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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

       

       

       침대에 놓인 베개를 꼭 끌어안고 이불을 덮었다.

       

       따뜻하다. 따뜻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포근한 이불, 고급스러운 재질의 베개.

       

       푹신푹신한 침대까지.

       

       이 세계로 넘어와서 좋은 점이 있다면 이런 사소한 물건들이다.

       

       평소 같았으면 넘보지도 못할 비싼 물건들.

       

       가격대가 높은 만큼 다른 제품들보다 고급스러운 침구들은 분명히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부족해.”

       

       

       따뜻하지만, 따뜻하지 않았다.

       

       분명히 모순적이라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따뜻하지만 따뜻하지 않다니,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하지 않아.

       

       어제까지만 해도 포근한 이불이었을 텐데.

       

       문득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려올까 봐 이불을 귀까지 덮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한들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도대체 왜 아무 말도 없는 거지?

       

       어째서? 왜?

       

       분명히 들었을 거잖아. 그렇잖아.

       

       듣지 못했을 거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 작가님이 당황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었으니까.

       

       분명 들었어. 확실해.

       

       그런데 어째서 아무런 말이 없는 거야.

       

       껴안고 있던 품 안의 베개를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여전히 따뜻하지 않았다.

       

       

       “···작가님. 주무시나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시간 이후로 작가님은 내게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부끄러워서일까? 아니면 내게 실망한 걸까?

       

       알 수 없었다.

       

       여태껏 작가님이 이런 적은 없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제발, 대답해줘요···.”

       

       

       작가님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도 사실 많았다.

       

       정말 그랬다면 나는 이 세상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겠지.

       

       그저 예전에 보았던 웹소설 주인공들처럼 세상을 즐기고 모험을 떠날 수 있었겠지.

       

       인형극 사이에 떨어진 인간의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다.

       

       하지만 정말로 작가님이 사라지자 오히려 불안해졌다.

       

       어째서 대답이 없지? 어째서 아무런 이야기가 없지? 나는 버림받은 걸까?

       

       두려워졌다.

       

       내가 인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인 작가님이 사라져버렸어.

       

       사람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사회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 인형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내게 몰래 설정을 바꾼다면 나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저 그것이 현실이라고 여길 뿐.

       

       작가님은 내게 지표였다. 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바뀌었는지 알려주는 지표.

       

       라이라가 바뀐 것. 이하율 수사관이 바뀐 것. 아멜리아의 과거가 살짝 바뀐 것.

       

       비밀의 방이 생겨난 것. 위버멘쉬의 인원수.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정보.

       

       모든 것이 작가님을 통해 알아낸 정보들이다.

       

       그렇다면 작가님이 없다면 난 뭘까.

       

       내가 인형이라고 여겼던 사람들과 다를 바 하나 없는 거 아닌가.

       

       ···하하. 모르겠네.

       

       품속의 베개를 다시 한번 끌어안았다.

       

       여전히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오늘 낮에 느꼈던 그 따스한 온기가 그리워졌다.

       

       도망치지 말걸.

       

       

       

       ***

       

       

       

       “이상하다···.”

       

       “뭐가?”

       

       “아니, 어젯밤에 아르테가 우리 집에서 보이질 않아서 말이야.”

       

       “···?”

       

       “평소에는 매일같이 오는데, 어제는 오질 않길래. 조금 걱정되네.”

       

       

       아멜리아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자기 집에 스토킹을 하지 않아서 걱정된다고 이야기하는 유시우가 문제일까.

       

       아니면 매일같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스토킹을 했던 탓에 하루 쉬었다고 유시우를 걱정하게 만든 아르테의 잘못일까.

       

       아멜리아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론 내렸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너 머리 괜찮은 거 맞지?”

       

       “···? 그럼. 다친 곳도 없는데 당연하지.”

       

       

       좋아, 이해하지 못했군.

       

       아멜리아는 더는 스토킹에 관해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둘이 좋다면 그걸로 괜찮은 거겠지.

       

       저번에 따끔하게 한번 이야기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멜리아는 후회했다.

       

       

       “역시 작가님에 대해서 말했던 게 성급했던 걸까.”

       

       “그거야 그렇지. 네 말에 따르자면 항상 감시하고 있을 테니까.”

       

       “···.”

       

       

       어제 들었던 유시우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과 그의 추측까지 모두 듣자 경악을 금치 못했었지.

       

       작가님. 아르테의 정신적인 문제점.

       

       인형. 사람. 그리고 지금까지 아르테가 보인 모습들.

       

       그 모든 게 사실이라면 당연히 성급했다.

       

       아니, 성급하다 못해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조금 더 신중해야 할 거야, 유시우. 네가 아르테를 도와주고 싶다면 말이야.”

       

       “···알고 있어.”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아르테가 간밤에 제거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

       

       

       작가님의 정체는 아르테를 제외하고 아무도 모른다.

       

       그 작가님은 아르테를 항상 감시 중이고.

       

       아르테가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정도라면 분명 목숨줄을 쥐고 있거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감시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 상황에서 그런 발언을 해버리다니.

       

       위험하잖아.

       

       

       “···뭐, 이미 말해버린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아르테는 아직이야?”

