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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9

       

       

       

       

       

       구봉을 두고 돌아온 곳은 직전에 있었던 그 건물이었다.

       

       다행히 그리 멀지는 않았고, 오가는 길을 외워놨던 터라 찾아오는 건 쉬웠는데. 끝내 도착하는 데에는 다소 오래 걸리게 됐다.

       

       이유인즉슨.

       

       ‘화가 안 풀려.’

       

       머리 끝까지 났던 분을 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망할 새끼.’

       

       구봉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더 짜증이 치솟는다.

       

       ‘그냥 좀 더 팼어야 하는데.’

       

       아예 못 일어나게 정신도 못 차릴 만큼.

       차려도 한 반년 뒤에나 차릴 수 있게 아작을 냈어야 했거늘. 그러지 못 한게 한이 되고 있었다.

       

       “후우우….”

       

       한숨을 뱉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물론, 그런다고 화가 풀리는 건 아니었다.

       

       ‘그딴 놈도 제자라고.’

       

       노야가 아끼는 놈인 것 같길래 그래도 좋게 보려고. 혹은 박살 낸 걸 조금은 아까워하고 있었건만.

       

       ‘그런 병신을 뭣 하러.’

       

       그 모든 감정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구봉이 끝내 자존심을 버리고 무릎을 꿇던 그 순간이었다.

       

       쾅.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가니 안에 있던 이들이 화들짝 놀란다.

       어느새 안에는 아까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아까 봤던 이대제자들과 내부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다.

       

       그들은 날 보며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기 바쁘다. 

       표정의 뜻은 단순했다.

       

       ‘저놈들은 대체 누구야?’

       

       그런 표정이 확연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설명을 뒤로하고 짜증 난 얼굴로 한 명을 가리켰다.

       

       “거기.”

       “에, 예? 저, 저 말입니까?”

       “그래 너. 이리 와봐.”

       

       손가락을 연신 까딱이니 지목당한 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가온다.

       녀석은 아까 백 도령인지 뭔지 하는 놈에게 언성을 높이며 대항하던 제자였다.

       

       “아까 그놈 뭐야.”

       “예…?”

       “백 뭐시기 있잖아. 등신 같은 새끼. 걔 뭐냐고.”

       

       직전에 있던 놈이 뭐냐고 묻자 녀석이 의아한 얼굴로 바뀐다.

       그걸 왜 묻냐는 표정보단. 어째서 그걸 모르는 거지? 라는 표정에 가까웠다.

       

       “빨리 설명해.”

       

       으르렁거리며 인상을 찌푸리자 녀석이 흠칫하며 입을 열었다.

       

       “배, 백색 가문의 후계자입니다.”

       “백색 가문?”

       “예…. 그곳에 백울이라는 이입니다.”

       

       백울. 그것이 백 도령이란 놈의 이름인 것 같다.

       그건 됐으니, 그럼 다음 건.

       

       “백색 가문이 뭔데.”

       “예…?”

       “또 되물으면 그러지 못하게 혀 뽑아버린다?”

       “…야월궁에 존재하는 삼대 귀족 가문입니다.”

       “삼대라…. 대단한 건가?”

       “…그…렇습니다. 몇 없는 순혈 유지 가문이자 장군의 가호를 직접 받는 곳이니까요….”

       

       순혈유지. 유달리 자주 듣는 것 같은 단어가 거슬리기는 하나, 중요한 건 그 뒷말이었다.

       장군의 가호?

       

       “장군이 뭐지?”

       “…?”

       “표정.”

       “아. 예….”

       

       무슨 멍청이 보듯이 보기에 지적하니 그제야 표정을 푼다.

       그제야 다시 물었다.

       

       “장군은 뭐야.”

       “만계의 주인님 아래 계신 네 존재지요….”

       “…음.”

       

       눈을 좁혔다. 주인의 아래 있다. 

       어머니의 관한 얘기가 튀어나올 때마다 상당히 반응하기 애매했다.

       하여 애써 무시한 다음 말을 묻는다.

       

       “…그리고 귀족은?”

       “그 장군께서 가호를 내린 순혈족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순혈이란 놈이 백 뭐시기다?”

       “예…. 맞습니다.”“장군이나 귀족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가? 굳이 그리 벌벌 떨 만큼?”

       “…”

       “씨발, 표정.”

       “…나라에서 가호를 지닌 이들의 말은 곧 법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주인께서 선택하신 이들인 만큼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음.

