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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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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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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뚫려버린 옷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마치 천을 덧댄 것처럼 옷에 뚫린 구멍을 메꿔버렸다. 핏물이 작게 요동치다가 이내 검게 물들어 천의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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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으로 보였던 공격 당한 흔적까지 사라져버렸다. 입가에 묻은 피가 아니었다면, 공격을 피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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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하하… 내 공격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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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텐시엔은 완전히 정신을 놓은 듯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 끝이 검게 변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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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이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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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텐시엔은 흐느껴 우는 것 같기도 했고, 절망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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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먼저 공격해볼까?’ 라고 생각하니 마검이 다급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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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놈이 우리의 대사를 뺏어갔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래선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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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가 악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타락해선 안된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대사를 날린 마검은 본인이 외친 말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똑같은 말은 두 번 정도 더 중얼거리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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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없는 얘기를 들어주는 사이 허공에 둥둥 떠 있던 포텐시엔이 나직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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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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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하뮬리나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포텐시엔의 주머니 안쪽에 숨어있던 하뮬이 슉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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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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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은 한 줌밖에 남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엄연히 ‘그분’의 일부였다. 포텐시엔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도는 이미 알아챈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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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능력자인 채 죽을 바엔 차라리 ‘그분’의 일부가 되어 저놈을 길동무 삼겠어.”
    「히히힉, 좋은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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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당장이라도 흩어질 것처럼 보이던 하뮬의 몸이 바짝 마른 솜이 물을 머금은 것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포텐시엔 정도는 가볍게 삼킬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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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의 형태는 불길한 검은 안개 같기도 하고, 기묘한 공기의 흐름 같기도 했다. 거대해진 하뮬을 마주하게 된 포텐시엔은 코피와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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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 -…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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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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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포텐시엔의 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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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두둑,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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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저거 저대로 둬도 돼?”
    [ 훗훗, 상대가 각성할 때 공격하는 건 ‘로망’을 모르는 자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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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마검의 말이 강자만이 할 수 있는 기만처럼 보였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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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포텐시엔의 피가 비처럼 쏟아지고 무언가를 통째로 삼키는 듯한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포텐시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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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둥둥 떠 있던 검은 안개는 갑작스럽게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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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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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안개가 불길하게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기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것 같기도 하고 남자의 것 같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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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잘라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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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종이 제물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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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희에 잠긴 목소리 속에서 포텐시엔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검은 안개가 뭉쳐 완벽하게 형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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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타락해서 각성한 악당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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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는 포텐시엔과 똑같았지만, 옷이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타락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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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으윽…파트너 우리도 저런 거 해보는 거 어떤가? ]
    ‘뭐?’
    [ 아니,아니야. 저런걸 따라 하려면 우선 타락을 위한 무대부터 준비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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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생각에 잠겨 중얼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려보내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있는 포텐시엔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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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많이 맞아서 정신을 놓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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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기긱, 마치 그런 소리가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포텐시엔의 얼굴이 천천히 리안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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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괴물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턱에 눈이 달렸고 볼에 입술이, 눈이 있던 곳에 혀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나마 제 위치에 있는 게 코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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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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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벼락이 치는 것처럼 울려 퍼지고, 포텐시엔이 시야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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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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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 창이 꽂혔을 때처럼, 알아차렸을 땐 포텐시엔이 코앞까지 다가온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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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어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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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에 세로로 긴 줄이 생기더니 양옆으로 쩌억하고 갈라졌다. 그 사이로 수십 개의 시선이 리안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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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괴이한 것은 순식간에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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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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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리안의 머리에 블랙홀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뮬이 리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들짝 놀란 리안이 주춤 뒤로 물러나 제 머리를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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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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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에 구멍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싶어 열심히 더듬어 봤지만 만져지는 건 부드러운 머리카락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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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혹시 나 달라진 거 없어?”
