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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아쿠아르의 시민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에스티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다.

       사건의 전말을 아는 이들은 처음에는 그 원한에 저항했지만, 이내 세월의 흐름 앞에 무너졌다.

       ​

       십 년, 오십 년, 백 년…….

       ​

       애정이 증오로, 호감이 혐오로 변질되기 충분한 시간.

       그들의 원한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에스티의 영혼에 주박을 새겼고, 그들의 원념은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는 ‘목소리’가 되었다.

       ​

       [감히 딸의 이름을 담은 것은 용서해주겠다. 돌아가라.]

       ​

       국왕조차 이렇게 강경할진데, 다른 망령들은 어떠할까.

       비록 과반이라 할지라도 물경 수만에 육박하는 망령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

       “죄송하지만, 저는 여기 허락을 받으러 나온 게 아닙니다.”

       ​

       올리비아를 중심으로 하얀 빛의 파도가 일었다.

       뇌전을 변형한 것이었다.

       ​

       “당신들에게 통보하기 위해 나온거지요.”

       ​

       츠츠츠츠츳!

       ​

       왕족들이 흉악한 살기를 뿜어냈지만, 올리비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들은 강해 보이지만, 실질적인 전투력은 크라우첼만도 못하다. 국왕이 나선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올리비아는 국왕이 나서지 않을거라고 확신했다.

       ​

       [……딸에게 빚이라도 졌는가?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그렇게까지 하려는거지?]

       “빚을 진 게 아니라, 빚을 지우려고 합니다.”

       [빚을 지운다?]

       “비슷한 처지에 동질감을 느낀 탓이기도 하지요.”

       [부족하다.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해. 빚을 지우기 위해 목숨을 내던질 자는 없으며, 동질감 때문에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 또한 없다.]

       ​

       국왕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목소리였다.

       ​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내던질 생각도 없고요.”

       [어린 마법사여. 세상에는 부딪히기 전에 알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다.]

       “제가 그 고정관념을 처음으로 부숴드리겠군요. 영광입니다.”

       ​

       솔직히 성공할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아쿠아르의 망령들을 설득하려 들었던 적은, 수많은 회차 중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지분]이라는 말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머뭇거리는 순간, 기세는 저쪽으로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

       ⌜전하께서 이미 늦었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늦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버텨온 사람도 보았습니다. 헌데 일국의 왕족이라는 분들께서는 천 년은 커녕 150년으로 늦었다고 찡찡대시는군요.”

       ​

       그건 올리비아 자신의 이야기였다.

       ​

       ⌜무엄하다!⌟

       ⌜이제는 아무 말이나 막 내뱉는구나!⌟

       ⌜아바마마. 제게 저 방자한 자의 수급을 칠 기회를 주소서!⌟

       ​

       국왕은 여전히 침묵했다. 다음 순간, 검은 형체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

       [……거짓을 말하는 자의 눈이 아니로구나.]

         

       ​⌜아바마마?​⌟

       ​⌜전하, 저 ​자는……⌟

         

       [조용.]

       ​

       국왕에게 관심법 따위는 없었다.

       그에게 올리비아의 성공 여부는 딱히 중요치 않았다. 그는 그저,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 주어진 첫 번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네가 말한 그 자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오랜 세월을 버텼는가?]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버텼습니다.”

       [무엇으로부터?]

       “그것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씀드려도 믿지 못하실겁니다.“

         

       사실, 올리비아도 고작 이것으로 국왕을 설득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외로 분류되는 이들에게 함부로 마신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대신 그가 솔깃해할 만한 제안을 가져왔다. 그건…….

       ​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척 꺼내는 사람도 있지.]

       ​

       멈칫.

         

       [보통 그런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뭔지 아는가?]

       “……그게 뭡니까?”

       [남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호소하듯 말한다는 것이지.]

         

       검은 형체가 눈웃음을 짓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

       [시간은 얼마나 필요한가. 마법사여.]

       ​

       그는 더는 올리비아를 어린 마법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한 때 패왕이라고 불렸던 망령은, 죽고 나서도 그 눈썰미를 잃지 않은 모양이었다.

       ​

       올리비아는 조용히 알림창을 확인했다.

       ​

       [남은 시간 : 80시간 00분]

       ​

       “나흘 안에 마무리하겠습니다.”

       [……나흘?]

       “짧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제게 주어진 시간이 그 뿐입니다.”

       ​

       올리비아는 솔직히 말했다.

       단서#4에서 주어진 시간을 한 번에 당겨 쓴 탓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회귀자들에게 시간을 하루라도 더 줬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한(時限)……인가.​⌟

       ​⌜확실히, 뒤가 없는 자라면 작금의 무모함도 이해가 되는군.​⌟

       ​⌜그 용기만큼은 실로 타인의 귀감이로다.​⌟

       ​

       무언가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지만, 굳이 정정해줄 필요는 없었다.

       ​

       [국왕의 이름으로 약속하겠다. 나흘 동안, 아쿠아르의 그 어떤 망령도 너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부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일행이 한 명 있습니다.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혹시 그 일행이 성녀인가?]

       “예.”

       ​

       순간 공동이 소란스러워졌다.

       일부는 경악했으며, 일부는 탄성을 내질렀고, 일부는 감탄했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

       성녀는 태평성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난세에만 등장한다. 그리고 난세의 기준은, 보통 마왕의 강림이었다.

       ​

       [……자네는 용사인가?]

       “예?”

