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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마수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인간형 마수와, 인간형이 아닌 마수.

         

        소녀 같은 경우가 인간형 마수였다. 소름 돋을 정도로 사람과 똑같이 생겼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 그녀의 혈관에는 피 말고도 수은이 흘렀다.

         

        지금 소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신상정보였다. 자기가 마수라는 걸 살리에르 백작가에서 알아차리기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머리색이 왜 그래?”

        “여, 염색했어요.”

         

        그래서 경위를 묻는 백작의 말에 무리수를 던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발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고는 곧바로 입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망했다.

         

        소녀는 지금 자기 언니를 사칭하려야 사칭할 수 없는 몸이었다.

         

        그야 눈앞의 소녀, 로테 살리에르에게 자기 스스로를 에테르의 쌍둥이 여동생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던가.

         

        그런 대화를 나눴던 당사자를 앞에 두고 거나하게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로테에게 있어 소녀의 말은 변명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염색하러 미용실까지 갔다 왔다고?”

        “날씨가 이런데?”

         

        살리에르 백작인 크롬웰 살리에르와, 그의 아들인 로르웰이 동시에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합당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창문은 왜 깨 먹었니?”

         

        이어지는 부자의 말에 소녀의 몸이 꽁꽁 얼어붙는다. 안 그래도 차가웠던 심장이 더욱더 서늘해지고, 동공이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이 정도로 당황한 건 언니가 가출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숨을 가다듬으며 창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상황을 직시하고 변명거리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초속 50미터에 달하는 강풍이 휭휭 불어와 서재 내부로 들이닥쳤다. 엄청 강한 바람이었다. 오죽하면 책상과 의자가 뒤로 밀려 나갈 정도였다.

         

        이러다간 서재 내부가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만다.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제,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먼저 발을 움직인 건 로테였다. 갑작스러운 소녀의 등장에 눈만 깜빡거리고 있던 로테는 보강판과 유리창을 가져왔다. 능숙한 솜씨로 강화유리를 교체한 로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원위치로 돌아왔다.

         

        로테의 노고 덕에 서고가 아수라장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살리에르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지, 소녀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정리한 살리에르 부자가 악의 없는 공세를 이어나간다.

         

        “에테르, 내가 널 나무라는 건 아닌데… 창문은 또 어떻게 깬 거니? 강풍 방지 마법을 걸어놓아서 어지간한 충격에는 끄떡없을 텐데.”

         

        합당한 의문이었다.

         

        재난용 스크롤을 먹인 유리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해진다. 철제 간판이 날아와서 들이박기라도 하지 않는 한 깨지진 않을 터였다.

         

        그런 유리창이 깨졌다. 심지어 그 파편을 소녀가 뒤집어쓰기까지 했다.

         

        이만한 충격이었다. 그런데도 백발 소녀의 몸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가만 보자. 다친 데도 없는 것 같은데?”

         

        로르웰의 추가타. 변명할 수 없는 물음에 소녀는 대답조차 못 하고 헛숨만 삼켰다. 이쯤 되면 금안족 특유의 포커페이스도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설명해야 할 게 산더미였다.

         

        왜 이런 재난 상황에 머리를 염색하러 갔는지.

         

        애초에 지금 같은 때에 열어놓은 미용실이 있기는 했는지.

         

        왜 돌아올 때 정문으로 안 들어오고 창문을 깨부수고 들어온 것인지.

         

        재난방지 스크롤이 달린 강화유리를 맨몸으로 부숴놓고도 어떻게 몸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는지.

         

        이 모든 의문에 개연성을 줄 수 있는 설명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 그야 마수니까.

         

        미친. 절대로 못 밝힌다.

         

        여기서 그 누구도 그런 추리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보다 확실한 변명거리를 늘어놓아야 한다.

         

        “저, 그.”

         

        소녀는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도 말해야 한다. 말을 쥐어짜내야 하는데,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단어가 마땅히 없었다. 입술이 도무지 떨어지질 않았다.

         

        소녀는 이런 말주변이 부족했다. 위압을 내뿜으며 협박이나 경고를 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화법을 구사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이런 위기를 잘 다스리는 건 4석이었다. 

         

        생각하자. 로즈마리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 답을 얻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

         

        이런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았겠구나.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구천지대계 2석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순간의 부주의로 일을 그르쳤다는 점에 분노가 차올랐다. 이래선 마왕님 얼굴도 못 볼 텐데.

         

        소녀는 어금니를 갈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정면 돌파뿐이다. 

         

        그래, 조금이라도 자기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낌새가 보인다면. 그렇다면, 여기서 전부 죽여버리자.

         

        물론 마도 감응력이 높은 살리에르 백작가 일원을 시해한다면 정령에게 들킬 위험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마왕님 부활 계획에도 큰 차질이 생긴다.

         

        다행히도 여긴 정령족의 영향이 약한 마대륙 근처였다. 이곳에서 살리에르 일가를 몰살하더라도 정령에게 들키지 않을 확률이 들킬 확률보다는 높았다.

         

        당장 앞날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마수라는 걸 들키면 그건 그때 가서 동료들과 논의하면 될 일이다.

         

        소녀는 품에서 마력초를 꺼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때.

         

        “그, 유리창은 알아서 깨진 거예요!”

         

        덜덜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난 방향에는 로테 살리에르가 있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음 말을 준비했다.

