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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그날 오후.

       던전에 다녀온 나는 레비나스와 함께 야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내 야성을 피워낼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였다.

       

       “왕아, 거기서 더 무서워지면 큰일 나지 않냐?”

       

       “왜?”

       

       “레비나스가 무서워서 울지도 모르잖아!”

       

       그렇긴 하지.

       무서움에 대한 면역이 없는 레비나스니까.

       

       아무래도 내 야성보다는, 레비나스의 공포 면역력을 키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야성을 피워낼 때마다 그녀를 겁에 질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우리 훈련할까?”

       

       “훈련?”

       

       “응. 무서운 걸 참는 훈련이야.”

       

       “헉! 그거 굉장하다!”

       

       보다 강인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건지, 레비나스가 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땅굴 아래에 있던 레비나스의 상반신이 굴 바깥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역시 점프력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아이였다.

       

       “레비나스도 장수 뿔토끼님처럼 되는 거냐?!”

       

       장수 뿔토끼.

       모두와 함께 던전에서 잡은 보스 뿔토끼의 이름이었다.

       

       “응. 더 대단한 뿔토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헉! 장수 뿔토끼님보다 더 대단한 뿔토끼!”

       

       레비나스가 기도하듯 깍지를 꼈다.

       그녀가 장수 뿔토끼를 얼마나 위대한 존재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 우리···”

       

       훈련에 대해서 구상하자.

       그리 말하려는 순간, 익숙한 지팡이 소리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소피아다.

       흔들리는 꼬리를 느끼며, 굴속에서 소피아가 나타날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지팡이 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흔들리는 꼬리의 속도가 빨라졌다.

       

       “요 녀석들아.”

       

       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소피아가 지팡이로 나와 레비나스의 머리를 콕콕 눌렀다.

       지팡이를 뒤집어 흙이 묻지 않은 부분으로 눌렀는데, 딱히 아프지는 않았다.

       

       “소피아, 왜 그러세요···?”

       

       “예쁜 공원을 공사판으로 만들어놨구나.”

       

       “어라?”

       

       나는 굴속에서 발판을 밟고 머리만 내밀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록의 풀과 꽃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공원이 죄다 뒤집어져, 흙밭이 되어 있었다.

       파낸 흙을 주변에다 대충 던져놓은 탓이었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공원이지 않더냐. 이런 식으로 뒤집어 놓으면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을 게다.”

       

       “죄송해요···”

       

       소피아의 말이 맞았다.

       내 소유도 아니면서 공원의 경치를 이리 망쳐버리다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땅을 파는 건 좋은데, 주변은 정리하면서 하거라.”

       

       “네에···”

       

       소피아에게 혼이 났다는 사실에 귀와 꼬리가 축 가라앉았다.

       괜스레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화내는 거 아니니, 너무 기죽지는 말고.”

       

       “넵···”

       

       꽃이랑 풀을 다시 심어야겠다.

       예쁘게 보일 수 있도록 꾸미기도 하고.

       

       그나저나 공원의 경치를 망치는 내게 길드 사람들은 어떠한 불평도 내뱉지 않은 건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레비나스.”

       

       “왜?!”

       

       “우리 청소부터 해야 할 거 같아.”

       

       “청소?!”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길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공원을 가꾸기 전에, 길드 건물을 먼저 청소하기로 했다.

       항상 배려를 받기만 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었다.

       

       “응! 레비나스 청소 좋다!”

       

       “레비나스 청소 좋아해?”

       

       “아니! 청소는 싫어!”

       

       “엥?”

       

       좋다가 또 싫다고 한다.

       대체 무슨 심경으로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청소는 싫은데 왕이랑 하면 뭐든 다 좋다! 그래서 청소가 좋다!”

       

       “아···”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하면 뭐든 좋다는 건가.

       그건 나도 레비나스와 같았다.

       

       “나도 청소 싫은데, 레비나스랑 같이하면 좋아.”

       

       “와! 레비나스랑 같네?!”

       

       “응.”

       

       나는 말하면서 소피아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소피아도 좋아한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나와 레비나스는 청소도구를 들고 길드 건물을 돌아다녔다.

       길드 사람들에게 보답으로 청소를 하고 싶은데, 어디부터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일단 바닥부터 쓸어볼까.

       그런데 먼지가 하나도 없네.

       

       빗자루를 든 채 멀뚱멀뚱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근처에서 유상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겨울님.”

       

       “안녕하세요.”

       

       꾸벅-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유상아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이 내 빗자루를 향해 있었다.

       

       “뭐 하고 계셨어요?”

       

       “저, 청소 하려구요.”

       

       “청소요?”

       

       “네. 전 항상 길드에 도움을 받기만 해서요. 이번엔 제가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내 말에 미소를 지은 유상아가 어느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길드의 간부급만이 이용한다는, 절대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엘리베이터였다.

       

       “그럼 저거 타고 마스터한테 가보실래요?”

       

       “마스터요?”

       

       “네. 일층엔 마법이 걸려 있어서 상시 청결을 유지하거든요.”

       

       세상에.

       연못도 마법으로 청결을 유지하더니만, 길드 건물도 마법으로 청결을 유지하는 건가.

       청소 노동자들의 생계를 빼앗아 버리는 끔찍한 일이다.

