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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며칠 전.

     “만나서 반가워요. 홍련의 마술사, 스칼렛 크래프트, 불꽃의 대마법사. 그리고 이제는 용사를 이끌어나갈 현자라고 불러야 할 존재.”

     “다 알고 계시네요.”

     “조사를 했죠.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성녀 얀 디에레라고 합니다.”

     성녀 얀 디에레.

     나는 오드론 백작령의 영도 리그레트 성의 응접실에서 성녀 얀 디에레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그때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어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죠.”

     “역시나?”

     “성검의 용사와 그 동료. 설마 성검을 각성시켜주신 현자님이라고는, 500년 전에서 오신 분이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요.”

     그건 확실히 눈치챌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외 대부분의 요소는 확실하게 눈치챘다.

     용사 루키우스.

     그리고 마녀 벨.

     이에 대해 눈치를 챌 수 있었던 단서는 단연 ‘릴리에즈’.

     “하긴, 릴리에즈가 성검의 용사였으니 성검을 다른 방법으로 수납하고 다닐 수 있다는 것도 당신은 알고 있었을 테니까.”

     “네. 이상하게 루키우스님이 자꾸 반지를 만지작거리는데, 당신은 반지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상하다 싶었어요.”

     “음?”

     그게 왜 이상한 거지?

     “후후. 남녀가 함께 있는데 남자만 반지를 착용하고 있다? 둘 중 하나죠. 여자가 삐쳐서 반지를 안 끼고 있거나, 아니면 반지에 뭔가 여신교단 사람들에게 숨겨야 할 요소가 있거나. 마침 용사의 마을과 가까운 곳에 계셨으니, 유추하는 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호오.”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르다.

     루키우스와 내가 딱히 연인 사이라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으니, 당연히 남자만 반지를 끼고 있는 것에 이상한 생각이 들 터.

     ‘나라면 다른 생각이 들텐데.’

     

     부인이 있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꼬리치는 불륜녀.

     실제로 모험가 중에는 그런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았다.

     고향에 아내를 두고 파티를 꾸려 돈을 모으다가 같이 동고동락하는 파티원과 눈이 맞는 모험가들이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그런 방법으로 내가 직접 파탄 낸 모험가 파티가 있었지.’

     그 모험가 파티는 여자 쪽이 고향에 남편을 두고 있었지만.

     -더 이상 못 참겠어. 크르르….

     -안 돼! 고향에 있는 당신 남편을 생각하란 말이야!

     -남편보다 당신이 더 좋아진 걸 어떡해!!

     -미친 소리! 당신 남편한테 다 말하고 이 파티를 나가겠어! 꺼져!

     -그, 그만! 그렇게 되면 나는 양쪽으로 버림받는, 아아…!! 내가 무슨 짓을!!

     물론 내가 꼬신 게 아니고 여자가 그런 짓을 저지르려고 한 걸 이용해서 파티를 망가뜨렸지만, 나는 아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당시에는 상당히 많았다.

     ‘옛날에는 정말 다들 미쳐 날뛰었는데.’

     500년 전 사람이라서 그런지 나는 그런 게 먼저 생각나는데, 그걸 용사에 관한 걸로 연결하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성녀는 성녀다.

     

     “저희에 대한 조사는 그렇다 치고. 그러면 말이에요.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죠? 저희를 쫓아왔나요?”

     “아뇨. 행적이 묘연해서 솔직히 반쯤 포기했고, 용사의 마을 생존자- 드로니엘 오드론을 찾아서 왔어요.”

     우연이라는 건가.

     다소 충격적이긴 하지만, 우연이 겹치면 그건 운명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성녀 얀과 만날 운명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곳에 온 건 정말 우연의 일치였죠. 현자님은 왜 이곳에 온 거죠?”

     나를 떠보는 걸까.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주면 되겠지.

     “…이쪽은 마왕군 아세디아의 흔적을 쫓아온 거예요. 마왕군의 포털을 역추적해서.”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한 명 정도에게는 행선지를 알리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왜 안 알리고 떠나서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든 것이냐.