    [ 으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방금 그 공격은 뭐지? 멋지게 퇴장하기 뭐, 그런 건가? ]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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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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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노아랑 애들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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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잇던 리안은 시야가 흐릿하게 흔들리는 걸 인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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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눈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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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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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 들려있던 마검을 땅에 박아넣은 덕분에 쓰러지진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몸이 거꾸러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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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자기 왜, 왜 그러나? 파트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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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투기장 때처럼 리안이 죽어버릴까 두려워 다급히 소리쳤지만, 리안은 머릿속이 마구 울렁거려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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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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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다급한 발걸음이 리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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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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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텐시엔이 풀어놓은 몬스터를 겨우 베어 넘기고, 리안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노아였다. 노아는 시야에 리안이 들어오자마자 비명을 내지르 듯 리안을 불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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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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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기 전에 리안이 쓰러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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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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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간, 리안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하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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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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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은 예상하지 못한 풍경에 당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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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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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은 마검이 말한 것처럼 ‘멋있는 퇴장’을 하기 위해 리안을 덮친 게 아니었다. 도리어 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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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은 질 좋은 제물인 포텐시엔을 ‘그 분’에게 바쳐 막대한 권능을 빌려올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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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리안의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그 분’의 힘 앞에선 태양 앞 반딧불이 정도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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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뮬은 리안이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준 방법 그대로 돌려주고자 리안의 정신을 침투해, 정신을 파괴하고 영혼을 조각내 ‘그 분’에게 바쳐버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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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 할 당연한 것이 이곳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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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인간이 아니었던 건가? 정교한 골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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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당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정신세계가 텅 비어 어둠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어둠을 들여다보자 몸이 작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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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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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의 머릿속에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뮬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분’의 힘을 빌린 자신이 고작 인간의 텅 빈 정신을 보고 섬뜩함을 느끼다니, 그럴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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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텐시엔의 정신이 남아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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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텐시엔을 잘게 다져 ‘그 분’에게 바치는 과정 중, 그의 일부가 제 몸에 남아버린 탓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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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내부에서 터뜨려버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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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분’의 힘을 사용하면 리안의 정신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간섭할 수 있을 터였다. 하뮬은 위대한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검고 끈적한 기이한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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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끔찍한 기운이 하뮬의 손 끝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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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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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르릉,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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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기운이 하뮬의 손끝을 떠나자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 안에 휏불을 던져 넣은 것처럼, 새카만 공간의 일부가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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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리안의 정신세계엔 아무것도 없으니 이대로 정신의 벽을 넘어 육체에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하뮬은 기세등등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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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흐흐, 몸을 터뜨리고 빠져나가면 이 녀석의 동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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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은 절망에 빠진 리안의 동료들을 으적으적 씹어 삼킬 생각에 몸을 작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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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자마자 이 녀석의 영혼을 잡아두고 그 꼴을 전부 구경시켜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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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이 죽어버린 리안의 영혼을 잡아 동료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구경시켜줘야겠다고 중얼거리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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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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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소리를 내며 앞으로 쏘아져 나가던 공격이 ‘무언가’의 앞에서 풍랑 앞 촛불처럼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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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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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은 고개를 들어  ▉을 바라보았다.
    ▉은 하뮬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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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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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은 ▉을 인지함과 동시에 모든 것이 집어삼켜졌다. ‘그 분’이 내려주신 육체와 차원을 넘어선 정신까지 -…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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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카만 정신 속엔 ▉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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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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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뿅! 뾰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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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좀 해보라고 망할 새대가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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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의 신이 게임패드를 든 채 스타킹을 신은 발로 흰 오목눈이를 마구 짓밟았다. 그러자 흰 오목눈이가 삐잇,삐이잇! 하고 소리높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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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학, 학대 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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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라는 본분을 완전히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진짜 새대가리가 되어버린 건지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은 손에 들고 있던 게임패드를 툭 떨구고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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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악! 죽었잖…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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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오버 화면에 짜증을 내던 개그 세계의 신은 순간 튀어나온 트림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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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뭐지? 나 뭐 먹은 게 없는데 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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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맛을 다시며 낯선 맛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바닥을 기어 도망치는 흰 오목눈이를 덥석 잡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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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됐낭? 다음 판 바로 시작이다냥!”
    “살료주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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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개인적인 일 때문에 이틀동안 안자고 버티다가 그대로 기절해버린… ;0;

