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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얼빵 영애. 무서워서 발이 안 움직이는 거야? 겁쟁이네~”

   

   던전으로 향하는 복도에 멈춰선 조이를 보고 루시가 얄미운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은 이전에 조이가 봤던 풍경이었다.

   

   갑옷을 걸치고, 방패를 한 손에 든 채,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앞서나가는 루시의 모습.

   

   그 때의 조이는 그 뒤를 따라가다가 던전의 문을 보고서 바닥에 주저앉았었다.

   

   그 날과 다른 점이라면 조이와 루시가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일까.

   

   오늘 아침 조이가 준비를 마치고 나서 방에서 나올 때 루시는 그 앞에서 조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겁쟁이인 아가 영애라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벌벌 떨면서 방에 틀어박히는 쫄보는 아니었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시가 왜 조이를 기다렸는지는 뻔했다.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조이를 걱정해서 그녀를 찾아온 거겠지.

   

   지금의 루시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로는 틱틱거릴지언정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자신의 공을 자랑하기보단 ‘허접이 못하는 일을 대신 해줬을 뿐인데?’ 라고 말하며 얄미운 웃음을 짓는 사람이니까.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을 가졌던 조이지만 자신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루시를 본 순간 조이는 그런 의문을 버렸다.

   

   할 수 있나 없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루시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가야 하는 것이었다.

   

   던전의 입구를 앞에 둔 지금도 조이는 그를 생각했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고. 괜찮을 거라며 자기 최면을 건 후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던전에 들어가야한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얼빵 영애.”

   

   그 때 루시가 건틀릿을 낀 자신의 손으로 조이의 등을 두드렸다.

   

   “히약?!”

   

   스스로를 다잡고 있던 조이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내질렀다.

   

   평소의 조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얼굴이 벌게진 조이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던 조이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루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웃음을 짓는 루시의 모습이 있었다.

   

   “푸하하. 얼빵 영애. 와~안전 얼빵했어! 히약이라니! 푸흣. 풋.”

   “알른 영애 때문이잖아요.”

   “나? 얼빵 영애가 얼빵한게 왜 내 잘못이야? 얼빵한 허접 겁쟁이인건 자기 잘못이잖아.”

   “으…”

   

   반박을 하고 싶지만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조이가 루시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조이가 얼굴을 붉힌 채 부들부들거리고 있으려니 루시가 웃음을 그치고 조이의 앞으로 오더니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얼빵 영애. 허접한 널 믿지 말고 날 믿어. 알겠어?”

   

   날 믿어.

   

   그러고 보면 루시가 저 말을 했을 때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말을 어긴 적이 없었다.

   

   입학시험을 칠 때에도.

   

   괴한을 만났을 때도.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루시는 자신을 믿으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했고 결국에 조이를 구해냈다.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조이는 자신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던 여러 잡념들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루시는 자신을 바라보는 조이의 눈길을 바라보다 웃음과 함께 먼저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카데미의 던전 입구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던전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악몽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던전의 입구를 본 순간 조이는 고개를 숙였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빨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조이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그 날의 악몽이 떠올라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앞을 지키고 있는 자그마한 등을 본 순간 조이는 다시금 고개를 들 용기를 얻었다.

   

   다시금 던전 입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조이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건 그저 문일 뿐이라는 것을.

   

   자신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설령 저 안에서 무언가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앞에 있는 자그마하지만 듬직한 등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느릿하게 숨을 내뱉은 조이는 조심스레 한 걸음을 내딛었고,

   

   두 번째 걸음을 내딛어서,

   

   한참 앞에 서 있던 루시의 곁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멀쩡해 얼빵 영애? 겁나서 울 것 같으면 돌아가도 괜찮은데.”

   “괜찮습니다. 알른 영애.”

   

   당신의 곁에 있는 한은. 전 괜찮을 것 같아요.

   

   마음에 담은 말을 입 밖으로 내기에는 부끄러워 그를 감추고 대신해서 웃자 루시도 똑같이 웃음을 지었다.

