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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걸 휘두르는 주체는 똑같은 사람이다.

         경험이라고 하기엔 별로 해보고 싶지 않았고 교훈이라기엔… 얻고 나서도 상당히 찝찝한. 그런 종류의 체험 활동은 이제 끝났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발 밑에 주의를. 연결부의 턱이 조금 높습니다.”

         

         “…배려가 깊으시네요?”

         

         “본래는 퍼스트 클래스 전속 승무원이기에, 손님을 접대하는데 어떤 지장도 없도록 충분한 교육을 이수했습니다.”

         

         덜컹….

         

         접두사가 어마어마한 승무원 분의 선도를 따라 기차 칸을 또 한 번 건너간다.

         촘촘하다 못해 빼곡하게 객실이 박혀 있던 4인실 존을 겨우 벗어나니 나타난 건 2인실 칸들.

         

         딱히,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여전히 칙칙한 잿빛 연결 통로와 심심한 조명, 이용하는 인원이 절반이 되었음에도 비슷한 객실당 규모. 최소한의 서비스로 의자 네 개를 밀어 넣던 공간에 대신 침대 두 개를 박아 둔 정도?

         

         나중에 또 이동할 일이 생기면 바보같이 좌석을 고집할 게 아니라, 꼭 침대 칸을 이용해야겠다.

         작은 다짐을 마치고 또 칸을 넘어간다.

         

         덜컹!

         

         구태여 뒤쪽을 돌아보지 않고도, 기막힌 완급조절로 있는듯 없는듯 보행 간격을 맞춰 주시는 그 덕분에 건너뛰었던 기차 구경은 실컷 했다.

         

         그렇지만… 약간 신경 쓰이는 점이 생겼다.

         

         기차라는 이동 수단의 개념(Concept) 자체는 변화하지 않아서 유지된 현상일 수도 있었고, 그저 순차적으로 디자인하다가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는데….

         

         왜 정면 부분. 그러니까 앞쪽에 가까울수록 자릿세가 비싼 칸들이 배치된 걸까?

         벌써 4인실 다음 2인실, 개인실과 승무원 활동 구역까지 지나쳤다. 말하고 보니 마지막은 심지어 승객이 타는 곳도 아니네.

         

         설마하니 여차할 때 후열은 떼어 버린다던가… 하는 잔인한 의도는 부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를 기관실에라도 넣어둘 속셈이 없다면 그 놈의 일등석 객실도 슬슬 나와줬으면 좋겠고.

         

         “응?”

         

         속으로 투덜거리며 건너가자 이번에는 칸막이도 사람도 없이 상자만으로 가득 찬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나타났다. 중간중간에는 기차에 고정된 철제 선반과 격자가, 구석탱이에는 한창 충전중인 수송용 궤도 로봇이.

         

         이건 어떻게 봐도… 화물칸이지? 그렇지?

         내 무시무시한 가설을 부정하는 시설 배치를 보고 안심하기도 잠시, 뜬금없이 앞서가던 승무원 씨가 사죄의 말을 건네 왔다.

         

         “…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운행은 일등석 객실들이 비었다는 소식만 전해 들은 사업부 측에서 멋대로 배송 상품을 채워 넣은 것 같습니다. 불쾌하셨다면 빠르게 하역 작업을 진행하도록 연락을….”

         

         “네? 아니, 나는 전혀 상관없는데.”

         

         방금까지의 프로페셔널한 태도와는 정반대로. 뭔가 큰 실수를 발견한 것 마냥 연신 몸을 움츠리는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대체 화물칸에 화물이 있는 게 무슨 문제? 게다가 그걸 왜 갑자기 나에게 사과하는 걸까?

         복잡해 보이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여기서부터는… 실질적으로 다른 구역이었으니까.

         

         승무원 구역에서 화물칸으로 넘어오는 출입구에도 달려있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던 보안문. 그것과 동일한 게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찰칵.

         

         망설임없이 그는 목에 걸고 있던 키카드를 문에 부착된 리더기에 긁었고, 요란한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문이 개방되기 시작했으니.

         

         “……시설 차이가 진짜 극심하네.”

         

         전에 몇 번 본 기억이 있는 싸구려 도색이나 홀로그램을 이용한 눈속임과는 완성도부터 다른 갈색 원목 바닥이 쫘악 깔렸고.

