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2


   ​
   ​
   “으아아앙!”
   ​
   ​
   커다란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이건…’
   ​
   ​
   나는 반투명한 몸으로 엉망인 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알아차렸다. 눈 앞에 펼쳐지는 게 과거의 한 장면이라는 걸.
   ​
   ​
   “으아아앙!”
   ​
   ​
   거실 한쪽에 놓인 아기침대에서 펑펑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집은 엉망이었다. 거실 소파에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거실과 붙어있는 주방에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
   ​
   “어머! 아가!”
   ​
   ​
   뒤늦게 엄마가 주방 쪽에서 후다닥 달려오는 게 보였다. 
   ​
   ​
   “아앗!”
   ​
   ​
   우당탕!
   ​
   ​
   엄마는 아기 침대에 도달하지 못하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옷을 밟고 넘어져, 그대로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녀는 제 뒷머리를 문지르며 헤헤하고 웃어버렸다.
   ​
   ​
   “으아아앙!”
   ​
   ​
   그 와중에 어린 난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
   ​
   ‘저 때 완전 패닉이었지.’
   ​
   ​
   어디선가 나는 타는 냄새, 간간이 들려오는 엄마의 비명, 드릴로 무언가를 부스는 듯한 소리와 “쿠에엑”하는 정체불명의 소리(엄마의 요리에서 난 소리였다.).
   ​
   ​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보니 추억이네.’
   ​
   ​
   평범한 세계에서 살아온 나에게 개그 세계는 너무나 이질적인 곳이었다. 미친 사람들만 사는 세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
   이젠 추억이다 -..라고 태평하게 말할 수 있지만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힘들어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개그 세계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세계였다.
   ​
   ​
   살아남기 위해선 괴이한 세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
   ‘어렸을 때 진작 받아들였으면 편했을 텐데.’
   ​
   ​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 순간, 마법처럼 모든 게 아무렇지 않아졌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모든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
   ​
   사람들의 목숨이 장난감처럼 사용되는 것도, 끔찍한 사건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도.
   ​
   ​
   물론 오리지널 개그 세계 주민들과 달리, 나는 개그 세계의 ‘이상함’을 자각한 채 살아갔다. 그런 자각조차 없었다면 다크 판타지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
   ​
   ‘그런데 이 꿈은 왜 꾸는 거지?’
   ​
   ​
   멍하니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
   쟝 ~ 쟈쟝~ 쟈쟈쟝 ~
   ​
   ​
   입으로 기타 소리를 흉내를 내는 듯한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내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
   ​
   쟈걍 ~ 쟈걍쟈걍쟈쟝!
   ​
   ​
   소리는 거실 벽에 붙어있는 TV에서 들려왔다. 새하얀 화면에 손가락보다 작은 실루엣이 꿈틀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매우 멀리서 사람을 찍은 것 처럼 보였다.
   ​
   ​
   ‘어? 점점 커지는데?’
   ​
   ​
   새끼손가락만 했던 실루엣은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커졌다. 
   ​
   ​
   ‘잠깐 저거…!’
   ​
   ​
   얼굴이 식별될 정도로 실루엣이 가까워지자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
   ​
   쟈걍 ~ 쟈갸걍!
   ​
   ​
   메이드 카페에서나 입을 법한 메이드 복, 쫑긋거리는 고양 귀와 꼬리, 자기 얼굴만 한 고양이 발바닥 장갑을 낀 손, 주먹을 말아쥔 채 허공을 휘저으며 고양이인 척을 하는 모습.
   ​
   ​
   개그 세계의 신이 등장했다면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거 없었다.
   