       

       “응. 아직 안 왔어.”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괜찮겠지. 십 분만 기다려 보자.”

       

       

       그로부터 삼십 분.

       

       아르테는 오지 않았다.

       

       

       “···야, 유시우. 아르테가 평소에 오는 시간에 비해 너무 늦지 않나?”

       

       

       유시우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길래 답이 없는 건가 싶어 유시우를 향해 돌아보았더니, 그가 수심에 찬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아까 내가 했던 말이 신경 쓰였던 걸까.

       

       누가 봐도 불안해 보였다.

       

       

       “야, 유시우!”

       

       “어? ···으응,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왜?”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

       

       “아르테가 어디 평범한 사람이니? 무슨 일이 있어서 늦는 거겠지.”

       

       “그, 그런가···.”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하여튼 손이 많이 가는 놈이라니까.

       

       아르테도 그렇고, 유시우도 그렇고.

       

       억지로 불안감을 지우며 밝게 웃어 보였다.

       

       그래야만 이 머저리가 안심할 것 같아서.

       

       다행히도 그는 작게나마 정신을 차린 듯 나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고마워, 아멜리아.”

       

       “다른 사람 걱정하기 전에 네 앞가림부터 잘하라고.”

       

       

       그나저나, 진짜 왜 늦는 거야?

       

       설마 내가 말한 것처럼 정말 그 작가님이라는 놈에게 뭔가 당한 건 아니겠지.

       

       유시우에게 불안해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당장 어제 그런 일이 일어났던 직후다.

       

       갑자기 아르테가 평소에 오던 시간보다 훨씬 늦었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화라도 해 볼까.

       

       아르테에게 연락해보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아, 아르테. 너 얼굴이 왜 그래···?”

       

       

       평소에 자주 듣던 존댓말.

       

       아르테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역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며 기뻐하던 것도 잠시.

       

       피곤함에 절어있는 그녀의 얼굴에 잔뜩 당황했다.

       

       마치 열흘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 같은 몰골.

       

       하루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너, 너···. 밤새웠어?”

       

       “후암···. 네, 네···. 잠깐···.”

       

       “몇 시에 잤는데?”

       

       “으음, 새벽···두 시?”

       

       “두 시?!”

       

       “아니, 세 시···. 네 시···. 다섯 시였던가···? 아니, 여덟 시?”

       

       

       말을 꺼낼 때마다 늘어나는 시간에 경악했다.

       

       안 잤잖아.

       

       아예 밤을 새우고 온 모양이었다.

       

       

       “자, 잠 안 잤어?!”

       

       “잠이 잘 안 와서요.”

       

       “···.”

       

       

       내가 아르테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며 불안감을 느꼈던가.

       

       그렇다면 아르테 본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제 밤을 새운 걸까.

       

       아멜리아는 그녀의 생각을 쉬이 상상할 수 없었다.

       

       

       “후아암···.”

       

       

       크게 하품하는 아르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화롭고 언제 나와 같은 하루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무언가 크게 변해버렸다.

       

       아르테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로.

       

       

       “아. 안녕하세요.”

       

       “···안녕, 아르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 아르테가 불안감에 휩싸였다는 죄책감 탓일까.

       

       쉬이 아르테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유시우를 아르테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지?

       

       

       “···아. 맞다.”

       

       

       유시우와 내가 의문을 표하던 것도 잠시.

       

       그 의문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아르테가 평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을 취했으니까.

       

       

       “아, 아르테?!”

       

       “으응···. 따뜻해···.”

       

       “오···.”

       

       “오는 무슨! 도와줘!”

       

       

       갑작스러운 사태였다.

       

       유시우를 향해 아르테가 안겨들었다.

       

       그는 직감으로 눈치챈 듯 피하려다가 만약 피하면 아르테가 다칠 거라고 생각한 건지 결국 품에 안아버렸다.

       

       

       “따듯하네요···.”

       

       “아르테? 갑자기 이게 무슨···. 아르테? 아르테?”

       

       “자고 있는데?”

       

       

       쌔액, 쌔액.

       

       고른 숨결을 내뱉으며 아르테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유시우가 당황하며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빠져나오려 할 때마다 눈을 찌푸리는 모습에 결국 포기하고 그녀를 내버려두었다.

       

       

       “···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것도 안 했어!”

       

       “수상한데···.”

       

       “나 억울하다니까!?”

       

       

       지금이 기회였다.

       

       유시우를 놀려먹을 기회.

       

       아르테가 깨어날 때까지는 그를 괴롭히며 기다리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어라? 왜 여기서 잠을···.”

       

       “오, 마침 잘 왔어. 도로시. 내 말 좀 들어봐···.”

       

       “어머어머어머···.”

       

       

       아르테는 밤을 새웠다고 했던가.

       

       최소한 네 시간은 자겠지.

       

       그렇다면 나를 걱정시킨 대가로 최대한 놀려먹어 주마, 유시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집착 ON

    지각해서 제송합니닷…

    아틀리에에 팬아트가 올라왔어요! 다들 한번씩 보고가주세요.

    Navel 님, 멋진 팬아트와 40코인 후원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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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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