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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용사와 나는 며칠 정도 마을에 머무르면서 마을의 재건을 도와주었다.

       

       부숴진 건물들을 다시 세우고, 뱀의 뱃속으로 들어간 식량을 다시 구하고.

       

       솔직히 사냥하기 귀찮아져서, 커다란 뱀을 도축해서 고기만 발라내어 식량으로 넘긴 것은 사소한 이야기.

       

       독 같은건 전부 정화했으니까, 조금 찝찝한 점만 빼면 깨끗한 고기로 변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며칠간 먹기에는 충분하리라.

       

       그렇게 7일 정도 지나자 마을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서 사람이 살 만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면, 슬슬 떠나야겠군요.”

       

       “음. 이제야 움직일 마음이 들었느냐?”

       

       “네.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번 경우처럼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으니까요.”

       

       

       용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였던가. 유명한 히어로물에서 나온 이야기였지.

       

       용사에게는 큰 힘이 있으니까,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이니.

       

       뭐, 그 말은 나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지만, 나의 책임은 이 세계를 어떻게든 돌아가게 하는게 아닐까나. 음음.

       

       

       “그건 그렇고, 드래곤이었던가요. 입에서 불도 뿜고, 마음대로 날아다니던데…. 날개를 베어내는데 실패했다면 이기기 힘들었을 것 같네요. 역시 지상 최강의 생물 답네요.”

       

       “드래곤?”

       

       

       설마, 아직도 그 와이번을 드래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네가 상대한 몬스터를 말하는게냐?”

       

       “네? 네. 그게 드래곤 아니었나요?”

       

       

       용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딴게 드래곤일리가 없잖느냐. 드래곤은 좀 더 고상하고,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고귀한 생물인게다.”

       

       

       지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와이번과는 천지차이지! 아무렴!

       

       

       “네…? 저게 드래곤이 아니라고요…?”

       

       “네가 상대한 비행 도마뱀은 와이번이란다. 조금 강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드래곤이 되지 못한 놈이니까.”

       

       

       내 말에 용사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솔직히, 아무리 용사의 힘이 있다고 해도 드래곤은 잡기 힘들지. 아무렴.

       

       

       “그러면…. 일단 그 와이번의 시체는 챙겨가자꾸나. 와이번의 가죽이라면 나름 튼튼한 방어구가 되어줄 수 있을테고. 피막이나 이빨, 발톱과 뼈도 쓸데는 있을테니.”

       

       

       와이번쯤 되면 드래곤을 제외하면 최고급의 재료일테니까. 그 가죽을 이용해서 옷이라도 만들어서 용사에게 입혀줘야지.

       

       은갑을 입으면 갑옷으로 보호받는 부분은 거의 무적이지만, 보호받지 않는 빈틈이 있긴 하니까 말야.

       

       나는 와이번의 날개 피막을 잘라서 주머니를 만든 후, 아공간에 연결하는 마법을 걸고서 와이번의 시체를 모조리 집어넣었다.

       

       음. 훨씬 커다란게 쑤욱 들어가는 주머니라. 기묘하지만 쓸만하구만.

       

       게다가 와이번의 날개 피막으로 만든 것이라 어지간하면 찢어지지 않을테고 말이야.

       

       

       “그러면, 출발하도록 하죠.”

       

       “음….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아도 괜찮느냐?”

       

       “네?”

       

       “그 소녀 말이다. 네게 마음이 있는 눈치던데.”

       

       

       내 말에 용사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마, 마음이 있다니…. 제게는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용사의 일을 평생 할 것도 아니지 않느냐. 언젠가는 용사의 검을 놓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야 할텐데.”

       

       

       내 말에 용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뭐, 시간은 넉넉하니 느긋하게 생각하거라. 그리고 작별인사는 확실하게 하는 것을 잊지 말고. 제대로 작별하지 않고 헤어진다면 후회하게 되는 법이니.”

       

       

       내 말에 용사는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마을 쪽으로 뛰어갔다.

       

       용사와 소녀의 작별을 훔쳐본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음…. 이미 실컷 침해한 것 같지만, 마지막 정도는 지켜줘야지. 아무렴.

       

       어디보자, 그러면 용사가 작별인사를 끝마치고 올 동안, 와이번의 가죽으로 옷이나 만들도록 할까.

       

       용사의 신체 사이즈는 모두 알고 있으니까. 금방 만들 수 있을테지!

       

       가죽의 두꺼운 부분으로는 부츠도 만들고, 부드러운 부분으로는 장갑도 만들자.

       

       하나 하나가 용사의 몸을 지키는 옷이 되어줄테니까. 열심히 만들어야지.

       

       

       – – – – – – – – – – – – – – – – – – – –

       

       

       “떠나시는거죠?”

       

       

       소녀는 용사에게 말했다.

       

       

       “네.”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어요. 용사씩이나 되는 분이 이 작은 마을에 오랫동안 머무는게 말이 안되긴 했었으니까요. 언제 떠나셔도 이상하진 않았죠.”

       

       

       용사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으음. 조금 아쉽긴 하네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용사님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용사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먼저 프로포즈해서 같이 살자고 했을지도 몰라요.”

       

       “저는….”

       

       “하지만 힘들겠죠. 용사님이 저 용의 무녀님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뭐, 딱 봐도 답이 나오니까요.”

       

       

       소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좋아하시죠? 저 분을? 용의 무녀님을?”