         은은하면서도 그윽한 방향제 냄새가 코를 간질이며, 뒤쪽 차량에 있던 것과는 밝기 차이가 극명한 등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반면 가구나 인테리어는… 조금 이상했다.

         

         찬장을 가득 메운 술병은 알겠는데, 의자랑 소파가 이렇게 많을 이유가 뭐지. 2인 객실에도 비치되어 있던 침대가 일등석에 없을 리도 없는데?

         

         “일등석 고객님들의 간편한 사교 모임을 위한 실내 바(Bar)는 좀 마음에 드십니까? 전담 직원들이 아직 달려오는 도중이라 조금 황량한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하, 여기는 객실이 아니라 부대시설이셨다고.

         지나오는 길에 통과한 화물칸도 ‘일등석 전용’ 화물칸이었기에 그런 유별난 반응을 내비친 모양이다.

         

         “…또 뭐가 있는데?”

         

         “아무래도 아스트라 익스프레스가 연식이 있는 모델이나 보니, 바를 제외하면 식당과 의료실만 존재합니다. 대신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인테리어는 그에 걸맞게 중후하고 전통적인 멋이 살아있습니다!”

         

         야단스러운 소개에 맞춰 승무원의 제복 윗단에 달린 파라다이스 뱃지가 덜렁거렸다.

         

         자본주의… 자본주의. 그 찬란하고도 무거운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본다.

         이리저리, 다각도로 고민해봐도 당장 익숙해지긴 정말 무리였다. 이러니까 저기 뒤에 탑승한 파이브 아이즈 같은 사람들이 혁명…이 아니라 개혁 마렵다고 활개치는 게 아닐까요 시발.

         

         복잡한 심경을 담아 마른 세수를 마친 나는, 고객의 냉정한 평가를 기다리는 그를 마주하고 단숨에 상황을 정리했다.

         

         “일등석 승객은 나뿐이라고 했죠…? 그 땀나게 오고 있다는 전담 직원들 다 돌려보내고 제 드로이드나 탑승하는 대로 바로 출발해주세요.”

         

         “허나… 요리사가 없으면 저로서는 푸드 카트리지를 제공해드리는 수준의 서비스밖에 할 수가 없….”

         

         그거면 충분하니까! 제에에에발 그냥 갑시다! 예??

         

         단호한 내 태도에 당황한 듯 말꼬리를 흐리고 입을 뻐끔거리던 그는 이내 창피함과 부끄러움으로 다 죽어가는 나를 이해한 것처럼 재빨리 대응했다.

         

         “……죄송합니다! 귀빈분께는 지금 이 일분일초가 막대한 손실이나 다름없겠군요. 그럼 책임자 소환 또한 추후로 미루도록 하고 바로 객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전혀 이해 못한 것 같기도 하고?

         거기에 책임자 소환은 도대체 무슨 미친 소리야. 절대로 그만두지 못해?!

         

         

         

         “원래라면 VIP분들이 대동한 경호팀이 대기하는 위치지만, 이렇게 단출한 차림으로 찾아 주신 일등석 승객 분은 처음인지라….”

         

         “예~ 네. 고생 많으십니다….”

         

         물러나는 와중에도 문 앞에서 상시 대기할 테니,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그를 뒤로 한 채 객실 문을 닫아버렸다.

         

         고작해야 반나절 조금 더 걸리는 여정에 난리법석에 과했다.

         진짜 고위층이 움직이는 것에 맞춘 의전이라면 모를까, 실려가는 내용물이 나 같은 일반인이어야 영화에 나올 법한 배경이나 소품들이 아까웠다.

         

         우선 문가에서 떨어져 차분히, 주어진 개인 공간을 살폈다.

         

         일반 객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탁 트인 유리창, 휘장까지 드리운 더블 사이즈 침대, 부착된 전용 욕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발렌타인 자매가 동거하던 원룸보다 더 넓었거늘.

         

         다른 쪽에는 미니 냉장고니, 공기청정기니 하는 잡다한 가전제품들과 휴식용 가구들까지 잔뜩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분명 고급스럽긴 한데… 어째 졸부 느낌이….

         

         “이크.”

         

         카펫에 흙먼지가 들어갈라 슬쩍 옆으로 돌아, 정말 자기주장이 격렬한 의자를 가까이서 구경했다.

         

         새빨간 쿠션, 금색 테두리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사자 머리통이 양각된 팔걸이는 좀 아니지 않나?

