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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묻고 말았다.

        

       물론 하늘이는 내가 그렇게 존댓말을 해야 하는 상대는 아니었다. 내가 무슨 중세 로맨스 판타지의 예의 바른 공녀도 아니고, 현대 배경 미연시의 십 대일 뿐이니까. 고등학생이 같은 고등학생한테 존댓말을 쓰는 경우는 별로 친하지 않은 선후배 관계 정도뿐 아닌가. 그 선후배조차도 친해지면 그냥 말 놓고 지내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 내 머릿속 일부가 계속해서 현 상황에 대해 도피를 시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옥상에는 하늘이와 나 뿐이었다. 소희는 아마 여전히 옥상 입구에 쪼그려 앉아있으리라. 지금 상황에 대해서 끊임없이 투덜거리면서.

        

       그런 소희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지금 소희를 그곳에 놓고 온 것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가, 하면.

        

       *

        

       1교시 수업 와중에 갑자기 벌떡 일어난 하늘이가 그대로 내 쪽으로 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왜?”

        

       그렇게 되묻는 나에게 하늘이는,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하고 물어왔다.

        

       “……여기서 나누면 안 되는 이야기야?”

        

       하늘이가 먼저 일어나 나에게 말을 건 그 상황에 조금 당황해 그렇게 물어보자, 하늘이는 굳이 주변을 돌아보거나 잠깐 생각하거나 하지도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단둘이서 해야 할 이야기야.”

        

       “어…….”

        

       나는 수업 중인 선생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이쪽을 신경 쓰듯 쳐다보고 있던 선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어제 소희가 폭탄선언을 한 이후로는 계속 이런 식이다.

        

       나는 양혜인이 가져다 먹인 뇌물이 어느 선생한테까지 돌아갔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 액수를 보면 분명 한두 명만 나누어 가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저 젊은 선생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

        

       우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랬지만, 그래도 선생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수업 시간인데도 내키는 대로 교실을 나갔다 들어왔다 했고, 그래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아마 학교를 빠지더라도 멀쩡히 출석 체크가 되겠지.

        

       그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감정이 바뀌었다.

        

       나를 볼 때, 그리고 내 ‘측근’들을 볼 때마다, 선생들은 묘하게 공포에 질린 눈을 하곤 했다.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더 이상 나를 어떻게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무서웠겠지.

        

       그리고, 소희가 이 학교로 전학 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소희를 건드릴 수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선생들의 착각이긴 했다. 내 개인 메이드가 손쉽게 십수억 원을 끌어다 쓸 수 있는데, 지금 자신들에게 대놓고 반항하고 있는 나는 과연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지금까지는 화도 낼 줄 모르는 순한 양이었지만, 고등학교 입학한 이후부터는 뭔가 확연하게 달라졌으니까.

        

       수는 적긴 하지만, 학교 내에서 나의 세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또, 나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교사들에게는 무작정 무시하기만 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입학식이 있었던 후 고작 2주 만에 생긴 일이다.

        

       지금도 아마 머리를 엄청나게 굴리고 있을 거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힘이 강할 수 있지만, 너무 멀리 있는 회장. 그리고 매일같이 얼굴을 보게 되는 나.

        

       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 고민 중이겠지.

        

       물론 나는 저 선생이라는 인간들을 받아줄 생각이 없기는 하다만.

        

       아무튼, 나와 하늘이가 대화하는 내내, 선생은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쩌면, 하늘이도 세트로 묶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실에서 나가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선생들이 보이는 것은 태도와 감정뿐이었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뭔가 제안한 적은 없었으니까.

        

       이대로 교실에서 나가버리면 하늘이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할 거라는 것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는지, 하늘이는 바로 선생 쪽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어? 어어.”

        

       자신을 부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하늘이의 말에 선생은 화들짝 놀라서 분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분필은 바닥에 부딪히는 것과 동시에 박살 나고 말았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선생은 몇 초 정도 눈을 굴리다가,

        

       “그, 그래. 너무 늦게 오지는 말고…….”

        

       그렇게 대답하며 말끝을 흐렸다.

        

       “…….”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 당당해서 나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하늘이를 올려다보았다.

        

       “같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하늘이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

        

       일단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자리의 소희도 당당하게 나를 따라 일어났다. 사실 그냥 옆자리라고 부르기에는 뭣한 것이, 소희의 자리는 책상과 책상 사이, 원래는 비어있어야 할 곳에 있었으니까.

        

       그렇다. 대놓고 뇌물 심어서 들어온 입장이니, 소희야말로 진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메이드가 이 학교에서 받는 취급이 이 정도의 위상이니, 나에 대해서 함부로 못 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과는 ‘무시’로 같았지만, 그 과정에 두려움이 끼게 되었다.

        

       그것도 회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나에 대한 두려움.

        

       그게 무조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전보다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 두려움을 잘 이용하기만 한다면, 예사라는 더 이상 그저 불행의 아이콘으로만 남지는 않을 테니까.

        

       “가자.”

        

       내 말에, 하늘이와 소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행동을 저지할 사람은 이제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저지한 적도 없기는 하지만.

        

       *

        

       “소희야.”

        

       “응?”

        

       옥상 문 앞까지 와서, 하늘이가 말했다.

        

       “우리 단둘이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잠시 기다려 줄 수는 없을까?”

        

       하늘이가 그런 말을 하자, 소희의 미간이 살짝 모였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늘이를 바라보는 소희의 표정은 한없이 무표정했지만, 나는 왠지 소희가 하늘이의 그 말을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희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그 이야기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야기인가?”

