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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마차는 마탑 1층에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상업지구 ‘시스테인 파크’에 도착했다.

        유원지와 공연장,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한 거리로 각종 옥션이 열리는 경매장도 이곳에 있었다.

        경매에는 개인이 아니라 학파 단위밖에 참여할 수 없지만, 구경꾼들의 출입은 자유로웠다.

        성능 좋은 마법사를 영입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 소환학파 출신 마법사를 저택에 들이면 안 될까요? 아침에 강의실까지 가는 게 어려워서 빨리 이동하고 싶어요.”

        “그럼 못 써요 릴리아. 클로에 교수님 수업에서 과락을 맞은 건 네 잘못이니까.”

        “저 놈은 모험가 출신에 4위계 정령사라는데?”

        “연구실에서 굴리기엔 아까운 인재군. 탑 밖으로 나갈 때를 대비해 호위로 고용하는 건 어때?”

       

        대학원생은 어디까지나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모두가 을의 입장인 건 아니었다.

        여러 학파에서 모셔가려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나 유수한 가문의 자제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토비처럼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려 할 경우에는 울며 겨자먹기로 노예에 버금가는 불리한 계약을 맺어야 하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앞에 나선다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달려들 게 뻔했으니까.

       

        공식적으로는 입탑 5년차지만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 지 반년 만에 30층 돌파.

        대 마족전담기구 극채색의 단원이자 생활부에 단 넷밖에 없는 주요직(기숙사 사감)이라는 감투.

        마법제에서는 정보부의 에이스인 시엔과 용호상박의 혈투를 벌여 3위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 나 정도 되는 귀한 매물이 있을 턱이 없다.

        이런 인재를 다른 학파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모두가 혈안이 되겠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대학원생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대우가 좋다면 또 마음이 달라질 지 모르는 일이었다.

       

        “으음, 그러면 어머니 어머니. 미티어 학파 출신은 어때요? 저 뒷산에서 불꽃놀이 하는걸 보고 싶어요.”

        “세상에, 저자는 속옷을 훔친 도둑이잖아요! 게다가 남자라니, 절대 안 돼요!”

        “네? 하지만 제 눈에는 여자로 보이는데…….”

        “릴리아, 영안(令眼)에 비치는 걸 그대로 믿는 건 좋지 않아요. 이 어미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나요.”

       

        예컨대 저 철없는 꼬맹이의 저택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놀고 먹는다던지.

        신성학파 출신의 모녀는 경매장으로 향하는 철창들을 세심하게 하나씩 들여다 보는 중이었다.

        여자아이 쪽은 눈을 감고 있는데다 묘한 분위기가 감돌아 본능적으로 순혈 마법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정도라면 나 정도 되는 마법사가 머무르기에 부족함 없지.

        그녀들 입장에서도 정체를 숨긴 산태우기를 자신들의 저택 뒷산에 풀어놓는 것보다야 선량한 해주술사를 들이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설레이던 마음도 잠시.

        호송용 마차로 갈아타 경매장까지 이동을 시작하자, 내가 앉아있는 철창 주위가 유독 조용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대학원생 해주학파 출신이래…….”

        “해주학파라고? 그러면 제국에서 수배령이 내린 녀석들 중 하나란 소리 아냐.”

        “원래 경매에 나오면 안 되는 죄수였는데 B동 감독관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했다고 하더라고.”

        “세상에…… 마탑의 등불이 부서졌단 말이야?”

       

        소문이 와전되고 이상한 살이 붙어 어느새 나는 지옥에서 기어나온 악마가 되어 있었다.

        철창에 갇혀 있는 다른 대학원생들도 최대한 나와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바닥만 보며 벌벌 떨었다.

        때마침 신성학파의 모녀와 눈이, 아니 고개가 마주쳤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치 비 맞은 불쌍한 고양이처럼 철창을 붙잡았다.

        영안을 갖고 있으니 나의 순수한 내면을 알아줄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꺄아악! 어머니, 어머니이!”

        “괜찮니 릴리아!? 뭘 본 거니!”

