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2

    나는 천막을 젖히며 밖으로 나섰다.

     

    주변에 서 있던 바란과 숀, 그리고 잭슨이 의문을 표한다.

     

     

    “사모님들은….어? 부단장님?”

     

    “여기 있어.”

     

     

    나는 바란을 내버려두고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떠나가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라크레단으로 향했다.

     

    그들이 그 누구보다 더 많은 도발을 던졌다고 전해들었다.

     

     

    어제 내가 투로를 무시했기 때문일까?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흘러도 무시받는 이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아담 형과 함께 이전 용병단에서 구를때부터 이어져온 깊은 역사.

     

    인족이라 그런지, 시비가 자주 걸려온다.

     

    어쩌면 익숙했던만큼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나의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또 새로운 사실을 확인한다.

     

    내 이름에는 이제 내 자존심만이 걸린게 아니라는 걸.

     

    아내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나서야만 한다는걸.

     

     

    아직 모든 상황에 나서는게 몸에 체득되지 않았다.

     

    전장의 공을 남에게 돌려왔듯, 어렴풋이나마 조용히 살려던 마음이 남아있었나보다.

     

     

    아담 형은 이런 내 선택에 또 뭐라 할까.

     

    싸워도 괜찮다고는 했지만… 어쩌면 또 곤란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부단장인만큼 진중히 행동해야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당장은 생각하지 않으려했다.

     

     

     

    “엇, 부단장님! 어디가세요!”

     

    아라크레단과 홍염단의 경계선에 서 있던 대원이 내게 물었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아라크레단의 야영지로 입성한다.

     

    아라크레단의 단원들이 나를 막아선다.

     

    “…홍염단의 부단장? 용무가 있어 온거라면-”

     

    나는 말을 하며 다가오는 아라크레단의 용병을 무시하며 지나쳤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야영지 안으로 깊숙이 걸어갔다.

     

    그제야 나의 의도를 알아차린 홍염단 대원이 뒤에서 외쳤다.

     

    “야이….가, 간부님들 모셔와! 아, 아니! 단장님 모셔와!”

     

     

     

    ****

     

     

     

    투로는 간부들과 식사를 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야영지에 돌아오자마자 들려온 소식에 기분이 편안했다.

     

     

    단원들이 그 귀족 아내들 중, 블랙우드를 울려버렸다는 것.

     

    “…큭큭큭.”

     

    투로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베르그의 기분을 상상했다.

     

     

    모욕을 당했음에도 발악조차 하지 못할 그의 기분을.

     

    이름값을 올리기 위해 싸움을 잘한다고 거짓을 퍼트려놓고는, 제 아내도 지키지 못할 무력함을.

     

     

    그 무표정한 표정이 분하게 일그러지는 모습만 상상하더라도 배가 불러왔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만큼 재미난것도 없었다.

     

     

    투로는 쉬프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었다.

     

    밥도 깨작깨작 넘기는 모습이, 분명 베르그를 생각하고 있을터였다.

     

    투로는 그런 한심한 인족을 그녀가 왜 좋아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인족의 피가 반쯤은 흘러서 그러는걸까?

     

     

    투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단장님.”

     

    쉬프레의 차가운 눈이 그에게 향했다.

     

    오늘 쉬프레는 베르그에게 모진 말만을 내뱉었었다.

     

    어쩌면 지금이 그녀의 짝사랑을 끊어버릴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런 한심한 남자는 이제 놓아주시죠.”

     

    “…”

     

    “아내들의 모욕을 듣고도 가만히 있는 남자입니다. 쉬프레님도 그런 한심한 남자를 곁에 두고-”

     

     

    -확!

     

    “투, 투로 부단장!!”

     

    그 순간, 한 말단 단원이 간부들의 식사하는 천막으로 침투해왔다.

     

    간부들이 하나같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투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별일 아니면, 각오하는게 좋을거다.”

     

    그는 입을 달싹이다 말했다.

     

    “베르그 부단장이 찾아왔습니다.”

     

     

    .

    .

    .

     

     

     

    투로는 아라크레단 용병들이 형성한 거대한 원 중앙에 홀로 서 있는 베르그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생각인건지 이곳까지 들어왔다.

     

    “베르그 부단장님. 여긴 어쩐일로.”

     

    투로가 말했다.

     

     

    반면 그의 머리는 굴러가고 있었다. 이곳까지 혼자 들어온 이유라고 한다면…무릎을 꿇으러 온것이려나?

     

    제 단원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쪽팔린 모습을 감추기 위해 혼자 온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내들을 더는 모욕하지 말라고 빌기 위해 온걸지도.

     

     

    쉬프레도 천막에서 나오며 베르그를 바라보았다.

     

     

    “…베르그 부단장.”

     

    그녀가 속삭인다.

