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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마수가 우글거리는 숲에 로아크 남작을 속박해두고 우리는 곧장 공작령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라이아, 챙길 거 있으면 다 챙겨.”

       “언니 우리 어디 가?”

       “나중에 말해 줄 테니 지금은 말 들어.”

         

       라데아는 그리 말하고 짐을 챙겼다. 그래 봤자 옷부터 시작해 여러 물건들은 다 낡아서 버려야 하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유품이나 소중한 걸 제외하면 다 버려.”

       “네?”

       “생활에 필요한 건 다 우리가 제공할 거다.”

         

       내 말을 듣자 입술을 오므리고 씁쓸한 눈빛으로 짐을 놓는 라데아. 간단한 몇 가지의 물건만 챙겼다.

         

       “라이아, 짐 다 챙겼어?”

       “응.”

       “그래, 가자.”

         

       처음엔 보따리에 이것저것 들어있었는데 지금은 챙긴 게 없는 수준으로 텅 비어있다.

         

       “잊은 거 없이 다 챙겼나?”

         

       내 물음에 라데아는 펜던트와 낡은 손목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네. 없어요.”

         

       저게 유품인 듯하다.

         

       “그럼 가지.”

         

       거의 빈털터리와 같이 나온 라데아, 라이아 자매. 나는 그녀들을 데리고 데카르트 공작가의 마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라데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차부터 화려하네요.”

       “그렇긴 하지.”

         

       문을 열자 라이아가 서둘러 들어갔다.

         

       “언니! 마차 진짜 푹신해! 상단 마차랑 급이 달라!”

       “아무리 신나고 신기해도 예의는 지켜야지.”

         

       그리 말하곤 라데아도 마차에 올라가 앉았다. 입꼬리가 씰룩이는 걸 보니 의자가 마음에 든 모양.

         

       “아무튼, 이제 출발하지.”

         

       나도 마차에 올라타고, 마부에게 출발 신호까지 보냈다. 덜컹! 바퀴가 굴러간다.

         

       “여기서 공작령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사흘 이상은 걸릴 거다.”

       “꽤 오래 걸리네요. 중간에 쉬나요?”

       “그래. 마부도 쉬어야지.”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라데아는 질문 공세를 날렸다.

         

       “그런데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뭐예요?”

       “우리 상단 이름.”

       “…상단 이름이 왜 그래요?”

         

       얼굴을 찡그린 채 나를 응시하는 라데아. 아니,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어때서? 다들 이런 반응이네.

         

       “뭐, 됐어요. 제가 상단 이름에 관여할 자격은 없죠.”

         

       라이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프란체 코퍼레이션 멋있잖아!”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처음으로 칭찬을 받아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가버렸다.

         

       “네!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크흑, 라이아…!”

         

       앞으로 나랑 가장 친한 사람은 라이아 너란다.

         

       “라이아?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이동하려면 오래 걸릴 거 같으니까 먼저 자렴. 무릎 베개 해줄 테니까.”

         

       라데아는 무릎을 토닥이며 라이아를 자신의 무릎 위에 눕혔다. 그러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재우기까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세요. 검 실력을 보고 오셨다고 했으니 보통 일은 아닌 거죠?”

         

       그래서 여동생을 재운 건가. 쓸데없는 걱정은 시키지 않는 게 좋긴 하지.

         

       “정확히는 데카르트 공녀님의 호위다.”

       “호위요?”

       “그래.”

       “공작가의 기사분들은 뭐하시고요?”

         

       걔들은 못 미덥잖아. 무엇보다 프란체가 싫어하기도 하고.

         

       “공녀님의 호위는 소수 정예로 진행된다. 기사들 여럿을 데리고 다니는 건 취향이 아니신 분이셔서.”

         

       라데아는 “그런 경우가 있구나.”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외부에 공녀님을 노리는 자들이 많아.”

       “데카르트 공녀님을 노린다고요? 왜요?”

       “그건 아쉽게도 알아보는 도중이다.”

         

       배후에 소미레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를 대신해 움직이는 녀석을 알아야 한다. 그놈이 최고 변수가 될 테니까.

         

       ‘일부러 흔적을 남겼다고 했지.’

         

       마법을 사용하면서 어쌔신을 상대로 들키지 않는다. 절대로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그래서 인재를 찾고 있었군요.”

       “그래. 저번 일로 손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거든.”