   
   쟈쟈쟝! 쟈쟈쟈쟝!
   ​
   ​
   개그 세계의 신이 점차 화면에서 커지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화면에서 튀어나온 개그 세계의 신은 거실에 ‘척’하고 서더니 기묘한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
   ​
   “으아앗! 탄다!”
   ​
   ​
   그런 개그 세계의 신을 보지 못하는지 엄마는 괴물이 난동을 부리는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
   ​
   “흐흥, 이 몸의 등장이와요.”
   ​
   ​
   당시엔 어떤 방송에 빠져있던 건지 댄스가 끝나자,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휙 넘기며 이상한 아가씨 흉내를 냈다. 
   ​
   ​
   “으우…”
   ​
   ​
   갑작스러운 신의 등장에 어린 내가 울음을 뚝 그친다. 개그 세계의 신은 총총 내 아기침대 옆으로 다가와 어린 나를 내려다보았다.
   ​
   ​
   “흐흥,흐으응.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
   ​
   신은 멋들어진 목소리를 억지로 흉내를 내며 어린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신을 허공에서 바라보며 소리치고 싶었다.
   ​
   ​
   ‘이건 기억에 없었던 일이잖아!’
   ​
   ​
   아무리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이 왜곡된다고는 하지만 신의 등장까지 잊어버릴 리 없었다.
   ​
   ​
   “너, 마음에 드니 내가 계약을 해주마.”
   ​
   ​
   후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내밀어 보인 손등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의 마법진이 새겨져있었는데, 딱 봐도 일회용 타투 스티커로 보였다. 
   ​
   ​
   ‘저거 ‘소녀의 계약자’에 나오는 대사 아닌가?’
   ​
   ​
   신이나 되는 존재가 갓난 아기에게 유명한 애니 대사나 치고 있을 걸 보니, 나도 모르게 경멸이 눈동자에 맺혔다. 
   ​
   ​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환생자에게 뭘 하려는 거야?’
   ​
   ​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
   ​
   퓻.
   ​
   ​
   그녀가 내민 손바닥이 쩍 갈라지더니.
   ​
   ​
   철퍽! 콸콸!
   ​
   ​
   핏물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핏물이 어린 내 입에 쏟아져 들어갔다.
   ​
   ​
   ‘아기한테 무슨 짓이야!’
   ​
   ​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신에게 소리치고 싶지만, 방관자인 상태라 아무런 뜻도 전할 수 없었다.
   ​
   ​
   “커흑!”
   ​
   ​
   갑자기 입에 쏟아진 핏물에 어린 내가 기침하며 눈물을 보이자 신이 ‘이게 아닌데?’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꿀밤 열대는 때려주고 싶은 얼굴이었다.
   ​
   ​
   “흠,흠흠. 내 특별히 너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마!”
   ​
   ​
   신은 또 한 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사를 내뱉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젖병이 떨어졌다. 신은 그 안에 핏물을 가득 채우더니 어린 내 입에 물렸다.
   ​
   ​
   쭈웁,쭈우웁!
   ​
   ​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내가 몽롱하게 풀린 얼굴로 신의 핏물을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
   ​
   “홋홋홋! 이걸로 우리의 계약이 성사인 것이니라!”
   ​
   ​
   근본 없는 말투로 웃어 보인 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마를 팍팍 때리고 싶었다.
   ​
   ​
   ‘도대체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아니, 그것보다 아기한테 저런 걸 먹여도…’
   “당연히 괜찮지 ~ ”
   ​
   ​
   흠칫,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신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
   ​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냥!”
   ​
   ​
   그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엿가락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
   ***
   ​
   ​
   “아…”
   ​
   ​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3년 동안 지내던 창문 없는 내 방이다.
   ​
   ​
   ‘뭔가 이상한 꿈을 꾼 거 같은데… 신이 나한테 변태처럼 자기 피를 먹이는 꿈.’
   ​
   ​
   개그 세계에서 흔하게 꿨던 개꿈인지, 아니면 신의 피를 먹는 꿈이니 길몽인지, 그도 아니면 신이 나왔으니 흉몽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
   ​
   ‘그냥 개꿈이지.’
   ​
   ​
   그렇게 생각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
   ​
   그리 생각하며 몸을 옆으로 움직이는데.
   ​
   ​
   잘그락.
   ​
   ​
   “…?”
   ​
   ​
   뭔가 이상한 쇳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이불 안에서 들려왔다. 이불을 들추자…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게 보였다.
   ​
   ​
   “어..? 나 적한테 잡혔나?”
   ​
   ​
