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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디모나가 잡혀갔다. 웃고 있어서 잡혀갔다는 말을 쓰기도 참 모호했다.

         

       "이길 게 뻔한 재판이잖아요!"

         

       아슈발 할츠의 이름값은 컸다. 은퇴한 노장이 교단 본부에 들어앉자, 디모나에 대한 말들이 쏙 들어갔다.

         

       "디모나 이단심판관님이 할츠 후작님과 지인이셨다니…"

       "제국 눈 밖에 나면 교단이랑 관계없이 완전히 라인 잘못 타는 거잖아…"

       "큰일이네…일단 말을 좀 아끼자…"

         

       대놓고 나를 무시하던 시선들도 쏙 들어갔다. 오히려 좋은 말만 넘쳐났다.

         

       따지고 보면 영웅의 귀환이나 마찬가지다. 디모나는 파라메르의 구원과 직접 연관된 사람이다.

         

       거기다가 그곳으로 간 이유는 교단에서 내어놓은 아이나 마찬가지였던 날 구하기 위함.

         

       부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상사 타이틀이 디모나의 이름 앞에 떡하니 걸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멋져.”

       “역시 디모나 이단심판관님.”

       “대주교로 올라가셔야 할 분은 진정 그분이 아닐까?”

       “이단심문소는 그분을 담기엔 너무 적은 거 같아.”

         

       여론이 휙휙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나 마나, 무척 바빴다.

         

       "마티어."

       "오셨습니까! 사제님!"

         

       손을 싹싹 비벼대는 게 재밌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빙글 몸을 돌렸다.

         

       "용병까지 구해서 날 구하러 올지는 예상 못 했어."

       "사제님과 저는 한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이럴 때 의리를 보여줘야, 신뢰가 더 두껍게 쌓인다 생각합니다."

       "헥토르들까지 다 잃어버릴까 봐 겁먹었던 건 아니고?"

       "…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사제님이 어디 가서 돌아가실 분은 아니지요."

       "그렇지? 내가 마티어를 이래서 아껴."

       "저는 영원한 사제님의 부하입니다."

         

       어색한 웃음 속에 나는 쓱 추출해둔 넥타르를 건넸다.

         

       "따로 용돈으로 써."

         

       상벌을 확실히 하는 편이 나중에도 좋겠지.

         

       마티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껴두었던 돈 싹 다 털었을 거 아니야? 용병 500이 쉽게 고용할 수 있는 병력이 아니지. 더군다나 사지나 다름없던 파라메르로 향한다는 말에, 평소의 배는 걸었어야 했을 테고."

       "제 선택이 옳았군요. 역시 사제님이십니다."

       "상벌은 확실히 해야지. 뭐, 마티어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 했을지 모르지만."

       "……"

       "농담이야. 농담. 웃어. 응?"

       "하…하하! 재밌는 농담이었습니다!"

         

       마티어 쪽에 따로 보상한 뒤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아 있었다.

       와줘서 고맙다던가, 네가 없으면 난 죽었다던가.

         

       나는 그런 말로만 때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챙겨 온 보물 중 일부를 떼어, 마티어에게 넘겼다.

         

       "이, 이건?!"

       "그래."

       "제, 제가 기특한 짓을 한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뱀 교단으로 보내 놔."

       "예?"

       "저쪽에서 내가 보낸 거 하나라도 빠졌다고 하면 죽는다. 뱀 교단 이자벨라 흑색 비늘 성기사단장. 똑똑히 적어서 보내. 알겠지?"

       "……"

         

       뱀 교단 측에 따로 보낼 물건을 골라놓은 뒤, 나는 제5 이단심문소에 눌러앉았다.

         

       이단심문소에서 전사한 이들은 총 6명. 그들의 유족들에게 나는 따로 보상했다.

         

       "……."

       "감…사합니다…사제님."

         

       날 구하겠다고 죽은 이들이다.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도 안 챙겨주겠지.

         

       하지만 죽은 자는 죽은 자고 산 자는 산 자. 나는 떨어지던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읏챠. 할 건 해야지.

         

       "라다토크님. 집무실 좀 빌릴게요."

       "에?"

       "오스틴. 내가 호명하는 사람 한 명씩 불러와."

       "알겠습니다!"

         

       이단심문관 오스틴이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나는 라다토크와 로즈메리를 쓱 돌아보았다.