         

       나와 케일, 카자르, 셀다스가 가세했는데도 자칫하면 프란체가 죽을 뻔했다.

         

       아무리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변수가 있었다곤 하지만, 케일과 셀다스까지 있었는데 그런 결과가 나온 거면…….

         

       ‘게다가 반년 뒤에는 내가 없어.’

         

       케일로는 부족하다. 나의 빈자리를 더 채워야만 한다.

         

       “호위는 저랑 당신만 있나요?”

       “아니, 한 명 더 있어.”

       “그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용병왕, 백귀라고 불리던 사람.”

         

       라데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병왕? 백귀? 이명은 멋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네요.”

         

       오, 케일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 건가. 하긴, 북부의 끝에 있는 로아크 남작령이니 모를 만도 하지.

         

       “네 선배가 될 사람이니 잘 기억해둬.”

       “선배…? 네.”

         

       라데아는 “그런데 있잖아요.”하고 물었다.

         

       “당신이랑 그 백귀? 그 사람이 있는데 저까지 필요해요?”

         

       좋은 질문이다. 사실 이것 때문에 너를 데리러 온 거지.

         

       “나는 반년 뒤에 떠날 거야.”

       “네?”

       “반년 뒤에 공작저를 떠난다고.”

         

       마탑의 완성과 마석 개발이 진행되는 동시에 나는 떠난다.

         

       사업의 토대는 이미 잡아뒀고 프란체의 교육 또한 끝났다. 옆에서 보조해줄 카자르와 엘반 자작도 있고 원흉을 처리해줄 케일도 있다.

         

       정보는 셀다스가 해결해줄 것이고 프란체의 호위는 라데아가 진행하겠지.

         

       “이유가 있나요?”

       “목숨과 직결된 문제라.”

       “…사형 집행일이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아쉽게도 틀렸어.”

       “그럼 뭔데요?”

       “말해봤자 모를 테니 그냥 그런 거로 알고 있어.”

         

       라데아는 “뭐야, 궁금하게.”하곤 고개를 돌렸다.

         

       “아, 참고로 이건 공녀님에게 절대 말하면 안 된다.”

       “비밀이었어요? 이상하네. 공녀님을 섬기는 사람이…….”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되어있으니까. 공녀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어.”

         

       카자르는 이미 알고 있고, 케일은 내가 말해뒀다. 셀다스와 엘반 자작은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떠나기 전에 한 곳에 모아서 말할 테니 상관없겠지.

         

       “참고로 너를 데려가는 이유에 호위도 포함이지만, 명확하게 말하자면 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야.”

         

       검제 라데아. 재능의 꽃이 개화하면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강자가 될 거다. 케일과 함께라면 내 빈자리를 충분히 채워줄 수 있다.

         

       “진 바렌베르크의 빈자리라니, 조금 부담되네요.”

         

       라데아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걱정 마. 다 알고 너를 찾아온 거니까.”

         

       나는 피식 웃곤 창밖을 바라봤다.

         

       6개월.

         

       이제 그녀와 헤어지기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이다.

         

         

       * * *

         

         

       나흘 후. 라데아, 라이아 자매를 데리고 데카르트 공작령에 도착했다.

         

       자매를 잠시 작업장에 맡기고 공작저로 갔는데 프란체는 자리를 비웠다고 한다.

         

       ‘카자르의 집에 있겠군.’

         

       어차피 프란체에게 소개해 줘야 하기도 했고, 숙소도 정해야 했기에 라데아 자매를 데리고 카자르의 집으로 향했다.

         

       “카자르, 나다.”

         

       문을 두드리자마자 열리는 걸 보니 건강이 되돌아온 모양.

         

       안으로 들어서니 카자르의 현미경 같은 안경을 쓴 프란체와 헬레나만 보였다.

         

       “꽤 오래 걸렸구나.”

       “예. 꽤 먼 곳을 다녀온지라.”

         

       프란체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주변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주변에 그 여자들은 누구니…?”

       “아, 지금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라데아와 라이아를 프란체에게 소개했다. 앞으로 밀착 호위를 맡아줄 라데아와 그녀의 동생 라이아.

         

       “그렇구나. 나는 또 네가 이상한 짓을 한 줄 알았잖니.”

         

       이상한 짓이 뭔데?

         

       “그런데…….”

         

       프란체는 라데아를 바라보며 심기 불편한 얼굴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에 바짝 긴장된 라데아가 내게 조용히 물었다.