     

    투로는 어째서인지 찝찝해지는 감정을 억누르며, 베르그를 바라보았다.

     

     

    쉬프레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를 보러 온건가요?”

     

    존댓말도 다시 하는 쉬프레. 어렴풋이 목소리에 섞인 기대감도 느껴졌다.

     

     

    하지만 베르그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고갯짓으로 투로를 가리켰다.

     

     

    쉬프레의 표정이 굳어갔다.

     

    하지만 그런 제 단장에게 이목이 쏠리기 전에, 투로가 묻는다.

     

     

    “그래서?”

     

    “그전에, 하나만 묻지.”

     

     

    그 말을 꺼내는 베르그의 자세에는 묘한 힘이 담겨있었다.

     

    예상외로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있다.

     

    목소리가 떨리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느긋해보이기까지 했다.

     

     

    “네 지시였어?”

     

     

    그 당돌한 질문에 투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투로가 웃자 몇몇 단원들도 그를 따라 베르그를 비웃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투로도 존중을 내려놓으며 베르그를 대응했다.

     

     

    베르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게 궁금했어.”

     

    “…”

     

    “그래서, 일전에 말한 대련은 아직도 유효한가?”

     

     

    “………”

     

    투로는 잠시 침묵하다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베르그가 끝내 선택한 건 발악이었나보다.

     

     

    혼자 이곳으로 와서 밟히길 선택했나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차라리 그 편이, 아내들을 위해 노력이라도 했다는 말이 나오니까.

     

    겁먹고 숨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으니까.

     

    밟히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기에 단원들까지 두고 왔나보다.

     

     

     

    “유효하지.”

     

    투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쉬프레가 그런 그들의 사이를 막아선다.

     

    “…잠시. 부단장들끼리의 싸움은 큰 문제로-”

     

    “-내 알 바 아니야.”

     

    베르그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쉬프레는 그런 베르그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걱정해주었는데 침을 뱉었다는 듯.

     

     

    투로는 웃통을 벗으며 베르그에게 향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여기서 원없이 밟아, 쉬프레의 마음속에 있던 베르그를 향한 마지막 미련까지도 짜내면 될 듯 했다.

     

     

    “…이러다 죽어도 난 모르는데?”

     

    투로는 베르그를 도발했다.

     

    곤죽을 만들어 홍염단의 야영지에 던져놓을 계획을 짠다.

     

     

    “잘됐네.”

     

    베르그가 답했다.

     

    “나도였거든.”

     

     

    ****

     

     

    네르는 천막에서 오지 않는 베르그를 기다렸다.

     

    어디론가 갑자기 떠나버린 베르그.

     

    물이라도 떠오는걸까 잠시 생각하던 참이었다.

     

    지켜주겠다고 말하고 뜬금없이 떠나 잠시 혼란스러웠다.

     

     

    “…네 마음도 이해가 가.”

     

    그러는 동안 아르윈이 말을 걸었다.

     

     

    “…네?”

     

    “베르그와 혼인하지 않았다면…이 모든 경험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

     

    네르는 잠시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아르윈은 고개를 천천히 속삭일 뿐이었다.

     

    “…그러니 이해해.”

     

     

    그때, 밖에서 커다란 소란이 벌어진다.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며 외쳐대고 있었다.

     

     

    “바란님! 시어도어님! 크리안님! 아담 단장님!”

     

     

    야영지를 뛰어다니며 베르그를 제외한 모든 간부를 부르는 한 단원.

     

     

    네르와 아르윈은 짧은 눈길을 교환했다.

     

    천막 앞을 지키던 바란이 움직이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아직 채 일어나지 못하는 네르를 대신하여, 아르윈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는 천막을 거둬, 밖에 보이는 모습을 살폈다.

     

     

    바란이 한 용병에게 다가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근처로 수많은 용병들도 모여들었다.

     

     

    “뭐?!”

     

    그러더니 바란은 목소리를 높이며 놀랐다.

     

    이내 그는 두리번 대다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숀! 아담 단장님 불러! 잭슨! 애들 모와!”

     

     

    숀이 어리둥절해하며 바란에게 다가선다.

     

    “무슨 일이죠?”

     

    네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이 나는 한편, 의문이 피어났다.

     

    설마 베르그와 관련이 된 일인걸까.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

     

     

    싱거울만치 가볍게 끝난 싸움.

     

     

    -퍽! 퍽! 퍽!

     

     

    나는 쓰러진 투로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다,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라크레단의 대원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쓰러진 투로를 보고도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이따금씩 생각한다.

     

    역시나 직접 보여주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그들이 놀라는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단장이 탁자 뒤에 앉아있는만큼, 아라크레단의 실질적인 지주는 투로였을테니까.

     

    그랬기에 그를 밟는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는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다시금 아라크레단의 용병들을 살폈다.

     

    몇몇은 이미 끝나버린 승부에도 멈추지 않는 날 보며 당황하는 듯 했다.