   그렇다고 결론 내리기엔 이곳은 제 방이었고, 누워있는 곳은 푹신한 침대 위였다.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갈고리가 떠오르던 그때.
   ​
   ​
   콰앙!
   ​
   ​
   문이 부서질 듯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노아의 모습이 보였다.
   ​
   ​
   “리, 안…”
   ​
   ​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 노아는 거의 돌진하듯이 나에게 달려왔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노아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나를 끌어안았다. 
   ​
   ​
   쿵!
   ​
   ​
   “어억!”
   “리안, 리안…”
   ​
   ​
   보통 동성 친구가 이렇게 달려들면 나도 모르게 밀어내게 되는데 이상하게 노아에겐 그럴 수가 없었다. 넘사벽 외모를 가져서 그런가? 이게 몸에 새겨진 일반 학생1(하층민)의 자아?
   ​
   ​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굳어버린다. 
   ​
   ​
   “오빠!”
   “쭈인님!”
   ​
   ​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
   ​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
   ​
   안도감에 그리 중얼거리자 내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노아의 팔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
   ​
   으득.
   ​
   ​
   ‘어..? 뭔가 이가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
   ​
   그런 의문을 가지기 무섭게 어깨가 뒤로 훅 밀려났다. 노아가 눈가를 붉게 물들인 채 미간을 한껏 구기고 있었다.
   ​
   ​
   ***
   ​
   ​
   “너…! 너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으로 쓰러져있었는지 알아? 너 죽을 뻔했어! 배에 구멍이 뻥 뚫려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어갔다고! ”
   ​
   ​
   울음기 섞인 목소리엔 원망과 분노, 죄책감, 걱정 같은 감정들이 가득했다.
   ​
   ​
   “죽을 뻔했잖아! 그럼 적어도, 적어도 자기 몸이 괜찮은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
   ​
   노아가 리안을 발견했을 땐, 리안이 특별한 이유로 기절한 탓에 마검이 역 소환되어버렸다. 그 탓에 옷이 가려주고 있던 상처가 훤히 드러났고,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나왔다.
   ​
   ​
   노아가 리안을 끌어안았을 땐 이미 바닥에 피가 웅덩이질 정도였다. 두 손으로 상처를 틀어막아도 핏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
   ​
   “아으,아니야…아니야..”
   ​
   ​
   설산에 던져진 것처럼 파랗게 질린 입술을 파르르 떨며 구멍 난 상처를 두 손으로 틀어막아 봤지만 피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제 겉옷과 리안의 옷을 뭉쳐 상처에 감아 지혈해 보지만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나와 옷만 붉게 물들 뿐이었다.
   ​
   ​
   노아가 덜덜 떨리는 몸으로 리안을 부축한 채 본부로 돌아가기 시작한 건, 리안의 숨결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희망 하나 덕분이었다.
   ​
   ​
   리안의 핏물로 만들어진 붉은 카페트 길을 걸으며 노아는 숨을 헐떡거렸다.
   ​
   ​
   노아는 육지에 억지로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시야가 노랗게 물들어 울렁거렸다. 코가 피 냄새에 마비되었고 목구멍 안쪽에서 단내가 났다.
   ​
   ​
   평소 그녀가 단련하던 무게에 비하면 리안은 깃털처럼 가벼울 텐데도 거대한 산을 지고 있는 것처럼 버겁게 느껴졌다. 
   ​
   ​
   인간은 이만큼 피를 흘리면 살아날 수 없다.
   ​
   ​
   머릿속에 박혀있는 상식이 이 길 끝이 절망뿐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
   ​
   노아는 본부에 도착한 이후의 기억이 희미했다. 비릿한 피 냄새와 비명, 울음소리.
   ​
   ​
   먹먹한 가운데 들려오는 건 리안의 작은 숨소리뿐이었다.
   ​
   ​
   죽을 거야. 알고 있잖아.
   ​
   ​
   해가 저물어 어둠이 점차 노아를 집어삼켰을 때 마음속에서 그런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리안의 상처가 마도구와 포션 덕분에 빠르게 아물었고 호흡도 안정되었다.
   ​
   ​
   하지만 안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오늘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내일 갑자기 숨이 넘어가면 어떡하지?
   ​
   ​
   노아를 포함한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두가 눈을 뜬 채 밤을 보냈다. 그렇게 3일이 흘러 리안은 겨우 눈을 떴다. 
   ​
   ​
   방에 설치해둔 마도구가 작동했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노아는 미친 듯이 달려 리안의 방으로 향했다. 멀쩡하게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리안을 보자 울음이 고였다. 
   ​
   ​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
   ​
   그런 리안이 깨어나 처음으로 뱉은 말은 노아는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리안 : (족쇄 철컹)적군에게 잡힌건가?!
MC : 아앗 ! 아깝네요! 정답은 아군에게 잡힌 상황입니다!
리안 :…??

