.

         

       * * *

         

       트리스탄 후작가의 저택은 드넓었다.

         

       그냥 넓다는 정도가 아니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대한 저택도 저택이며, 그 주변으로 농원이 각기 다섯 개나 있으며, 말들을 키울 넓은 정원마저 있는 바.

         

       사용인의 숫자도 2천 명이 가뿐히 넘어간다고 하니, 이건 말만 저택이지 그냥 마을이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이건 트리스탄이란 가문이 가진 막대한 영향력과 재산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는 거다.

         

       하긴, 실력 좋은 귀금속 광산과 무역 상단마저 다섯 개나 운영하는 트리스탄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 정도 저택을 운영하는 건 과소비도 아닐 터.

       그리고 이런 막대한 재산과 영향력이 있는 만큼 트리스탄의 저택은 요새와 비견됐다.

         

       저택의 모습을 한 요새.

         

       수십 명의 정예병들이 상시 대기하며 교대로 저택 전체를 순찰하고.

       드높은 벽 위에는 궁수들이 즐비하여 언제라도 활을 쏠 준비를 한다.

       곳곳마다 있는 입구의 경우는, 신비종족인 드워프들에게 직접 의뢰한 철문으로 막혀 있으니.

         

       설사 병사들을 물리쳤더라도 정문을 넘어설 도리가 없는 게 상식적이었다.

         

       ……한데, 지금. 그 상식이 무너졌다.

         

       후우웅….

         

       철벽의 문이 통째로 뜯겨져 나간 말도 안 되는 광경.

         

       지금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점차 횃불로 주변을 밝히며 집결하는 병사들이었고, 병사들은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대형급 마물이라도 쳐들어온 건가!”

       “발리스타를 주의해라! 근처에 발리스타가 있을 수도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선으로 병사들은 생각하고 대응할 준비에 들어갔다.

       발리스타, 혹은 대형 마물이 기습하여 철문이 뜯겨져 나간 것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저 문이 뜯길 리는 없다고.

         

       어디까지나 상식적이었고, 그들은 단 한 남자가 이러한 일을 해냈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아니야, 이건 아니야.”

         

       “??”

         

       그들은 이 말도 안 되는 행위를 벌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중얼거림.

         

       허나 이를 내뱉는 침입자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혹시 지금이라도 후작가를 습격한 것에 대해 후회를 느낀 것인가?

       그런 거라면 환영이었다.

       지금이라도 정상참작을….

         

         

       “시비를 걸 거면, 좀 더 제대로 해야지.”

         

         

       “…….”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병사는 그의 중얼거림과 함께 눈을 보았다.

       안광이 상당히 맑았다.

         

       움찔!

         

       병사는 갑작스레 소름이 돋았고, 왠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콰지직!

         

       “알아서들 피해라, 죽기 싫으면.”

         

       “…….”

         

       병사들은 보았다.

       저 거대하기 짝이 없는 철문을 한손으로 들어버리는 사내의 괴력을!

         

       전날 저 문을 다는 과정에서 열 명이 넘는 인력이 필요했다는 것을 기억해낸 어느 병사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다시금 이것이 꿈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상황은 꿈이 아니었다.

         

       “후우우우!”

         

       들숨과 날숨.

       숨을 들이마시며, 사내, 이한은 서서히 철문을 쥔 채 몸을 회전시켰다.

         

       화악!!

         

       이토록 거대한 문을 들다가 도리어 어깨나 팔이 빠지는 것이 도리였지만, 이한은 지금만큼은 인체의 도리를 잠시 접어놓기로 했다.

         

       그는 기어이.

         

       후웅…! 후우웅-!

         

       철문을 마치 포환처럼 던지려는 듯한 자세를 잡고 돌렸으며, 주변 일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아아아악!”

       “도, 도망쳐!!!”

       “끄으윽-!”

         

       2,550kg.

       대략 2.5톤을 자랑하는 쇳덩어리가 돌아간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며 파괴적이다.

         

       천천히 회전하고 있을 뿐임에도 생기는 난기류는 가공할 만한 풍압과 압력을 발산하며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병사들은 본연의 임무조차 잊어버리고 도망가기 바빴다.

         

       저토록 거대한 쇳덩어리를 들어 갖고 노는 이한의 존재도 공포이지만, 회전하는 철문에 휩쓸려 저며진 고깃덩어리 꼴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패닉의 현장이었고, 어느새 이한의 주위 30미터 반경으론 아무도 자리하지 않고 있었다.

         

       우득!

         

       덕분에 도움닫기 거리를 충분히 획득한 이한이었고, 그는 이를 악물며 준비에 들어갔다.

       

       꾸득, 꾸드드득!

         

       이한의 팔에서, 어깨와 허리 다리 등에서 들려오는 파열음.

       만약 비약을 먹기 전이었다면 진작 분쇄되고도 남았을 압력이 그를 덮친다.

         

       “끄으으윽!!”

         

       하지만 이한은 참아내었다.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악력과 힘, 그리고 깊어진 경에 대한 깨달음이 이만한 질량 덩어리를 내던질 괴력과 능력을 선사해준 것이다.

         

       다만 기회는 한 번.

       두 번은 이 짓을 하지 못하리라.

         

       딱 한 번에 불과한 미친 기행.

       허나 한 번이면 충분했고, 충분히 힘을 모으고 거리 계산과 타이밍이 모두 맞춰졌을 때.

         

       “아아아악!!”

         

       기합인지 악바리인지 모를 기합과 함께 포환을, 아니 철문을 내던졌다.

         

       후우우우우욱-!

         

       느리게 회전하는 포물선을 그린다.

       던진다고 던졌지만, 역시 저만한 질량을 회전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를 노릇.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던졌다’는 사실이다.

         

       2.5톤의 쇳덩어리가 날아가 부딪친다.

         

       그건 이미.

         

       콰아아아앙!!

         

       ……건물과 지반 하나를 충분히 무너트릴 재앙이 찾아왔단 뜻이니까.

         

       쿠구구구궁!

         

       이한이 던진 철문이란 이름에 포환이 후작이 머무는 저택을 정확히 명중하며 땅을 진동시켰다.

         

       “…그래, 이게 제대로 시비를 거는 거지.”

         

       사내가 쩨쩨하게 정문 하나 부수고 시비라고 하면 어디 쓰겠는가.

         

       비록 눈과 입, 코 등에서 피가 쏟아지는, 그야말로 칠공분혈(七孔噴血)중인 이한이었지만, 그는 만족스럽게 콧등의 먼지를 훔칠 뿐이었다.

         

       

       사소한(?) 부상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썩 괜찮은 결과물이었기에.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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