   

   “아. 참. 얼빵 영애. 너 던전에 들어간 적 없지?”

   “네. 그렇습니다.”

   “1층부터 다시 올라가야겠네. 잠시만.”

   

   루시가 던전의 입구 앞에 서서 무언가를 조작하는 동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프레이 켄트가 조이의 옆으로 다가왔다.

   

   “저기.”

   

   함께 체력 훈련을 하면서 프레이와 내적인 친밀감을 얻은 조이는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네. 켄트 영애.”

   “괜찮겠어?”

   “뭐가요?”

   “얼빵 영애의 체력으로는 힘들걸.”

   

   허나 얼빵 영애라는 이야기를 들을 순간 조이의 눈썹이 약간 흔들렸다.

   

   맞다. 켄트 영애도 엄청난 마이 페이스의 소유자였지.

   

   대련 이외의 경우에는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는 분이시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분도 알른 영애처럼 주의를 준다고 바뀔 분은 아니니까 내가 이해를 해야겠지.

   

   “힘든가요?”

   “응. 나도 힘들었어. 죽을 뻔 했어.”

   “켄트 영애께서요?”

   

   말도 안 돼.

   

   매일 아침마다 알른 영애와 비견될 속도로 두 시간 씩이나 내달리는 켄트 영애가 힘들어서 죽을 뻔 했다니.

   

   농담이라 여기기에는 프레이 켄트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나 또 던전에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

   

   프레이 켄트의 말에는 한치 거짓이 없었다.

   

   기왕 1층부터 공략을 시작하게 된 거 미리 50층까지 돌파를 해두자는 루시 알른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강행군은 점심즈음 시작해 4시간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는 여기가 아카데미의 던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신기해 하거나,

   

   루시가 지시하는 것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던 조이였지만.

   

   중간 이후부터는 힘들단 생각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루시가 내달리며 지시를 하는 걸 따라 잡는 것이 한계였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30층에 도착할 무렵까지는 어찌저찌 루시의 뒤를 붙잡기 위해 조이도 최선을 다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조이에겐 그게 한계였다.

   

   완전히 탈진해버린 조이는 그 후 짐짝마냥 루시의 어깨에 업혀서 매달려 다녀야 했다.

   

   

   ‘하핫. 얼빵 영애가 짐덩이 영애로 진화했네. 허접 체력에 실력도 허접하다니. 잘하는 게 뭐야?’

   

   파트란 가문의 영애로써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찌 자존심을 챙기겠는가.

   

   

   50층 까지의 공략을 끝마치고 해산하는 길.

   

   조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억지로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이제 매 주 주말마다 이것과 비슷한 강도의 훈련을 반복한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걸 버틸 수 있을까?

   

   알른 영애가 괜히 강해진 게 아니구나.

   

   이런 훈련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구르셨으니 강해지신거야.

   

   나도 이를 악물고 버티다 보면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힘내자!

   

   “얼빵 영애. 많이 힘들어 보이는 군.”

   

   그리 다짐하며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던 조이는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아서가 서 있었다.

   

   무언가 단련을 하다 오신 걸까? 땀 범벅이시네.

   

   “그러는 왕자님도요.”

   “하하. 최근에 자극을 많이 받아서 말이야. 그대도 그렇지 않나?”

   “맞아요.”

   

   둘 다 같은 사람에게 자극을 받고 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같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음을 흘렸다.

   

   “어땠나. 알른 영애와의 던전은.”

   “지옥 같았어요. 알른 영애는 너무 자기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요. 그걸 따라잡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걸요.”

   “동의한다. 그녀는 자신의 특수성을 이해하질 못해. 너무 드높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자기가 1년 만에 이 정도로 성장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짜증나는군.”

   “질투나죠.”

   

   둘 다 루시가 싫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한 사람은 꺼림의 대상에서 은인이.

   

   다른 한 사람은 증오의 대상에서 뛰어 넘어야 할 라이벌이 된 덕분이리라.

   

   “수고해라. 본인은 루시 알른을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할 거다.”