     그렇게 내게 눈으로 욕을 하고 있다.

     로즈마스나 드로니엘이 바라보는 시각과는 또 사뭇 달라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추적을 당하고 싶지 않았어요. 노르망스는 워낙 많은 사람이 저희를 찾으려고 해서, 조용히 움직이기를 바랐던 거고. 애초에 칭송받고 그러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음…. 그런 생각이시라면 옳은 선택이셨어요. 조용하게 움직이기를 바라신다. 이해해요. 그대로 거기 있었으면 여기로 오시지도 못했을 테고, 사람들도 구하지도 못했을 거니까.” 

     “예?”

     “노르망스, 지금 세 분에 대해서 축제를 벌여야 한다면서 ‘홍련화 축제’라는 걸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엣.

     “뭐라고요?”

     “노르망스를 구한 영웅인 불꽃의 용사 베어네스, 단번에 샌드웜을 가른 아서 루키우스, 그리고 전장을 날아다니며 샌드웜들을 폭파시키고, 마지막에 괴조를 향해 불꽃을 터뜨린 홍련의 마술사 벨.”

     “로즈마스는요?”

     “엘프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성녀 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하지만 그 정도 활약은 다른 이들도 충분히 해냈기에.”

     “아….”

     안타깝도다.

     ‘원래 용사파티라는 게 그렇다.’

     만약 우리의 파티가 나중에 훗날 이야기로 남는다면, 우리 파티원들은 상대적으로 활약이 덜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용사 때문에.

     노르망스에서는 베어네스가.

     오드론 백작령에서는 릴리에즈가.

     그렇다 보니 용사가 아닌 일반인인 로즈마스나 드로니엘은 상대적으로 주연인 용사들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 취급받기 마련.

     ‘실제로 그걸 이용해서 용사 파티를 망가뜨렸지.’

     어떤 용사 파티에서 힐러를 담당하고 있는 마법사가 있었는데, 평소에 되게 열심히 했지만 내가 그를 쓸모없다고 여론을 만들어 쫓아냈다.

     그 뒤로 그는 자기가 진정한 동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떠나버렸고, 용사 파티는 마왕과의 싸움에서 힐러가 없어서 몰살당했다.

     ‘진짜 인생의 승리자는 그놈이지.’

     자신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가서 약국을 차리고 거기서 만난 엘프 아가씨와 결혼한 뒤, 마왕군이 몰락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더라.

     신문에 실리면 그냥 중간 지면의 작은 광고칸에도 실리지 않을 존재감 없는 이들.

     그게 지금 용사가 아닌 자들의 위치이며 입장이었다.

     

     하지만 용사 파티에서도 조연이 될 수 없는 자가 있으니….

     ‘성녀가 조연으로 밀려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지.’

     성녀.

     성검의 용사에게 파트너가 있다면, 당연히 성녀가 되리라.

     용사 릴리에즈가 성녀 얀과 함께 다닌 것도 어찌 보면 용사 파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후우.”

     이전에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설마 오드론 백작령에서도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외형은 금발벽안의 미소녀.

     성녀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언컨대 이 여인을 꼽을 것이다.

     ‘근데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기도 하고?’

     키를 말하는 게 아니다.

     키가 아니라, 내가 말하고 싶은 곳은 성녀로서 가진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엘프인 로즈마스나 이 분야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드로니엘 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얀 또한 충분히 컸다.

     “씁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그, 지난번과 조금 달라진 것 같은…음….”

     아.

     나 지금 일단 외형이 여자니까 이렇게 돌려 말할 필요는 없나?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가슴이 좀 더 커진 것 같은데요.”

     “그때는 이너아머로 코르셋 비슷한 걸 착용하고 있었답니다. 높으신 분들은 제 몸에 대해 별로 안 좋아하셔서.”

     뭐?

     코르셋?

     그런 걸 왜?

     

     “왜요?”

     “성녀라는 이미지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런가…저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500년 전에는 성녀는 무조건 커야 한다는 게 정론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성녀는 작고 아담한 쪽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자연스러운 걸 억압하고 가두려고 하다니. 이상하네요. 코르셋이라니.”