       

       대기업의 횡포에 밀려난 노동자의 기분을 느끼며, 허망한 눈으로 유상아를 올려다보았다.

       

       “처, 청소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나요···?”

       

       “모든 구역에 마법이 걸려있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일 층에만 걸려 있거든요.”

       

       “아하···”

       

       노동자들과 기업이 나름 합의하에 살아가고 있다는 건가.

       길드가 노동자들에게 큰 횡포를 부리지 않는 사실에 안도했다.

       

       “사실 사람을 쓰는 게 더 싸기도 해요. 일 층엔 워낙 많은 분들이 오가는지라, 어쩔 수 없이 마법을 쓴 거죠.”

       

       사람이 마법보다 더 싸서 고용할 가치가 있다는 거구나.

       뭔가 씁쓸하지만, 청소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쁜 일도 아니었다.

       나는 납득하며 유상아가 가리킨 엘리베이터를 돌아보았다.

       

       “제가 저거 타고 올라가도 되나요···?”

       

       “네. 아무 문제 없어요.”

       

       “아하···”

       

       간부급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라고 했는데.

       잘못된 소문을 들었던 건가.

       나는 유상아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레비나스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왕아, 마스터는 제일 높은 데에서 산다.”

       

       “응. 레비나스가 눌러볼래?”

       

       “응!”

       

       레비나스가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수를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워낙 빠른 엘리베이터이다 보니, 금세 최상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띵-

       

       가벼운 알람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처음으로 우리를 반겨준 것은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이들이었다.

       

       “아···”

       

       건물을 지키는 보안 요원들.

       한 명 한 명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내게 닿자, 자연스레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저, 저기 청소···”

       

       바닥을 내려다본 채 요원들을 향해 빗자루를 내밀어 보였다.

       아무래도 간부들만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맞는 것 같았다.

       그도 아니라면 열 명이 넘는 요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을 지키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큰일 났다···’

       

       보안 요원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을 줄이야.

       여기엔 왜 왔냐며 심문을 당하려나?

       

       간부도 아닌 내가 엘리베이터에 탔다며 징계 비스름한 걸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 저기···”

       

       죄송하다며 잘못을 빌려는 순간, 보안 요원들이 좌우로 비키며 길을 열었다.

       마치 지나가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

       

       내가 뭔 줄 알고 길을 비켜주는 거지?

       기본적인 검사조차 안 한다고?

       의문스러움에 그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으니, 레비나스가 기합과 함께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얍!”

       

       레비나스가 보안 요원들의 사이를 달려갔음에도, 어떠한 요원들도 레비나스를 붙잡거나 제지하지는 않았다.

       지나가도 상관없다는 건가.

       나도 레비나스의 뒤를 쫓아 달렸다.

       

       “왕아! 여기다! 여기!”

       

       “으, 응···”

       

       가끔은 레비나스가 굉장히 용감하단 말이지.

       나는 레비나스를향한 존경심을 느끼며, 마스터의 사무실처럼 보이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마스터의 목소리다.

       조심스레 문을열고 얼굴만 내밀자, 원형 테이블에 앉아있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회, 회의 중이셨네요··· 저 그냥 있다가 올게요···”

       

       “괜찮아, 들어와.”

       

       “네에···”

       

       문을열고 레비나스와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 중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레비나스를 향해 꽂혔다.

       마스터의 시선은 내 손에 들린 빗자루를 향해있었다.

       

       “빗자루는 왜 들고 왔어?”

       

       “처, 청소···”

       

       괜스레 빗자루로 바닥을 문질렀다.

       마스터의 눈치를 살피며, 청소하는 사람의 모습을 흉내냈다.

       

       “청소?”

       

       “네, 청소하려고 했는데, 제가 괜히 왔나 봐요···”

       

       “아니, 잘 왔어.”

       

       그리 말한 마스터가 테이블 위에 놓인 다과를 나와 레비나스 앞에 내밀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다과까지 전부 가져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거는 회의하는 사람들 건데···”

       

       “됐어. 분위기상 다과를 놓긴 하는데, 어차피 아무도 안 먹거든. 회의 끝나면 버리는 거니까 이거 다 가져가.”

       

       마스터가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들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평소 길드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아니었는데, 외부에서 온 이들이 분명했다. 

       

       “와! 과자다!”

       

       레비나스가 마스터의 옆에서 폴짝 뛰었다.

       그녀는 벌써 양손에 과자를 하나씩 쥐고 있었다.

       마스터가 허락했으니 괜찮을 테지, 레비나스가 기뻐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마스···”

       

       나는 마스터를 부르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저번에 분명 마스터가 아닌, 아저씨라 부르라 했지.

       상당히 무례했지만,  마스터가 시키는 일이었다.

       나 따위가 감히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아저씨···”

       

       내가 마스터를 부르는 순간, 회의실에 있는 이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허···”

       

       경악과 의문이 담긴 표정들이 나를 향한다.

       덕분에 내가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역시 아저씨라 하면 안 됐구나.

       그래도 최강 길드의 마스터인데.

       

       난 망했다.

       이제 어떡하지?

       귀 위로 손을 올린 채,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매번! 매번 말하는 말이지만 진짜 정말루 힘이 돼요!

    대한민국의 반대는 우루과이래요!!
    처음 알았네요!!
    댓글로 알려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딩딩딩님 69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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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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