         

        “이, 이번 태풍은 정말 강한가 봐요. 에테르가 딱 여기 서 있었는데, 갑자기 그대로 깨져버려서… 하, 하하…. 그래도 운 좋게 다치진 않았네요.”

         

        소녀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나를 변호하는 건가?

         

        아니, 감싸고 있는 게 아니다. 저 눈빛은 자신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자신을 만난 이후로 로테가 금안족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건 모닥불 담화를 나눴을 때부터 희미하게나마 눈치채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그녀의 목덜미를 노리던 재앙급 마수 두 마리를 소녀가 간단하게 제압해냈으니까.

         

        재앙급을 길들이고 조종할 수 있는 건 절멸급 마수뿐이다. 로테의 사고가 거기까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 그리고 염색은 카밀라 아주머니 댁에서 했어요. 그분은 원래 성실하시잖아요. 이런 태풍에 질 수 없지! 이러시면서 에테르 머리를 손봐 주셨어요. 어때요, 머리 잘 됐죠?”

        “음.”

        “하긴. 그 사람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변호치고는 횡설수설이 심했다. 그래도 소녀가 떠올려낸 것보다는 나름 괜찮은 변명거리였다. 

         

        소녀는 자신을 경계하면서도 굳이 변호를 서 주고 있는 로테를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로테는 자신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동공은 해안가의 파도처럼 철썩철썩 흔들렸고, 목까지 내려온 다홍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조급함을 표출했다.

         

        “뭔가 이상하긴 한데… 에테르는 수인들 사는 곳으로 간다고 저번에 말하지 않았어?”

        “그, 그거! 태풍 때문에 나중에 가겠다고 다시 돌아왔어. 그치?”

        “어, 어…….”

        “어쨌든 다치지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진 말고 일찍들 자렴.”

        “아, 네!”

         

        크롬웰과 로르웰은 문을 닫고 돌아갔다. 쿵, 하는 소리가 난 직후 적막이 찾아왔다. 

         

        소녀는 로테를, 로테는 소녀를 쳐다보았다.

         

        눈을 먼저 피한 건, 당연하게도 로테였다.

         

         

        **

         

         

        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살았다. 로테는 소녀가 듣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에테르와 닮은 백발 소녀가 창문을 깨고 들어왔을 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놀란 것도 있기야 있었지만, 백발 소녀를 마주칠 때마다 지난 날의 트라우마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로테의 목을 노리려던 펜릴을 저 소녀는 간단하게 굴복시켰다. 그 후로 로테의 마음속에는 금안족 전반에 대한 의문과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도대체 금안족은 무얼 하는 종족일까? 왜 눈이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마법을 못 쓰는 것일까?

         

        공부에 집중하려고 해도 그런 의문이 머릿속의 불씨를 지펴 활활 타올랐다.

         

        “염색, 했어요.”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달려온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소녀가 한 변명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녀 또한 곧바로 신음을 흘리며 자기 발언에 모순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야 로테에게는 자신을 에테르의 쌍둥이 여동생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던가.

         

        그럼 그렇지. 결국 거짓말을 한 건 저 소녀였다. 적어도 에테르는 일관되는 발언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러면 저 소녀는 뭐지? 에테르와는 아예 다른 존재인가?

         

        그런 의문이 정신을 훼방놓던 중, 소녀를 향한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창문 깨진 것부터 시작해서 왜 다친 곳이 없는지, 왜 지금 같은 시국에 머리를 하러 갔는지 등등. 변명거리를 생각할 틈도 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소녀의 낯빛이 어둡게 변했다.

         

        곧 소녀는 로테를 흘겨보았다. 샛노란 안광에서는 살기가 묻어나왔다. 소녀는 손을 뒤로 내뺐고, 무언가를 꺼내려 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소녀가 궁지에 몰리는 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에 논리적인 근거는 없었다.

         

        그저 본능이, 가족을 살리고 싶다면 이 소녀에게 심리적인 여유를 줘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그랬기에 로테는 소녀의 존재를 수상하게 여기면서도 그녀의 편에 서서 말을 꾸며냈다. 적어도 그녀가 이상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 탓에 지금 이 꼴이다.

         

        -위이이잉

         

        마도구로 젖은 머리를 말리는 소녀. 축 늘어졌던 그녀의 백발이 서재 조명을 받아 하얀 눈가루처럼 반짝거렸다.

         

        창문으로 들어왔을 때 받은 충격으로 인해 몸에 두르고 있던 호우 방지 스크롤이 깨져서 저리 젖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알리바이가 되었다. 이 가짜 에테르가 실내에 있었더라면 굳이 재난용 스크롤을 두르고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

         

        어색한 기류는 아까부터 이어졌다. 백발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옷과 머리를 말리는 것에 열중했고, 로테는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글자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탁, 하고 소녀가 헤어드라이어를 내려놓았다. 

         

        “그, 저기….”

        “…….”

         

        대답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로테가 처음 소녀의 이름을 물어봤을 땐 알 필요 없다며 거절했었으니까.

         

        로테는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이번엔 존댓말로.

         

        “저기요…?”

        “…아카샤.”

        “응?”

        “당분간 여기서 신세 좀 질 텐데 이름 정도는 알고 지내야지 않겠어?”

         

        소녀는 뒤를 돌아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듯한 금색 눈동자가 로테의 간장을 덜컥 헤집어놓았다.

         

        “우리 잘 지내보자, 언니.”

         

        로테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건, 불편한 동거가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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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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