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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카지노를 중심으로 어른들이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테마파크 비슷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자 그대로 가산을 탕진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카지노 덕분에 세워진 화려한 거리를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보통 관광객도 많이 온다. 특히 도박에는 관심 없어도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상류층이 연인과 와서 고급 호텔에 묵으며 축제를 즐기다 가는 일도 많다고 한다.

        

       거기에 여기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딱히 부자는 아니다. 특히 그게 급사 같은 직업이라면 더욱.

        

       그러니, 당연히 평범하게 식사할 수 있는 식당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나 카페도 꽤 있었고.

        

       우리가 있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벨라의 안내를 받아 찾아온 곳은 카지노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한 거리의 한 허름한 식당이었다.

        

       “어, 야! 이런 곳에 손님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진 또 다른 바니걸이 식당에 앉아있다가 벨라에게 화를 냈다. 복장은 바니걸 차림이었지만 여기저기 구겨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머리에 쓰고 있던 토끼 귀 머리띠는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얼굴과 가슴 여기저기 반짝이는 가루가 묻어있는 것으로 봐서는, 밤새도록 일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 미안……. 하지만 나를 도와주신 분들께 꼭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서.”

        

       벨라가 소심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나는 조금 놀랐다.

        

       벨라의 그런 태도는 그녀에게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물론 나야 그 뒷배경을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만약 몰랐다면 그냥 사연 있는 캐릭터 중 하나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아니지, 그 전에 앨리스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모습이 조금 나오긴 했으니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으려나.

        

       “네가 사주는 걸 잘 사는 사람들이 먹는다고……하아, 됐다.”

        

       초록 머리의 여인은 머리를 거칠게 긁더니,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딸려온 사람 중에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으니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옷 입은 걸 보니 귀족이긴 해도 학생인 것 같고. 어차피 교칙 때문에 그런 것도 못 할 거 아냐?”

        

       그렇게 말한 여자는 그대로 우리에게서 관심을 끊어버렸다.

        

       이런 곳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할 거다. 여기저기서 굴러다니다가 밑바닥까지 찍고 나서야 와서 일하게 되는 곳이 이런 곳이니까. 물론 제국 곳곳을 살펴보면 여기보다 훨씬 심한 곳도 여러 군데 있기는 했다. 그런 의미에선 노스우드는 여기를 그럭저럭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사는 사람들 기준으로는 별로 공감 가는 평가는 아니겠다만.

        

       “죄송해요. 말은 저렇게 해도 속은 깊은 아이니까…….”

        

       하지만 벨라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록 머리 여인은 손을 들어 어깨 너머로 우리에게 브이 자를 만들어 보였다. 손등이 우리를 향하는 채였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꽤 유명한 영국 욕이었다.

        

       제국군을 종종 마주칠 일이 있었을 레나, 그리고 바로 옆 나라로서 티격태격 싸우는 샤를로트 그 두 사람도 저게 욕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봤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하하…….”

        

       벨라는 힘 빠지게 웃어 보인 뒤, 얼버무리듯 “여기 앉으세요.”하고 얼른 권했다.

        

       아무리 오지랖 넓은 주인공 일행이라도 벨라 직장 동료에게 무례하게 굴면 벨라가 힘들게 생활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았다.

        

       ……고작 그런 것으로 벨라가 힘들게 되지는 않겠지만. 뭐, 여기 있는 사람 중 벨라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 같은 황녀인 나와 앨리스뿐이었으니까.

        

       나는 그래도 앨리스와 거의 함께 다녔고, 대외적으로 나서는 것을 딱히 숨기지도 않아서 사람들에게는 얼굴이 그럭저럭 알려졌지만, 벨라의 경우는 다소 다르다. 일단은 벨라도 공식적인 황녀였으니 귀족들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벨라는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보이는 일이 전혀 없었다.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자주 보이던 황제의 아이들은 제이든, 루카스, 나였고, 얼굴을 보이는 것이 곤란한 일거리를 처리하는 역할은 벨라와 마지막 아이였다.

        

       황궁 내를 돌아다닐 때도 벨라는 얼굴에 가면을 쓰거나 아예 다른 사람처럼 분장해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샤를로트조차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역할 분리가 황제에 의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냥 각자 자기 성격대로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벨라는 자기 정체를 숨기는 쪽이 더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오늘 같은 일을, 많이 당하시나요?”

        

       샤를로트가 진지하게 물었다.

        

       제국의 일이긴 했지만, 벨부르라고 해서 이런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창관이나 아편굴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있는 법이다. 자기 나라 안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면, 샤를로트 입장에서도 여기는 도움이 되는 곳이다.

        

       “자주, 는 아니지만요.”

        

       “…….”

        

       게다가 샤를로트 본인이 정의로운 성격이기도 했고.

        

       어쩌면 와서 이런 모습을 보고 상스럽다고 중얼거린 것을 마음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무겁게 처졌다.

        

       “뭐 드실 거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무거운 분위기를 밀어내고 주인장이 물었다.