   “못 하실 걸요. 아서 왕자님. 왕자님이 성장하는 동안에 알른 영애는 더 빠르게 성장하니까요.”

   “두고 봐라.”

   “네. 잘 볼 게요.”

   

   그렇게 두 사람은 웃으면서 서로의 기숙사로 향했다.

   

   *

   

   조이가 파티원이 되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알새틴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요청했던 방패를 구했다면서.

   

   이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던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카데미 거리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방패다.

   

   새로운 방패.

   

   여태까지 보급형 방패만 쓰고 있었는데.

   

   정이 들만하면 박살이 나서 새로운 방패를 구해야 했었는데.

   

   드디어 정을 들이고 꾸준히 쓸 수 있는 방패를 얻은 거다!

   

   드워프가 만들어 낸 방패 정도면 종결급 방패를 구할 때까지 거뜬히 쓸 수 있겠지!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뒷골목의 주점에 방문한 나는 방패를 보고서 황홀감에 빠졌다.

   

   말끔하게 떨어진 방패의 곡선.

   

   우둘투둘한 부분 없이 깔끔한 앞면.

   

   거기에 손으로 붙잡아야 하는 가죽은 편안한 위치에 단단히 매달려 있어.

   

   완벽해.

   

   역시 무구는 드워프제가 최고지!

   

   양산품으로 나오는 방패와 질부터가 다르잖아!

   

   하아. 나 어떡하지.

   

   이 방패를 쓰다가 다시 보급형 방패를 들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해.

   

   차라리 그냥 신성으로 만들어 낸 방패를 쓰고 말지.

   

   아껴 쓰자.

   

   종결급 방패를 얻는 순간부터는 방패가 부서질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그 때까지만 아끼면 괜찮을 거야.

   

   이 드워프제 방패가 부서질 일이 1학년 때 있을 리도 없지만 그래도 아껴야지.

   

   새로운 방패를 한참 쳐보다가 껴보기도 하고 휘둘러 보기도 하고 양 손으로 들어보기도 한 나는 웃음을 지으며 방패를 등에 맸다.

   

   아아. 행복해.

   

   여태까지 구진 방패만 들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방패가 너무 사랑스럽다.

   

   <여아야. 네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구나?>

   ‘네?’

   <그도 그럴 게 너는 내게 이런 모습을 안 보여주지 않았느냐.>

   ‘할아버지. 양심이 있어요?’

   

   그야 할배를 얻고서 기뻐하기에는 할배가 내게 저지른 일이 너무 많잖아!

   

   나 할배 때문에 뒤질 뻔 했다고!

   

   그 때 생각하니까 겁나 빡치네.

   

   내가 할배한테 알른 가문의 짬통 맛은 보여 줬지만 아카데미의 짬통 맛은 안 보여줬지?

   

   한 번 아카데미와 알른 가문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를 알려줘볼까?

   

   “저기. 알른 영애님.”

   

   속으로 할배에게 응징을 가할 생각을 하던 나는 알새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왜요?’

   “왜. 정보팔이.”

   

   “이것말고도 영애님을 부른 사유가 있습니다.”

   

   ‘말해봐요.’

   “뭔데.”

   

   “버로우 가문의 목걸이에 관한 일입니다만. 그를 입수하는 데에 장애가 생겼습니다.”

   

   응?

   

   왜?

   

   게임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버로우 가문의 목걸이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알새틴이 입수하는 물건이니까.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정보팔이. 그거 하나 못해? 허접~ 무능해~ 정보팔이란 이름조차 아까워~”

   

   “…그것이 뉴먼 가문이 개입했습니다.”

   

   뉴먼 가문이라면 솔라딘 왕국의 백작 가문 중 하나잖아.

   

   거기에서 왜 버로우 가문의 목걸이를 신경 쓰는 거지?

   

   지금은 그 물건의 정확한 가치를 파악한 곳이 몇 군데 없을 텐데?

   

   “제가 파악한 바로는 알른 영애께서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알고서 선수를 친 듯 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모전 광탈로 시작한 이 작품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즐거운 글을 쓸 수 있는 작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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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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