         

       "두 분 다 무기 좀 꺼내 보실래요?"

       "그게 무슨…"

       "일단 꺼내 보세요."

         

       라다토크가 무기를 꺼냈다. 무거운 중검. 검 자루는 오랫동안 잡은 듯이 반질반질했다.

         

       로즈메리 쪽은 내가 최근에 마련해준 제국 강철로 된 무기를 잡고 있었다. B랭크 무기. 성능은 그럭저럭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것도 아니었다.

         

       봐줄 만한 정도가 끝이지.

         

       "어디 보자…"

         

       라다토크부터 챙겨줄까.

         

       [두 개의 태양(A)]

         

       명장이 만든 물건 중 하나. 그가 쓰고 있는 중검과 유사하다. 조금 더 크다는 점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만, 나쁘지 않지.

         

       성력을 쓱 흘려보냈다. 불꽃이 사르륵 붙었다.

         

       굿.

         

       아주 좋네!

         

       "자요. 라다토크님."

       "이, 이건…"

         

       라다토크가 무기를 쥐었다. 화르륵 붙는 불꽃에 나와 무기를 번갈아 보았다.

         

       "이걸…제가 써도 되는…겁니까…?"

       "당연하죠. 라다토크님이 안 쓰면 누가 써요?"

       "하, 하지만…"

       "절 구하려고 그 먼 거리를 달려오셨잖아요. 이 정도도 안 하면 사람들이 욕해요. 받아주세요."

       "……"

         

       라다토크가 중검을 한 바퀴 돌렸다. 검집에서 꺼낸 날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이런 걸 바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받으니까 좋잖아요?"

       "부정할 수는 없군요."

         

       라다토크가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가서 한 번 써보세요. 처음 써보는 무기를 길을 좀 들여야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라다토크가 물러섰다. 로즈메리가 필사적으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눌렀다.

         

       "흥. 흐응. 흥."

         

       콧소리가 다 새어나온다. 나는 쓱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로즈메리."

       "네?"

       "날 구하러 와줘서 고마워요. 솔직히 감동했어요."

       "뭐, 뭐…굳이 구하러 간 건 아니지만…그렇게 말한다면야…"

       "물건 주우러 온 김에 겸사겸사 구해준 것도 결국 구해준 게 맞으니까요."

       "흠. 흠흠. 그렇죠? 이제야 제 말을 이해하셨네요."

       "네."

       "…응?"

       "이제 나가보세요.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으니까."

         

       로즈메리가 굳었다. 라다토크가 빠져나간 문을 연신 흘깃흘깃 돌아보았다.

         

       "그…리고요?"

       "예?"

       "아, 아니…그러니까…구, 구해준 건 구해준 거잖아요?"

       "그렇죠?"

       "그 왜…"

         

       자존심에 말을 못 한 로즈메리가 문을 손가락으로 쓱 가리켰다.

         

       "문이네요."

       "그, 그래서요?"

       "아. 예. 저기로 나가면 돼요."

       "으…으읏…흐으읏…"

         

       놀리는 건 이쯤 해둘까.

         

       [찬란한 무게(A)]

         

       쿵.

         

       도끼가 떨어졌다. 나는 가볍게 허공에 한 번 휘둘렀다.

         

       이것 또한 명장이 만든 무기. 정확히 말하면, 제국 무기가 아니다. 북쪽 야만인들에게서 빼앗아온 무기지.

         

       자루는 짐승의 뼈로 되어 있고, 날 끝도 울퉁불퉁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A랭크다.

         

       왜냐?

         

       짐승의 영혼이 무기 안에 깃들어 있으니까!

         

       "자요."

       "……"

         

       무기를 받아든 로즈메리가 쓱 도끼를 올려다봤다. 듬성듬성 빠진 날에 인상을 찌푸렸다.

         

       "…무기…죠?"

       "맞아요. 근데 굳이 갈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예?"

       "거기 안에 있는 늑대가 안 좋아할 테니까."

         

       그르르르르.

         

       울려퍼지는 짐승 소리에 로즈메리가 쓱 뒤를 돌아보았다. 다섯 마리 늑대의 형상이 허공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정…령?"

       "정령이라기보다는 그냥 영혼 같은 애들이에요. 열심히 길들여보세요. 무척 유용할 테니."

         

       조건부로 S랭크에 달할 수 있는 도끼 무기. 잘만 길들인다면 성물로도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다.