다음화 타닥타닥 쓰고있습니다.. 새벽에 하나, 내일 오후 10시 30분에 하나 더 들고오겠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촤르륵.

뚫려버린 옷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마치 천을 덧댄 것처럼 옷에 뚫린 구멍을 메꿔버렸다. 핏물이 작게 요동치다가 이내 검게 물들어 천의 형태로 바뀌었다.

눈으로 보였던 공격 당한 흔적까지 사라져버렸다. 입가에 묻은 피가 아니었다면, 공격을 피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 하하… 내 공격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포텐시엔은 완전히 정신을 놓은 듯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 끝이 검게 변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이럴, 이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포텐시엔은 흐느껴 우는 것 같기도 했고, 절망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슬슬 ‘먼저 공격해볼까?’ 라고 생각하니 마검이 다급하게 말했다.

[ 저놈이 우리의 대사를 뺏어갔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래선 안 된다! ]

상대가 악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타락해선 안된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대사를 날린 마검은 본인이 외친 말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똑같은 말은 두 번 정도 더 중얼거리며 뿌듯해했다.

실없는 얘기를 들어주는 사이 허공에 둥둥 떠 있던 포텐시엔이 나직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찾았다.

“하뮬리나.”
“하뮬리나.”

그가 하뮬리나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포텐시엔의 주머니 안쪽에 숨어있던 하뮬이 슉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후회하지 않겠어?」

하뮬은 한 줌밖에 남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엄연히 ‘그분’의 일부였다. 포텐시엔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도는 이미 알아챈 상태였다.

“무능력자인 채 죽을 바엔 차라리 ‘그분’의 일부가 되어 저놈을 길동무 삼겠어.”

「히히힉, 좋은 생각이야!」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당장이라도 흩어질 것처럼 보이던 하뮬의 몸이 바짝 마른 솜이 물을 머금은 것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포텐시엔 정도는 가볍게 삼킬 수 있을 정도로.

하뮬의 형태는 불길한 검은 안개 같기도 하고, 기묘한 공기의 흐름 같기도 했다. 거대해진 하뮬을 마주하게 된 포텐시엔은 코피와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아아아 -… 신이시여!”

콰드득!

그게 포텐시엔의 유언이었다.

우두둑, 콰직!

“으음, 저거 저대로 둬도 돼?”

[ 훗훗, 상대가 각성할 때 공격하는 건 ‘로망’을 모르는 자뿐이다. ]

리안은 마검의 말이 강자만이 할 수 있는 기만처럼 보였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바닥에 포텐시엔의 피가 비처럼 쏟아지고 무언가를 통째로 삼키는 듯한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포텐시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늘에 둥둥 떠 있던 검은 안개는 갑작스럽게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아아.」

검은 안개가 불길하게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기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것 같기도 하고 남자의 것 같기도 한.

딱 잘라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목소리였다.

「당신의 종이 제물을 바칩니다!」

「당신의 종이 제물을 바칩니다!」

환희에 잠긴 목소리 속에서 포텐시엔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검은 안개가 뭉쳐 완벽하게 형태를 잡았다.

‘뭔가 타락해서 각성한 악당 같네.’

외모는 포텐시엔과 똑같았지만, 옷이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타락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 크으윽…파트너 우리도 저런 거 해보는 거 어떤가? ]

‘뭐?’

[ 아니,아니야. 저런걸 따라 하려면 우선 타락을 위한 무대부터 준비해야 -… ]

마검이 생각에 잠겨 중얼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려보내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있는 포텐시엔을 바라보았다.

‘너무 많이 맞아서 정신을 놓은 건가?’

끼기긱, 마치 그런 소리가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포텐시엔의 얼굴이 천천히 리안을 향했다.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괴물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턱에 눈이 달렸고 볼에 입술이, 눈이 있던 곳에 혀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나마 제 위치에 있는 게 코 하나뿐이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바치겠습니다.」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벼락이 치는 것처럼 울려 퍼지고, 포텐시엔이 시야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렸다.

“…!”

배에 창이 꽂혔을 때처럼, 알아차렸을 땐 포텐시엔이 코앞까지 다가온 후였다.

쩌어억 -…

얼굴에 세로로 긴 줄이 생기더니 양옆으로 쩌억하고 갈라졌다. 그 사이로 수십 개의 시선이 리안을 향했다.

‘그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괴이한 것은 순식간에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어엇?!”

마치 리안의 머리에 블랙홀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뮬이 리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들짝 놀란 리안이 주춤 뒤로 물러나 제 머리를 더듬었다.

“뭐,뭐지?”

머리에 구멍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싶어 열심히 더듬어 봤지만 만져지는 건 부드러운 머리카락뿐이었다.

“가르간도아 혹시 나 달라진 거 없어?”

[ 으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방금 그 공격은 뭐지? 멋지게 퇴장하기 뭐, 그런 건가? ]

“그러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노아랑 애들을…..어라?”

말을 잇던 리안은 시야가 흐릿하게 흔들리는 걸 인지했다.

“왜 이렇게 눈앞이…”

푹.

손에 들려있던 마검을 땅에 박아넣은 덕분에 쓰러지진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몸이 거꾸러질 것 같았다.

[ 갑자기 왜, 왜 그러나? 파트너! ]

마검은 투기장 때처럼 리안이 죽어버릴까 두려워 다급히 소리쳤지만, 리안은 머릿속이 마구 울렁거려 대답할 수 없었다.