       

       말을 듣고 여러 생각이 스친다. 저리 뱉으면서 한치의 떨림도 없다는 건 저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고.

       

       주인께서 선택한 일이니 당연하다는 사상도 여기서는 당연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여기서 주인이란 존재와 그 휘하의 존재는 상당한 위치에 있다는 거겠지.’

       

       내 생각보다 훨씬 위대한 무언가로 취급하고 있다는 건데.

       하면.

       

       “그런 놈들이 화산과 마찰을 빚는 이유는 뭐지?”

       “그것은….”

       

       말을 뱉던 제자가 눈치를 본다. 말해도 되는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망설이길래 억지로라도 입을 열게끔 만들까 싶던 찰나.

       

       “괜찮으니 설명해 드리거라….”

       

       뒤에서 말이 들려왔다. 뒤늦게 문을 열고 들어온 구봉이었다.

       녀석을 힐끔 쳐다봤다. 

       표정이 상당히 썩어있었고 아무래도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화산파는…. 내부에 속한 순혈이 전무하고 주인의 가호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기에 힘이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가호를 받지 못했다라….”

       

       저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들어올 때 봤던 문지기나 백 뭐시기의 반응을 볼 때 이 세계에서 상당히 큰일이라는 건 알겠다.

       

       “이는 장문인께서 모자란 저희를 안타깝게 여겨 쉼 없이 받아주시다 보니 생긴 문제기도 합니다….”

       

       말을 제자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장군의 가호는 물론이요. 주인께서 허락도 하지 않은 이들이 모여 있다보니…. 아무래도 세간의 시선이….”

       

       “그러니까.”

       

       제자의 말을 끊어내고 내가 말했다.

       

       “어중이떠중이들만 잔뜩 모여 있는 게 꼴값이라 생각해 무시한다. 이 말이네?”

       “…”

       

       정답이라는 듯 제자의 얼굴이 가득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고작 식료품 주고받는 데에도 그 꼴을 당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마저 간신히 뚫은 것인지라….”

       “아니. 그래 다 좋은데.”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뭐 가호고 장군이고 나발이고.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알고 다 알겠다만.

       

       “이런 상황을 너희 장문인은 알고 있나?”

       “…”

       

       신 노야는 제 제자들이 이런 일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나는 이 부분에 한해서 확답할 수 있었다.

       

       ‘모르겠지.’

       

       그 노인네 성격상 알았다면 가만히 있었을 리 만무했고.

       

       “…아마 자세히는 모르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증명하듯 제자가 껄끄럽다는 듯 대답해 왔다.

       역시나였다.

       

       그렇다면.

       

       “왜 모르지? 모를 수가 없는 구조 같은데.”

       “장문인께선…. 다른 나라에 접근이 금지되어 있어서 그럴 것이오.”

       

       말의 대답은 원래 하던 제자가 아니라 구봉이 해주었다.

       

       “금지되어 있다고?”

       “그렇소. 장문인은 다른 나라에 접근하는 건 물론이고 일에 관련해 개입하는 것조차 불가하오.”

       “왜?”

       “그것이 화산이 존재할 수 있는 계약이니까.”

       “흐음….”

       

       말을 듣고 어렴풋이 저번에 있던 일이 스친다.

       두령이었나? 그 검은 소 새끼가 했던 말이 있었다.

       

       ‘계약인가 약조인가를 어기고 있다고 했었나?’

       

       그 말에 관한 노야는 그건 아니라고 말다툼했었다.

       

       “그래서 노야는 다른 곳을 가지도 못하니 알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소. 장문인께선 모르실 것이고…. 또한, 모르시길 바라오.”

       “왜?”

       

       구봉의 말에 의문을 담아 물었다. 모르길 바란다는 말이 이상했다.

       

       “갈 곳 없는 우리를 감싸주고 애정으로 키워주신 분이오…. 이 이상의 걱정은 끼쳐드리고 싶지 않소.”

       

       애정으로 키웠단 말에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려다 참았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하면, 나만 꿇으면 된다는 개소리가 그런 이유에서인가?”

       “…”

       

       구봉의 침묵은 긍정이었다.

       

       하하.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등신.”

       “…”

       

       내 말에도 구봉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우습지도 않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너희는 말이야. 그 노인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무슨….”

       “정말, 노인네가 이 일에 관해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

       

       그럴 리가 있나. 

       그 눈치 빠르고 약은 노인네가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왜 나를 보냈나 했더니만.’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빌어먹을 노인네 같으니라고.’