        “땅 위에 존재할 리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끔찍한 환영을 봤어요! 주황색 심연불로 온몸을 불사르는 지배자, 끔찍한 어둠 속에서 기거하는 괴물들의 추앙을 받는 절대자! 아아, 저 자가 명계의 왕이 틀림 없어요!”

        “…….”

       

        텄군.

        나는 얼굴이 팔리기 전에 인식저해마법이 걸린 극채색 가면을 꺼내썼다.

        다행히 시스테인 파크에 도착한 후 대학원에서 빼앗겼던 장비들을 돌려받은 참이었다.

        메릴린의 마력이 묻어있던 창은 증거물로 간주되어 받지 못했지만, 113개의 부계정을 포함한 다른 건 모두 멀쩡했다.

        게다가 이럴 때 위안이 되는 한 자루의 검까지.

       

        “살살아, 역시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

        — 안도ㅐ요 싫ㅇㅓ요 ㅎㅏㅈㅣㅁㅏ세요

        “나도 반가워. 아무래도 우린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 봐.”

        “히익, 이젠 검이랑 대화까지……!”

        “쳐다보지 마! 저주받는다고……!”

       

        검신을 쓰다듬는 나를 성범죄자로 몰아가는 살살이와 그간의 해후를 풀자 옆에 있던 대학원생들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공포와 절규를 가득 실은 마차가 경매장의 뒷문으로 사라질 때까지, 광장에 모인 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입찰하지 않는 편이 해주학파 입장에서 나를 다시 사오기 편할 테니까.

        기껏 만들어놓은 라운지마저 폐쇄되어버린 마당에 돈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학파의 재정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악명을 유지하는 쪽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었다.

       

        “아아, 클락아! 여기 있었구나!”

        “스승님?”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는지 경매 시작 2시간 전, 창살 너머로 반가운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녜스가 나를 구하기 위해 직접 온 것이었다.

        프리나는 여전히 시련에 들어가 있느라 연락이 안 되고 루퍼트는 은신처를 바꾸느라 여념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스런 제자가 팔려나가기 직전에야 찾아오다니.

        다른 학파에서 계약 제안을 받은 대학원생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당신은 좋은 곳으로 가는군요, 거길 선택하면 언젠가 다시 저를 보게 되겠지만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놀고 있던 나로서는 섭섭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시스테인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미아인줄 알고 끌고 가는 자들 때문에 보호소에 여러 차례 붙잡혀 갔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이해합니다.”

        “너에게 이해받고 싶지 않다만…… 그보다 클락아! 이 어찌 된 것이냐! 내 너를 범죄자로 키운 적이 없거늘!”

        “아아, 스승님! 저는 억울합니다!”

       

        어딘가 익숙한 대화를 반복한 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힘을 되찾은 메릴린의 사악한 술수에 속아넘어간 내가 30층의 시련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잡혀들어간 것.

        감옥에서 노트마저 빼앗겨 지옥같은 나날을 보냈던 것.

        저주술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받았던 열악한 대우와 주변의 시선들까지.

       

        “훌쩍, 역시 그랬구나. 그 사특한 년을 내가 해치웠어야 했는데…….”

       

        모든 이야기를 들은 아녜스만큼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품에서 돈주머니를 내보였다.

       

        “걱정 말거라 내 너를 반드시 꺼내줄 것이다. 안 그래도 루퍼트를 닦달해 학파에 남아있던 자금을 모두 끌어왔다.”

        “믿고 있었습니다 스승님.”

        “으음, 다 합쳐서…… 27골드쯤 되는구나. 모자라다면 사감실의 얼음정수기를 팔면 되겠지.”

        “이것도 써주세요. 약소하지만 제가 모아온 돈입니다.”

       

        나는 조금 전 의미심장한 말을 들은 대학원생들이 목숨만 살려달라며 바친 400골드를 아녜스에게 건네었다.

        금액은 작지만 정성이 갸륵해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이 정도만 해도 평범한 대학원생의 구매자금으로는 충분했다.

        얼음 정수기는 팔지 않는 편이 좋겠지.

        그 뒤에는 내가 모험가 시절 모아놓은 돈과 각종 부산물들을 숨겨뒀으니까.