         

       “제가 공녀님께 잘못한 거라도 있을까요?”

       “아니, 없는데. 애초에 방금 봤잖아.”

       “저를 계속 바라보시는데…….”

         

       그러게. 왜 저러지?

         

       “진, 일단 앞에 앉으렴. 아, 그리고 너희들은 위층에 짐을 정리하고 오렴. 여기 집이 워낙 넓고 방이 많으니 원하는 곳을 고르면 돼.”

         

       라데아와 라이아는 “네, 알겠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인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

         

       “진? 빨리 앉으렴.”

       “아, 예…….”

         

       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새로 호위를 데려온 건 좋아. 근데…….”

         

       프란체는 후우,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데려온 아이들이 참 곱구나. 드레스만 입혀 놓으면 파티장의 주역이 되겠어.”

         

       음?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이러면 또 교육에 들어가야겠구나.”

       “…무슨 교육 말씀이십니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헬레나가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하더니 바짝 긴장했다.

         

       “…?”

         

       쟤는 갑자기 왜 저래?

         

       “그건 알 필요 없고. 그간 있었던 일이나 자세히 보고해주렴.”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로아크 남작령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압축해서 핵심만 보고했다.

         

       “로아크 남작을 죽인 것 말고는 별일 없었네.”

         

       남작을 죽인 게 큰일 아닌가…?

         

       “뭐, 그래도 직접 죽인 게 아니니 괜찮을 거야. 마수의 먹이로 줬다며?”

       “맞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레야카 국가에서 마약밀수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프란체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그거라면 더욱 문제없겠네.”

         

       조용히 마법서를 읽던 프란체는 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하라를 다녀온다고 했지. 성녀와 황태자 결혼식에 늦지 않을 수 있겠니?”

       “예.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만에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말을 타고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면 사하라를 다녀오는데 왕복 2주일.

         

       “해결하고 오는 데 보름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래, 조심하고 늦지 않게 오렴.”

       “알고 있습니다.”

         

       프란체는 나를 바라보더니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요즘 따라 시선을 잘 안 마주치네. 숨기는 거라도 있니?”

         

       들켰군. 너무 티났나.

         

       “아닙니다. 공녀님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뭐야, 갑자기 사탕발림 말이나 하고? 나한테 작업 치는 거니?”

         

       아니, 그냥 피식 웃고 넘길 줄 알았는데 저런 반응이 나올 줄이야. 당혹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양손을 휘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런…….”

       “그래? 아쉽네.”

         

       아쉽다고?

         

       이 공녀님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운을 차려서 다행이네.’

         

       전까지만 해도 풀이 죽어서 기운이 없었는데 많이 회복했다. 주관이 없어진 거 같지도 않고.

         

       ‘원래 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거야.’

         

       다음부터 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그래. 힘든 일 하고 왔으니 좀 쉬렴. 헬레나? 진에게도 벌꿀차를 따라주렴.”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 벌꿀주를 따라주었다.

         

       “아, 헬레나. 그러고 보니…….”

       “히이익…!”

       “…?”

         

       소스라치게 놀라는 헬레나. 아니, 이러면 상처받는데. 정면을 바라보니 프란체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둘이 뭔가 있었나 본데?’

         

       붙잡고 물어보려 해도 도망치니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볼 수도 없고 참.

         

       “지금은 그냥 편히 쉬렴. 사흘 뒤에는 다시 공작저로 돌아가 사업을 진행해야 하니까.”

         

       얼떨떨했지만, 나는 “예.”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짪은 대화가 끝나자 현미경 같은 안경을 쓰고 마법서에 몰두하는 프란체. 옆에서 보니 룬어로 되어있는 책이었다.

         

       “공녀님, 그 마법서는?”

       “아, 이거 카자르의 책장에 있던 건데. 룬어를 공부할 겸 읽어보고 있단다.”

         

       음?

         

       카자르의 책장에 있던 거라면…….

         

       ‘설마?’

         

       내가 가져온 고대 마법서인가?

         

       “공녀님, 그거 어디까지 해독하셨습니까?”

       “응? 아직 초반부야.”

       “그만두죠. 위험한 책입니다.”

       “뭐? 딱히 위험한 책은 아닌 거 같은데.”

         

       아니, 내가 위험한 책이라고.

         

       카자르가 거기에 영혼 결속 마법이 있다고 했단 말이야.

         

       ‘어떻게든 저 책을 뺏어야 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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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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