     “아니에요. 그건 교황님의 특별지시이고, 저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어서 그걸 숨기고 다녔답니다.” 

     “예?”

     “여자의 무기는 드러내는 게 아니라 숨기고 있을 때 가장 빛나는 법이라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드러냈을 때 가장 아름다워지는 법이라고.”

     “……그게 무슨?”

     “코르셋을 풀고 몸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 여신님의 축복이 극에 달하는 순간, 그 순간을 위해 잠깐 모습을 감추라고 하셨어요. 물론 교황님 이외의 자들은 상스러우니까 감추라고 하기도 했지만….”

     교황이라는 자.

     “창월여신님의 가호를 전력으로 받기 위해 코르셋을 푸는 순간, 성녀로서도 여인으로서도 그 아름다움은 한층 배가 될 거라고.”

     아무래도 대화가 좀 통할 것 같은 자다.

     “저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죠.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알겠더라고요. 그 뒤로는 뭐….”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빙빙 돌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죠.”

     서로 탐색전은 끝이다.

     “…그냥 대화하고 있던 거 아니었나요?”

     “당신의 눈에서 목적이 보이니까요.” 

     “음. 그건 맞는데, 그냥 저는 현자님과 계속 이야기하는 게 좋은데.”

     성녀 얀은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한테서 릴리에즈를 빼앗아가셨잖아요. 릴리에즈가 현자님을 바라보는 눈에 아주 꿀이 떨어지던데요?”

     “그거야 당연하죠. 그녀에게 정령기를 각성시켜준 사람이니까.”

     “꼭 그것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좋아요. 현자님이 저에 대해 경계하는 것 같으니, 진심으로 말할게요.”

     드디어.

     

     돌고 돌아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를 파티에 넣어주세요.”

     “…뭐라고요?”

     “최대한 제 정체를 숨기고 모습을 감출게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볼 일이 없게 할 테니, 저도 파티로 데려가 주세요.”

     “……이유는?”

     객관적으로 말해서 성녀가 우리 파티에 들어올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유라.”

     때로는, 너무나도 황당한 사유가 개연성을 가질 때가 있다.

     “용사 아서 루키우스. …한 눈에 반했거든요.”

     “합격.”

     용사 하렘 파티에 성녀는 인정이지.

     루키우스의 허락을 구할 이유도 없고, 굳이 여기서 더 따지고 들 이유도 없다.

     “근데 뭐에 반한 거예요?”

     “얼굴이요.”

     “환영해요. 얀. 앞으로 잘 부탁해요.”

     속내는 어떻든.

     적어도 나는 그녀에게서 진심을 느꼈다.

     이 여자.

     소위.

     “혹시 그때, 동굴에서 루키우스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한 건가요?”

     “네.”

     아. 

     그래서 눈치를 챈 거구나.

     반한 남자가 함께 있는 여자를 상대로 스승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좋아요. 얀, 당신이 우리 파티의 성녀가 되어주세요. 그런데 그건 명심하세요. 루키우스를 노리는 건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후후후.”

     얀 디에레는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용사님이 하렘 만드는 게 뭐 나쁜 일인가요? 그건 여신께서도 인정하시는 교리인걸요.”

     “…….”

     “여신께 반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루키우스 님께 반한 거니까 현자님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후후후.”

     수상할 정도로 완벽한 동기를 가진 동료의 등장이었다.

     “…….”

     얀 디에레.

     얀…디에레.

     “…….설마.”

     얀 디에레는 500년 전 내가 알고 지냈던 성녀와 유독 닮아있었다.

     -흐, 흥! 이건 당신을 돕는 게 아니야! 당신이 억압하고 있는 인간들을 도와주기 위한 거라고!!

     아무래도.

     …츤 디에레의 핏줄인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별꽃라떼입니다.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하루 휴재를 했는데도 컨디션 회복이 잘 안 되네요.
    따로 휴재는 하지 않지만 컨디션 회복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어 조금 글 상태가 불량일 수도 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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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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