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2

        

         

       영상 속의 엘라는 아주 어린 모습이었다.

         

       아기.

       그것도 간신히 걸음마를 뗀 아기였다.

         

       아기는 어떤 남자의 품에 안겨있었다.

         

       넝마나 다름없는 옷에 몇 개밖에 남지 않은 치아.

       그나마도 새까맣게 썩어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모습.

         

       슬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 데까지 간 마약 중독자의 행색이었다.

         

       [ 낄낄낄. 그래, 구해왔니? 어디서? ]

       [ 남아공! 됐지?! 빨리 돈 줘! 지금 약효가 떨어지고 있다고! 빨리! ]

       [ 알았다 알았어. 약쟁이 아니랄까 봐 보채기는. ]

         

       마약 중독자는 품에 안고 있는, 기절했는지 자고 있는지 모를 아기를 주술사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주술사는 아프리카에서 자주 볼법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는데, 온몸에 반짝이는 금붙이와 보석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주술사는 적선하듯 돈을 던져주었고, 마약 중독자는 희희낙락하며 돈을 들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필시 돈을 들고 약을 구하러 간 것이리라.

         

       [ 낄낄낄. 백인과 흑인의 혼혈? 제 나라에선 존재 자체가 범죄인 아기구나. ]

         

       주술사는 아기의 머리카락을 뽑아 맛을 보았다.

         

       [ 이능 감응 능력도 뛰어난 것 같지는 않고. 잠재력(Potential)이 별로네? ]

         

       그녀는 얼굴에 잔뜩 난 주름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표정을 바꿨다.

       

       주술사는 판결을 내렸다.

         

       [ 넌 제물이 될 운명인가보다. ]

         

       알비노의 신체는 기복과 관련해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재료였다.

       말단을 잘라서 액세서리로 만들어서 팔면 떼돈을 벌 수 있고, 통째로 박제한다면 유력 정치인과 연결될 수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눈알은 특별 처리를 해서 주물로 만든다면 착용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물건이 된다.

         

       알비노는 그 자체로 보물이었다.

         

       다만 제 몸뚱이가 가지는 가치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면 살려줄 의향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주술사가 안고 있는 아기는 살려줄만한 재능은 없어 보였다.

         

       [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으니 물건으로서의 가치라도 찾아야지? ]

         

       주술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기의 목을 조르려 했다.

         

       스걱!

         

       그런데 그때, 목을 조르려던 주술사의 손이 떨어졌다.

       손이 잘린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그랬다는 것처럼 피 한 방울 나지 않은 채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손목의 절단면은 잘린 지 오래되었다는 것처럼 뭉뚝해져 있었고, 잘린 채 떨어진 손목 역시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처럼 단면 부분이 뭉뚝하게 변해있었다.

         

       그 기묘한 모습에 주술사는 주름진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 위치크래프트? ]

       [ 그래. 너 같은 할망구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마녀의 힘이지. ]

       [ 허. 오만하기는. ]

         

       주술사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여자가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마녀라는 광고를 하듯 몸에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였다.

         

       [ 그래, 흰둥이 년아. 이 보잘것없는 노인네 집에는 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나? ]

       [ 애를 토막 내려고 하는데 그럼 내가 그냥 지나가야 할까? ]

         

       아그네스 A 라이히(Agnes A Reich).

         

       엘라의 스승이었다.

         

       아그네스는 빗자루를 휘둘러 방 전체를 깜깜하게 만들었다.

         

       [ 노망난 늙은이! 죽어! ]

         

       그 말과 함께 영상은 끊기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공/배급 : 뇌

       제작 : 해마

       감독 : 해마

       조감독 : 배외측전전두엽

       기획 : 해마

       편집 : 대뇌피질

       …

       아기 역 : 아마라(태명) / 모니파(태명)

       마녀 역 : 아그네스 A 라이히

       주술사 역 : 암마 야 트라오레

       …

       협찬 : 박진성

       …

       장소 협찬

       주술사의 거점 – 탄자니아

       호텔 – 러시아 연방

       침대 – 즈뵤즈다치카(звёздочка) 호텔 스위트룸 제2 침대

       …

         

         

        * * *

         

         

         

       “이게 뭔가요!”