     

     

    “끝났잖아!”

     

     

    아니나다를까 누군가가 인파 속에서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투로를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아직 저렇게 말할 생각이 있어서야 의미가 없다.

     

    갈길이 멀어보였다.

     

     

    나는 투로의 이빨이 빠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그를 때렸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싸움을 전달해준다.

     

     

    “베르그 부단장…!”

     

     

    쉬프레가 나를 급히 불렀다.

     

    나는 꽂던 주먹을 회수하고 쉬프레를 바라보았다.

     

     

    “…그, 그만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이미 충분해. 투, 투로가 졌어.”

     

    그녀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대련에 끼어들지 마시죠.”

     

    “…”

     

    “투로 부단장이 먼저 제안한 대련이었습니다.”

     

     

    아무도 아직까지는 대련에 끼어들지 못했다.

     

    용병의 싸움에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만한 모욕도 없다.

     

    아마 그 사실을 알기에 그 누구도 투로를 구하러 오지 못하는 듯 했다.

     

     

     

    주먹을 또 들어올린 순간, 쉬프레가 묻는다.

     

     

    “…아, 아내들한테 했던 말들 때문에 그래?”

     

    “………”

     

    그녀가 말한다.

     

    “두, 두 번 다시는 그런 일 없게할테니까…투로는 놔줘. 그, 그러다 죽겠다고.”

     

    “….”

     

     

    -퍽!

     

    -툭.

     

    또 내리친 주먹에, 투로의 오른쪽 뿔이 부러진다.

     

     

    -퍽!

     

    -툭.

     

    다음 주먹에는 왼쪽 뿔이 부러졌다.

     

    암소처럼 되어버린 머리.

     

     

    나는 다시 아라크레단을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공포의 감정들의 피어나고 있다.

     

    이제는 나와 눈을 마주하려는 용병이 없었다.

     

     

    이제야 좀 일이 끝나가는 듯 했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로는 가문의 힘보다, 주먹이 더 가깝다.

     

    기고만장한 그들이, 블랙우드를 무서워하지 않으면.

     

    다른걸 무서워하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나도 이게 직관적이어서 편했다.

     

     

    앞으로 아라크레단은 투로를 볼때마다 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내가 보내는 경고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쓰러진 투로를 내버려둔채, 주변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말한다.

     

     

    “…오늘 너희들이 모욕한 흰꼬리.”

     

    몇몇 용병들은 찔리는지 뒷걸음질까지 쳤다.

     

    “앞으로는 바라보지도 않는게 좋을거야.”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부터는 가벼운 모욕도 참지 않을테니…분명히 기억해둬.”

     

     

    “베르그 부단장!!”

     

    그때, 아라크레단을 헤치며 홍염단이 걸어들어온다.

     

    아라크레단은 그런 그들을 위해 길을 내주었다.

     

    막상 길이 손쉽게 벌어지자, 바란의 표정에 의문이 물든다.

     

     

    이내, 쓰러져있는 투로를 보며 그가 잠시 굳었다.

     

    “…부단장.”

     

    그도 아라크레단 단원들처럼 경악한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을 벌이시면…”

     

    “…”

     

    “…일단 돌아가시죠.”

     

    그가 나를 이끄려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바란의 손을 털어냈다.

     

    “…끝나지 않았어.”

     

     

    네르를 지킬 소문이 퍼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본보기가 필요했다.

     

    명분도 있었고, 감정도 남아있었다.

     

    거기다 더해, 한번할 때 확실히 하는게 나았다.

     

     

    ****

     

     

    네르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베르그를 중심으로 커다란 소란이 펼쳐졌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소문이 점차 퍼져나가자 홍염단 내부의 단원들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일말의 아쉬움도 없을 소문만이 울려왔으니 어쩔수가 없었다.

     

     

    베르그가 아라크레단의 부단장을 심하게 밟았다는 소식.

     

    베르그가 달사슴단의 부단장을 심하게 상처주었다는 소식.

     

    베르그가 용언단의 부단장을 지금 밟고 있다는 소식까지.

     

     

    이 모든게 하룻밤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약하기로 소문난 인족이 모두를 꺾어버리고 있었다.

     

    항간에 퍼졌던 소문이 사실이라는 듯,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밤새 이어진 그 소란에 온 지축이 시끌댔다.

     

    아침이 밝아오는데 누구도 잠들어있지 않은 듯 했다.

     

     

    “…”

     

    네르는 그 홍염단의 야영지 중앙에서 훌쩍이며 코를 삼켰다.

     

    그녀의 온몸이 들려오는 소식들에 찌릿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용병단을 찾아가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었다.

     

    가능할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일들을, 그가 벌이고만 있었다.

     

     

    “…왜?”

     

    네르는 혼자 속삭였다.