        

       어느새 우리 테이블 옆까지 다가온 주인장은 무척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저기 얼룩진 더러운 앞치마에, 이곳저곳이 해진 옷. 새로 살 돈이 있지만 사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조차도 아까워하는 것인지. 들어올 때 봤던 창문에 금이 가 있던 것을 보면 후자일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어떤 음식이 맛있죠?”

        

       샤를로트가 벨라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평소의 샤를로트였다면 가게의 상태나 주인장의 모습을 보고 기겁했겠지만, 우리가 여기 있게 된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런 것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진심 어린 호의는 감사하게 받는 것이 귀족의 예의다.

        

       “아, 치킨 스튜를 사람 수만큼 해주세요.”

        

       “엉?”

        

       주인이 벨라를 멀거니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 그만큼 낼 돈 있냐?”

        

       “그, 그 정도는 있어요!”

        

       내 일행들의 눈치를 보며 그렇게 말하는 벨라를 보고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한 20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분명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대배우가 되었을 텐데.

        

       하긴 성격을 생각하면 벨라가 그런 일을 했을지 아닐지 장담은 못 하겠지만.

        

       주인장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우리 머릿수를 세고 몸을 돌렸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클레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그 정도의 돈은 있으니까…….”

        

       다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려는 것을,

        

       “그나저나, 그놈은 대체 뭐였어?”

        

       제이크가 얼른 붙잡아 다시 올렸다.

        

       “제가 마음에 든다면서 말을 거셨던 분이에요. 농담 몇 개를 하시기에 기분을 맞춰드리려고 웃었는데, 그분은 제가 진심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우리 쪽으로 왔던 건, 거기서 벗어나려고 그랬던 거야?”

        

       앨리스는 드디어 이 연극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굳혔는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네……. 죄송해요. 사실 그렇게까지 분위기가 험악해질 줄은 몰랐어요.”

        

       실상은 반대로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만.

        

       “굳이 우리한테 말을 걸었던 이유가 있어?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많았잖아.”

        

       “그게…….”

        

       벨라는 무척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다른 귀족분들은, 제가 말을 걸면 더럽다는 듯 자리를 피하거나 아니면 역으로 자기가 데려가려고 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요.”

        

       샤를로트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표정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여러분은 론다리움 아카데미 분들이시죠?”

        

       벨라가 레오를 보면서 물었다. 레오는 조금 당황한 듯 잠깐 어버버 거리더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어마어마하게 어벙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교복이 론다리움 아카데미의 교복이니까요. 저도 론다리움에 잠깐 있었거든요. 그때 아카데미 근처를 지나다가 여러분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을 많이 봤어요.”

        

       어린 시절에 동경했다느니 하는 뻔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그 마음이 더 느껴지는 대사였다.

        

       물론 저 대사도 꾸며낸 대사겠지만.

        

       “그래서, 학생분들이라면…… 저를 도와주시지 않을까 해서요. 죄송합니다…….”

        

       “…….”

        

       분위기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졌지만, 그중에서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앨리스였다.

        

       직접 ‘잠입하겠다’라고 선언까지 했으니, 눈앞에 있는 벨라가 자기가 따라 해야 할 롤모델인 셈이니까.

        

       문제는 벨라의 연기력이 어중이떠중이가 따라 하기에는 난도가 너무 높다는 걸까.

        

       …….

        

       그리고 나도, 아마 이런 분위기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표정 바니걸이면 그건 그거대로 인기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과연 바니걸 복장으로도 끝까지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치킨 스튜가 나왔다.

        

       가게 분위기 때문에 전혀 기대를 안 했었는데, 치킨 스튜는 정말로 맛있었다.

        

       아마 이 가게를 골랐던 것만큼은 연기가 아닌 진심이었을지 모르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이일 님, 후원 감사합니다!

    캐릭터는 보통 제가 보고 싶은 캐릭터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여러분께 이렇게 칭찬받을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독자 여러분께도 받아들여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특정한 캐릭터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제가 쓰는 글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아 기쁩니다. 칭찬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독자 여러분께서 읽고싶어질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패츌리 님, 후원 감사합니다!

    바니걸 일러스트는 사실 제가 보고 싶어서 뽑고 싶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습니다. 본편이 연재될 때 바로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을 들여 확실하게 완성하여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보고 싶어하시는 장면이 있다는 것, 그리고 특정한 캐릭터가 어떤 복장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은 제가 만들어낸 캐릭터가 독자 여러분께 먹혔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독자 여러분께서 실망하지 않도록 꾸준히 재미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동안 느낀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전해질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나니시 님, 후원 감사합니다!

    캐릭터의 특정한 대사나 특정한 장면을 기억해주신다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저의 글을 매일 읽어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저의 소설이 재미있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생겨서 너무 기쁩니다. 저도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어떤 장면이나 캐릭터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제가 쓴 작품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저의 작품의 특정한 대사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합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 감각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저 매일, 쓰기 싫은 글을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닌,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그저 열심히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시간이 지나도 여러분의 기억 속에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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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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