         

       엘라는 중요한 부분에서 딱 끊겨버린 영화에 분개하며 소리쳤다.

         

       “꿈이란 게 다 그런 거예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려는 엘라를 제압했다.

         

       “엔딩 크레딧 봤죠?”

       “네? 네. 그런데요?”

       “제공/배급이 어떻게 되어있었나요?”

       “뇌…?”

       “그래요~ 뇌에요. 안 본 건 영상화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퀴즈! 뇌는 뇌인데, 누구 뇌일까요~? 이 언니의 뇌일까요, 동생의 뇌일까요?”

         

       그녀의 물음에 엘라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혹시, 저…?”

         

       그러자 여자는 꽃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틀렸어요! 정답은 둘 다랍니다!”

         

       그녀는 영상을 되감아 엔딩 크레딧의 글자를 가리켰다.

         

       “여기 아기 역 보이시나요?”

       “네에, 아마라…. 모니파….”

         

       엘라는 말하다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여자는 얼굴 양옆에 손을 가져다 대곤 활짝 펼치며 웃었다.

       귀여운 아기에게 ‘까꿍’이라며 장난을 치는 것처럼, 화사하게 말이다.

         

       “짜잔! 이 언니랑 동생이랍니다!”

       “네?!”

         

       그녀는 엘라를 꼭 껴안고 그녀의 가슴께에 다시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곤 오른쪽 가슴 부근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원래는 우리는 쌍둥이였는데. 뱃속에서 모종의 이유로 제가 동생에게 흡수되고 말았답니다.”

       “네? 흡, 흡수라니요?”

       “쌍생아 소실(Vanishing twin)이라고 해요! 종종 있는 일이죠!”

         

       엘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 언니는 운이 좋았답니다! 사라지지 않고 동생의 가슴에서 머물 수 있었거든요! 여기, 제가 찌르고 있는 여기에 말이에요~”

       “저, 저의. 저의 가슴?”

       “네에! 가슴인 것도 운이 좋았어요~ 다른 곳이었으면 종양이라면서 수술했을지도 모르지만, 가슴에 생기면 증상이 없어서 티가 잘 안 나거든요~? 게다가 동생이 너무 건강해서 병원에 갈 일이 없었던 것도 고마운 일이었어요! 늦었지만 이 언니가 지금이라도 감사를 표할게요~”

         

       여자는 배시시 웃었다.

         

       “가, 가슴. 종양…. 제 가슴에….”

       “네에. 머물기 편했답니다. 고마워용~”

         

       하지만 엘라는 감사를 표하건 말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갑작스레 받아들이기 힘든 정보가 쏟아지자, 도저히 맨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 아직도? 아직도 제, 제, 제. 제 가가가가, 가슴에? 있?!”

         

       여자는 안심하라는 듯 엘라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푹 묻은 뒤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 언니는 이제 독립을 했답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고마우신 분이…. 아, 설명하는 것보다는 사진을 보면 되겠네요!”

         

       여자는 소파 팔걸이에서 사진을 들어 엘라에게 보여주었다.

       몸을 뒤집은 엘라는 자신을 꼬옥 껴안은 여자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사진을 바라보았다.

         

       약간 커다란 크기의 사진은 흑백이었다.

       초음파로 임산부의 뱃속을 찍은 것 같은 사진.

         

       그 사진에는 태아로 보이는 것이 두 개 찍혀있었다.

         

       “우리가 찍혀있네요~ 이 언니랑 동생이 생전 처음 같이 찍은 가족사진이네요~”

         

       사진은 점차 변해갔다.