       

       “…….”

       

       

       용사는 답하지 않았다.

       

       

       “흐음…. 침묵도 때로는 답이라구요. 뭐, 덕분에 깔끔하게 포기 할 수 있겠네요. 저렇게 아름다운 분이라면 누구라도 이길 수 없겠죠. 저 같은 작은 마을의 여자아이라면 더욱 더.”

       

       

       살짝 자포자기한 말에 용사는 입을 열었다.

       

       

       “내가 저 분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룰 수 없는 마음일 뿐이야.”

       

       “어머나? 천하의 용사님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시는건가요?”

       

       “저 분은 나를 자식처럼 보고 있을 뿐이니까. 그리고…. 저분의 커다란 마음을 한 사람이 독점할 순 없을테니까.”

       

       “독점…?”

       

       

       용사는 작게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그런게 있어. 아무튼. 나는 이만 떠나도록 하지.”

       

       “네. 안녕히 가세요. 저희 마을을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용사는 작게 인사한 후 걸음을 옮겼고, 소녀는 용사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용사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는데도, 계속, 계속 손을 흔들 뿐이었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던 소녀의 손은 천천히 멈추더니, 용사의 뒷모습이 희미해지는 곳에 이르자 천천히 떨어졌다.

       

       소녀는 무언가를 참고 있었다.

       

       용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참고 있었다.

       

       

       아니, 참지 못했다.

       

       

       “용사님!!! 만약에! 용사님의 일이 끝나고 갈 곳이 없다면!!! 다시 마을을 찾아주세요!!!!”

       

       

       소녀의 목소리가 용사에게 닿을까? 소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소녀는 외쳤다.

       

       

       “용사님이 지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둘게요!!! 언젠가 돌아올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해둘게요!!! 그러니까! 언젠가 다시 와주세요!!!”

       

       

       기약 없는 말. 닿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말.

       

       하지만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외치는 것 뿐이었다.

       

       이 목소리가 그에게 닿기를.

       

       마음을 담아서 외칠 뿐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용사의 일이 끝나면이라….”

       

       “음? 왜 그러느냐?”

       

       

       용사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음. 시덥잖은 녀석 같으니. 옛다. 네가 작별인사를 하는 동안 만든 물건이니 한번 써보거라.”

       

       

       나는 와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용사에게 건네주었다.

       

       조금 대충 만들긴 했지만, 원재료가 워낙에 좋은 가죽인지라. 꽤 좋은 물건이 만들어졌단 말이지.

       

       옷과 부츠는 좀 수고를 들여야 제대로 만들 것 같으니. 천천히 만들어야지.

       

       용사는 내가 건네준 와이번 가죽 장갑을 손에 끼더니 몇번 주먹을 쥐었다가 펴보였다.

       

       

       “움직임에 문제는 없느냐?”

       

       “네. 손에 딱 맞군요.”

       

       

       음. 눈대중으로 대충 만든 물건이지만, 제법 어울리는구만.

       

       

       “자, 그러면 길을 떠나자꾸나. 우리가 바쁘게 움직일수록, 많은 이들이 구해질테니.”

       

       “네. 서두르도록 하죠.”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람의 정령을 통해서 다른 위험한 몬스터의 위치는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와 용사는 길을 떠났다.

       

       

       – – – – – – – – – – – – – – – – – – – –

       

       

       이름 없는 용사와 용의 무녀는 세계를 떠돌며 많은 이들을 해치는 몬스터들을 격퇴했다.

       

       천변만화.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동물을 굴복시키고, 북쪽에서 만난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인을 쪼개고, 바위를 몸에 휘감은 거대한 야수의 목을 베며, 독늪에서 헤엄치는 거대한 물고기와 같은 괴물도 토막내는 용사의 진격.

       

       그 무엇도 그들의 발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모험을 찬양했고, 그들의 위업을 칭송했으니.

       

       그런 그들의 소식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용사. 그 칭호는 영원히 거룩하리니.

       

       그런 그들의 소식이 다른 종족들에게도 전해진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리라.

       

       셀 수 없이 많은 메뚜기떼를 모두 불태워버린 후,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던 용사와 용의 무녀에게 두 명의 전령이 도착하였으니.

       

       그들은 각각, 엘프와 드워프가 보낸 전령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고귀한 엘프의 일족의 대리인으로서, 인간의 용사를 초대하겠소. 저 난쟁이들의 흙투성이 손보다 우리 엘프의 손을 잡는게 좋을 것이오.”

       

       “용사라면 분명 무기와 방어구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테지! 우리 드워프가 만든 장비를 넘길테니, 저딴 귀쟁이 놈들의 입발린 소리는 듣지 말라고!”

       

       

       얘들은 또 왜 이렇게 사이가 안좋은거야?

       

       뭐 싸우기라도 한건가? 이그드라실과 사가르마타는 별다른 말도 안했는데?

       

       크흠.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하자. 결정은 그 뒤의 일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TLAS1359님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주말에는…. 음…. 올릴 수 있으면 올릴테지만.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비축분… 비축분이 필요하다….

    TheMelalo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바위의 정령은 게으르다는 편견…! 아니 편견이 아닌가!

    (반응이 없다. 잠들어 있는 모양이다.)

    (오오. 붓다여.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까.)

    (실로 말법적인 상황! 하지만 나약한 모탈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나무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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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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