타닷.

그때 다급한 발걸음이 리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리안!”

포텐시엔이 풀어놓은 몬스터를 겨우 베어 넘기고, 리안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노아였다. 노아는 시야에 리안이 들어오자마자 비명을 내지르 듯 리안을 불렀지만.

털썩.

노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기 전에 리안이 쓰러져버렸다.

***

그 시간, 리안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하뮬리나.

「뭐지?」

하뮬은 예상하지 못한 풍경에 당황하고 있었다.

「왜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거지?」

하뮬은 마검이 말한 것처럼 ‘멋있는 퇴장’을 하기 위해 리안을 덮친 게 아니었다. 도리어 반대였다.

하뮬은 질 좋은 제물인 포텐시엔을 ‘그 분’에게 바쳐 막대한 권능을 빌려올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리안의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그 분’의 힘 앞에선 태양 앞 반딧불이 정도일 터.

하뮬은 리안이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준 방법 그대로 돌려주고자 리안의 정신을 침투해, 정신을 파괴하고 영혼을 조각내 ‘그 분’에게 바쳐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 할 당연한 것이 이곳엔 없었다.

「설마 인간이 아니었던 건가? 정교한 골렘?」

응당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정신세계가 텅 비어 어둠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어둠을 들여다보자 몸이 작게 떨렸다.

섬뜩하다.

하뮬의 머릿속에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뮬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분’의 힘을 빌린 자신이 고작 인간의 텅 빈 정신을 보고 섬뜩함을 느끼다니, 그럴 리 없었다.

「포텐시엔의 정신이 남아있는 건가?」

포텐시엔을 잘게 다져 ‘그 분’에게 바치는 과정 중, 그의 일부가 제 몸에 남아버린 탓일지도 몰랐다.

「하,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내부에서 터뜨려버리는 수밖에.」

‘그 분’의 힘을 사용하면 리안의 정신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간섭할 수 있을 터였다. 하뮬은 위대한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검고 끈적한 기이한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끔찍한 기운이 하뮬의 손 끝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쿠르르릉,콰아앙!

그 기운이 하뮬의 손끝을 떠나자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 안에 휏불을 던져 넣은 것처럼, 새카만 공간의 일부가 밝아졌다.

어차피 리안의 정신세계엔 아무것도 없으니 이대로 정신의 벽을 넘어 육체에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하뮬은 기세등등하게 웃으며 말했다.

「 크흐흐, 몸을 터뜨리고 빠져나가면 이 녀석의 동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뮬은 절망에 빠진 리안의 동료들을 으적으적 씹어 삼킬 생각에 몸을 작게 떨었다.

「나가자마자 이 녀석의 영혼을 잡아두고 그 꼴을 전부 구경시켜줘야 -..」

하뮬이 죽어버린 리안의 영혼을 잡아 동료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구경시켜줘야겠다고 중얼거리던 그 순간.

후웅..

무서운 소리를 내며 앞으로 쏘아져 나가던 공격이 ‘무언가’의 앞에서 풍랑 앞 촛불처럼 꺼져버렸다.

「…?」

하뮬은 고개를 들어  ▉을 바라보았다.

▉은 하뮬을 바라보았다.

「아.」
「아.」

하뮬은 ▉을 인지함과 동시에 모든 것이 집어삼켜졌다. ‘그 분’이 내려주신 육체와 차원을 넘어선 정신까지 -… 전부.

새카만 정신 속엔 ▉만이 남게 되었다.

***

뿅! 뾰뵹!

“잘 좀 해보라고 망할 새대가리야!”

개그 세계의 신이 게임패드를 든 채 스타킹을 신은 발로 흰 오목눈이를 마구 짓밟았다. 그러자 흰 오목눈이가 삐잇,삐이잇! 하고 소리높여 울었다.

“동물학, 학대 박대!”

신이라는 본분을 완전히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진짜 새대가리가 되어버린 건지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은 손에 들고 있던 게임패드를 툭 떨구고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죽었잖…끄윽!”

게임 오버 화면에 짜증을 내던 개그 세계의 신은 순간 튀어나온 트림을 막지 못했다.

“으응? 뭐지? 나 뭐 먹은 게 없는데 냥?”

입맛을 다시며 낯선 맛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바닥을 기어 도망치는 흰 오목눈이를 덥석 잡아 끌어당겼다.

“뭐 됐낭? 다음 판 바로 시작이다냥!”

“살료주세료..”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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