         디자이너가 고려한 ‘전통적인 멋’이 어느 시대상을 떠올렸는지는 몰라도 그 시대에 훨씬 가깝게 살았던 사람으로서 말하겠는데 이건 너무 과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방석은 참 푹신해 보였기에 몸을 누였다. 팔걸이에 손을 올려 오돌토돌한 조각 부분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시간을 죽였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방금 막 입실한 수상자는 입을 열 기미가 안 보였다.

         

         으휴, 어쩔 수 없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물꼬를 터야지.

         

         “…그래서 뭐, 할 말 없어?”

         

         – …면목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딱히 기척을 감추지도 않고 들어왔으면서. 등을 돌리고 있는 나를 부르기는 찔렸는지 머뭇머뭇거리던 그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로 쳐다보니. 거기엔 다소곳하게 두 무릎을 꿇고, 스캐너의 불빛도 끈 채로 완벽하게 용서를 구하는 반성 자세를 취한 제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드디어 참았던 분노를….

         

         “……참나.”

         

         분노는 무슨, 터트리려던 화는 전부 날아가버렸고 어느새 짜증마저 사그라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머리속을 점거하고 맴돌던 미래 고민이나 정체성에 대한 걱정거리도, 고작해야 심부름 한 번 망쳤다고 세상 다 잃은 것처럼 끙끙대는 초인공지능의 모습을 보니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악취미적인 옥좌 같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풀썩.

         나 또한 제로 앞 카펫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편하게 주저앉았다.

         

         – ……. –

         

         내가 코앞에 있다는 걸 알 텐데도 눈을 꼭 감고 질타를 기다리는 바보를 노려보았다.

         길게 떠들 것도 없다. 얼른 끝내고 함께 쉬도록 하자.

         

         “로잘린이랑 내가 떠들던 얘기. 너도 같이 들었지? 괜히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실수로부터 배우고 앞으로도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면 돼. ……물론 상식이나 불법과 준법 행위를 저질러야 할 순간은 확실히 배워야 하겠지만.”

         

         – …더 책망하시지 않는 겁니까? –

         

         책망? 터무니없고 그런 게 아니다.

         애당초 내가 무슨 권리로 자기를 평가할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당황한 건, 제로가 혼자 남겨지면 더 큰 문제에 휘말릴까 봐 불안해서 그런 거고.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떨어져서 단독행동을 일삼고 싶으면 더 노력하도록 해.”

         

         채점한 시험지를 읊어준 후, 묵묵히 손을 내밀자.

         곧바로 딸깍!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마시기 좋게 따진 차가운 음료수, 데일리 브루웍스의 오렌지 주스가 손아귀에 쥐어졌다.

         

         “잘 마실게, 이 바보야.”

         

         

         

         ★ ☆ ★ ☆ ★

         

         

         

         황무지 한 가운데 허름한 가건물, 변변한 광원도 없는 어둠 속에 옹기종기 모인 이들이 구형 무전기를 붙들고 있는 통신 담당 갱단원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끝내주는 장비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장벽 밖의 무법자 기준이지 정면 승부에 나설 만한 게임 체인저는 못 됐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류 범죄자치고는 나름 열심히 기다렸다.

         비싼 크레딧 주고 산 물건으로 크게 한탕 해먹기 위해.

         

         “쓰읍. 아스트라… 어쩌구? 하여간에 네오 헤이븐 방면으로 오는 기차 한 대가 승객이 별로 없어서 모든 짐칸에 갓 출고된 상품을 빼곡하게 실었다는 뎁쇼?”

         

         “물자가 넘쳤던 기차는 여태도 많았다 이 등신아! 중요한 건 용병이나… 경호원 끌고 다니는 높으신 분들이 없어야지.”

         

         빡!!

         

         뒤통수를 맞은 녀석이 씨발거리면서도 다시금 무전기에 매달렸다.

         1분… 2분, 초조한 기다림 끝에 비로소 대장이 만족할 만한 정보를 들은 남자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딱 하나 있던 용병도 출발 직전에 갑자기 사라졌고, 호화 객실은 완전 공석이래서 직원조차 안 탔답니다!”

         

         “…좋아, 도시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친다. 앞뒤 화물칸만 다 털어도 각자 인생 자유이용권을 챙기고도 남을 테니, 절대 실수하지 마라 이 새끼들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 마크 찬스가 또…!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 눌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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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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