저녁..11시50분 전에 한편 더 들고오겠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으아아앙!”

커다란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나는 반투명한 몸으로 엉망인 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알아차렸다. 눈 앞에 펼쳐지는 게 과거의 한 장면이라는 걸.

“으아아앙!”

거실 한쪽에 놓인 아기침대에서 펑펑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집은 엉망이었다. 거실 소파에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거실과 붙어있는 주방에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어머! 아가!”

뒤늦게 엄마가 주방 쪽에서 후다닥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앗!”

우당탕!

엄마는 아기 침대에 도달하지 못하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옷을 밟고 넘어져, 그대로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녀는 제 뒷머리를 문지르며 헤헤하고 웃어버렸다.

“으아아앙!”

그 와중에 어린 난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저 때 완전 패닉이었지.’

어디선가 나는 타는 냄새, 간간이 들려오는 엄마의 비명, 드릴로 무언가를 부스는 듯한 소리와 “쿠에엑”하는 정체불명의 소리(엄마의 요리에서 난 소리였다.).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보니 추억이네.’

평범한 세계에서 살아온 나에게 개그 세계는 너무나 이질적인 곳이었다. 미친 사람들만 사는 세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젠 추억이다 -..라고 태평하게 말할 수 있지만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힘들어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개그 세계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세계였다.

살아남기 위해선 괴이한 세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진작 받아들였으면 편했을 텐데.’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 순간, 마법처럼 모든 게 아무렇지 않아졌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모든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의 목숨이 장난감처럼 사용되는 것도, 끔찍한 사건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도.

물론 오리지널 개그 세계 주민들과 달리, 나는 개그 세계의 ‘이상함’을 자각한 채 살아갔다. 그런 자각조차 없었다면 다크 판타지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꿈은 왜 꾸는 거지?’

멍하니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쟝 ~ 쟈쟝~ 쟈쟈쟝 ~

입으로 기타 소리를 흉내를 내는 듯한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내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쟈걍 ~ 쟈걍쟈걍쟈쟝!

소리는 거실 벽에 붙어있는 TV에서 들려왔다. 새하얀 화면에 손가락보다 작은 실루엣이 꿈틀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매우 멀리서 사람을 찍은 것 처럼 보였다.

‘어? 점점 커지는데?’

새끼손가락만 했던 실루엣은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커졌다.

‘잠깐 저거…!’

얼굴이 식별될 정도로 실루엣이 가까워지자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쟈걍 ~ 쟈갸걍!

메이드 카페에서나 입을 법한 메이드 복, 쫑긋거리는 고양 귀와 꼬리, 자기 얼굴만 한 고양이 발바닥 장갑을 낀 손, 주먹을 말아쥔 채 허공을 휘저으며 고양이인 척을 하는 모습.

개그 세계의 신이 등장했다면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거 없었다.

쟈쟈쟝! 쟈쟈쟈쟝!

개그 세계의 신이 점차 화면에서 커지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화면에서 튀어나온 개그 세계의 신은 거실에 ‘척’하고 서더니 기묘한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으아앗! 탄다!”

그런 개그 세계의 신을 보지 못하는지 엄마는 괴물이 난동을 부리는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흐흥, 이 몸의 등장이와요.”

당시엔 어떤 방송에 빠져있던 건지 댄스가 끝나자,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휙 넘기며 이상한 아가씨 흉내를 냈다.

“으우…”

갑작스러운 신의 등장에 어린 내가 울음을 뚝 그친다. 개그 세계의 신은 총총 내 아기침대 옆으로 다가와 어린 나를 내려다보았다.

“흐흥,흐으응.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신은 멋들어진 목소리를 억지로 흉내를 내며 어린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신을 허공에서 바라보며 소리치고 싶었다.

‘이건 기억에 없었던 일이잖아!’

아무리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이 왜곡된다고는 하지만 신의 등장까지 잊어버릴 리 없었다.

“너, 마음에 드니 내가 계약을 해주마.”

후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내밀어 보인 손등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의 마법진이 새겨져있었는데, 딱 봐도 일회용 타투 스티커로 보였다.

‘저거 ‘소녀의 계약자’에 나오는 대사 아닌가?’

신이나 되는 존재가 갓난 아기에게 유명한 애니 대사나 치고 있을 걸 보니, 나도 모르게 경멸이 눈동자에 맺혔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환생자에게 뭘 하려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퓻.

그녀가 내민 손바닥이 쩍 갈라지더니.

철퍽! 콸콸!

핏물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핏물이 어린 내 입에 쏟아져 들어갔다.

‘아기한테 무슨 짓이야!’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신에게 소리치고 싶지만, 방관자인 상태라 아무런 뜻도 전할 수 없었다.

“커흑!”

갑자기 입에 쏟아진 핏물에 어린 내가 기침하며 눈물을 보이자 신이 ‘이게 아닌데?’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꿀밤 열대는 때려주고 싶은 얼굴이었다.

“흠,흠흠. 내 특별히 너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마!”

신은 또 한 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사를 내뱉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젖병이 떨어졌다. 신은 그 안에 핏물을 가득 채우더니 어린 내 입에 물렸다.

쭈웁,쭈우웁!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내가 몽롱하게 풀린 얼굴로 신의 핏물을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홋홋홋! 이걸로 우리의 계약이 성사인 것이니라!”

근본 없는 말투로 웃어 보인 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마를 팍팍 때리고 싶었다.