         

       무기를 쓰다듬던 로즈메리가 늑대들을 노려보았다. 역시 고양이와 개.

         

       벌써 서열 싸움을 하는군.

         

       "…고…고…고마…"

       "고맙다고요?"

       "…으으읏! 몰라요! 아, 아무튼 잘 쓸게요! 당신도 금방 뛰어넘을 테니까, 그런 줄 아세요!"

         

       솔직하지 못하기는.

         

       로즈메리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나는 서류를 쓱 들었다.

         

       어디 보자…

         

       이제 나머지 이단심문관들한테 분배를 좀 해볼까?

         

         

         

         

       . . .

         

         

         

         

       "맙소사."

       "이, 이걸 정말 제게…"

       "형제니이이임! 사랑합니다!"

         

       고백만 몇십 번은 들었다. 나는 가볍게 서류를 정리했다. 준 물품 목록들을 점검하고, 남은 것들을 도로 포켓 안에 집어넣었다.

         

       가져온 것 중에서 1/4 정도만 남았지만 이게 어디냐. 이것만 해도 평생 먹고살 정도는 되는데!

         

       똑똑.

         

       "들어오세요."

         

       내 집무실도 아니지만 대충 대답했다. 문이 삐걱 열리더니, 마지막 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낮의 무녀 후보, 아이린.

         

       "…후배님."

       "선배님!"

         

       나는 쪼르르 달려나갔다. 이번 전투의 1등 공신이나 마찬가지인 사람!

         

       거기다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헤쳐오면서 와준 사람이다. 타른헬름의 주인 의식이 얼마나 버티기 힘든데. 거기다가 낮의 무녀 후보까지 육 개월 만에 도달했을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죽을 각오로 노력한 거야? 아무리 천재라도 도를 지나친 노력이다.

         

       "뭐 마실래요? 뭐든 이야기해봐요."

       "여긴 심판관님의 집무실…"

       "자리 비우면 제 것이죠. 뭐. 그래서 뭐 마실래요? 편히 있어요."

       "그럼 일단 차를…"

       "타올게요!"

         

       콧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물을 데웠다. 잔을 놓고 차를 따랐다.

       아이린이 차를 홀짝였다.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맛…"

       "맛없죠?"

       "….."

       "맹물이나 다름없어요. 여기 집무실에 있는 게 죄다 그런 차들뿐이라서."

       "디모나 이단심판관님이 마시는 차 아닌가요?"

       "은근히 본인한테 짠돌이예요. 그럴 돈 있으면 이단심문관들한테 하나라도 더 먹여야 한다나 뭐라나."

         

       아이린이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많이 친해졌나 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업무 특성상 곁에 붙어 있어야 하니까."

       "……."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아이린이 자신의 무릎을 팡팡 쳤다.

         

       "이리 와요."

       "…예?"

       "빨리요."

       "그냥 옆에 앉을…"

       "이리 오세요. 자하드 후배님."

         

       싸늘하게 웃는 게 무서워서 슬쩍 곁으로 갔다. 하지만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앞에서 멍때렸다.

         

       "거기 뭐…앉으라는 건 아니죠?"

       "옆에 누워요."

       "……?"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누웠다.

       허벅지. 그 안쪽에 머리를 올렸다. 살결이 너무 부드럽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고개를 돌렸는데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얼마나 무시무시한 흉기란 말인가…

         

       "…자하드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곳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너무 무방비해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

       "무방비하고, 너무 품을 쉽게 내어줘요."

       "이래 봬도 가드가 단단…"

       "조용히 하세요."

       "넵."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를 매만졌다.

         

       "…나중에 진짜 저택에 감금이라도 해야 할까요?"

       "예?"

       "혼잣말이에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멈췄다.

         

       "자하드. 저랑 같이 가야 할 곳이 있어요."

       "어딘…데요?"

       "낮의 무녀. 제 선배님이 되실 분이 당신을 보고 싶어 해요. 그리모어라는 분이에요. 친절하시고, 상냥하신 분이에요."

       "왜 절 보고 싶어 하는데요?"

       "음…그게…"

         

       아이린이 부끄러운 듯 내 머리를 다시 만지작거렸다.

         

       "…목숨 걸고 구하러 간 사람이…어떤 자식인지 직접 보고 싶다 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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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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