       허공에서 색을 끌어와 물들이듯 점차 색이 입혀지고, 흑백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부서지고 흩어지며 모습을 바꿨다. 그 모습이 개미 떼가 움직이며 모양을 만드는 것 같기도, 먼지가 모여서 형체를 이루는 것 같기도 했다.

         

       바뀐 사진의 모습은 엘라가 아기일 적의 모습.

       하지만 아기는 낡은 천에 감긴 채 보육원으로 추정되는 곳 앞에 버려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희희낙락하며 다가오는 노숙자가 찍혀있었다.

         

       “이건 납치당하기 전이네요~ 우리는 알비노라는 이유로 버림받았답니다!”

       “버림받았다…?”

       “네에~ 이런 돌연변이를 키울 수는 없다면서 버려졌네요! 와아~ 대단하신 부모님들이죠? 덕분에 이쁜 동생은 제물로 바쳐질 뻔하고, 저도 허무하게 사라질 뻔했네요!”

         

       여자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단하신 분들 낯짝, 꼭 한 번 보고 싶네요.”

         

       엘라는 품에 안겨있느라 여자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얼굴에는 미소 대신에 살의에 가까운 무언가가 떠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 사진이 또 변해요~ 이번에는 동생의 귀여운 모습이 찍혀있네요~”

         

       사진은 다시 바뀌었다.

         

       사진에는 세 명의 여성이 찍혀있었다.

       사립 초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엘라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그네스.

       그리고 억지로 웃음을 짓고 있는 오딜리아가 있었다.

         

       “이때부터 대마녀 씨는 동생을 싫어했네요~ 맨날 애교부리던 귀여운 딸 같은 제자의 관심이 동생에게 가서였을까요? 아니면 저와 동생이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던 걸까요?”

         

       여자는 엘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동생의 스승님이 대마녀 씨가 보이는 미움보다도 더 커다란 사랑을 주었지요. 덕분에 동생이 이렇게 착하고 예쁘게 컸으니, 너무 고마울 뿐이에요~”

         

       사진은 다시 바뀌었다.

         

       피에 젖기라도 한 듯 사진 전체가 새빨갛게 변하고, 사진 자체에서 진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사진에는 제단에 누워 있는 엘라와 그 앞에 서 있는 두 남자가 찍혀있었다.

       

       수염이 난 남자는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자기 손으로 보이는 것을 뜯어먹고 있었고, 잘생긴 남자는 그 끔찍한 장면을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헤어(herr) 박?”

       “네에~ 이 언니의 은인, 진성 박이에요!”

       “은인, 이라니요?”

       “그건 비밀!”

         

       여자는 그 말과 함께 사진을 집어던졌다.

         

       “잠시만요! 독립이라뇨? 은인이라뇨?!”

       “꿈에서 깨어난 다음 알려줄게요.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

         

       여자는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자아, 이제 이것만 보면 되겠네요. 이건 뭘까요?”

         

       그녀는 소파 팔걸이에 놓아두었던 책을 집어 들었다.

         

       『 인류 집단 무의식 네트워크(표면) 1회 접속권 』

         

       “어? 어! 이야아아아앗호!”

         

       여자는 흥분하면서 벌떡 일어나 제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했다.

         

       “동생! 동생! 이 언니가 오늘 좋은 구경시켜줄게요!”

       “네, 네? 좋은 구경? 네?”

       “언니의 위대함! 언니의 전능함! 이 언니의 힘을 똑똑히 보세요!”

         

       여자는 잔뜩 흥분한 듯 상기된 얼굴로 소리치며 책을 펼쳤다.

         

       스으으으으.

         

       책을 펼치자 무언가 봉인된 것이 풀리듯 책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며 방 절반 크기의 연못을 만들어냈다. 여자는 엘라의 손을 꽉 붙잡고 막무가내로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자, 잠깐만요! 잠깐! 이게 뭔데요! 이게 뭔데! 설명이라도 좀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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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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