‘도대체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아니, 그것보다 아기한테 저런 걸 먹여도…’

“당연히 괜찮지 ~ ”

흠칫,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신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냥!”

그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엿가락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아…”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3년 동안 지내던 창문 없는 내 방이다.

‘뭔가 이상한 꿈을 꾼 거 같은데… 신이 나한테 변태처럼 자기 피를 먹이는 꿈.’

개그 세계에서 흔하게 꿨던 개꿈인지, 아니면 신의 피를 먹는 꿈이니 길몽인지, 그도 아니면 신이 나왔으니 흉몽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냥 개꿈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그리 생각하며 몸을 옆으로 움직이는데.

잘그락.

“…?”

뭔가 이상한 쇳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이불 안에서 들려왔다. 이불을 들추자…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게 보였다.

“어..? 나 적한테 잡혔나?”

그렇다고 결론 내리기엔 이곳은 제 방이었고, 누워있는 곳은 푹신한 침대 위였다.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갈고리가 떠오르던 그때.

콰앙!

문이 부서질 듯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노아의 모습이 보였다.

“리, 안…”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 노아는 거의 돌진하듯이 나에게 달려왔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노아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나를 끌어안았다.

쿵!

“어억!”

“리안, 리안…”

보통 동성 친구가 이렇게 달려들면 나도 모르게 밀어내게 되는데 이상하게 노아에겐 그럴 수가 없었다. 넘사벽 외모를 가져서 그런가? 이게 몸에 새겨진 일반 학생1(하층민)의 자아?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굳어버린다.

“오빠!”

“쭈인님!”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안도감에 그리 중얼거리자 내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노아의 팔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으득.

‘어..? 뭔가 이가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그런 의문을 가지기 무섭게 어깨가 뒤로 훅 밀려났다. 노아가 눈가를 붉게 물들인 채 미간을 한껏 구기고 있었다.

***

“너…! 너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으로 쓰러져있었는지 알아? 너 죽을 뻔했어! 배에 구멍이 뻥 뚫려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어갔다고! ”

울음기 섞인 목소리엔 원망과 분노, 죄책감, 걱정 같은 감정들이 가득했다.

“죽을 뻔했잖아! 그럼 적어도, 적어도 자기 몸이 괜찮은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노아가 리안을 발견했을 땐, 리안이 특별한 이유로 기절한 탓에 마검이 역 소환되어버렸다. 그 탓에 옷이 가려주고 있던 상처가 훤히 드러났고,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나왔다.

노아가 리안을 끌어안았을 땐 이미 바닥에 피가 웅덩이질 정도였다. 두 손으로 상처를 틀어막아도 핏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아으,아니야…아니야..”

설산에 던져진 것처럼 파랗게 질린 입술을 파르르 떨며 구멍 난 상처를 두 손으로 틀어막아 봤지만 피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제 겉옷과 리안의 옷을 뭉쳐 상처에 감아 지혈해 보지만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나와 옷만 붉게 물들 뿐이었다.

노아가 덜덜 떨리는 몸으로 리안을 부축한 채 본부로 돌아가기 시작한 건, 리안의 숨결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희망 하나 덕분이었다.

리안의 핏물로 만들어진 붉은 카페트 길을 걸으며 노아는 숨을 헐떡거렸다.

노아는 육지에 억지로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시야가 노랗게 물들어 울렁거렸다. 코가 피 냄새에 마비되었고 목구멍 안쪽에서 단내가 났다.

평소 그녀가 단련하던 무게에 비하면 리안은 깃털처럼 가벼울 텐데도 거대한 산을 지고 있는 것처럼 버겁게 느껴졌다.

인간은 이만큼 피를 흘리면 살아날 수 없다.

머릿속에 박혀있는 상식이 이 길 끝이 절망뿐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노아는 본부에 도착한 이후의 기억이 희미했다. 비릿한 피 냄새와 비명, 울음소리.

먹먹한 가운데 들려오는 건 리안의 작은 숨소리뿐이었다.

죽을 거야. 알고 있잖아.

해가 저물어 어둠이 점차 노아를 집어삼켰을 때 마음속에서 그런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리안의 상처가 마도구와 포션 덕분에 빠르게 아물었고 호흡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안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내일 갑자기 숨이 넘어가면 어떡하지?

노아를 포함한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두가 눈을 뜬 채 밤을 보냈다. 그렇게 3일이 흘러 리안은 겨우 눈을 떴다.

방에 설치해둔 마도구가 작동했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노아는 미친 듯이 달려 리안의 방으로 향했다. 멀쩡하게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리안을 보자 울음이 고였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런 리안이 깨어나 처음으로 뱉은 말은 노아는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