     

    여러번 물었던 질문이었지만, 이번만큼 궁금한적이 없다.

     

    왜, 또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까.

     

     

    네르는 제 뺨에 손을 얹었다.

     

    베르그의 온기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자신이 조금 놀림 받았다는 사실에 모두와 싸움을 벌인 베르그.

     

    상식적으로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의 생각이 이해되질 않았다.

     

     

    말이나 되는 선택인가.

     

    아직 자신은 그 어떠한 것도 베르그에게 해주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사랑할 이유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부단장들과 싸워줄 이유도,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베르그는 나섰고,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네르는 눈을 꾹 감았다.

     

    주먹이 멋대로 말아진다.

     

     

    오늘처럼 아픔이 올때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

     

    눈물을 흘릴때마다 알게 되는 사실.

     

    …자꾸만 베르그가 소중한 사람이 되어간다.

     

    떠올리는것만으로도 눈물이 날것만 같다.

     

    밀어내고자 해도 말처럼 되지 않는다.

     

     

    언제나 욕만 먹었던 제 꼬리를 처음으로 긍정해준 사람이었다.

     

    자신을 위해 나서주고, 싸워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자신의 곁에서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새벽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과 함께,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베르그! 베르그! 베르그! 베르그!”

     

    “베르그 부단장! 역시 부단장입니다!”

     

     

    가까워지는 소리.

     

     

    네르는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다가옴을 느꼈다.

     

    -쿵………쿵……

     

    심장이 태동한다.

     

     

    네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선 끝에 다가오는 베르그가 보인다.

     

     

    언젠가부터 너무나도 익숙해진, 그 남성이 가까워 온다.

     

    자신을 쓰다듬고, 예쁘다 말해준 그 남자가 걸어온다.

     

     

    “…아.”

     

    그녀가 탄성을 내뱉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이 순간 그를 밀어내야한다는 걸.

     

    어쩌면 이 순간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뒤에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베르그의 뒤로 후광이 비친다.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할만큼 밝아진다.

     

     

    네르는 그 햇빛에 눈을 감았다.

     

    제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쿵…쿵…쿵…

     

    하지만 베르그가 접근한다는 사실에, 그녀의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네르가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할머니.’

     

     

    -쿵…쿵…쿵…

     

     

    ‘이럴때는 어떻게 해요?’

     

     

    -쿵…쿵…쿵…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묻는다.

     

     

    ‘…먼저 마음을 가져가려는 사람이 생기면…’

     

     

    -쿵…! 쿵…! 쿵….!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네르.”

     

     

    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베르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르의 숨이 일순간 멎었다.

     

     

    어이없을만큼 베르그는 가까워져 있었다.

     

    말릴세도 없었다.

     

    저항할 순간도 없었다.

     

    그녀가 세운 벽을 간단하게 뛰어넘어온다.

     

     

     

    네르는 베르그를 바라볼수가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거칠게 맥박쳤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턱에 한 손길이 닿았다.

     

     

    축축한 그 손이 네르의 턱을 위로 들어올린다.

     

    피냄새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베르그의 향기가 풍겨왔다.

     

     

     

    네르는 동시에 눈을 슬며시 떴다.

     

     

     

    피투성이가 된 베르그.

     

    하지만 그 흉흉한 모습과 달리, 그는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읏.”

     

     

    네르가 무력하게 신음을 흘렸다.

     

     

    용병.

     

    인족.

     

    평민.

     

     

    끝없는 차이가 있을거라 예상했던 사람이, 바로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베르그가 말한다.

     

     

    “…아직은 시간이 걸릴거야.”

     

    그의 목소리에 네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내가 도와줄테니까…”

     

    하지만 평생토록 흘렀던 눈물과는 결을 달리하는 눈물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봐.”

     

    이런 감정과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처음 깨닫는다.

     

     

    “…흐윽…”

     

    끝내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흐르는 눈물을 더는 참을수가 없었다.

     

    베르그가 그런 그녀의 머리를 또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심장이 또 미칠 듯이 날뛰었다.

     

     

     

    베르그가 말한다.

     

    “여러번 말했지만, 예쁘다고 했잖아.”

     

    그가 그녀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긍정해주었다.

     

    ‘…아.’

     

    네르는 속으로 신음하며 깨달았다.

     

     

    평생을 원했던 자신의 편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ㅋㅋㅋ술을 마시지 말걸 그랬습니다.

    업로드 이후 취기에 잠들고 일어나보니 어이쿠였네요.

    그래도 독자님들이 원하시니 가져왔습니다.

    저도 연참해야한다는걸 본능적으로 느꼈던걸까요. 한편이 준비되어있긴 했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아, 그리고 시간이 남으시면 halo 라는 노래를 가사와 함께 들어보시길 추천드려요. 회차 브금 추천이라고 해야겠네요.

    다음화 보기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