       

       자기가 할 수 없으니 날 시키겠다는 뜻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그걸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천마를 보며 말했다.

       

       “넌 따라오지 말고 얌전히 여기 있어. 따라오면 진짜 엿 될 줄 알아.”

       “…”

       

       안 그래도 움직이려던 천마가 흠칫 멈췄다.

       

       갑자기 움직이니 구봉이 날 쳐다보며 물어온다.

       

       “…귀인. 어디 가시는 거요? 지금이라도 당장 화산으로 돌아가야-.”

       

       놈의 말에 시선은 보내지 않고 대답했다.

       

       “밥값 좀 하고 올 테니 기다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지금은 나도 몰랐던 심부름을 해야 할 때였다.

       

       

       

       

       **********

       

       

       

       

       야월궁 동쪽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 

       다른 이들로 하여금 백색 가문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 다급히 사람들이 들이닥쳐 소리를 냈다.

       

       “비상-!”

       “도령께서 다치셨다…!”

       

       갑작스레 내부에 혼란이 찾아오고 사람들이 누군가를 업고 들어왔다.

       

       가문의 후계인 백울이 얼굴이 엉망이 된 채 호위에게 업혀 들어오고, 이를 본 이들이 혼비백산하며 모여든다.

       

       “도령께서 위급하시다…! 당장 치료사를 불러!”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끄으으으….”

       

       큰 소란이 터진다. 

       백울은 입에서 피를 계속 흘리고 있었고. 사용인들은 새파래진 얼굴로 사방을 뛰어야 했다.

       

       백울이 다친 게 걱정되어서? 아니다. 그런 건 절대 중요치 않았다. 

       그들이 지금 두려워하는 건 백울이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가문의 후계자라 한들, 아직은 그저 후계일 뿐이었고.

       지금 그들이 정녕 무서워하는 것은….

       

       “무슨 일이냐-.”

       

       낮은 목소리가 소리가 내부를 뒤흔든다. 

       그걸 듣고선 모든 사용인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그 순간.

       

       크르르르릉-!

       

       마치 호랑이와 같은 울음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온다.

       그와 함께 살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끅…끄극….”

       “커헉….”

       

       목을 죄어오는 감각에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이들 사이로, 누군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새하얀 백발이 바닥을 쓸고 지나간다.

       

       무척이나 길고 거친 머리칼이었다.

       

       하물며 존재의 체격이 팔 척 조금 되지 않은 수준이기에 머리칼은 비교적 더 길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사용인을 뚫고 지나온 존재가 쓰러진 백울을 쳐다본다.

       그걸 보자마자 그의 미간에 핏줄이 돋아난다.

       

       “무슨 일이지?”

       “수…수장님….”

       “무슨 일이냐 물었다.”

       

       크르르르르르—!!!!

       

       사내가 말을 뱉으니 포효 소리가 섞어 들렸다.

       그 목소리에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히익….”

       

       질문을 들은 사내의 몸이 바르르 떤다. 몸이 공포에 점차 짓눌리고 있었다.

       

       “대답해라.”

       “…그…것이….”

       

       끄그그극…. 떨리는 몸에 사내가 손톱을 박아 넣었다. 이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죽는다. 차라리 아픈 게 나았다.

       

       어떻게든 대답은 뱉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그래서 사내는 떨리는 입을 강제로 열어 말했다.

       

       “…화, 화…산….”

       

       두 글자. 딱 그걸 뱉고 정신이 끊어진다.

       털썩. 사내가 바닥에 쓰러지고.

       

       “화산?”

       

       말을 들은 존재의 눈이 푸르게 불타오른다.

       

       “하.”

       

       입꼬리가 거칠게 치솟았다.

       

       “그 버러지들이 감히….”

       

       가엽게 여겨 아량을 베풀어줬음에도 이런 짓을 벌여?

       

       콰악-!

       존재가 커다란 주먹을 말아쥐고 뒤를 돌았다.

       

       “놈들은 지금 어디 있지?”

       “직전에 거래를 끝냈으니, 곧 있으면 시, 식료품을 들고 궁 밖으로 나갈 것입니다.”

       “그래?”

       

       말을 들은 사내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안내해라. 내 찾아가서 직접 갈기갈기 찢어버려야겠으니.”

       

       존재의 이름은 백월.

       귀족인 백색 가문의 수장이자, 야월궁의 장군. 유사(劉死)의 사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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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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