        

       그 이야기?

        

       “……아냐. 아닐 거야.”

        

       엥?

        

       둘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얘기?”

        

       “아냐, 아무것도.”

        

       내가 물어봐도, 소희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말했다.

        

       “뭐, 그럼 좋아. 개인적인 이야기 같으니까. 아무리 메이드라도 주인 사생활까지 건드리면 안 되는 거겠지. 선배도 그렇게 말했고.”

        

       그런 말을 하면서도 소희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양혜인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 같은…… 자신이 배웠던 말을 하면서도 본인도 믿지 않는다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의외로 얌전하게 옥상 문 옆에 기대고 선 그녀에게, 하늘이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마워.”

        

       소희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렇게 우리는 단둘이 옥상 문으로 들어갔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하늘이가 나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과거에 예사라가 썼던 유서였다.

        

       “…….”

        

       나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하늘이에게 물었다.

        

       “……내 방을 뒤졌어?”

        

       생각해보면 하늘, 소희, 수아 이렇게 세 사람이 내 방에 있었던 적은 많았다. 내가 씻는 동안에는 언제나 나 없이 그 세 사람만 있었고.

        

       생각해보면 처음 잠을 자러 왔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옷장 문을 열기는 했었지.

        

       “이게 어디에 있던 건지는 아는 모양이네.”

        

       “…….”

        

       어차피 이걸 찾은 곳을 알고 있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양혜인 씨가 준 거야. 내가 받아왔어. 자.”

        

       하늘이는 가지고 가달라는 듯 손을 까딱 움직였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편지를 받아, 접힌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다시 접었다.

        

       “……그 사람이?”

        

       편지를 교복 안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래. 회장이 찾아오기 전에 너의 방을 뒤졌던 모양이더라.”

        

       “…….”

        

       “걱정할 거 없어. 아무래도 회장은 모르는 것 같으니까.”

        

       그렇겠지. 알았으면 나를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거다. 진짜로 납치해서 아무것도 못 하게 가두어두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하늘이에게,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최대한의 경계심을 내세우며 말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이를 바라보자, 조금 상처받은 것 같은 표정으로 어깨를 움찔 움츠렸다. 그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조금 아렸지만, 나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이 편지를 굳이 여기까지 와서 전달한 이유가 뭐야?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여기로 부른 거 아니야?”

        

       “…….”

        

       내 질문에, 하늘이는 잠시 바닥을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확 들었다.

        

       그리고 조금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 편지, 네가 쓴 것 맞아?”

        

       “……네?”

       

       아니다.

        

       ‘내가’ 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사라’였다.

        

       그러니까.

        

       “맞아.”

        

       “확실해?”

        

       하지만, 나의 대답에도 하늘이는 다시 한번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문제라면 많다. 나는 원래 이 몸의 주인도 아니었고, 원래 이 몸의 주인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문제.

        

       ……어쩌면 진짜 사라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문제.

        

       몸에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예사라와 유일하게 연결점다운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최나경을 몇 번이고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문제.

        

       하지만, 모두 지금 당장 이야기할 수 없는 말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말에 다소 가시를 세운 채 그렇게 물었다.

        

       “…….”

        

       나의 말을 들은 하늘이는,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내 쪽으로 몇 걸음 다가왔을 뿐이다.

        

       하늘이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질문하는 것을 보면, 이미 마음속으로 내가 진짜 예사라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는 걸까?

        

       ……유하늘은 원래 게임 속 여주인공이다. 그리고 게임상에서는 잘못된 선택지를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는 수준의 육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설령 게임 속의 편의 기능이었다고 하더라도, 하늘이 얼굴에서 나오는 빛이 내게 보이는 것처럼, 하늘이 또한 확실한 능력으로서 그 육감을 활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겠지.

        

       하지만, 하늘이는 더 이상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을 뿐이다.

        

       “괜찮아.”

        

       그리고 나에게 속삭였다.

        

       “아직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아. 기억을 되찾건 아니건,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리고, 나를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면서,

        

       “그때까지 쭉, 옆에 있어 줄 테니까.”

        

       그렇게, 조금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째서인지 노벨피아 예약 연재 설정 칸의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또 당할뻔 했다…

    =

    일기가좋던가님,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실 권리가 있는 것은 언제나 독자 여러분 뿐입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해서 사람들이 작가라고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겠죠. 그 글을 한 사람이라도 읽어주고, 그 글을 쓴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주어야 비로소 작가가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한자를 풀어 쓰면 ‘작은 이야기’라는 뜻이 되죠. 그 단어의 시작이 고대 중국에서 이르던 한 양식이고, 짧은 잡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봐도 그만, 보지 않아도 그만인 글이죠. 그저 읽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느껴주기를 바라며 이야기꾼들이 써내려간 짧은 이야기입니다. 소설이 아무리 길어봐야 독자 여러분의 한 일생만큼 길지는 않고, 그 생에서 차지하는 부분 또한 작을 수 밖에 없겠죠.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기에, 독자 여러분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저 인터넷 어느 구석에 휘갈겨진 보잘 것 없는 잡설이 될 수 있었던 이 글에 가치를 부여해 주신 것은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입니다.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것도, 그렇게 해서 제가 스스로 ‘아, 나는 작가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저의 소설이 여러분의 일생에서 차지하는 시간은 길지 않겠지만, 저의 소설이 완결난 뒤 그것을 끝까지 읽은 여러분이 몇 년 뒤에 ‘아, 그런 소설이 있었지’ 하고 다시 돌아와 추억에 잠길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이미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성실하게 연재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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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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