       [아니, 아니다. 방금 말은 잊도록 하라.]

       ​

       답지 않게 당황한 국왕의 모습에, 올리비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용사는 왜 나온단 말인가?

       애초에 락테아에 그딴 직업은 없는데 말이다.

       ​

       ‘내가 모르는 역사도 있었나?’

       ​

       올리비아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국왕이 말했다.

       ​

       [성녀의 출입을 나흘간 허락하겠다. 또한 일행의 호위로 기사단장 크라우첼을 붙여주겠노라.]

       ​

       그렇게 말하는 검은 형체에서는, 묘한 열망이 느껴졌다.

       ​

       끼익, 하며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망령은 크라우첼이었다.

       ​

       [크라우첼, 이 자를 지상으로 안내하라.]

       ​

       크라우첼이 부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족들의 기운이 허공으로 흩어지자, 크라우첼이 자리에 일어나 말했다.

       ​

       [따라오도록.]

       ​

       ​

       *****

       ​

       ​

       “음……도대체 언제 오시는 거지?”

         

       리브가는 애먼 소라고둥을 만지작거리며 수평선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탁 트인 시야. 하지만 정작 에스티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뭐 하니?”

         

       리브가가 뒤를 돌아보자, 일렁이는 빛 사이에서 올리비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언니? 여긴 어떻게……?”

       ​“들었어. 여기 있을 거라고 하더라.”

         

       올리비아의 시선은 소라고둥에 머물러 있었다.

         

       “그거 혹시 파도잡이가 줬니?”

       “아……이게 뭔지 아세요?”

       “알지. 수신용 소라고둥이잖아.”

         

       현대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무너진 왕국 아쿠아르에서만 사용했던 유물.

       

       올리비아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 그 분을 도와줄 생각이니?”

       “저는…….”

         

       ‘……언니를 도와주고 싶은데.’

       

       리브가는 몇 번이고 올리비아를 향해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이내 슬픈 눈을 한 채 말했다.

         

       “……네. 맞아요.”

         

       아직은 올리비아는커녕 에스티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이럴 때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어줍잖은 동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리브가는 잘 알았다.

         

       그리고 그런 리브가의 심정을, 올리비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성정의 사람인지, ‘아스모데우스’가 한 말이 그녀의 심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그리고 그녀가 왜 에스티를 도우려 하는지까지 전부.

         

       올리비아는 말없이 리브가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리브가는 항상 그랬듯이, 올리비아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언니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이요?”

       “응. 아주 어려운 부탁.”

         

       리브가가 돌아봤다.

         

       “네, 말씀하세요.”

        “사람 한 명을 도와줘야 해. 그런데 그 사람을 도와주려면, 반드시 네 도움이 필요하단다.”

       “그 분이 누군데요?”

       “아주 불쌍한 사람이야. 아주 옛날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고, 속죄를 위해 수백 년동안 바다 위를 떠돌고 있지.”

         

       그 말에, 리브가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언니.”

        “네가 그 분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해서 이러는 건 아니야. 아주 예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거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울컥하고 치솟았다.

       

       ‘……얼마나 예전부터요?’

         

       리브가는 그 물음을 마음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속내를 감춘 채 최대한 밝은 얼굴로 말했다.

         

       “도와드릴게요.”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바로 그분에게 가실건가요?”

         

       리브가의 말에 올리비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 그 전에 먼저 가야할 곳이 있어.”

       

       올리비아는 그 말과 함께, 리브가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츠츠츠츠츳!

         

       둘의 육신이 빛살 속으로 사라졌다.

         

       [스킬, ‘텔레포트’를 사용합니다.]

         

       “……여긴?”

         

       리브가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은 온통 불길한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음……확실히 성녀가 맞군.]

         

       안개 너머에서, 크라우첼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구 안쪽에서 청록색 안광이 번쩍거리는 망령 기사의 모습에 리브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막대한 기세를 느꼈는지, 리브가는 반걸음 물러섰다.

         

       [……상황 설명도 안해주고 데려왔나?]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습니다.”

       [으음…….]

         

       리브가가 경악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망령과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올리비아는 리브가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에스티가 과거에 저지른 죄업부터, 그녀가 해줘야 할 일이 무엇인지까지.

         

       “가라앉은 왕국……이군요.”

         

       놀랍게도 리브가는 빠르게 상황을 납득했다.

         

       “언니는 저분들을 성불시키기 위해 절 데려오신거군요.”

       “맞아.”

       “빨라도 반 년은 걸리겠네요.”

         

       고된 여정일텐데도, 리브가는 마냥 웃었다.

       오랫동안 올리비아를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그때, 크라우첼이 말했다.

         

       [나흘이다.]

       “……네”

       [너희가 아쿠아르에 출입할 수 있는 기간은 나흘이 전부다.]

         

       리브가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하, 하지만 그 많은 분들을 나흘만에 성불하는 건 불가능해요!”

       [나도 안다.]

         

       크라우첼의 안광이 올리비아를 정확히 직시했다.

         

       [우리도 시간을 더 주고 싶었지만, 저 자가 거절했다.]

       “어, 언니! 어째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크라우첼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올리비아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세웠기 때문이다.

         

       “크라우첼.”

       [……잡설이 길었군.]

         

       크라우첼의 검이 다시 한 번 대양을 갈랐다. 검은 안개를 지워버릴 정도로 강력한 검격이었지만, 리브가의 시선은 그쪽을 향해 있지 않았다.

         

       ‘언니.’

         

       올리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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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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