       

        방실방실한 표정으로 전보다 스무 배는 두둑해진 보따리를 챙긴 아녜스가 떠나고 나자, 이번에는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인식저해마법을 두른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었다.

        누구를 찾으러 온 건지 몰라 처음에는 가장 서열이 낮은 대학원생을 보냈는데 ‘마법 끝말잇기’에서 패배해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이어서 보낸 부하들도 차례로 쓰러지자 결국 옥좌에 있던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22시간만에 대학원생들의 왕으로 군림한 나는 살살이를 꺼내들고 철창 앞으로 나왔다.

       

        “결국 이 검을 꺼내게 만드는구나 필멸자여.”

        “……아주 잘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군, 클락.”

        “저를 아십니까? 아, 혹시 계약 제안인가요?”

       

        반색하는 나를 보고 리더로 보이는 마법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철창을 잡은 손에서 정전기가 찌릿하고 올라오자 저들을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를 학파에 초대하겠다는 건 아니다. 단지 거기서 꺼내라는 명을 받았을 뿐.”

        “메릴린 님이 보내신 분들이군요.”

        “지금까지 나온 최고 입찰가가 얼마지?”

        “한 1,800골드 쯤 됩니다. 어쩌면 더 오를 수도 있고요.”

        “뭐? 대학원생 하나에 무슨 그딴 가격이…….”

        “쉿, 조용히 해라.”

       

        대략 4배를 뻥튀기한 가격에도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칼레이도스의 문양을 보여주며 내게 말했다.

       

        “너 같은 녀석에게 더 입찰할 학파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넉넉하게 2천 골드까지는 준비해두지. 마차에서 내리면 엘리시아의 침묵을 풀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우리에 대한 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가지.”

       

        마법사들이 떠나자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나는 옥좌로 돌아가 살살이를 쓰다듬었다.

        메릴린이 날 잊지 않은 덕에 돈 한 푼 안 들이고 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만일을 대비해 가격을 올려놓기까지 했으니 이상한 곳으로 팔려갈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봤지? 내가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야.”

        — 정으ㅣ는 죽었ㅇㅓ

        “이러고 나니까 다른 녀석들을 시기했던 게 좀 미안해지는걸.”

        — 주ㄷ닥은 ㅇㅕㄱㅣ가 ㅈㅔ일 ㅇㅓ울ㄹㅕ

       

        그거 참 안타깝군.

        마탑의 공권력이 나를 잡아두는 건 앞으로 단 한 시간까지였다.

       

        그 뒤에는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마음껏 활개칠 것이다.

        헌데 남은 시간 동안 느긋하게 이름이 호출되는 걸 기다리던 와중.

        얘기치 못한 또 한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응? 시엔?”

        “아……! 여기 있었구나. 찾고 있었어 클락.”

       

        어두컴컴한 지하로 홀로 찾아온 시엔.

        보아하니 그녀 역시 경매에 참여하는 모양이었다.

        혹시 나를 입찰하러 온 건가?

        도움은 고맙지만 그녀에게 빚을 질 바에는 거대학파인 칼레이도스의 금화를 써버리는 편이 나았다.

       

        “나 때문에 왔구나? 걱정 안 해도 돼. 어차피 곧 나갈 거고 굳이 네 도움 안 받아도…….”

        “자, 잠깐 가까이 와 볼래?”

        “응?”

       

        어쩐지 오늘따라 많이 불려가네.

        하는 수 없이 옥좌에서 일어난 나는 앞으로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시엔의 눈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그녀는 철창 너머에 있던 내게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래놓고 엉덩이 뒤로 감추고 있던 반대쪽 손을 잽싸게 꺼내더니.

        긴 끈처럼 생긴 무언가를 꺼내 목에 한 바퀴 두르는 것이었다.

       

        “이 사이즈가 맞구나…….”

        “뭔데 이거?”

        “아, 아무것도 아냐! 크흠, 나 갈게! 이따 경매장에서 봐!”

        “아니, 올 필요 없다니까?”

       

        시엔은 줄자처럼 생긴 끈을 회수해 곧장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목에 남은 감각을 매만지며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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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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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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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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